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이란-2013112947민보연.hwp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2013112947민보연.hwp
민보연 과제 제출입니다.
(1번째 과제)
고전, 시대를 초월하는 것
2013112947 영화영상학과 민보연
어려서부터 “고전을 읽어야한다. 고전은 위대하다.” 라는 말은 익히 들었다. 시카고 대학교는 원래 3류 대학이었는데, 대학총장이 바뀌면서 학생들에게 무조건 100권의 고전을 읽도록 하여 지금의 1류대학을 만들었다고 한다. 세계에서 노벨상을 가장 많이 수상한 대학이기도 하다. 아이슈타인, 에디슨 그리고 처칠의 공통점이 어렸을 때는 저능아였는데 인문고전, 철학고전을 읽고 천재가 되었다는 말도 들었다. 일부 부모들 사이에서도 자식들에게 고전읽기로 교육을 시킬 만큼 고전의 훌륭함이 통용되고 있다. 하지만 고전이 왜? 그토록 위대한지에 대해서 자세히 생각해 본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구관이 명관이다.’ 라는 말이 있는데 단순히 구관이기 때문에 고전이 훌륭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무조건 구관이 명관인 시대는 지났다. 위대한 고전작품은 단순히 오래 되서가 아닌 특별한 이유가 있다. 그렇다면 고전이 왜 위대할까? 내가 처음 고전을 접한 것은 아마 고전음악, 이나 문학 일 것이다. 고전이라기에 비교적 이른 시기에 쓰인 작품이지만,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고는 늙은 어부를 통해 인간존재의 원동력은 희망, 의지, 자부심, 인내심이란 걸 느꼈다. 또 여러 한국고전문학을 통해 삶의 지혜와 교훈을 얻었다. 고전문학은 삶을 살아가는 전술이 녹아있다는 말이 있듯이 고전은 삶의 방향성을 제시해 준다.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조언자 같은 역할이다. 인생을 살아갈 때, 보통 내 삶의 방향성이나 모토를 정하고 싶어 한다. 경험을 통해서 얻을 수 있지만, 비교적 오래 걸린다. 그래서 간접적으로나마 일찍 접할 수 있는 것이 '고전'이라 생각한다. 고전을 통해서 내 삶의 방향성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것 들이 문학을 통한 고전이 나에게 준 첫 느낌이다. 그런데 영화에 흥미를 갖고, 영화를 배우게 되면서 내가 고전이란 무엇 인지에 대해 생각했던 점들이 조금 변하였다. 영화에서 ‘고전’이란 의미가 문학에서보다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영화는 다른 문학이나 미술, 음악과 다르게 기계를 통한 기술도 크게 중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새로운 편집기법이나 촬영기법 등 기술을 이용한 영화, 또 무성영화밖에 없던 시절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싱어>가 영화의 역사상 한 획을 긋는 영화가 된다. 하지만 무성영화가 없었다면 유성영화는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듯 영화에서의 고전은 마냥 구관이 아닌, ‘새로운 혁신’이란 단어가 어울리기도 한다. 즉 영화를 통해서 본 고전이란 그 의미가 '오래된 위대한 작품'을 넘어서, '새로움을 낳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에 와서 중요시 되는 것 중 하나가 창의성, 독창성이다. 지금도 끊임없이 새로운 것 들이 나오고 있지만 그 근원은 고전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서 어디에서도 없었던 새로운 것은 이제 없다고 생각한다. 나만의 창의성, 새로운 색깔을 찾기 위해선 고전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전에서 발전시켜야 하고 고전에서 찾아야한다.
