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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낙동정맥 제22~23구간 (숲재~당고개~OK그린연구원~메아리농장~아랫상목골임도~소호고개까지)
<첫째 날> 제22구간 (숲재~독고불재<캠핑장/면덕조경>~당고개~OK그린연수원까지))
...............언 제 ; 2015년 8월 15일 토요일 (23~33도 맑음)
...............누구와 : 박종관, 박찬익, 부길만, 이정일, 임순재, 황성자, @구본영
...............산행시간 ; 총 8시간(휴식, 식사시간 포함)
<50;30> 남부터미널
<06;00> 하남광장
<07:40~08;20> 문경휴게소/아침조식
10;00~10;20 숲재 도착~숲재 출발
10;45 기원정사 철대문 앞
10;49 715봉/부산성(서문터?) 억새밭 시작
10;53 휜 소나무가지 앞/나뭇가지에 앉아 카메라 셔트
10;54 임도/숲이 우거져 분간이 어려움
11;15 광활한 고랭지 밭(초지)/농사를 짓지 않아 풀이 무성함
11;25~11;40 부산성(북문터?)/고랭지 밭(초지) 정상/ 휴식 및 알바
12;05 부산성(남문 터)
12;26 임도 및 헬기장
12;28 청천봉(751m)/산불 감시초소
12;55~13;39 독고불재/어두목장/캠핑장/명덕조경 매점 앞에서 점심
13;59 651.2봉(준,희 팻말)
14;46~15;05 오리재/임도사거리/휴
15;26~15;50 당고개휴게소/간식/단석산 정상 3.4km
16;05 단석산 정상 2.9km 지점
16;19~16;32 단석산 정상 2.4km 지점
16;44 단석산 정상 1.9km 지점
16;53 단석산 정상 1.4km 지점
17‘05 단석산 정상 1.0km 지점
17;05~17;27 당석산 정상 0.8km/우측 OK그린영수원 2.0km 지점/우
17;34 OK그린연수원 1.6km 지점
17;42 OK그린연수원 1.0km 지점
17;51 OK그린연수원 0.5km 지점
18;00 붉은 색 건물/옛 방주교회/빈집
18;20 0K그린연수원 임도/산행종료
<20;20~21;20> ‘대일한우’식당(경주 신내 의곡1리174-1/054-751-4442)에서 저녁
<21;30> 힐스 모텔(경주시 산내면 내일리 991-2/054-753-3030)/캠핑장 투숙
<산행기>...............................................................
찜통더위는 오늘도 낮 최고 기온이 33도를 넘는다는 일기예보이다. 며칠 전에는 경북 영천지방이 최고 38,39도까지 올라갔다고 하여 우리 일행은 오늘도 단단히 각오를 하고 서울을 출발한다. 역시 얕게 가라앉은 하늘에 짙은 연무가 안개처럼 자욱한 걸 보면 한 낮의 기온을 짐작할 만하다. 고속도로를 번갈아 달려 문경휴게소를 아침 7시 50분에 도착, 발효 산채비빕밥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숲재에 이르니 10시이다.
벌써부터 숲재의 아스팔트길은 태양열을 받아 열기를 뿜어내고, 한가롭게 ‘찌르륵’거리든 매미소리는 인적소리에 놀라 울음을 딱 멈춘다. 숲재는 일명 淑嶺(숙재) 또는 시루미기라고도 하는데 이는 지형이 아화 쪽으로 숙이고 있다는 뜻이고, 시루미기는 우라리 생식마을의 옛 지명이다. 10시 20분에 출발하여 ‘기원정사’로 연결된 시멘트 길 오르막을 따르다가 다시 산길로 접어든 후 25분후에 굳게 닫힌 기원정사 철대문 앞에 도착한다. 좌측 띠지를 따라 능성이의 철조망 넘어 정사의 犬公들이 시끄럽게 짖어 대고, 우린 고도를 높여 715봉의 부산성을 지난다.
釜山城이 아니고 부산성(富山城)이다. 일명 朱砂山城이라고도 하는데 경주의 서쪽에 해당하는 朱砂山, 五峯山, 吳老峯山, 닭벼슬산이라고도 불리는 729.5m의 富山의 정상을 중심으로 세 줄기의 골짜기를 감싸며 만든 包谷式 山城으로 割石 석축성을 말한다. 성 밖의 지형은 사면으로서 경사가 심하고 험준하여 天險의 요새이지만, 성내는 평탄한 지형이 많고 물이 풍부하여 거주에 적합한 곳이었으나 지금은 고랭지 묶은 밭의 광활한 초원을 이룬다.
