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蓮대성인의 불법은 삼대비법(종지의 삼비)으로 요약되며, 이 가치를 판정하기 위한 법문으로서 종교의 오강이 있습니다. 이것을 오강판(五綱判), 오의(五義)라고도 합니다.
「대저 불법을 홍통하여 민생을 이익(利益)케 하려면 우선 교(敎), 기(機), 시(時), 국(國), 교법유포(敎法流布)의 전후를 알아야만 하느니라.」(전집494쪽)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교, 기, 시, 국, 교법유포의 전후라고 하는 다섯 가지의 대사를 명확하므로 삼대비법이 최고 최대의 종교임의 법문입니다.
가. 교를 알라.
세상에는 잡다한 종교, 철학, 사상이 존재합니다. 문화가 낮은 시대를 지도하기 위한 가르침과 문화가 높은 시대를 지도하기 위한 가르침과는 그 고저(高低), 천심(淺深)이 차이가 있습니다.
교(敎)를 알기 위한 대성인의 체계적 법문으로는 오중상대(五重相對), 오중삼단(五重三段), 삼중비전(三重秘傳), 사중흥폐(四重興廢) 등이 있으며, 종교 비판의 원리라고 하는 법문입니다.
이 중에서 오중상대를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오중상대는 불교 내외의 가르침을 오단계로 비교 상대하여 차례로 중생의 기근을 조숙하며 낮은 가르침에서 높은 가르침으로, 얕은 경(經)에서 깊은 경(經)으로 가는 법문입니다.
(1) 내외상대(內外相對)
불교에서는 자신을 내도(內道)라 하고, 인과(因果)의 법칙을 설해 밝히고 있으며, 기독교, 이슬람교, 유교, 신도, 유물론 등 불교이외의 모든 가르침을 외도(外道) 즉 인과에 벗어난 가르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내도와 외도를 비교상대하는 것이 내외상대이며, 그 승열(勝劣)의 기준은 인과의 유무에 있습니다.
대체로 모든 일들은 인과를 인정하는 것이 도리입니다. 이에 대하여 인과를 무시하고 부정하는 것은 사견(邪見), 편견(偏見)이라고 단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교 이외의 가르침은 모두가 인과를 무시하거나 혹은 부분적으로 얕은 인과만을 설하고 있는 가르침입니다. 가령 기독교 등에서는 교묘하게 천지창조설(天地創造說) 및 조물신사상(造物神思想)을 세우고 있지만 그것도 인과를 단절하는 사견에 불과합니다
그러함으로「개목초」에는 외도의 가르침에 대하여「과거를 알지 못함이 범부가 자기의 등을 보지 못함과 같고, 미래를 알지 못함은 맹인이 앞을 보지 못함과 같도다.」(전집186쪽)라고 비판하시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불교는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에 걸쳐서 우주간의 일체의 사상(事象)이 인과에 의하여 존재함을 교시하여 철저하게 올바른 인과의 이치 위에서 인생의 지침을 교시하는 가르침입니다.
그러하므로 내외상대하여 내도인 불교가 우수합니다.
⑵ 대소상대(大小相對)
내도인 불교에도 소승교(小乘敎)와 대승교(大乘敎)가 있습니다. 소승교란 석존이 화엄경 다음 뒤따라 설한 아함부(阿含部)는 12년간의 경(經)이며, 대승교란 소승 이외의 경으로서 이 양자를 비교 상대하는 것이 대소상대입니다.
첫째로 소승교는 극히 초보적인 진리의 일부분과 각종의 계율을 설한 교로써 자기의 구제만을 원하는 이승(二乘) 즉 성문, 연각을 불교에 유인하여 마침내는 대승교로 인도하기 위한 일시적인 가르침입니다.
대승교란 법의 내용이 높고 자타 공히 구제를 원하는 민중(보살)을 위하여 설해 끝에는 성불에 도달케 하는 가르침입니다.
