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노트]
교리의 성벽을 넘어,
약자들의 ‘대항 서사’로서의 복음서를 읽다
최근 M. 데이빗 리트와(M. David Litwa)의 책을 읽으며 고대 문학으로서의 복음서와 초기 기독교의 성격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복음서를 객관적 사실만을 담은 건조한 ‘역사 기록’으로 보거나, 반대로 지적으로 동의해야 하는 ‘관념적 교리집’으로 읽곤 한다. 하지만 고대 헬레니즘-로마 세계의 문학적·역사적 맥락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복음서 저자들이 왜 그토록 고대의 역사 서술적 장치(tropes)와 신화적 표현을 절묘하게 엮어 예수를 묘사했는지 그 숨은 의도가 보이기 시작한다.
1. 1세기의 저항: 약자들의 ‘대항 이데올로기’
복음서가 집필되던 서기 1세기, 초기 기독교인들은 로마 제국의 거대한 폭력과 기득권의 압제 아래 있던 ‘약자들’이었다.
당대 로마 제국은 황제를 ‘신의 아들’, ‘지상의 주님’, ‘구원자’라 부르며 숭배를 강요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복음서 저자들은 헬레니즘 세계에 보편적이었던 역사적·신화적 장치를 가져와 예수의 삶에 입혔다. 그것은 단순히 건조한 팩트를 나열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다.
"로마 황제가 진짜 신이 아니라, 가장 처참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야말로 진정한 구원자이자 우주의 주님이다."
이 무서운 선언은 제국의 폭력과 탐욕에 맞서기 위한 약자들의 절박하고 위대한 ‘대항 서사(Counter-Ideology)’였다. 이 선언에서 비롯된 각성 덕분에, 초대 교회는 제국의 계급과 이기심을 넘어 서로의 발을 씻기고 연대하는 ‘전혀 새로운 대안적 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삶의 실천이야말로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계승한 모습이었다.
2. 제국의 교회가 되며 잃어버린 '삼손의 힘'
하지만 역사는 역설적으로 흘렀다. 서기 4세기,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고 권력의 중심에 서면서 교회는 자기를 비우는 ‘약자의 위치’를 버렸다.
삼위일체나 양성론 같은 고대 철학의 언어로 정립된 교리들이 정통성을 판단하는 절대적 기준이 되었고, 교회는 스스로 약해지는 자기비움(Kenosis)의 능력을 상실했다.
마치 머리털이 잘려나간 삼손처럼 spiritual power를 잃어버린 제국의 교회는 자신들이 비판했던 로마 제국주의자들의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기 시작했다. 교리의 성벽을 견고히 쌓고, 그 성벽 바깥으로 사람들을 추려내어 고문하고 학대하는 종교재판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예수가 가르친 ‘십자가의 길(푯대)’은 사라지고, 오직 ‘교리적 공식에 대한 지적 동의’만 남은 건조한 종교로 변질된 순간이었다.
3. '문자주의'와 '교리주의'라는 장벽을 넘어
창세기 1장을 단지 ‘물리적 6일 창조 팩트’로만 읽을 때보다, 고대 근동의 ‘하나님의 우주 성전 건축과 인간 제사장으로의 초청’이라는 신학적 의미로 읽을 때 비로소 그 풍성함이 드러나듯, 복음서 역시 마찬가지다.
예수의 신적 성격이나 기적적 요소들을 단지 "실제로 일어난 과학적 팩트인가"라는 건조한 틀이나 "믿지 않으면 이단"이라는 교리적 성벽으로 가두어버리면, 복음서가 품고 있던 진정한 생명력은 말라버린다.
복음서는 우리가 관념적으로 인정해야 할 교리집이 아니다. 가장 높은 자리를 버리고 가장 낮은 약자의 자리로 내려가 타자를 위해 자기를 비우셨던 예수의 삶, 즉 ‘우리가 마땅히 걸어가야 할 윤리적·영적 푯대(Goal)’인 것이다.
💡 글을 마치며: 우리가 회복해야 할 복음의 본질
기독교 신앙은 스스로 약자의 위치에 서거나, 설령 힘을 가졌을지라도 그것을 버림으로 약자와 동행할 때에만 비로소 참된 의미를 갖는다.
자기 부인의 실천도 없이 정통 교리만을 선언하고 낙인을 찍는 것은 복음의 본질을 배반하는 일이다. 오늘날 교회가 또다시 교리의 성벽을 높이 쌓으려 할 때마다 역사 속 비극은 재연된다.
데이빗 리트와의 책을 읽으며 다시금 깨닫는다. 우리가 복음서에서 발견해야 할 진짜 본질은, 제국의 폭력에 맞서 사랑과 비움으로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그 첫 마음, 그리고 오늘 나의 삶 속에서 십자가를 표대로 삼아 약자와 연대하는 '살아있는 실천'이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