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화예술의 화두: 환타지
김철교(시인, 평론가, 국제PEN한국본부 부이사장)
최근 웹소설 중심의 장르문학이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다. 장르문학과 순수문학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는 상황에서, 웹소설은 특히 판타지 장르를 중심으로 독자층을 확대하고 있다.
판타지는 현실의 제약에서 자유로운 창조를 가능하게 한다. 실재하지 않는 대상을 만들어내거나, 현실의 구속 없이 상상력을 펼칠 수 있다. 프로이트는 이를 "이미 존재하는 것을 새롭게 보여주고, 표면적 현실 이면에 감춰진 것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판타지는 무의식에 축적된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경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이러한 기반 위에서 새로운 예술적 세계를 형성한다.
미국의 아동문학가 로이드 알렉산더(Lloyd Alexander: 1924~2007)는 “넓은 의미에서 모든 문학작품은 판타지”라며, “리얼리즘은 현실처럼 보이는 판타지이고, 판타지는 꿈처럼 보이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리얼리즘이 시대와 문화, 환경에 따라 묘사 대상이 달라질 수 있는 반면, 판타지는 사랑, 미움, 희망, 선과 악 같은 인간의 보편적 욕망을 다루기 때문에 시대와 국경을 넘어 보편성을 지닌다.
판타지의 영역에는 민담, 신화, 전래동화, 아동문학뿐만 아니라 공상과학소설도 포함된다. 사실상 모든 시(詩)는 판타지라 할 수 있다. 이는 시가 상상 속에서 창조되지만, 현실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판타지 작품으로는 톨킨(J.R.R. Tolkien: 1892~1973)의 『반지의 제왕 (The Lord of the Rings)』, 롤링(J.K. Rowling: 1965~ )의 『해리 포터』 시리즈, 루이스(C. S. Lewis: 1898~1963)의 『나니아 연대기 (The Chronicles of Narnia)』 등이 있다. 한국에서는 이영도의 『눈물을 마시는 새』(황금가지, 2014)가 독보적이다. 이 작품은 각기 다른 신념과 욕망을 가진 네 종족이 갈등과 화해를 거치며 공존을 모색하는 과정을 다룬 한국 판타지 문학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웹소설은 회귀, 빙의, 환생 같은 판타지적 기법을 활용하며 독자들의 흥미를 끌고 있다. 웹소설은 독자의 큰 호응을 받으면 영화화되거나 종이책으로 출간되는 경우도 많다. 현실에서 이루기 힘든 것을 주인공이 성공시키는 과정을 통해 독자들은 대리 만족과 희열을 느낀다.
회귀는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기억과 지식을 바탕으로 미래를 바꾸는 소재다. 일반적으로 좌절하거나 절체절명의 순간에 회귀가 일어난다.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김영사, 2023)은 전형적인 회귀 판타지의 예로, 주인공이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새로운 선택을 통해 인생을 재구성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빙의는 주인공이 타인의 몸이나 정신 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다. 과거의 인물로 빙의하거나, 다른 차원 세계나 창작물 속 등장인물에 빙의하기도 한다. TV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는 주인공이 재벌가 막내로 빙의해 가족의 운명을 바꾸려는 여정을 보여준다.
환생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서 다시 태어나며 성장과 시련을 거치는 과정을 다룬다. 이는 삶과 죽음, 윤회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환생 소재를 활용해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자신과 가족의 미래를 재구성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 세 가지 소재의 공통점은 주인공이 새로운 환경에서 과거와는 다른 선택을 통해 더 나은 결말을 이루려 한다는 점이다. 독자들은 뻔하지 않은 결말에 대한 기대와 반전의 재미를 느끼며 열광한다.
현실에서는 시간이 한 방향으로만 흐르고, 이를 되돌릴 수 없다. 그러나 판타지 세계에서는 시간을 유연하게 통제하거나 초월할 수 있다. 이는 과거에 대한 향수와 현재를 극복하고 싶어 하는 열망을 반영한다. 단순한 현실 부정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과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