성문 터가 지금도 4개가 남아있으며, 그 중에서도 남문터(南門址)가 상대적으로 뚜렷하고, 나머지는 초원에 덮여 사람이 접근하여 분간도 어렵다. 신라 도성 방위를 위하여 663년(文武王 3)에 경주 남산의 長倉을 축조하면서 쌓은 것으로 3년 만에 축성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성벽 돌은 무너져 산허리에 널렸고, 성내에는 軍倉址, 練兵場址, 朱砂庵址와 못, 暗門址, 우물터 등이 남아 있다고 한다.
특히 주사암은 신라 義湘이 창건하였다고 전하는데, 이 절터 바로 북쪽에 持麥石이라고 불리는 반석은 1백여 명이 앉을 수 있는 크기이다. 신라의 명장 金庾信이 술을 공급하여 군사들을 대접하던 곳이라 하여 지맥석이라 한다. 또 부산성은 孝昭王때의 향가인 慕竹旨郞歌와 연관된 곳이다. 조선 초 世宗實錄地理誌에서는 이 성을 夫山城이라고 부르며,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였다고 한다.
11시 15분쯤에 한 키가 넘는 억새밭을 지난다. 지금은 농사를 짓지 않은 고랭지 밭에 억새와 잡풀만 수북한 초지이다. 풀숲의 열기는 뜨겁게 달아오르고 광활한 초원엔 햇볕만 이글거린다. 온몸은 땀으로 곤죽이 되어 살갗에 달라붙고, 얼굴을 닦은 손수건은 몇 번이고 짜낸다. 11시 30분에 초원 정상에서 오른쪽 나무그늘로 들어가 잠시 갈증을 풀려다가 10여분이나 알바까지 하고 나니 더위는 더욱 기승을 부린다.
부산성은 5개의 암봉을 거느리고, 신라도성 방위를 위한 성곽이었으나 백제의 첩자에 의해 성문을 열어 주면서 신라군이 섬멸 당하는 뼈아픈 역사도 지닌 곳이다. 주사암 아래의 너럭바위인 持麥石에는 최근 인기드라마 선덕여왕이 숨을 거둔 곳이기도 하다. 삼국유사의 설화에서 신라화랑 득오가 죽지랑을 사모하며 부르던 ‘募竹知郞歌’의 배경이기도 하다. 화랑도의 함성이 하늘을 찌르던 곳, 지금은 잡초만 성성하고 흐무러진 옛 성터에 흔적만 남아 있다.
다시 고도를 낮추어 12시 5분에 비교적 양호하게 남아있다는 부산성 남문터(南門址)를 지난다. 그러나 남문터도 역시 마음먹고 유심히 신경 쓰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성도 흐무러진 빈터에 돌담만 흩어진 부산성을 뒤로하고, 은은한 소나무 숲이 우거진 능선을 내렸다가 다시 고도를 치고 올라 헬기장을 지난 후에 751m의 청천봉에 선다.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초소 앞은 역시 넓은 공간의 초지이다.
청천봉은 석두산, 대부산, 만금봉이라고도 부르나 보다. 산봉우리는 하나인데 이름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보는 이마다 느낌이 달라서 일까. 아니면 자기들 마음에 드는 이름을 마음대로 붙여서 의미를 느껴 보라는 걸까. 청천산악회에서 청천봉이라는 표지를 걸어 놓았기 때문이다. 12시를 넘기고 보니 배도 출출해지고 햇볕은 따갑다. 그러나 점심은 독고불재에서 먹기로 하고 좌측 채석장을 바라보면서 어두목장 철조망 따른다.
산중에 ‘語頭목장’이라니. 원래는 신라 때 왕자가 피신했던 곳이라 하여 ‘왕자동’이라고 하다가 이를 은폐하기 위하여 ‘어머리’라고 하였다. 지형이 물고기처럼 생겨서 어머리(魚頭)라고 불렀던 곳인데, 지금은 명덕조경에서 산림캠핑장을 운영하고 있다. 독고불재란 이름도 찾아보기 어렵다. 우린 캠핑장 매점 앞 들마루에서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 오후 1시 40분에 가파른 651.2봉을 향하여 빡세게 출발한다.