지금까지 고전에 대한 여러 가지의 나의 견해였다. 나는 문학에서의 고전과 영화에서의 느낀 고전에 대한 의미가 조금은 달랐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통솔하는, 고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한 문장으로 답을 하자면, "고전은 시대를 초월하는 것." 이다. 예를들어, 영화 미하엘 콜하스는 고전영화의 색을 많이 담은 작품인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영화의 메시지에서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원작인 소설의 배경은 16세기인데, 정의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현대에서도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이 베스트셀러로 등극할 정도로 정의에 대한 물음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즉 고전은 시대를 초월하는, 인간이 끊임없이 풀어야 하는 숙제를 담은 메시지가 존재한다. 고전은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들에게 삶의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시대를 초월하여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낳고,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이 끊임없이 고민하는 문제들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래서 고전은 시대를 초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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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째 과제)
2013112947 영화영상학과 민보연
시네코드 선재에서 <미하엘콜하스의 선택> 감상
'소설 미하엘 콜하스를 원작으로 한 영화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
<미하엘콜하스의 선택>은 독일 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미하엘 콜하스'라는 중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 프랑스 영화이다. 원작으론 먼저 접하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말상인 콜하스가 남작에게 부당한 처우를 받고 이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다 결국 정당한 권리를 되찾고 가족과 자신의 목숨은 잃게 되는 내용이다. 영화는 요즘 자주 보던 극적이고 자극적인 액션의 영화와는 달랐다. 소설을 원작으로 해서 그런지 영화의 흐름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듯이 전개된다고 느껴졌다. 어떠한 긴장감을 주기 위한 억지요소가 없이 현실적이게 다가왔다. 촬영과 음악 배우의 연기, 그리고 인물을 비추는 강렬한 햇빛. 이 모두가 마치 책 한권에 들어있는 것 같이 영화에 부드럽게 스며들어 있었다. 그래서 영화의 잔혹한 부분도 더욱 아름다운 긴장감으로 느껴졌다. 거대한 자연 속 집중되는 한 인물 '매즈 미켈슨' 영화는 자연스럽게 관객들을 미하엘콜하스의 마음의 이동에 따라서 감상을 하게 만들었다. 나 또한 영화를 볼 때 이야기의 극적 흐름보다, 미하엘 콜하스의 마음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따라가 감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내 권리를 지켜주려 하지 않는 나라에 머무르고 싶은 생각은 없소. 발로 걷어차이는 신세라면 사람으로 사느니 차라리 개로 살겠소." 콜하스에게 권리와 신념은 자신의 목숨보다 중요하다. 죽은 엄마 때문에 혹은 말 때문에 봉기를 일으켰나는 딸 리스베뜨의 질문에 미하엘은 “아니”라고 답한다. 미하엘이 남작과 맞서게 된 것은, 억울하게 뺏긴 말을 되찾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오로지 자신의 정의를 따르기 위한 저항을 한 것이다. 그는 부당한 권력의 횡포를 향해 맞섰다. 그는 권리와 신념을 위해 자신의 사람까지 처단했다. 하지만 마틴루터는 콜하스를 저지했다. 신념 때문에 총과 칼을 든다는 것은...참으로 아이러니한 문제이다. 크리스천인 콜하스에게도 난해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하스는 "내가 남작을 용서할 때까지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지 말라” 라고 말하며 칼을 꺼냈다. 하나님 앞에서 미하엘콜하스의 정의가 과연 옳을까. 이길 수 없는 어리석은 싸움을 하는 인간이 어떤 식으로 모든 것을 잃게 되는지를 처참히 보여주기도 한다. 롱테이크의 죽음을 맞이하는 마지막 장면은 콜하스의 모습이 정의롭기보다 처참하고 씁쓸해보였다. 자신의 정의를 찾았지만 세상을 어지럽히고, 폭력을 행했다. 이 아이러니함이 마지막 그가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의 표정에서 절절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숨죽이고 그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가 목숨까지 받치고,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어 지키 신념과 정의가 과연 옳은 것일까. 부패한 세상을 어지럽혀 개인의 정의를 찾았지만, 그 이후에도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를 보면 인물의 얼굴에 비춰진 햇살이 밝음과 어두움을 반복한다. 미하엘 콜하스의 정의를 보여주는 것 같다. 옳음과 그름 사이에서 쉼 없이 갈피를 못 잡는 듯한 이미지로 느껴졌다. 하지만 미하엘콜하스의 선택이 옳고 그름을 떠나, 그 시대의 횡포에 맞선 이름 없이 스러져간 숱한 저항들이 쌓이고 쌓여 축조된 하나의 응축된 인물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16세기부터 권력에 부당함에 맞선 평민. 우리는 지금까지도 부당함에 맞서야만 한다. 현대에도 권력의 부당함과 부패 속에서 한 평민이 권리를 찾기란, 목숨을 바꿔야만 찾을 수 있다고 할 만큼 어려울 것이다. 이 점에서 생각했을 때 그의 선택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