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모특집
일곡 이재부 (시인)
▶ 시 짝 외 1편
▶ 산문 시인의 도봉산 외 1편
2006년《새한국문인》 으로 수필, 시 등단.
저서로는『방황의 노래』『 바람의 언어』 『백팔번뇌』『 강으로 지는 노을』 『부부백경』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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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
여자와 남자가 부부로 만나
한 생을 함께 살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도
쉬운 것도 아니다
자식 낳아 키우고
손자 손녀 바라보며
할아범 할망구로 변해가면서
짝짜꿍이면 행복이다
할멈 얼굴에 화색이 돌면
할아범 가슴엔 근심이 없고
너털웃음 할아범 활기에
할멈 마음엔 평화의 온기
손자와 아들이 온다는 전화에
사랑의 탯줄이 팽팽해지는지
할멈의 발길이 가벼워지면
덩달아 좋은 인생의 짝
이인평 시인의 시집을 읽으며
이인평 시인이 보내 온 시집을
잘근잘근 맛을 보듯 탐독하면
마주치는 직감이 언어의 광채요
씹히는 식감이 사색의 경전이다.
속속들이 뒤적이며
낭독, 묵독, 숙독을 넘어
창가唱歌로도 불러보면
시구詩句마다 문이 열려
시경 선원禪院에 들게 된다.
인생살이 젖은 애환
日月星辰 환희의 빛
자연 신비 숨은 밀어
마주하는 인의 사랑
백화 도원에 들어선다.
기가 돋는 시운의 흥취에
기리고 섬기는 설교가 들리고
청명, 오탁이 확실하니
착한 인연이 꽃으로 핀다
사회불안社會不安 밀쳐두고
꽃술 위에 나비로 산다.
시인의 도봉산
저 산이 도봉산인 줄도 모르고 멀리서 바라보며 ‘참! 아름답다’고 찬탄하며 지나간 기억이 난다. 무량無量한 자비심으로 중생을 품는 불상 같이 천계天界를 받들고 구름을 걸친 우람한 암봉岩峯이 점점 가까워진 다. 서울의 명산 도봉산이란다. 아름다운 산! 멀리서 윤곽만 보아도 자 연 예술의 진수요, 천공의 조각 작품이며, 만물을 상징하는 석상이 즐비 할 것이라고 상상이 간다. 산정山頂으로 날아다니는 꿈을 꾸는데 차는 벌써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번화한 도시의 거리를 통과하여 등산객들 이 북새통을 이루는 초입에 접어든다. 찾아가는 도봉산인데, 입구에 접어드니 와 봤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서울지리에 익숙하지 못하니 기억의 조각들이 도봉산임을 구분하지 못하고 빼어난 산세山勢에 넋을 잃었나 보다. 이 아름다운 곳에서 전국에서 모이는 시인들과 자리를 함께한다니 천상의 신선을 만나러가는 듯 들뜬 기분이다. “생명과 자연과 시를 가꾸는” 사단법인 우리시회에서 개최하는 여름 자연학교에 입교하려고 시인 왕국을 생각하며 도봉산으로 들어간다. 옛날에 성균관에 입학하는 유생들의 기분이 이러했을까. 부귀영화의 벼슬길이 저절로 열리는 것은 아니지만 영재의 전당에 들어가는 자부심이 있지 않았던가. 시인의 자연학 교에서 배움을 즐기며 여생을 밝히는 등불 하나는 얻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명산대천 명승지를 찾아 시를 읊으며 풍류를 즐기던 옛 선비들의 호 연지기를 도봉산에서 배우리라. 산정山情의 품에 안겨 자연의 묘미를 시로써 퍼 나르고 그 맛을 음미하는 기쁨으로 지성知性과 감성이 결합하는 환희의 결정체를 얻어 가리라. 늙었다고 주눅 들지 말자. 고목분재의 꽃이 더 아름답지 않던가. 