점심으로 보충했던 에너지를 단 20분 만에 소진한다. 가쁜 숨을 헐떡이며 오른 651.2봉은 먼저 준.희님의 아크릴 간판이 반기고, 봉우리를 넘어서 烏川 鄭氏의 묘를 지나니 솔숲이 이어진다. 좌측으로는 임진왜란 당시 약 400년 전에 오천 정씨가 마을 형성하여 살았다는 松田마을이 있어서 일까. 소나무 숲이 더욱 울창하고 상큼하다. 임도사거리에 내려서니 오후 3시를 가리키고, 아마 오리재인듯 하다.
오늘 당고개를 지나 ‘OK그린연수원’까지 가야할 텐데 좀처럼 진도가 나지 않는다. 더구나 버럭도사가 힘겨워하면서 후미만 선호한다. 더위 탓일까. 당고개휴게소를 선두가 도착하고 한참 후에 뒤따라오는 걸 보면 여간 힘든게 아닌가 보다. 우선 시원한 음료수를 각자 구미에 맞게 사먹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다. 건장한 남자 주인장과 그의 친구, 만약 오늘 우리가 숙박할 곳이 없으면 이곳에서 신세 좀 지자고 하니까 야외 팔각정은 얼마라도 이용하란다.
팔각정에는 젊은 여인이 돌도 안 된 예쁜 딸아이를 안고 낙동정맥 구간종주를 끊는 남편을 기다린다. 남편과 함께 1대간 9정맥을 종주하다가 아이가 임신하여 태어났기 때문에 아이 이름을 태백이라고 지었단다. 49세의 태백이 엄마는 영혼까지 맑은 산 아가씨처럼 구김 없어 보인다. 옛날 산내 쪽에 당집이 있었다고 해서 당고개로 부르는 곳인데 경상도 특유의 사투리 때문에 땅고개로 변음된 걸까. 3시 50분에 단석산을 향한다.
이곳 당고개에서 1일차 구간을 끊지 않고 2시간 정도 더 진행하여 OK그린연수원에서 오늘 산행을 마무리하려한다. 내일은 모처럼 만에 일찍 산행을 끝내고 문화탐방에 나서기 위해서다. 땀을 너무 흘려 정신력이 해이한 탓일까. 단석산을 향하는 걸음걸이는 천근만근인 데, 이따금 하산하는 꾼들은 날씨가 너무 더운데 정상을 만만히 보면 큰일 난다며 포기하려면 지금 빨리 포기하란다.
당고개휴게소의 이정표에는 단석산 정상까지 3.4km이다. 출발 15분후에 정상 2.9km, 2.4km. 1.9km의 거리를 점점 좁혀가다가 오후 5시가 넘어서야 정상 0.8km, OK그린연수원 2.0km로 표시한 이정표 갈림길에 도착한다. 오늘따라 힘겨워하는 후미의 버럭도사가 20여분후에 따라 붙으면서도 선두는 왜 정상을 다녀오지 않느냐며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렇다. 언제 다시 와볼지도 모르는 斷石山정상을 그냥 지나치려니 아쉽기는 마찬가지이다.
827.2m의 단석산이 삼국통일 이전엔 경주의 남산과 금오산, 토함산, 소금강산과 함께 신라의 5악 중의 중악에 해당하는 명산으로서 신라인들이 신성시하는 곳이었으며, 특히 김유신이 17살에 삼국통일의 꿈을 안고 그 힘을 얻기 위해 단석산에 들어와 기도하며 무술연마를 하던 곳이다. 산 이름도 김유신이 神劍으로 바위를 내리쳐 두 동강으로 갈랐다 하여 ‘斷石’으로 붙여진 것이다. 김유신의 氣槪를 느끼고 싶음일까. 지금도 수많은 등산객이 이곳을 찾고 있단 다.
그러나 우린 이곳 갈림길에서 OK그린연수원 쪽으로 발걸음을 뗀다. 너무 덥고 땀을 많이 흘린 탓에 모두가 지쳤다. 그러나 아름드리 소나무 능선 길을 걸으며 다시 생동감을 되찾는다. 피톤치드의 덕분일까. 6시에 OK그린연수원 초원의 붉는 색 교회에 도착하고, 이어 수 만평 녹색초원을 거닌다. 군데군데 소나무 군락이 초원의 기품을 더 해주고, 아랫녘으론 야영객 텐트촌이 정연하다. 우린도 저수지 연꽃잎을 배경으로 카메라 셔터를 수없이 누른다.
