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와 서열 문화가 좀 더 깨져야 한다.”
지난해 1월 올림픽 최종예선이 치러졌던 카타르 도하에서 만난 박지성의 이야기다. 자신이 계속해서 자극받고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에인트호번이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같은 큰 클럽에서 뛰면서 나이와는 상관없이 더 높은 수준의 선수들과 경쟁하고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극으로서의 경쟁과 성장이다. 서로 다른 개성과 레벨의 선수들과 싸우면서 많은 걸 배웠다며 이 같은 자유로운 경쟁을 가로 막고 있는 형과 동생, 선배와 후배 식의 나이와 서열 문화가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고 있는 한국축구의 현실을 걱정했다.
형과 선배들이 뛰는 자리에 동생과 후배가 기회조차 얻질 못하는 현실에 대한 우려였다. 온전한 실력보다는 나이와 서열이라는 형식이 내용을 규정해 버리는 것의 지적이었다. 실력 중심의 평가가 어려워지는 게 문제이지만 다양한 연령과 능력들이 뭉쳐 겨루면서 더 많은 개성들을 만들어내는 걸 막는다는 것이 어쩌면 보다 결정적 폐해다. 개성 없이 다들 고만고만해지는. 사실 말도 안 되는 웃기기까지 한 일이다. 형과 선배니까 경기에 뛰어야 한다니.
비단 한국축구만의 병폐이지 않다. 한국사회의 단면이다. 최근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외국인이 바라본 한국사회의 모습 중 나이 문화를 정리한 영상이 소개됐다. 한국 사람들은 처음 만나면 꼭 상대방의 나이를 물어본다는 것이다. 몇 살인지, 몇 년생인지, 더 나아가 빠른 월인지까지 물어본다는 내용이다. 나이 문화가 없는 외국인들로선 낯설고 부담스런 일이다. 오랜 유교 질서의 영향이겠지만 우리 사회가 나이에 민감해 하는 건 틀리지 않은 이야기다.
형이니까 뛰고 동생이니까 못 뛰는 건 괴상하다
나이 문화와 편견. 바르셀로나의 이승우
나이 문화라고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차등과 차별의 도구로 쓰이는 건 문제다. 사람마다의 능력 차이는 있겠지만 이것을 태어난 연도 즉 물리적 나이로 순서를 나누는 건 아무래도 합리적이지 못하고 괴상한 일이다. 한국사회의 이 같은 질서가 그 일원인 한국축구 안에도 깊숙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오직 룰과 실력으로만 우열을 가리는 스포츠라면 더욱 나이 문화는 배제되어야 한다. 형과 선배니까 뛰고 동생과 후배니까 못 뛰는 건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 한국축구는 그간 이 같은 나이 문화를 깨트리기 위해 노력해 왔다. 저학년 리그제를 도입해 현실적으로 형과 선배들에 밀려 뛸 수 없는 동생과 후배들이 나설 수 있는 대회를 따로 마련하고 종국에는 경험과 실력을 키워 나이와 학년 다른 선수들이 한 무대에서 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키 위해 힘써 왔다. 물론 이것만으론, 아직 부족하다.
내일 우리나라에서 개막하는 FIFA U-20월드컵에 나서는 선수들의 나이 제한은 1997년 1월 이후 출생자다. 만 20살 이하 선수들이 대회에 뛸 수 있다. 그 위로는 올라 갈 수 없지만 아래로는 얼마든지 내려갈 수 있는데 만 17살 이하에 해당하는 2000년 이후 선수들도 7명이나 대회 엔트리에 등록(팀 첫 경기 24시간 전 기준 부상 등 합리적 이유가 있을 경우 예비 엔트리에 한 해 교체 가능)됐다. 아르헨티나의 골키퍼 마누엘 로포, 베네수엘라의 공격수 잔 우르타도, 미드필더 크리스티안 마콘, 이탈리아의 골키퍼 알레산드로 플리차리, 미국의 공격수 조슈아 사전트, 세네갈의 공격수 우세누 니앙, 일본의 미드필더 구보 다케후사가 그들이다.
이 중에서도 일본의 구보와 세네갈의 니앙은 2001년생으로 생일이 안 지나 만15살이다. 구보와 니앙은 이번 대회에서 최대 5살이나 차이 나는 선수들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 성장이 마무리된 성인이라면 서로 다 커서 나이 차이가 큰 의미 없지만 한창 성장하는 선수들에게 1,2년 차 더 나아가 5년 차이는 절대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구보와 니앙은 뽑힌 것 자체가 대단한데 아마도 나이의 벽을 넘지 못했다면 도달하지 못했을 자리였을 것이다.
