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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신자와 초보 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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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트 신조 중생했지만 남아 있는 죄성, 죄에 대한 성도의 반응
장코뱅 추천 3 조회 283 24.05.17 07:58 댓글 2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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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4.05.17 08:04

    첫댓글 종교개혁이 바라본 성도의 신분과 현실적 상태는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입니다. 이것에 대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거듭난 자들도 이 세상에 있는 한 본성의 부패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라고 법조문처럼 명료하게 설명하였습니다. 한편, 일부 어리석은 위선자들은 본성 자체와 거기에서 비롯하는 행위는 죄가 아니라고 어거지를 씁니다. 구원파와 율법폐기론자들이 그런 교묘한 유혹을 하지요. 성도가 원죄의 사함을 받은 이후 짓는 죄들도 죄는 죄이고 회개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9)에서 “우리”는 불신자가 아니라 성도들입니다. 성도들도 중생∙회심한 이후 잘잘한 죄들을 계속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 24.05.17 10:56

    웨민과 도르트 신조 해설을 함께 보니 이해와 믿음이 배가되는 것 같습니다.

  • 작성자 24.05.17 08:06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6장 5항

    거듭난 자들도 이 세상에 있는 한 이러한 본성의 부패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요일 1:8, 10; 롬 7:14, 17-1, 823; 약 3:2, 잠 20:9, 전 7:20). 그리스도를 통해 용서 받고, 극복되었다고 해도 그러한 본성 자체와 거기에서 비롯하는 모든 행위는 엄연한 죄에 해당한다(롬 7:5, 7-8, 25; 갈 5:17)."

    이 조항은 거듭난 자들도 이 세상에 있는 한 본성의 부패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가르친다. 이 조항은 '신자의 완전함'과 관련된 모든 주장을 논박한다. 성경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친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 1:8).

    바울도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름 7:17-21)라고 말했다. 바울이 자신의 감정을 말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의 경험을 말한 것인지를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있어 왔다. 우리는 바울이 거듭난 자신의 상태를 비롯해 거듭난 모든 사람들의 상태를 언급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이 교리는 이 구절만을 근거로 하지 않는다. 이 구절에서 바울이 말

  • 작성자 24.05.17 08:07

    한 갈등은 참 신자들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성경의 다른 구절들에서도 똑같이 언급되고 있다. 예를 들어, 갈라디아서 5장 17절은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말한다.

    또한 이 조항은 거듭난 자들의 경우에도 부패한 본성 자체와 거기에서 비롯하는 모든 행위가 엄연한 죄에 해당한다고 진술한다. 죄책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제거되고, 죄의 권세가 성령과 은혜로 깨어졌지만 그 본성 자체는 죄의 성격을 고스란히 보유하고 있다.

    이 조항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주장을 논박한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저술가들은 우리가 본성의 부패라고 일컫는 '보편적인 죄의 성향'을 '욕망'(concupiscence)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욕망은 원죄의 일부가 아니며그 자체로는 아무런 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원죄가 세례를 통해 제거된다고 믿지만, 거듭난 자들에게도 이 부패한 성향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것은 원죄의 일부가 아니고 아담 안에 처음부터 존재했던 자연스런 본성이라고 결론짓는다. 그들은 본래는 아담에게 그런 본성을 억제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도움이

  • 작성자 24.05.17 08:08

    그들은 원죄가 세례를 통해 제거된다고 믿지만, 거듭난 자들에게도 이 부패한 성향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것은 원죄의 일부가 아니고 아담 안에 처음부터 존재했던 자연스런 본성이라고 결론짓는다. 그들은 본래는 아담에게 그런 본성을 억제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도움이 주어졌지만 죄를 지은 탓에 그런 도움이 그와 그의 후손으로부터 사라졌다고 믿는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욕망, 또는 정욕을 죄라고 말한다. 바울은 로마서 7장 7절에서 "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라고 말하고 나서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고 덧붙였다. 여기에서 그는 탐심을 죄라고 분명하게 언급했다.

    로버트 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 pp.96∼97.

  • 24.05.17 11:01

    @장코뱅 도르트 신조 해설의 남아 있는 죄성을 로버트 쇼 목사는 본성의 부패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표현한 것 같습니다. 좋은 설명입니다.

