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버덕 그리고 교육감님
1992년 홍콩에서 미국으로 가던 화물선이 북태평양 해상에서 폭풍우를 만나 침몰할 뻔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바다에 빠진 컨테이너에서 2만 8000여 개의 고무 오리 장난감, 러버덕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사고는 뜻밖의 결과를 불러왔습니다. 그 사고 이후, 러버덕은 무려 20여 년 동안이나 바닷물의 흐름을 타고 호주 북부 해안가를 시작으로 알래스카, 캐나다, 미국을 거쳐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의 해안까지 그야말로 전 세계 바다를 돌며 여행을 했습니다. 20년간의 러버덕의 행로는 해양학자들의 해류 연구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난 수요일 밤 출근길에 즐겨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러버덕 이야기가 흘러나왔습니다. 러버덕에 관한 짧은 이야기를 들으며 갑자기 노옥희 교육감님이 떠올랐습니다. 각종 쓰레기를 치우며 일하는 동안 생각의 흐름을 따라갔습니다. 저는 울산 출신이 아니기에 울산에서 본격적으로 살기 시작한 것은 2015년 5월 이후입니다. 그리고 일하느냐 부모님 보살피느냐 바쁜 삶을 살았기에 노옥희 교육감님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교육감님을 알게 된 계기는 2021년 10월 ‘더불어숲 도서관’에서 제 책의 북 콘서트를 했는데, 그때 교육감님이 이곳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 그 존재를 알았습니다.
2022년 11월 4일, 저는 울산시청 대강당에서 처음으로 교육감님을 만났습니다. 그날은 ‘점자의 날’이었고, 2부 순서에 제 책의 북 콘서트가 있었습니다. 교육감님은 1부에서 ‘점자의 날’ 축사를 하셨는데, 마지막에 제 이야기를 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일면식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2부에 북 콘서트를 하시는 이형진 작가님 훌륭한 분입니다...” 당시 엄청난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교육감님의 예상치 못한 소개에 긴장이 많이 완화되었습니다. 그날 처음으로 교육감님을 뵙고,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교육감님과 짧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참 따뜻하고 진실한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날의 그 짧은 만남이 교육감님과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 되리라고는... 가슴이 무척 아픕니다.
서양 아이들의 욕실에는 하나씩 있는 장난감인 러버덕은 해리포터의 비밀의 방에도 나온 적이 있을 정도로 꽤 유명합니다. 그런데 러버덕은 2007년 플로렌타인 호프만에 의해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다시 태어납니다. 이 프로젝트로 인해 러버덕은 많은 이들에게 평화와 행복의 메시지를 전하며, 사랑과 영감을 주었습니다.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다.”라는 노옥희 교육감님이 걸어온 길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교육감님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울산 교육의 엄청난 폭풍우입니다. 마치 2만 8000여 개의 러버덕이 뿔뿔이 흩어졌듯이 울산 교육의 미래를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교육감님이 재직하신 5년 동안, 울산 교육의 해류는 엄청난 변화를 겪으며 아이들을 위한 교육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제 교육감님의 그 사랑을 우리가 실천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많은 이들이 교육감님으로 인해 영감을 받았기에 2007년 재탄생한 러버덕 처럼, 공공교육 프로젝트로 그 연속성을 이어나갔으면 합니다. 미약한 글이지만, 이것이 교육감님에 대한 제 추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