따라서「守護國家論(수호국가론)」에「소승경은 불요의(不了義), 대승경은 요의(了義)이니라」(전집43쪽)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대승에 대하여 소승의 가르침은 천박함을 면할 수 없으며 대소상대하여 대승교가 우수합니다.
⑶ 권실상대(權實相對)
대소상대는 불교를 대승, 소승으로 대별한 것이며, 그 주지는 소승교의 위치와 가치를 차별하기 위해 대소로 분별한 것입니다.
그것에 대하여 불교가 설한 목적, 의의상에서 일대 불교를 권, 실의 이교로 판별하여 진실의 가르침을 선정하는 것이 권실상대입니다.
첫째로 권교란 임시의 가르침이라는 뜻으로서 잠시 사용한 후 버려야 할 방편의 가르침, 즉 민중을 진실의 가르침으로 인도하기 위한 일시적인 방편의 가설입니다. 이것에 비하여 실교란 진실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뜻로서 방편이 포함되지 않은 부처의 구극(究極), 진실(眞實)의 깨달음(일념삼천)을 설한 가르침이며, 이 실교에 의해서만이 일체중생이 즉신성불(卽身成佛)할 수가 있습니다. 석존은 42년간에 걸쳐 설법후「無量義經(무량의경)」에「40여년에서는 아직까지 진실을 밝히지 않았다.」라고 밝히시고 그 후에 설한「법화경 방편품 제이」에「정직하게 방편을 버리고서 단지 무상도를 설하노라」(개결189쪽)라고 선언하시여 법화경만이 진실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명확히 교시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법화경에 있어서는 지금까지 성불할 수가 없다고 되어 있는 이승의 작불이 허용되고, 또 석존은 구원의 옛날부터 부처임을 밝히시고 일체중생을 성불시키기 위한 일념삼천의 법문을 밝히신 것입니다. 따라서 「관심본존득의초(觀心本尊得意抄)」에「성불의 가르침은 법화경이니라(중략) 그들의 제경 등은 성불의 가르침이니라」(전집972쪽)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실교인 법화경과 그 이외의 제경 등을 비교 상대하여 법화경이 최고 진실이라고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이 권실상대입니다.
(4) 본적상대(本迹相對)
석존의 일대불교 중에서 진실의 가르침은 법화경이며, 그 법화경 이십팔품 중 전반 십사품을 적문(迹門), 후반 십사품을 본문(本門)이라고 합니다. 이 본문과 적문을 비교 상대하는 것을 본적상대라고 합니다.
첫째로 법화경 적문에 있어서는 이승작불(二乘作佛)을 설하여 일체중생을 성불케 하는 일념삼천의 법문을 밝혔습니다 .
그러나 이것은 진실의 일념삼천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적문을 설할 때의 석존은 인도에서 출생하여 수행에 의하여 비로소 깨달음을 얻은 시성정각(始成正覺)이라고 하는 입장의 부처였으므로 부처도 법도 본무금유(本無今有) 즉 보편성이 결여된 현재만의 존재가 되어서 이승작불, 일념삼천도 유명무실하게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는 부처의 입장에서 인, 과, 국<*석존이 부처가 되기 위한 수행을 하여 그 결과 구원오백진점겁(久遠五百塵点劫)의 옛날에 부처가 되어 그 이후 이 사바세계에서 중생을 계속 교화하여 왔다고 하는 것>이 설 하여져 석존의 구원실성<*실제로는 구원의 옛날에 성불하였다고 하는 것>이 밝혀져 있습니다. 이것으로 부처도 법도 구원의 옛날부터 상주하는 본유금유(本有今有)의 존재가 되어 진짜 일념삼천, 즉신성불의 법문이 됩니다.
