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속에 있는 해파리가 저 멀리 어두운 우주 속에도 존재한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은하단 속에서 압력을 받아 해파리처럼 긴 가스 꼬리를 늘어뜨리게 된 거라고 하는데요.
오늘 <별별 이야기>에서는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지웅배 연구원과 함께 '해파리 은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우리가 흔히 은하 하면 나선형에 어떤 회전하는 모양체를 생각하는데 해파리를 닮았다고 하니 신기합니다. 어떤 은하인가요?
바닷속 작은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것처럼 우주의 은하들도 서로의 중력에 이끌려서 한데 떼를 지어서 모여있습니다. 이걸 은하들이 모여있는 집단이라는 뜻에서 은하단, Galaxy Cluster라고 부르는데요.
그런데 이런 은하단에는 단순히 별들이 모여있는 은하만 있는 게 아닙니다. 은하단 속 은하와 은하 사이의 공간은 텅 비어있는 게 아니라, 그 사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엄청난 양의 뜨거운 가스 물질들도 함께 모여있는데요. 이런 가스 물질을 은하단 내 물질, Intra-Cluster Medium, 줄여서 ICM이라고 부릅니다.
은하단에 모여있는 이런 은하들이 가스물질을 휘젓고 다니다 보면.. 이해를 돕기 위해 잠깐 이걸 사용해 보자면 이런 은하가 있다고 했을 때 은하단의 물질 속 가스 물질을 휘젓고 다니다 보면 은하단 물질에 밀려서 뒤로 길게 가스흔적이 남게 됩니다. 천문학자들은 은하들이 뒤로 길게 가스 물질을 흘려보내는 모습이 마치 해파리의 긴 촉수와 같다고 해서 이런 은하들을 해파리 은하, Jellyfish Galaxy라는 재미있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지구의 바다에서 사는 진짜 해파리들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거대한 수십만 광년짜리 거대한 해파리들이라고 볼 수 있죠.
은하단 속에서 압력을 받아서 마치 해파리처럼 긴 꼬리를 늘어뜨리고 있는 은하다 해서 해파리 은하다라고 부른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그러면 이런 가스 꼬리는 왜 생기는 건가요?
은하단 속 공간을 떠돌아다니는 은하 뒤에 가스 꼬리들이 생기는 원리는 우리가 물속을 헤엄칠 때 경험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흙먼지가 잔뜩 묻은 손을 단순히 흐르는 강물 속에 집어넣기만 해도 물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손에 묻어있던 흙먼지들이 씻겨나가면서 손 뒤로 흘러갑니다. 마치 손 뒤로 흙먼지 꼬리가 생기는 것과 같죠.
이렇게 손에 묻은 흙먼지를 씻어 보내는 강물의 압력처럼, 흐르는 유체에 의해 받게 되는 압력을 램 압력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램 압력을 받아 물질이 씻겨져 나가는 현상을 램 압력에 의한 벗겨짐, 램 압력 스트리핑이라고 부르는데요. 은하단 속 가스 물질에 의한 램 압력을 받아 은하가 한 꺼풀씩 가스 옷이 벗겨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뜨거운 가스 물질로 가득 찬 은하단 공간 속을 헤엄치고 다니는 은하들 역시 이 가스 물질에 의한 램 압력을 받게 되죠. 그 결과 원래 은하가 품고 있던 내부의 가스 물질이 흙먼지처럼 불려 씻겨져 나가면서, 은하의 이동 방향 뒤로 흔적을 남깁니다.
동화 속에 나오는 헨젤과 그레텔이 자신이 걸어온 길목 뒤로 빵가루를 남겼던 것처럼, 은하단 공간 속을 움직이는 은하들 역시 은하단 속 가스 물질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남긴 흔적이 바로 이 가스 꼬리입니다. 마치 자신이 움직이는 방향 뒤로 긴 가스 꼬리를 남기는 혜성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혜성의 은하 버전인 셈이죠.
