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구분 | 성지명 | 성지주소 | 순례일자 | 순례자 |
성지 | 관덕정 순교 기념관 | 대구시 중구 관덕정길 11 | 2023. 09. 02 | 박세옥 글로리아 & 정수철 알로이시오 곤자가 |
ㅡ 순례지 개요
대구대교구 제2주보성인인 이윤일 요한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곳이며, 많은 신앙 선조들이 신앙을 증언하기 위해 참수 치명당한 거룩한 곳으로, 공식 명칭은 '천주교 대구 관덕정 순교 성지'이다.
관덕정은 조선 시대 무과 시험 제도의 하나인 도시(都試)를 행하던 도시청으로 조선 영조 25년에 세운건물로 옛 이름은 관덕당이었다. 관덕당은 누각과 넓은 마당이 있어 군사 조련이나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장으로 쓰이던 곳이었는데, 그런 이유로 이곳에서 사형 집행도 이루어졌다.
관덕당에서는 1815년 을해박해 때 7명이 순교했으며, 1939년 기해박해 때 3명, 1866년 병인박해 때 이윤일 요한 성인을 비릇하여 7명이 순교하였다.
이윤일 요한 성인의 유해는 날뫼, 묵리 등을 거쳐 1976년 미리내 무명 순교자 묘역에 이장되었다가 시성된뒤 1986년 12월 21일 대구교구청내 경당으로 옮겨 모셨고, 1987년 성인의 순교일인 1월 21일을 맞아 서모당에 안치하고 교구 제2주보성인으로 선포하였다. 그 뒤 1991년 관덕정 순교 기념관이 완성되자 성인의 유해를 관덕정 내 지하 성당 제대에 옮겨 모셨다.
(한국 천주교 성지 순례 132쪽 )(순례확인도장: 입구 사무실 )
홍유한이 아들 홍낙질에게 보낸편지(1785년 이전)
아들 홍낙질(洪樂質, 1754~1816)의 건강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염려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홍유한은 편지를 들고온 노비를 세워두고 그 자리에서 즉시로 답을 써서 보냈다. 복자 홍낙민의 직계 7대손 홍관희 옹이 소장했던 편지로, 변기영 몬시뇰이 기념관에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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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이 와서 편지를 보고, 더위를 먹고 수종다리를 앓느라 먹고 마시는 것을 다 물리친 것을 알았다. 끙끙 앓느라 소리를 지른다니 멀리 밖에서 염려스럽다. ...오미자를 조금 보내니 상복해서 진액이 나오는 것을 돕도록 해라. 이 생원과 서로 상의하여 청화생지탕(淸火生津湯) 두세 첩을 함께 조제해서 먹거라. 진액이란 두 글자를 잊지 말고, 이를 보충해야 할 것이다. 나머지는 이만 줄인다. 당일에 아비가."
수덕자(修德者) 홍유한이 읽고 실천한 칠극(七克)(1798/활판본)
예수회 선교사 판토하(D. Pantoja, 龐迪我(방적아), 1571~1618)가 1614년에 저술한 수양서.
조선 사절단이 북경 천주당에서 받아왔으며 주어사 강학 모임에서도 읽혔다. '칠극'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죄악의 근원이 되는 일곱 가지 뿌리 즉 '오만. 질투. 탐욕. 분노.식탐. 음욕. 나태'와 이를 다스리는 일곱 가지 덕행 '은혜. 겸손. 절제. 정절. 금면. 관용. 인내'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홍유한은 마테오 리치(M. Ricci, 1552~1610)의 <천주실의>를 통해 교리를 배웠고 <칠극>을 삶의 기준으로 삼아 실천하며 살았다.
이윤일 성인의 목관
1976년 성인의 유해를 용인 먹방이에서 미리내 무명 순교자 묘역으로 이장할 때 사용한 관이다 관은 세로5자(약150cm), 가로 1자(30cm) 크기의 송판이다. 관 안밖에 특별한 표시나 칠을 하지 않았으며, 관에 세로 140cmm, 가로20cm 크기의 널이 들어 있다. 관은 1986년 대구로 옮겨와 1987년 1월 20일 교구청 주교관 경당에서 열었다, 전시된 청동 십자가는 미리내에서 성인의 유해를 발굴할 때 주변에서 출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