남녀노소 시인들과 함께하는 충만한 시정詩 情과 인정이 이심전심以心傳心이요, 심심상인心心相印이 되지 않겠는가. 마음을 맞대고 함께하는 그 기쁨에 동화되어 시혼詩魂을 담아가리라. 우리들이 찾아간 연수 장소는 “도봉숲속마을”이다. 도봉산을 배경으로 주위경관도 아름다운데 미모의 신부같이 꾸며진 연수원이다. 시인의 둥지로서는 안성맞춤이다. 등록을 마치고 반기는 시인님들과 인사를 나누며 연잎, 연꽃을 옮겨 온 정성의 차를 머금고, 고풍의 다식을 입에 더하니 왕실 경사에 초대 받은 기분이다. 세기를 더듬어 조선시대로 돌아가더라도 왕가의 다과상 이 이보다 더 풍성할까. 입에 고이는 연꽃 향이 경전의 말씀을 전해 주 는 해탈 고승의 법문의 맛이다. 음미할수록 깊이를 더하니까. 차茶를 준비하시는 시인님의 겸손한 미소가 시심에 고이는 인정의 꽃이다. 반기는 회원들 정성의 문을 열고 들어가 수강 장소에 좌석을 잡으니 도봉산 정기가 이곳으로 쏠린다. 행사진행은 물같이 흐르고, 영상으로 정리된 시회의 발자취가 쿵! 쾅! 가슴을 두드린다. 음악과 어우러지는 영상의 신묘함에 시 사랑 역사가 감동으로 다가온다. 집념으로 이끌어 오신 선배 시인들의 활동이 또 다른 미래를 내다보게 한다. 과거는 미래 의 거울이지 않던가. 시를 쓰는 강의를 들으면서 자아성찰이 부족한 나를 강의 내용에 비 춰보면서도 풍광 유혹에 마음이 끌려 시선이 고정되지 않는다. 나는 아 직도 어린이 집중력을 뛰어넘지 못했나 보다. 도봉산에 들어 있으면서 도 절경의 실체를 보지 못하는 갑갑증을 참아내지 못함이리라. 시인들 감성에 반사하는 도봉산경을 구수한 대화로 나누는 꿈을 꾸었나 보다. 시낭송의 뒤풀이는 또 다른 시의 창작 과정이다. 정담이 웃음을 만들 고, 드러내지 않던 정감이 권주의 꽃으로 술잔에 드리운다. 재능과 재담 이 무대를 만들고 취기의 헐렁함이 춤판을 벌인다. ‘저리도 아름다운 사람인 것을’ 삶의 한파에 지쳤던 모습이 안개 걷히듯 사라진다. 인본人本의 진면목眞面目이 산수화처럼 아름답다. 시인이여! 시인의 도봉산이여! 세상이 버겁더라도, 삶이 궁핍하더라도 시가 있어 위로받지 않던가. 입지의 굳은 마음 돋워 밟으며 사색의 깊이를 더하는 시의 산정에 오르세. 극기를 이기고 높이 오름이 삶의 도를 터득하는 도봉산道峰山 시인의 길이 아니던가.
「시인이거든 ‘시가 옷을 주나 밥을 주나’ 따지지 마라. 그저 ‘꽝(狂)’하고 미쳐버려라. 내 시는 이런 광기에서 얻었지 월수로 얻은 것은 아니다. 배가 고프면 동회에 가 손을 벌리기보다 울어가며 시를 쓰겠다. 가난한 고집도 힘이 된다. 혀를 깨물자. 혀를 깨물었을 때는 말이 막혀도 시는 나오니까.」 이생진 시인의 말씀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던 강사님 얼굴이 도봉산에 어린다. 도봉산은 아직도 정진 중인데 경전의 진리 같은 말씀으로 내 영 혼에 점을 찍는다. 여생을 환히 밝히는 점등點燈 행사이리라.
(2012년 8월 25일 도봉산에서)
소록도에 뜨는 달
소록도에 뜨는 달은 환한 얼굴을 해무海霧로 가리고 지나간다. 하늘 길이 춥고, 험해서가 아니라, 절망을 되새기는 나병 환자들의 가련한 모 습에 마음이 아파서 그러하리라. 꿈꾸던 소망이 산산이 부서져 서릿발 같이 식었는데, 눈물로 녹여내는 체념의 통한을 어떻게 바로 보겠는가. 헐어서 무너지는 육체의 비명을, 그리움에 떨고 있는 고독의 절규를, 자 유를 박탈당한 구속의 고통을, 바로 볼 수는 없었으리라. 구름에 얼굴 묻고, 굳어진 표정으로 언-듯, 언뜻 지나던 소록도의 달이 내 마음의 저 편으로 기운다. 신음소리로 밤을 지새우는 환자의 아픈 모습을 가슴에 그리면서 월벽月壁에 그려진 잔상殘像을 더듬어본다. 달은 동서고금의 고통의 현상을 다 보았을 테니까.
