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온갖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비틀걸음으로 나그네 길을 가는 연약한 존재이다. 갈대와 같이 연약한 영혼에게 위로를 주는 책들 중에 한 권이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 1380-1472)의 <그리스도를 본받아>(De Imitatione Christi, c. 1384)이다. ... [출처] 기독교 일간지 신문 기독일보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41982#share
그리스도교 문학에서 성서 다음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여겨지는 신심 서적 <준주성범>의 저자로 추측된다. 이 책은 단순한 언어와 문체로 이루어져 있으며, 물질적 생활보다는 영적 생활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살 때 보상이 주어진다고 주장했으며, 성체성사는 신앙을 증진시키는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1392년경 네덜란드의 테벤테르로 갔는데, 그곳에서 아우구스티노 참사 수도회인 빈데스하임 수도회를 세운 신학자 프로렌티우스 라더빈스에게 공부했다. 그는 아그니텐베르크 수도원에 있는 빈스하샤임 수도회에 들어가 70년 이상을 밖에 나가지 않았다. 1413년 사제 서품을 받은 이후 필사본을 만들고 수련 수사들을 지도하는 일에 일생을 바쳤다. ...
《그리스도를 본받아》(라틴어: De Imitatione Christi, 영어: The Imitation of Christ) 또는 《준주성범》(遵主聖範)은 기독교, 특히 로마 가톨릭교회의 대표적인 신앙 서적으로 토마스 아 켐피스가 쓴 책이다. 최초의 책은 1418년-1427년경에 라틴어로 간행되었다.[1] 이 책은 토마스 아 켐피스가 동참하였던 데보티오 모데르나 운동에 근거한 신앙생활을 위한 영성 서적이다.[2] 혹자는 이 책을 성경과 비교할 수 있는 고전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첫댓글 토마스 아 켐피스 Thomas a Kempis
그리스도교 문학에서 성서 다음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여겨지는 신심 서적 <준주성범>의 저자로 추측된다. 이 책은 단순한 언어와 문체로 이루어져 있으며, 물질적 생활보다는 영적 생활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살 때 보상이 주어진다고 주장했으며, 성체성사는 신앙을 증진시키는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1392년경 네덜란드의 테벤테르로 갔는데, 그곳에서 아우구스티노 참사 수도회인 빈데스하임 수도회를 세운 신학자 프로렌티우스 라더빈스에게 공부했다. 그는 아그니텐베르크 수도원에 있는 빈스하샤임 수도회에 들어가 70년 이상을 밖에 나가지 않았다. 1413년 사제 서품을 받은 이후 필사본을 만들고 수련 수사들을 지도하는 일에 일생을 바쳤다. ...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22t3071a
개신교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하고 보는 책의 저자인 것 같습니다. 첨부한 설명 잘 참고하겠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라틴어: De Imitatione Christi, 영어: The Imitation of Christ) 또는 《준주성범》(遵主聖範)은 기독교, 특히 로마 가톨릭교회의 대표적인 신앙 서적으로 토마스 아 켐피스가 쓴 책이다. 최초의 책은 1418년-1427년경에 라틴어로 간행되었다.[1] 이 책은 토마스 아 켐피스가 동참하였던 데보티오 모데르나 운동에 근거한 신앙생활을 위한 영성 서적이다.[2] 혹자는 이 책을 성경과 비교할 수 있는 고전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https://ko.wikipedia.org/wiki/%EA%B7%B8%EB%A6%AC%EC%8A%A4%EB%8F%84%EB%A5%BC_%EB%B3%B8%EB%B0%9B%EC%95%84
준주성범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책인데, 어려워 보이기는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마태복음 11:28)! 이 말씀으로 힘을 얻습니다.
토마스 아 캠피스가 공동생활형제단의 정신과 영성을 이어 받은 종교개혁 전야 시대의 수도사로서 일생을 후진 양성에 힘쓰고 죽었다는 것에서 작은 감동을 받습니다.
네, 교회사를 아시는 좋은 분별이십니다.
기왕에 타락한 천주교였지만 그나마 수도원은 다른 카톨릭 조직에 비해서 덜 타락하거나 종교개혁으로 이어지는 희미한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위 토마스 아켐피스와 성 버나드(베르나르)였습니다. 버나드는 칼빈의 기독교강요에 몇번 언급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