OK그린연수원은 해발 620m의 산자락에 45만평 규모의 청소년수련원으로서 파크골프장, 그린열차, 영농체험장, 워트파크와 수상레프팅 등을 갖춘 힐링캠핑장이다. 우린 지난달에 이용했던 아화의 개인택시 김만호(010-5512-0044)씨를 호출하여 숲재로 달린다. 일부는 산내 시내에 내려 유명식당을 수소문하고, 찬님과 비아는 나와 함께 숲재에 내려 승합차로 환승한다. 산내의 유명‘대일한우’식당의 숯불한우를 굽고, 9시 30분에 힐스모텔에 투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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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제23구간 (OK그린연수원~메아리농장~아랫상목골~700.1봉~소호고개까지))
...............언 제 ; 2015년 8월 16일 일요일 (22~31도 맑음)
...............누구와 : 박종관, 박찬익, 부길만, 이정일, 임순재, 황성자, @구본영
...............산행시간 ; 총 3시간 50분(휴식, 탐방, 식사시간 포함)
<06;20> 힐스모텔 출발/김수학 힐스모텔 사장님 운전으로
06;40 OK그린연수원 출발
06;49 571봉/이동 통신탑
07;30~07;36 메아리 농장/쪽문 열고 이용/방목한우 70마리/약 10만평/대표 김재곤
07;49 초지 상부 이동통신탑
07;53 604.4봉/좌
08;12~08;42 아랫상목골 임도/경주 산내고원 자연예술마을 표지판/아침식사/우
09;11 윗상목 임도/내일-내남 박달 임도 안내판
09;48 폐 헬기장 봉/잡풀 무성
10;18 700.1봉/삼각점/도계능선
10;30 소호고개/임도(태종-의와)/산행종료/태종방향으로 하산
<10;50> 태종 전원마을/울주군 상북면 태종잿골2길 33
<11;10> 마을 입구/울주군 상북면 소호리 126번지/
<11;40> 힐스모텔 사장 김수학(010-9314-1566)승합차에 픽업
<12;20~15;20> 힐스모텔 샤워 및 야외식당에서 점심
<16;00~17;00> 만불사 탐방
오늘은 12시경에 산행을 모두 끝내고 문화탐방을 할 예정이다. 새벽에 일어났으나 이곳엔 식사할 곳도 없고, 지어먹을 곳도 없어서 엊저녁에 사놓은 빵과 간식거리를 배낭에 넣은 다음, 6시 20분에 모텔을 나선다. 우리가 승합차를 직접 운전하여 OK그린연수원에 주차시킬 요량이다. 이때 모텔 뜰 앞의 쓰레기를 주섬주섬 정리하는 아저씨를 발견하고, 대뜸 대리운전을 부탁해니 OK사인이 떨어진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뜻밖의 대리운전을 맡아주신 분은 힐스모텔의 김수학 사장님이시다. OK그린연수원까지는 길이 좁고 가파르며 거리도 15여분 이상 걸린다. 내친김에 오늘 하산지점인 ‘소호고개’까지도 대리운전을 예약하여 허락을 받아낸다. 꼬불꼬불한 도로를 따라 윗 저수지 앞 초원에 내리니 탁 터인 경관에 영롱한 아침 햇살이 뽀얗게 내려앉은 찬이슬과 부딪친다. 6시 40분에 본 정맥코스를 찾아 단체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터트리고, 571봉의 이동통신기기를 지난다.
아직 아침식사전이다. 정맥코스를 중심으로 양쪽의 산자락마다 농촌 마을들이 정겹게 자리 잡고, 논과 밭의 푸른 들판엔 오곡백과가 영글어간다. 이슬이 영롱한 숲길은 걷을 때는 바지가 온통 물걸레가 되고, 7시 30분에 도착한 광활한 농장에는 띠지가 없어 길 찾기가 쉽지 않다. 농가대문을 두드리니 70대 노부부가 쫓아 나와 왼쪽 쪽문까지 손수 열어주며 반갑게 맞는다. 메아리 목장의 주인 김재곤 씨이며, 10만평 규모의 초원에 방목 한우 70여 마리를 기른단다.
