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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ror” by Sylvia Plath
여국현 (시인/영문학박사)
어느 순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외면하고 싶어지는 스스로를 느낄 때가 있지요. 거울 속 생경하고 낯선 자신의 변해가는 모습에 움찔하게 되기도 하고요. 나이가 든다는 것, 혹은 세월과 함께 변해간다는 것이 슬프고 두려워지면서 마냥 아름답고 유쾌한 일만은 아니구나 생각하게 되는 그런 때 말이지요. 이번에 함께 읽을 시는 바로 그런 마음의 풍경을 담아 보여주는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 1932~1963)의「거울」“Mirror”입니다.
실비아 플라스는 20세기 중후반 미국의 ‘고백파Confessional School’를 대표하는 시인입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 인한 불행한 기억, 몇 번의 자살 시도, 그리고 영국 시인 테드 휴즈(Ted Hughes, 1930~1998)와 연애와 결혼, 순탄하지 못했던 둘의 관계, 이혼 후 자살로 생을 마감한 불행한 개인사 등으로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하지만 우리는 사후 출간된 유고시집인 『시 선집』The Collected Poems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그녀의 훌륭한 시들이 보여주는 강렬함을 기억하며, 빛나는 재능을 다 피우지 못하고 떠난 그녀의 짧은 생을 안타까워합니다. 그녀를 생각하면 ‘천재는 요절한다’라는 속설이 영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녀가 개인적으로나 시 창작의 측면에서나 몹시 힘들었던 1961년에 쓴 「거울」에는 실비아 플라스의 내면에 일던 고뇌와 고통이 스며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시를 쓴 이듬해에 그녀는 테드 휴즈와 이혼하고 그 다음해에 자살로 짧은 생을 마감합니다.
앞에서 그녀의 시가 ‘고백시’라고 말씀드렸지요. 1950년대 중후반 이후 60년대까지 미국시의 한 흐름을 주도하던 ‘고백파 시인들’이 있었어요. 실비아 플라스를 포함하여 로버트 로웰Robert Lowell, 알렌 긴스버그Allen Ginsberg, 시어도어 뢰트케Theodore Roethke 등으로 구성된 고백파 시인들은 개인적인 경험, 특히 금기에 가까운 심리적 문제나 정신적 외상은 물론 내밀한 가정사와 성적인 고백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시인과 동일시되는 일인칭 화자를 통해 시 속에 담아냅니다. 이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자신의 경험에 뿌리를 둔 시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가감 없이 드러내려 한 고백파 시인들의 시는 2차 세계대전과 나치에 의해 자행된 홀로코스트 비극, 이어진 냉전 상황과 핵전쟁의 위협 등 외부의 불행에 대한 비판과 함께 그로부터 벗어나 자기 자신에게 침잠하려는 그들 자신은 물론 현대인들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지요. 자, 이제 시를 보겠습니다.
I am silver and exact. I have no preconceptions.
Whatever I see I swallow immediately
Just as it is, unmisted by love or dislike.
I am not cruel, only truthful,
The eye of a little god, four-cornered.
Most of the time I meditate on the opposite wall.
It is pink, with speckles. I have looked at it so long
I think it is part of my heart. But it flickers.
Faces and darkness separate us over and over.
나는 은빛이며 엄정하다. 나는 어떤 선입관도 없다.
보이는 것은 무엇이건 곧장 삼켜버린다
있는 그대로, 좋고 싫음에 흐려지지 않고.
나는 잔인하지 않다, 다만 정직할 뿐,
사각 모양, 작은 신의 눈동자.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맞은편 벽을 바라보며 명상한다.
벽은 분홍색, 여기저기 얼룩이 졌다. 너무 오랫동안 바라봐
벽은 내 심장의 일부 같다. 하지만 벽은 명멸한다.
여러 얼굴과 어둠이 계속 우리를 갈라놓는다.
