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平澤)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姓氏)는 평택 林氏, 金氏, 朴氏, 田氏 등이 있는데 평택 林氏를 제외하고는 소수이며, 평택 임씨 도시조인 임팔급(林八及)이 살았던 것으로 전해지는 유적이 평택 팽성 농성(農城) 공원에 자리하고 있다.
평택 팽성( 彭城)의 지명 유래는 임팔급이 중국 고대 팽성에서 건너와 정착하며 고향 이름을 따서 팽성이라 불렀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 도시조(都始祖)와 본관(本貫): 조상 중 가장 높은 분으로 본관을 정한 최초의 조상. 본관은 시조 혹은 선조의 출생지를 말하는데 성씨만으로 동족을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본관이 생겼다.
농성공원 안내판과 공원내부 산책로 (26.6.24 방문)
평택 농성공원은 경기도기념물 제74호 농성을 중심으로 조성된 역사 생태 공원으로 고려~조선 시기 해안 방어와 지역 생활 기반을 위해 붉은색 고운 찰흙을 다져 쌓은 장방형 토성(土城)으로 높이는 약 24m이고 둘레는 300m가 약간 넘는데 동문과 서문이 있었다. 성벽의 높이는 바깥쪽이 6.4m, 안쪽이 2.4m쯤 되며 ,유물은 통일신라~고려시대의 기와와 토기 조각들이 발견되었다.
1981년 7월 경기도기념물로 지정되었는데 그 이전에는 가치가 밝혀지지 않았고 1980년 7월 인근 군부대에서 장교와 하사관 주택을 건축하려고 임야(산) 훼손 과정에서 문화재적가치 여부를 문화공보부에 의뢰 조사한 결과 현재 남아있는 토성 중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하여 문화재로서의 존재 가치를 인정 받았다.
농성을 쌓은 이유는 삼국시대에 도적 때문에 쌓았다는 이야기를 비롯하여 신라말기 중국에서 건너온 평택임씨의 시조인 임팔급이 축조하여 생활 근거지로 삼았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고려시대에 서해안으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기 위해 쌓았다는 설과 임진왜란 때 왜적을 막기 위해 쌓았다는 설이 전해진다. (경기역사문화유산원 자료)
토성 내 계단과 안쪽 둘레 사진 - 토성 위에서 산책할 수 있다.
농성 공원안에는 평택임씨의 시조인 임팔급 동상과 기념비 등이 자리하고 있다.
임팔급은 당나라에서 18세에 등과하여 한림학사를 거쳐 병부시랑 예부상서로 있었으나, 간신의 모함을 받고 당시 신라로 망명을 하였으며, 적국이 침입하였을 때, 이를 막아낸 공로로 팽성군(彭城君)에 봉해진 후, 신덕왕 때에 충절공이라는 호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나무위키) . 역사적 유명 인물로 명청교체기에 활동했던 무관이자 외교관인 임경업 장군, 조선중기의 의적 임꺽정(임거정林巨正), 조선 말기의 의병장 임병찬 등이 있다.
林씨 성은 중국에서 유래했다. 은나라 때 비간공(比干公)이 주왕의 폭정을 충간하다 죽임을 당하고 부인 진씨(陳氏)는 임신한 몸으로 하남성으로 피신하여 장림산(長林山)에서 아들 천(泉)을 낳았는데 은나라가 망하고 주(周)나라가 들어서면서 왕이 아들 천(泉)에게 장림산에서 태어났다고 임(林)씨 성을 하사하고 이름을 견(堅)이라 했다.
※ 중국에서는 林씨의 태시조인 비간공 탄생 기념 문화축제를 매년 음력 4월4일 중국 허난성(河南省) 웨이후이시(卫辉市) 비간묘역(比干庙) 개최하고 있다. (중국 인터넷 사이트에 「比干」으로 검색하면 다양한 행사 기록이 나오는데 매우 큰 행사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