7시 50분, 초지 꼭대기에 있는 이동통신탑 옆으로 올라 604.4봉을 찍고, 다시 좌측으로 틀어 낮은 숲 길을 잇다가 8시 12분에 아랫상목골 임도로 떨어진다. 산내고원 자연예술마을 안내판과 산내고원 쉼터 입구를 지나 왼쪽 비포장도로의 바닥인 소나무 그늘에 앉아 아침식사를 한다. 아침식사라고 해봐야 빵에 우유, 포도, 기타 간식거리 약간이다. 원래는 이곳에는 3만평규모의 친환경 녹색마을 조성하기 위한 부지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유야무야한 것일까.
8시 40분을 넘겨 아랫상목골을 출발한다. 능선 길엔 ‘(주)채원’과 고급 저택이 들어서 있고, 길은 다시 임도를 버리고 산길로 접어든다. 꾀나 높은 산이다. 우거진 숲 산 정상을 넘어 윗상목골 임도에 내려서니 ‘경주 내일-내남 박달간 임도 사랑안내판’이 나타난다. 길은 직진하여 비포장 오르막 임도를 따르다가 다시 산으로 진입하여 고도를 높여간다. 본격적으로 햇살이 강해지면서 지열, 태양열에 땀은 펑펑 쏟아지고 정상자리는 좀처럼 내어주지 않는다.
우거진 수풀 사이에 시멘트조각이 흩어진 것을 보면 분명 폐 헬기장이다. 원래는 10시를 전후로 하여 소호고개에서 마무리 할 예정이었으나 목적지는 나타나지 않고 시간은 흐른다. 지루한 능성이의 숲길은 은근히 고도를 계속 높여가고, 시간은 벌써 10시를 넘긴다. 소나무 숲 속의 향기를 그나마 위안으로 삼는다. 10시 18분에야 700.1봉에 올라선다. 삼각점 하나가 댕그렇고 나뭇가지엔 산님들 띠지가 주렁주렁, 천년고도의 경주시를 넘어 울주군으로 접어드는 경계선임을 알린다.
10시 30분에 소호고개에 도착한다. 오늘의 종착지점이다. 蘇湖고개에서 蘇湖는 높고 큰 것을 뜻하는 우리말로서 ‘수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풀이 많고 水源이 좋다는 뜻으로 상북면의 높은‘蘇’ 오지마을에 분지‘湖’지형이 많이 형성되어 있다는 뜻의 ‘蘇湖’이다. 소호마을을 태종마을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조선 태종이 이 마을을 거쳐 간데서 유래된 것이다. 비포장 임도를 따라 20분 후에 전원마을에 도착하고, 이래저래 늑장을 부리다 11시 40분에 힐스모텔 김사장님께 부탁한 대리 승합차에 올라 모텔 캠핑장으로 달린다.
김사장에게 이곳저곳 지역설명을 들어가며 12시 20분에 힐스모텔에 도착하니 김사장은 객실까지 대여해 주며 샤워를 하란다. 아직은 우리 사회가 그렇게 각박하지만은 않다는 증인이다. 사람 사는 정을 느끼게 해주는 호의에 우리도 야외 식단에서 이 집 전문메뉴의 하나인 돼지갈비구이를 마음껏 주문하고 마냥 먹는 여유로움을 가진다. 약간만 호의를 받으면 간이라도 빼줄 것만 같은 민족이다. 사람 사는 정이 그리워서 일까. 다음에 또 온다느니, 이런 맛은 처음이라느니 등등.....
벌써 3시 30분을 바라본다. 오늘 문화탐방 코스는 지난달에 넘었던 만불산의 만불사를 탐방한다. 오후 4시에 도착한 만불사, 영천 만불사에는 일만 칠천(17,000명)명의 동참불자들이 각자의 간절한 염원을 담아서 모신 願佛이라는 점에 의미를 찾는다. 1992년 5월에 기공하여 7년만인 1998년에 만불보전을 낙성한 곳이다. 특히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5과의 신진사리 중 1과를 봉안하고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약사여래불도 함께 모셔져 있다.
특히 높이 33m나 되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아미타 영천대불’, 세계 최초라고 자랑하는 ‘황동와불열반’상은 부처님이 누워 계신 열반 모습을 형상화 것으로 길이 13m, 높이 4m나 된다. 死後의 저승세계를 빌미로 신도들을 유혹하여 짧은 시간에 저렇게 화려한 납골궁전으로 거듭난 사찰을 건설하였다니 그 원력에 놀라울 뿐이다. 나무관세음보살..................
오후 5시, 석양이 불타는 만불사를 출발하여 귀경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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