시의 화자는 의인화된 ‘거울’입니다. 1연은 거울의 특성을 언급하며 시작합니다. ‘은빛’이며, ‘엄정’합니다. 비치는 대상 그대로를 반영하는 하얀 거울의 표면, 오목도 볼록도 아닌 평면거울. 있는 그대로 반영합니다. 그러니 “선입견이 없다”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 거울은 조금 다른 면도 있습니다. 단순히 비치는 대로만 반영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삼켜버린다”고 합니다. 이것은 이 거울이 단지 대상의 외면만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거울 앞에 있는 대상의 내면까지도 파악할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그렇다고 ‘잔인’하다 하지는 말기를. “정직할 뿐”인 것을.
거울은 다시 자신을 “작은 신의 눈동자”라고 합니다. 저는 이 표현이 왜 그리 좋은지요. 작다는 것보다 중요한 건 ‘신’이겠고, 그 신의 눈동자라니요! 어쨌건 분명한 것은 단순한 거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상의 보이지 않는 면까지, 대상이 보여주고 싶지 않은 면까지 꿰뚫어 볼 수 있는 혜안의 존재인 것이지요. 이 거울이 시인이요, 시인의 눈을 은유하는 것이라고 봐도 이상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거울에 비치는 구체적인 대상도 등장합니다. ‘맞은편 벽’입니다. 그 벽은 ‘분홍색’입니다. 그러나 ‘얼룩져’ 있습니다. 거울인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그 ‘벽’을 “바라보며 명상하며” 지냅니다. 여기서 쓰인 동사가 ‘meditate’인 것에 주목합니다.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대상으로 뚫어지게 바라보며 ‘깊게 생각한다’라는 것이지요. 얼마나 그리 바라보았는지 “벽은 내 심장의 일부”가 되어 버릴 정도입니다.
하지만 거울은 벽을 바라볼 뿐 다가갈 수 없습니다. 벽도 거울에게 다가올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둘 사이에는 다른 훼방꾼들도 존재합니다. 어둠과 사람들이 끼어들어 우리를 갈라놓습니다. 어두우면 맞은편 벽이 보이지 않을 테고, 거울 앞에 다른 사람이 서거나 벽을 막으면 역시 그 벽이 보이지 않을 테니까요.
시의 겉면은 이렇습니다만 고백파 시의 특성과 당시 실비아를 생각하며 저는 다음과 같은 나름의 해석을 덧붙여 봅니다. 거울은 실비라 플라스 자신, ‘핑크빛 벽’은 그의 남편 테드 휴즈라고. 이 둘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남성/아버지에 대한 실비아의 의식적, 무의식적 트라우마를 조금 살피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실비아가 여덟 살 때 실비아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무언지는 모를 일로 그녀는 아버지를 극도로 증오했지요. 그런 그녀의 마음은 “Daddy”「아빠」라는 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자신을 박해받는 유대인에, 아버지를 나치에 비유하며 아버지가 자신을 짓밟은 “야수 같은 야수의 심장을 지닌 존재Brute heart of a brute like you”, “악마 못지않은 악마no less a devil”라고 비난합니다. 언제나 그가 두려웠다고 고백합니다(“I have always been scared of you”). 급기야 그녀는 이미 세상에 없는 아버지를 향해 이렇게 절규합니다.
Daddy, I have had to kill you.
You died before I had time
아빠, 내가 당신을 죽였어야 했어.
그 전에 당신이 죽고 말았지.
아버지에 대한 실비아의 이런 증오와 상실감은 치유되지 못한 채 남아 무의식의 빙산으로 자리잡고 있었을 것입니다. 나중에 테드 휴즈를 만나 첫눈에 반해 만난 지 4개월 만에 결혼했을 때 그를 통해 부재不在한 아버지라는 존재의 그늘을 지우고 싶은 무의식의 욕망이 없었을까요. 어떤 식으로든 치유 하고 치유 받고 싶은 욕망이 존재하지 않았을까요.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거울’은 실비아 자신의 은유, 거울이 마주 보며 “심장의 일부”로 여기는 ‘핑크빛 벽’은 실비아의 무의식적 욕망이 투사된 이상적인 대상인 테드 휴즈를 은유하는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핑크빛’은 그 소녀적 상상의 상징이기도 하겠고요.
