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이 되어라!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프리드히리 니체 -
「나는 죽을 때까지 살고 싶다.」
장 폴랑 -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살아 있는 동안은 죽음이 없고, 죽으면 이미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에피쿠스 -
이 책은 본문의 처음에 샤를 오귀스텡 생트의 말을 인용하는데 참 의미 있는 말이다.
【늙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유일하게 찾아낸 오래 사는 법이다.】
그의 말을 빌자면 1800년대의 인간 수명은 30~33세, 1900년대에는 45~50세였고,
현재는 1년에 3개월꼴로 늘어간다고 한다.
쉽게 이해가 가는 면이 있는 말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100세 인생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밀레니엄세대가 성년이 된 지금 그들의 생활 방식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예전처럼 10대나 20대에 결혼을 빨리할 이유가 없게끔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고 있으며, 학업을 빨리 마치려고 애쓸 필요성도 크게 느끼지 못한다.
그만큼 삶의 선택에 여러 번의 기회가 생기게 되었고, 이러한 이유로 선택을 함에 있어 망설임이 많아진다고도 볼 수 있다.
과학과 의학의 발전이 인간의 수명을 늘려준다는 말은 사기에 불과하다는 그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수명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노년의 생이 늘어나는 것이다.
이러다가 마침내는 죽음을 거부하고 새로운 의학으로 인간의 모든 기관을 바꿔치기하고, 과학으로는 인조인간을 만들어 내서 죽지 않는 인간이 로봇이나 복제된 인간(?)을 활용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 전까지의 유한한 삶에서는 좋아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늦게까지 할 수 있다.
생의 마지막 날까지 사랑하고, 일하고, 여행하고, 흔들림 없이 가진 것을 누려야 한다.
인간의 삶을 형성하게 하는 것은 사람을 약하게 만드는 ‘휴식’이 아니라 강하게 만드는 단련에 있다고 말한다.
서두에 옮겨 둔 말처럼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들은 나를 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많은 것을 단련해서 강해졌다고 한들 기회를 잡지 못한다면 그것은 헛된일이 될 것이다.
조지 스타이너의 일화에서 나오듯 사고픈 물건이 다 팔린 가게에서 ‘판매종료’라는 말 대신에 ‘죄송합니다. 늦으셨습니다.’라는 글을 써 놓은 것을 보면 후년에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고 있음에도 일하고, 사랑하고, 삶을 보람되게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면 결국은 무덤에 묘비명으로 새겨 놓아야 할 문구가 아닐 성 싶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자신을 알아 가는 데는 족히 반세기가 걸린다.
자신을 찾을 나이가 되면 이제부터는 조금씩 시들어가는 시기가 오고야 만다.
사람은 두 번 죽는다고 한다.
한번은 영혼이 내 육신을 떠날 때이고,
두 번째는 그를 기억하는 마지막 사람이 죽을 때라고 한다.
죽기 전에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병이 생기고 그 병으로 인해 아파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아픔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역시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랴?
살아 있기는 하지만 백년 전, 오십 년 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사람의 생명줄이 길어지면서 우리는 폭넓은 나이를 가진 이웃들과 살아가야 한다.
기껏해야 4~5십년 터울의 사람들이 함께했던 1800년대 보다, 60정도의 차이로 족했던 20세기 보다 21세기에 사는 우리들은 보다 넓은 연령층과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에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할 줄 알아야만 할 것이다.
□ 이 책을 읽어보기 전부터 나름대로 노트해 놓은 바램 중에
【죽을 때까지 (잘)살기】라는 개인적인 소망을 적어둔 적이 있다.
경기도 양평에 있는 어느 카페에 보관 중인 나의 5가지 소원을 적은 메모에도 있는 이 말은 내 삶에 많은 힘을 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