강제 수용되어, 온갖 고통을 다 감수해야 했던 한센인의 삶의 흔적을 돌아보면서 만 가지 생각이 뇌리에 스친다. 보호받으며 치료받는 환자 생각했었다. 질병과 싸우는 심신의 통증만 생각해도 마음이 아팠는데. 짐승 취급도 못 받고 악귀로 여겼던 비극의 현장이다. 또한 천사 같은 마음으로 봉사했던 사람들의 선행의 장소이기도 하다. 머릿속에 쌓인 내 관념의 체계가 허물어지고, 선과 악의 진폭에서 울리는 천둥소리를 듣는다. 선행이나, 악행은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그 심도와 폭은 바다보다 깊고, 넓다는 생각을 하며 파란만장한 삶의 흔적을 확인한다. 악행을 악행인 줄도 모르고 사는 사람을 소록도에 와서 발견한다. 1933년 일제는 소록도를 매수하여 1935년 ‘조선나병예방령’을 근거로 1940년에 개원하였다. 전국 한센병 환자들은 의사의 검사도 없이 강제 송치되었단다. 원장에겐 ‘징계 검속권’을 주어 감식減食, 감금을 마음대로 하였다니 인권의 사각지대요, 횡포의 무법지대다. 공훈의 실적을 쌓기 위해, 공익共益을 내세워 악행과 비리의 강도를 높이다가 분노의 칼끝에 죽은 일인 소장은 어떤 일을 했을까. 달빛도 찾아올 수 없는 동굴 같은 감금실엔 감금당했던 김정균의 시 한 편이 지금도 걸려 있다. “아무 죄가 없어도/ 불문곡직하고 가두어 놓고/ 왜 말까지 못하게 하고/ 어찌하여 밥도 안 주느냐/ 억울한 호소를 들을 자가 없으니/ 무릎을 꿇고 주께 호소하기를….” 다 읽을 수 없다. 죽어간 원혼들의 통곡 소리가 들리는 듯. 감금된 사람은 출감할 때 단 종수술(정관 수술)을 강제로 시켰다니, 삶의 소망을 남김없이 박탈당하는 그들의 처참한 형상이 눈에 어린다. 몸을 결박하고, 수술을 자행하던 원시의 수술대에서 피비린내가 나는 것 같다. 아름다운 공원도 강제 노동으로 만들었다니, 저 울창한 수목 사이를 지나는 바닷바람 소리가 범상히 들리지 않는다. 기념 조형물 앞에서 설명문을 읽다가 쿵! 하는 내 가슴 뛰는 소리가 들린다. 한센인의 원혼의 함성이 파도로 밀려온다. 처우개선을 요구하다가 원생 84명이 죽었단 다. 비문은 그 아픔을 후세인에게 고발하고 있다. 내방객의 가슴을 두드리는 글이다. 가는 곳마다 고통의 흔적이요, 인권이 짓밟힌 통한의 현장 이다.
똑같은 일인日人이면서도, 정성을 다해 감동감화로 환자를 돌본 소장 도 있었단다. 한센인들이 배를 주리면서, 좁쌀 한 홉씩을 모으고, 모아 정성의 공덕비를 세웠다 하니, 지옥과 천국이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살기 험한 이곳 소록도에 와서 끝없는 봉사로 일생을 채우면서도 아름다운 선행을 숨기고 떠나간 외국 수녀님들을 생각하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일생을 살면서 어떤 흔적을 남겨야 할까. 증오와 고통의 흔적으로 점철된 소록도에서 진혼鎭魂의 파도소리를 듣는다. 고혼孤魂을 달래던 달빛, 달을 바라보며 신을 부르던 그 흐느낌이 가슴을 적시는 물결 소리 로 멀어진다. 왜, 달님은 한마디 위로도 하지 못했을까. 지상의 희로애락을 다 보고 가면서도, 흔적도 남기지 않는 달빛! 외로운 사람에겐 자 기를 비추고 위로 받는 거울일 텐데…. 무심한 달이라고, 원망했을까.
고통으로 살아간 사람들, 봉사로 일생을 살다간 선인들, 악행으로 양 심을 버린 이들, ……. 긴- 꿈을 꾸다가 고개를 드니, 소록대교가 시야에 들어온다. 감금도 열리고, 마음도 통하는, 왕래의 자유가 보장되는 육지를 잇는 무지개다리다. 소록도 사람들 꿈을 펼칠 희망의 관문이리라. 환한 달빛 미소가 걸친 듯, 육중한 교각이 청년의 나신裸身으로 보인다. 소록도 사람들에게 희망의 노래를 불러줄 우렁찬 남성 합창단이리라. 달아! 밝은 달아! 소록도 사람들의 생활 무대에 환한 조명으로 그들의 웃음을 밝혀 다오.
(2009년 5월 23일《청주문인협회》시민과 함께 하는 문학기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