일본 15살의 나이 파괴자
15살 나이에 이번 월드컵에 참가하는 일본의 구보
일본의 구보 경우는 월반에 월반을 거듭하며 나이라는 물리적 장벽을 줄줄이 무너뜨려버린 주인공이다. 구보는 10살 때 바르셀로나 유스팀에 입단해 해당 연령 각종 대회에 나가 득점왕을 휩쓸었다. 왼발을 자유자재로 써 일본에서는 메시와 비교되곤 하는데 플레이 위치나 스타일은 메시보단 공격형 미드필더에 가깝다. 엄청난 기대를 모은 구보이지만 이승우, 백승호의 경우처럼 FIFA 18세 미만 외국인 선수 영입 및 등록 위반 문제가 걸리면서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나이가 너무 어려 이승우나 백승호처럼 바르셀로나로의 복귀(18세 이후 가능한)를 기다릴 수 없었던 구보는 2015년 일본으로 돌아갔다.
FC도쿄 유스팀에 합류한 구보는 14살의 나이로 FC도쿄 U-18팀, 그리고 곧장 U-23팀 경기에 나서 골까지 넣는 놀라운 활약을 이어갔다. 5살 이상도 훌쩍 넘어 월반에 월반을 거듭하며 이뤄내 결과들이었다. 이 과정에서 구보는 나이와 관련한 기록들을 모조리 갈아 치우는 ‘나이 파괴자’로 불렸다. 비록 3부이긴 하지만 구보가 프로에 데뷔한 나이는 15세 5개월 1일이었고 데뷔 골을 터트린 건 15세 10개월 11일이었다. 모두 다 일본 역대 최연소 기록이다. 지난해 11월엔 15세 5개월 20일이라는 역대 최연소 나이로 일본 19세 이하 대표팀에 소집됐던 구보는 이번 대회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며 또 한 번의 나이 파괴 기록 도전에 나섰다.
만약 구보와 같은 선수가 한국에 있었다면 우린 20세 대표팀에 15살짜리 선수를 뽑았을지에 대해 생각해봤다. 실력과 능력이 있다면 뽑아야 한다는 원칙론을 말할 순 있겠지만 “그래도 너무 어려” “5살 차이 나는 큰 선수들과 겨뤄 뭘 하겠어”라는 나이 문화가 한쪽에서 꿈틀대지 않았을 거라고는 말하기 힘들 것 같다. 나이 문화와 편견에서 벗어나고 있다고는 해도 또 완전히 자유롭다고까진 할 수 없는 현실이 사실이다.
과거 마라도나부터 요즘 음바페까지
이번 한국대표팀 최연소 공격수 조영욱
이런 점에서 이번 한국대표팀에 최연소로 뽑힌 1999년생 만 18살의 공격수 조영욱의 발탁과 활약은 관심이 더 간다. ‘무려 두 살’이나 어린 선수지만 오직 실력 하나만으로 치열한 경쟁을 뚫고 본선 무대를 밟은 조영욱이 성적은 물론 나이라는 편견마저도 넘어서는 플레이로 한국축구판을 긍정적으로 흔들 울림으로서의 관심과 기대다. 이와 같은 기대와 관심은 나이의 벽과 싸우고 있는, 앞으로 싸워나가야 하는 조영욱을 포함한 우리 모든 선수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1998년생으로 만19살로 이번 대회에 나서는 이승우도 나이가 아닌 온전히 실력과 결과만으로 평가받고 싶다고 했다. 물론 그 싸움에서 이기느냐, 무너지느냐의 절대적 기준은 오직 실력이자 능력이다.
나이의 벽을 허물어 오로지 실력으로만 선수를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과거의 마라도나도, 요즘의 음바페도 없었을 것이다. 능력 하나 만으로 나이의 벽을 부서뜨렸던, 월반을 허(許)한 세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나이라는 좁은 틀에 갇히지 않고 제한 없는 상상력을 더했기에 존재했던 이름들인 것이다.
이번 대회는 그렇게 한국축구에도 성적을 뛰어 넘어 우리 사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나이 문화와 편견을 넘어서는, 상상력의 월반을 우리 사회에 허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월반을 허할 우리 대한민국 아니 이번 대회에 나서는 24개국 504명 재능들의 건투를 진심으로 빈다.
첫댓글 좋은 글이네요^^ㅎㅎ아리는 시스템 운영을 잘하고 있는거 같습니다.준비된 친구들에게는 또다른 경험을 시켜주고ㅎㅎ나이에 따른 예의 중요하지만 운동장에 들어서면 똑같은 축구선수 똑같은 경쟁자 입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나이!
깨지기 힘들 것 같은데
그래도 노력을 해야 할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