그러나 테드 휴즈는 “얼룩이 진” 완벽한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지요. 게다가 어둠에 내려 보이지 않을 때도 있고, “여러 얼굴들이 갈라놓기도” 합니다. 테드 휴즈의 잦은 스캔들과 그로 인한 두 사람의 순탄하지 못했던 결혼 생활은 비밀이 아니었지요. 이 시를 썼던 1961년에도 실비아가 두 번째 아이를 유산하기 직전 휴즈가 그녀에게 육체적인 폭력을 가했다는 사실도 최근 실비아의 일기를 통해 밝혀지기도 했고요. 실비아가 이 시를 쓴 다음해에 테드 휴즈는 아시아 웨빌Assia Wevill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고, 이로 인해 실비아와 휴즈는 별거를 하게 되었고 결국 실비아의 자살로 이어지고 말았고요. 이런 여러 정황을 감안해 볼 때 ‘거울’인 나 실비아가 온 마음을 다해 생각하며 “내 심장의 일부”라 여기던 ‘얼룩진 분홍빛 벽’은 테드 휴즈를, 그 사이에 끼어드는 ‘여러 얼굴들’과 ‘어둠’은 주변의 스캔들을 은유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아주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실제로 그녀와 테드 휴즈와의 결혼 생활은 불행했으며 그로 인해 실비아는 아버지에게서 보다 더 큰 상처를 입고 맙니다. 「아빠」의 마지막에 실비아 플라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If I've killed one man, I've killed two⎯
The vampire who said he was you
And drank my blood for a year,
Seven years, if you want to know.
내가 한 사람을 죽였더라면, 둘을 죽인 것이었을 텐데--
자신이 당신이라고 말하던 흡혈귀
1년 동안 내 피를 빨아먹은,
정확히 알고 싶다면, 7년 동안.
실비아는 남편 테드 휴즈를 “7년 동안 자신의 피를 빨아먹은 흡혈귀”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는 그와 7년의 결혼 생활이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시와 현실을 지나치게 연관시키는 것의 위험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그러나 고백파 시인들에게 시는 곧 솔직한 자기 자신의 표현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같은 해석이 시의 화자인 거울, 곧 시인이자 한 인간 실비아가 느꼈을 고독을 시에서 더욱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2연을 보겠습니다.
Now I am a lake. A woman bends over me,
Searching my reaches for what she really is.
Then she turns to those liars, the candles or the moon.
I see her back, and reflect it faithfully.
She rewards me with tears and an agitation of hands.
I am important to her. She comes and goes.
Each morning it is her face that replaces the darkness.
In me she has drowned a young girl, and in me an old woman
Rises toward her day after day, like a terrible fish.
이제 나는 호수. 한 여인이 나를 굽어본다.
자신의 참모습을 찾아 내 곳곳을 훑어본다.
그러더니 촛불이나 달빛 같은 거짓말쟁이들을 향해 돌아선다.
나는 여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충실히 비춘다.
여인은 눈물과 떨리는 손으로 나에게 보답한다.
나는 그녀에게 중요하다. 그녀는 내게 왔다 간다.
아침마다 어둠을 대신해 들어서는 것은 그녀의 얼굴.
내게 어린 소녀의 모습으로 빠져들더니, 나이든 여자가
내 안에서 날마다 그녀를 향해 솟아오른다, 끔찍한 물고기처럼.
이제 거울은 호수가 됩니다. 그리고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이 여인의 등장으로 인해 시는 1연과는 다른 구조를 갖게 됩니다. 1연에서 화자인 ‘거울’ 곧 실비아가 ‘벽’으로 은유 된 대상, 테드 휴즈를 바라보는 구조였다면, 2연에서 ‘거울’ 즉 실비아에게 한 여인으로 은유 된 실비아 자신이 스스로를 비춰보는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찾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참모습”입니다. 그러나 두렵습니다. 사랑은 흔들리고 자기 자신은 정신적 괴로움과 고통 속에 힘들어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실제 그 당시 실비아가 그런 상황이었지요. 자신의 참모습이 두려웠던 그녀는 ‘거짓말쟁이들’을 찾아갑니다. “촛불과 달”이지요. 촛불은 흔들리며 모습을 왜곡하고, 달은 구름에 가려 온전히 밝지 못하지요. 그러니 내 참모습을 바로 보기보다는 감추고 싶은 면을 감출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나는 나를 감출 수 없는 법. 또 다른 나인 ‘거울’은 그때도 내 뒷모습을 보고 있군요. 그것도 아주 충실하게, 있는 그대로. 어쩌면 사람의 뒷모습이야말로 꾸밈없이 그대로 드러나는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겠지요. 결국 그녀, 곧 거울 앞 실비아는 다시 거울, 즉 스스로를 마주합니다. 후회의 눈물과 함께.