그러므로 본적상대하게 되면 구원실성을 설하여 진실을 나타낸 본문이 우수합니다. 이와 같은 것을 대성인은「개목초」에「적문 방편품은 일념삼천과 이승작불을 설하여 이전 두 가지 허물 중에서 하나를 벗었느니라. 그렇기는 하여도 아직도 발적현본(發迹顯本)하지 않았으므로 참된 일념삼천도 나타나지 않았고, 이승작불도 정해지지 않았으니 마치 물 속의 달을 보는 것 같고 뿌리없는 풀이 물결 위에 떠있음과 같도다.」(전집197쪽)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또「치병대소권실위목(治病大小權實違目)」에「본적의 상위는 수화천지(水火天地)의 위목이니라. 예컨데 이전과 법화경과의 위목보다도 훨씬 위목함 이니라」(전집996쪽)라고 말씀하였습니다.
(5) 종탈상대(種脫相對)
법화경 본문에서도 문상탈익(文上脫益)과 문저하종(文底下種)의 두 가지의 법문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적과 같은 전반, 후반이라고 하는 횡(橫)으로 분리하는 것이 아니고 같은 법화경 본문의 문에서 그 문의 밑바닥에 비침되어 있는 더 한층 깊은 법을 밝히고 종(縱)으로 문상, 문저로 나누어서 비교상대 하는 것이 종탈상대입니다.
첫째로 불법에는 종(種), 숙(熟), 탈(脫)의 삼의(三義)가 있어 보통은 삼익(三益)이라고 합니다.
종이란 하종익으로 부처가 되는 종자를 민중에게 심는것, 숙이란 숙익이며, 과거에 뿌려진 불종을 기르는 것<*조숙하는 것>, 최후의 탈이란 탈익(脫益)이라고 하여 마침내는 결실한 종자를 수확합니다. 즉 중생을 부처와 같은 경애에 도달케 하는 것을 말합니다.
석존의 화도는 오백진점겁의 아득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구원원초의 옛날에 하종을 받은 중생<*이 중생을 本已有善(본이유선)이라고 함>에 대한 것으로서 오백진점겁 이래 인도에서 법화경 적문을 설할 때 까지를 숙익으로 하고 법화경 본문을 탈익으로 하는 숙탈의 화도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탈익의 법화경 본문을 중심으로 정, 상 이천년간 까지는 본이유선의 민중을 구제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말법에 있어서는 과거에 하종을 받지 못한 중생, 혹은 하종을 받았다 하여도 숙탈의 화도의 도중에서 퇴전하여 소위 불종이 소멸하여 버린 즉 불종이 없는 중생<*본미유선이라고 함>이 출생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숙탈의 석가 불법은 효력을 상실하고 백법은 은몰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 본미유선의 중생에게 새롭게 불종을 내려 구제하기 위하여 출현한 것이 법화경 본문의 문저에 은밀히 감추어져 있던 대성인의 불법입니다. 이것은 구원원초의 하종불법이 말법시대에 재현한 것입니다.
따라서 「관심본존초」에서는「재세의 본문과 말법의 처음은 꼭 같이 순원(純圓)이니라. 단 그는 탈(脫), 이는 종(種)이며, 그는 일품이반(一品二半), 이는 단 제목의 오자이니라.」(전집249쪽) 라고 말씀하시고 「개목초」에서는
「일념삼천의 법문은 단 법화경의 본문, 수량품의 문저에 잠겨 있느니라」(전집189쪽) 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석존의 법화경 본문과 대성인의 그것과는 같은 본문이라고 하여도 명확히 종탈의 상이가 있다고 하는 것, 그리고 탈익의 법화경은 문상 하종의 법화경보다 한층 깊이 문저비침의 대법이라고 하는 것을 교시하시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과(果)가 인(因)에 의하여 발생하는 것과 같이 탈익의 법화경이 본미유선의 중생을 이익하여 득탈하였다라고 하여도 그 인이 되는 성불의 종자는 구원원초에 있어서 하종불법에 의하여 내려진 것이 아니므로 보다 더 본원이 되는 것은 하종불법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도리에서 하종의 南無妙法蓮華經야말로 일체의 교법의 본원에 해당 되는 법이며, 또 하종의 교주 日蓮대성인이야 말로 본원의 부처라고 하는 것을 밝히시고 대성인의 불법이 최고 진실이라고 결판하는 것이 종탈상대의 깊은 뜻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