알랭 바디우가 왜 하필 현대에 고대 로마 제국 속의 ‘사도 바울’을 불러냈을까요? 그것은 단순히 역사 속 성경 인물을 멋지게 재해석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가 처한 치명적인 정치적·사상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가장 과격하고도 날카로운 처방전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바디우가 진정으로 고발하고 싶었던 오늘의 세계(특히 프랑스와 서구 사회)의 민낯과, 그의 바울 읽기가 던지는 시대적 의미를 세 가지 핵심으로 짚어봅니다.
1. 오늘의 세계: ‘가짜 관용’과 정체성의 정치 (자본주의적 제국)
바디우는 현대 서구 사회(다문화·자본주의 사회)가 표방하는 소위 ‘관용(Tolerance)’과 ‘다문화주의’의 허구성을 아주 매섭게 고발합니다.
차별화된 통치: 현대 자본주의 제국은 표면적으로는 "모두를 존중한다, 차이를 인정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이민자', '프랑스인', '무슬림', '기독교인', '부자', '가난한 자' 등 온갖 정체성과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통제합니다.
가짜 보편성: 네가 누구든 상관없다는 식의 자본주의적 관용은 실상은 "너는 너의 구별된 울타리(정체성) 안에 가만히 박혀 있어라"라는 격리에 불과합니다. 바디우가 보기에 이것은 고대 로마 제국이 각 민족의 종교와 문화를 놔두되 세금을 거두고 통제했던 방식과 정확히 닮아 있습니다.
2. 바울의 소환: ‘경계를 허무는 절대적 평등’의 복원
바로 이 지점에서 바디우는 사도 바울의 칼끝을 빌려옵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선포한 유명한 구절, "유대인도 헬라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고, 남자와 여자도 없다"는 선언은 단순한 종교적 수사가 아닙니다.
모든 정체성의 무효화: 바울에게 있어 부활이라는 ‘사건’ 앞에서는 인간을 가르던 모든 태생적·문화적·사회적 격차와 정체성이 완전히 무효화됩니다.
참된 보편성: 바디우는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것이 바로 이 ‘조건 없는 보편성’이라고 봅니다. 너와 내가 어떤 배경을 가졌든, 어떤 정체성으로 분류되든 상관없이, 진리(사건) 앞에서 누구나 완벽하게 평등한 하나의 '새로운 주체'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혁명적 가능성을 바울에게서 발견한 것입니다.
3. 프랑스적 맥락에서의 의미: 공화주의의 위기와 탈출구
특히 프랑스는 ‘라이시테(Laïcité, 정교분리 원칙)’와 ‘공화국의 보편적 평등’을 국가의 뼈대로 삼고 있지만, 이념이 관료화되고 변질되면서 이슬람 히잡 논쟁 등에서 보듯 특정 집단에 대한 배타성과 편협함으로 변질되곤 했습니다.
진정한 보편성은 국가의 법령이나 강요된 동화(Assimilation)를 통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기존의 좁은 정체성을 깨고 나오는 '주체적 사건(회개/메타노이아)'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바디우는 바울을 통해, 현대 프랑스와 서구가 잃어버린 참된 혁명적 에너지를 종교의 언어가 품었던 '보편적 주체성' 속에서 재발견하고자 한 것입니다.
결론: 바디우가 바울을 통해 던지는 오늘의 경고
바디우가 철학을 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세상은 이대로 끝이어야 하는가? 이 분열과 냉소, 정체성의 감옥 속에서 인류는 다 같이 갇혀 죽어야 하는가?"
바울이 좁고 배타적인 유대주의의 성채를 부수고 "온 인류를 향한 열린 진리"를 선포했듯이, 오늘날 우리도 자본주의와 국가가 만들어놓은 낡은 분열의 체계(짐승의 체계)를 깨부수고, 모든 차별을 가로지르는 참된 연대와 평등의 주체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가—바디우는 바로 그것을 묻기 위해 사도 바울이라는 가장 격렬한 혁명가의 문을 두드린 것입니다.
결국 알랭 바디우의 《사도 바울》은 철학자가 성경을 빌려 쓴 종교 해설서가 아니라, 오늘날 침묵하고 무너져 버린 현대의 '진리와 보편성'을 구출하기 위해 던진 가장 과격한 정치철학적 선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