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은 옛사람들이 만든 무덤이나 제단, 묘표석, 신앙의 대상 등이므로 사후세계(死後世界)가 반영되어 당시 사회의 주검에 대한 처리 의식과 전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고인돌은 마을을 중심으로 가장 신성한 곳을 선택하여 만들어져 있기에 발굴 조사 등을 통하여 당시 삶의 모습을 유추해 낼 수 있는 근거자료를 제공할 수 있으며, 사회의 문화와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기에 당시 사람들의 사회·경제적인 측면, 문화적인 측면, 믿음과 같은 정신적인 측면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보령지역의 고인돌에 대한 연구 발표 85년도 이후 1990~91년, 1997년, 2,000년에 발표를 마지막으로 고인돌에 관한 연구의 성과가 거의 없다. 2,000년도 조사에 발표자료를 보면 오천과 천북을 제외한 전 지역에 72개 지구 총 278기가 분포되어 있어 충남 전체의 57%를 차지한다고 한다. 보령지역에 가장 많은 수의 고인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보령지역이 과거 선사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살기 좋은 곳이었음은 보여주는 증거이다. 우리 지역 여러 곳에 산재해 있는 고인돌들은 자연돌이 아닌 최소 2,000년 전 선사인들이 채석장에서 채석한 후 운반하여 만들 거석문화 유적이며, 더 나아가 우리 민족 최초의 고대국가인 고조선과도 관련된 유적으로 우리 민족의 역사를 새롭게 정립할 수 있는 귀중한 유적이라는 점이다.
보령지역 고인돌 분포는 다음 표와 같다. 보령지역에서는 남포 지역에 110기로 가장 많으며 웅천지역에 79여기 순으로 많이 분포하고 있다. 고인돌이 분포하는 곳은 성주와 미산을 제외하고 모두 해발 60m 이하였다. 가장 많은 분포는 20-40m 사이이다. 심지어 해발 5m 정도로 만조 시 해수면과 비슷한 지점에도 위치하고 있다.
고인돌은 집단적으로 몰려 있는데 보령지방 평균 수는 약 4기 정도이다. 특히 밀집된 고인돌 군으로는 죽청리 장터 마을에 15기, 주교 신대리 12기, 남포 신흥리 10기 등이며 어떤 곳은 1기만 있는 곳도 있다. 밀집대형은 큰 고인돌을 중심으로 작은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는데, 고인돌 주인공 간에 신분이나 혈연관계가 존재했던 것이 아닌가 추정한다. 고인돌은 신석기 시대 후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청동기시대에 가장 널리 퍼진 제단이나 무덤, 묘표석, 신앙의 대상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거석문화라 볼 수 있다. 학자들에 의하면, 2000∼3000년 전의 무덤과 장례 의식 기념물로서 선사시대의 건축술과 사회현상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문화유적이다.
특히 보령지역에는 탁자식, 지상 석곽식, 기반식(바둑판식), 개석식 고인돌 등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이 존재하며 개석식 고인돌이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다. 이러한 보령지역의 고인돌은 고창이나 화순, 강화도의 고인돌 못지않게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우리가 함께 지켜야 할 유물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