“나는 그녀에게 중요하다”라는 구절은 의미심장합니다. 거울인 호수는 그 여인에게 중요하다는 말인데, 사실 그 둘은 같은 존재, 즉 실비아 자신이니 정확한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자기 자신만큼 스스로에게 중요한 존재가 있을까요. 자기 자신만큼 스스로를 제대로 보는 존재가 있을까요. ‘어둠이 지나면 거울 앞에 매일 얼굴을 보이는 그녀’는 매일매일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대면하는 실비아 자신입니다. 그런 그녀가 매일 보게 되는 것은 “소녀에서 날마다 나이든 여자”로 변해가는 끔찍한 자신의 모습입니다. 두렵고 슬프지만 또 한편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자기 모습을 견딜 수 없게 될 때 우리는 저 깊은 속에서 튀어 오르는 “끔찍한 물고기” 같은 우리의 충동에 직면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실비아 플라스가 2년 뒤 자살을 선택했던 것처럼.
시작할 때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 시 「거울」은 실비아 플라스가 1961년 쓴 시입니다. 그 당시 실비아는 남편인 테드 휴즈와의 관계는 물론 오랫동안 고통을 겪어온 정신적 혼란도 여전한 상태에서 테드 휴즈에게 학대를 당하고 두 번째 유산도 했지요. 이런 실비아 플라스의 고독하고 불안한 마음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을 뿐 아니라 안팎의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시인이자 한 여성, 한 인간 실비아 플라스의 처연한 태도가 그대로 느껴지는 시「거울」이었습니다.
Mirror
I am silver and exact. I have no preconceptions.
Whatever I see I swallow immediately
Just as it is, unmisted by love or dislike.
I am not cruel, only truthful,
The eye of a little god, four-cornered.
Most of the time I meditate on the opposite wall.
It is pink, with speckles. I have looked at it so long
I think it is part of my heart. But it flickers.
Faces and darkness separate us over and over.
Now I am a lake. A woman bends over me,
Searching my reaches for what she really is.
Then she turns to those liars, the candles or the moon.
I see her back, and reflect it faithfully.
She rewards me with tears and an agitation of hands.
I am important to her. She comes and goes.
Each morning it is her face that replaces the darkness.
In me she has drowned a young girl, and in me an old woman
Rises toward her day after day, like a terrible fish.
나는 은빛이며 엄정하다. 나는 어떤 선입관도 없다.
보이는 것은 무엇이건 곧장 삼켜버린다
있는 그대로, 좋고 싫음에 흐려지지 않고.
나는 잔인하지 않다, 그저 정직할 뿐,
사각 모양, 작은 신의 눈동자.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맞은편 벽을 바라보며 명상한다.
벽은 분홍색, 여기저기 얼룩이 졌다. 너무 오랫동안 바라봐
벽은 내 심장의 일부 같다. 하지만 벽은 명멸한다.
여러 얼굴과 어둠이 계속 우리를 갈라놓는다.
이제 나는 호수. 한 여인이 나를 굽어본다.
자신의 참모습을 찾아 내 곳곳을 훑어본다.
그러더니 촛불이나 달빛 같은 거짓말쟁이들을 향해 돌아선다.
나는 여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충실히 비춘다.
여인은 눈물과 떨리는 손으로 나에게 보답한다.
나는 그녀에게 중요하다. 그녀는 내게 왔다 간다.
아침마다 어둠을 대신해 들어서는 것은 그녀의 얼굴.
내게 어린 소녀의 모습으로 빠져들더니, 나이든 여자가
내 안에서 날마다 그녀를 향해 솟아오른다, 끔찍한 물고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