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가분/ 정서희
“서희는 시집 갈 때, 박가분 한 통도 모자랄 거여, 후제 시집갈 때 내가 한 통 사 주야지” 넙적하고 못난 내 얼굴을 놀리던 할머니가 계셨다.
어머니는 그분을 당숙모라고 불렀다. 어머니보다 한 살 위인 할머니는 키도 크고 깍짓동처럼 튼튼한 체구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한 살 차이인데도 깍듯이 존대했다.
어른들은 나보다도 한참 어린 할머니의 막내아들에게 ‘아저씨’라는 호칭을 쓰라고 했다. 숨을 내쉴 때마다 허연 물코가 주르륵 흘러내리던 꼬마에게 아저씨라는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할머니는 집 안에 무슨 일이 있을 때 주로 우리 집에 오셨다. 무언가 속이 답답하거나,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가 아니었나 싶다. 주로 밤이 이슥한 후에 대문을 두드렸다.날품팔이로 생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낮에는 시간을 낼 수 없다고 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밤이 깊어 내 방에서 주무시고 가는 날이 잦았다. 눕자마자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며 잠에 빠지던 할머니의 고단한 생활이 어린 내가 보기에도 안쓰러웠다.
그때, 내 나이 몇 살이나 되었을까. 텃밭 둑에 서 있던 고욤이 탱탱하게 익어가는 늦가을이었다. 어머니는 한참 단잠에 빠진 나를 흔들어 깨우셨다. 말은 안 했지만, 돼지울을 지나는 순간 할머니 집에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슬이 발목을 적시고 풀숲의 찌르레기 울음소리가 합창하듯 소란스런 새벽길이었다.
어머니의 머리에는 쌀 한 자루가 얹혀 있었다. 산등성이에 오르자 맑은 산의 정기와 향기로운 솔내가 훅 끼쳤다. 어머니의 서걱거리는 광목 앞치마에서도 풀 비린내가 났다. 미끈거리는 낡은 고무신이 벗겨질듯 말듯 위태롭게 보였지만, 어머니는 내리막길을 쏜살같이 잘도 내려갔다.
둥구산 날망에는 밤을 새운 잔별들이 조롱조롱 떨고 있었고 초가지붕에는 새하얀 박꽃이 소담스레 피어나고 있었다. 도둑고양이처럼 안마당에 들어서니, 토방에는 크고 작은 문수의 검정 고무신이 여기저기 제멋대로 뒹굴고 있었다. 방문을 열어젖히면 아마 온 식구들이 옹기종기 얼굴을 맞대고 깊은 잠에 취해 있을 것이다.
어머니는 쪽마루에 쌀자루를 살그머니 내려놓고 방문을 흘깃 훔쳐본 후에 사립문을 사뿐히 들어 올렸다. 거칠고 억센 촌부의 마디진 손이 보였다. 어머니의 팔을 잡고 등성이에 오르니 동쪽 하늘에 먼동이 트기 시작하고 아랫마을에서는 첫 닭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 한편이 따스해진다. 가난한 집안에 시집온 어머니는 갖은 풍상을 겪으며 신산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고달픈 애옥살이에 심신이 피폐해질 만도 했건만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보내는 법이 없었다
나는 지금도 궁금하다. 할머니가 그때 그 새벽의 일을 모른 채 세상을 떠나셨는지, 어머니를 만나면 꼭 한 번 물어보리라고 다짐하지만 번번이 잊고 만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 특별한 날 빼고는 화장을 하지 않는다. 가루 파우더 한 통이면 수년을 쓰고도 남는다.
얼마 전 모 일간지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화장품인 박가분에 대한 기사를 보았다. 일제 강점기에 생산된 박가분은 하루에 만 갑 이상 팔린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성의 욕망은 막을 길이 없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그나저나 할머니가 어려운 살림에 박가분 한 통이라도 사서 바르고 살았는지 궁금하다.
원래 사람은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가슴에 담아 두게 마련이니까 말이다.
첫댓글 한 편의 옛 영상을 보는 듯 합니다
박가분 잊고 있던 이름이었습니다
많은 식구들 거두느라 바쁜 중에도 새벽이면 곱게 분을 바르던 엄마 생각이 납니다.
정서희님 글의 정겨운 단어들이 마음을 따스하게 합니다
박꽃 피는 가을이 돌아왔습니다. 따스하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박가분! 나이드신 어르신들 아니면 기억해 내지 못할 그리운 이름, 불러주신 정 시인님의 맛깔나는 글에 한참을 머뭅니다. 고맙습니다.
그리운 것들을 하나씩 불러보고 싶은 가을입니다. 회장님, 늘 수고 많으십니다. 고맙습니다.~^^
마음 따뜻해지는 이야기로 오늘 하루 행복하게 마무리합니다.
정서희님 고운 글 감사합니다.
석정 선생님! 따스한 격려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고 감기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