헨젤과 그레텔을 예로 들어주시니까 아름답고 재밌는 거 같은데요 자, 혜성 말씀하시니까 어떤 꼬리인지 느낌이 옵니다 이 은하의 가스 꼬리 특징은 무엇인가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혜성이 남기는 가스 꼬리의 방향을 보고 그 혜성이 지금 어떤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처럼, 램 압력을 받은 해파리 은하들이 뒤로 남기는 가스 꼬리를 통해서 그 모습을 보고, 현재 은하가 은하단 속에서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또 혜성들이 태양계 안쪽으로 다가오면서 태양열을 더 많이 받기 때문에 혜성의 꼬리가 더 길고 뚜렷해지는 것처럼, 은하단 속 은하들 역시 뜨거운 가스 물질이 더 높은 밀도로 가득 모여있는 은하단 중심부로 깊게 빠져들수록 해파리 은하가 남기는 가스 물질의 양도 더 많아집니다. 이런 은하들은 계속 큰 타원 궤도를 여러 바퀴 돌면서, 서서히 은하단 중심으로 빠져들게 되고 결국 원래 갖고 있던 신선한 가스 물질을 모두 소진해버립니다.
자 그럼 이렇게 신선한 가스가 다 소진해 버릴 경우에 그 은하는 어떻게 되나요?
말씀하신 것처럼 해파리 은하들 대부분은 은하단 속에서 서서히 가스 물질을 흘려보내면서, 결국 새로운 별을 만들 수 있는 신선한 가스 물질을 모두 흘려보냈기 때문에 더 이상 새로운 별을 만들 수 없는 죽어버린 은하가 되어버립니다. 길가에 남길 빵가루가 다 사라져버린 헨젤과 그레텔에게 더는 먹을 빵이 없겠죠.
하지만 은하단 속으로 은하들이 빠져들어 가는 과정에서 은하의 앞쪽에서는 은하단 속 가스 물질과 은하가 직접 맞부딪히면서 충돌하게 됩니다. 이처럼 가스 물질이 서로 맞부딪히는 충돌하는 영역에서는, 가스 물질이 서로 압축되고 새로운 별이 왕성하게 태어나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렇게 대략 수백만 년에서 수억 년 내외로, 천문학적으로는 잠깐의 동안의 시간 동안 별들의 탄생이 폭발적으로 벌어지게 되는데, 이런 것을 폭발적 별 탄생, 스타버스트라고 합니다.
물론 결국 은하단 중심부로 서서히 추락해가는 해파리 은하들은, 모두 가지고 있던 가스 물질을 다 흘려보내면서 죽어가게 되겠지만, 그 과정에서는 아주 잠깐 폭발적인 별 탄생을 겪으면서, 죽기 직전 최후의 만찬을 즐기는 듯한 그런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럼 해파리 은하는 다 죽어가는 은하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거 군요.
그럼 이 램 압력을 받는 은하가 은하들을 구성하는 은하단에는 어떤 영향을 주게 되나요?
아주 중요하고, 또 아주 어려운 질문인데요.은하단이라는 것 역시 그 속에 살고 있는 은하들이 모여있는 집단이기 때문에 은하단 속에 사는 은하 각각의 진화가 결국 은하단 전체의 운명을 결정하게 됩니다.
특히 오늘 소개해드린 램 압력 스트리핑에 의해 신선한 가스 물질을 빼앗기면서 은하들이 서서히 죽어가는 과정은, 우리 우주에 존재하는 은하단 대부분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 가장 빈번하게 벌어지는 방식의 은하 노화 과정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더는 새로운 별을 만들 수 없는 죽어버린 은하들은 바닷속에 가라앉는 주검처럼 은하단 중심부로 모두 가라앉아 모이게 되겠죠. 그리고 그 은하단 중심부에 모여든 죽은 은하들은 서로 뒤섞이고 병합하면서 더 거대한 하나의 은하를 만들어갑니다.
그래서 은하단 대부분 그 중심에는 아주 거대한 타원 은하들이 살고 있는데요. 이런 거대한 타원 은하들을 CD Galaxy라고 합니다. 결국,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 은하단에는 새로운 별을 만들 수 있는 파릇파릇한 은하들은 거의 다 사라지고, 죽어버린 해파리 은하들의 주검만이 은하단 중심부에 모여 반죽 되는 이런 거대한 은하 덩어리만 남게 되겠죠. 이런 해파리 은하들은 이 우주가 어떻게 나이를 먹고 서서히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는지, 우주가 보여주는 세월의 흔적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주가 마치 거대한 바다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