  • 작성자 24.05.17 08:14

    성령이 내주하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갈5:24)은 그들 구원의 먼 옛날 시작점에 하나님의 예정이 있고 현생에서 현재적으로는 성령의 역사하심에 의한 성화가 나타나고 미래에는 영화(롬8:30)가 있을 것입니다. 성화는 칭의의 결과로 나타나지만, 순간적이고 급진적이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이고, 보통은 점진적입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강하지 못하고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는 ‘완벽한 의인’이 아니고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입니다. 성도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악하고요. 성도가 얼마나 연약한지 아시기 때문에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는 것입니다. 이 묵상을 읽은 모든 성도들이,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시며 연약한 가운데에서도,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는 것을 믿고 안심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성령께서는 보혜사로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 24.05.17 11:08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인 성도들을 도우시는 성령을 의지하고 찬양합니다.

  • 작성자 24.05.17 08:13

    개혁주의를 비롯한 정통 복음주의는 구원을 받은 자가 구원을 받고 있고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하면서 칭의(과거)-성화(현재)-영화(미래)의 팽팽한 연속과 긴장감을 가지고 겸손하게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구원파와 율법폐기론자들은 이미 구원을 받았으니 다 끝났다고 착각하며 방심하고 교만해서 죄를 지어도 회개하지 않고 죄를 짓는 삶을 계속해 나아갑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현세에서는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인 것을 모르기 때문인데요. 구원파 류 이단들의 오해와 달리 성경은 이미 구원받은(과거) 자의 구원(미래)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이 왔다고 하며 ‘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장감, 영적 각성과 분발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는 롬13:11 이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롬13:11.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12.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 작성자 24.05.17 08:14

    도모하지 말라"

    롬13:11과 13장이 불신자를 향하여 쓴 말씀이 아니라 신자들을 향하여 쓴 것임을 금방 눈치 채실 것입니다. 계1:3의 복을 받은 자들(위 문단들에서 설명)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우직하고 진실한 신앙생활을 합니다. 죄악 되고 어두운 세상 가운데에서도 빛의 갑옷을 입고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합니다. 이는 칭의된 성도들이 살아가는 성화의 삶을 의미합니다. 밤이 깊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낮이 가까워져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팔복(마5:3∼10)에서 “복이 있나니” 앞에 쓰인 조건들(심령이 가난한 자∼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은 롬13:14에서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상태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참 성도들답게 신앙생활 하기를 기원합니다.

  • 24.05.17 11:26

    @장코뱅 아멘!

  • 작성자 24.05.17 08:16

    "마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베드로가 복을 받았기 때문에 안 지혜는 하나님 아버지가 주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참 지혜가 알게 하시는 내용은

    "마16:16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입니다. 이것을 알고 믿되, 참되고 성숙한 믿음은 의인이며 동시에 죄인인 자들이 손을 깨끗이 하고 두 마음을 품지 않으며 마음을 성결하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자들이, 거듭나고 회심한 자들이, 그 믿음의 결과로서 열매로서 믿음의 진실성을 증명하기 위하여 마음을 성결하게 하고 성화의 삶을 살아갑니다. 오늘의 본문인 약4:1∼10 중 4:1∼4는 세상의 불신자가 아닌 신자들에게 신자답게 살기를 권면하는 것인데요. 신자답게 사는 성화가 가능한 것은 참 신자의 속에 성령이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 24.05.17 11:55

    믿음이 성숙하면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을 잘 이햐합니다. 반면에 믿음이 연약하거나 이단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 24.05.17 10:59

    성도의 견인 교리 해설이 유익합니다. 이러한 가장 기본적인 내용을 많은 신자들이 확실히 알면 이단이나 사이비에 기웃거리거나 발을 붙이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많은 곳에서 구원 받은 신자들이 죄악 된 육체의 본성과 싸워야 할 것이 남아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데, 구원파 쪽에서는 애써 이러한 말씀들을 무시하고, 성경을 억지로 풀려고 하는 경향들을 보이는 것이 안타깝네요.
    성령이 내주하시는 성도들은 성령을 힘 입어서 육체의 죄악 된 속성과 싸워 이기는 경험을 지속적으로 해나감으로써 점차 평안과 안식을 누리며, 하늘나라의 시민 의식을 더욱 고취시키며 살아 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려주셔서 위로와 힘을 주네요.

  • 작성자 24.05.17 11:07

    네, 공감합니다.

    완전성화를 강조하는 교파나 교회는 행위구원론으로 가고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단은 도덕률폐기론으로 갑니다. 이 두 극단을 회피하고 균형을 잡는 것이 개혁주의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24.05.17 11:58

    좋은 내용의 댓글에 매우 공감합니다.

  • 24.05.18 06:24

    @장코뱅 공감합니다22

  • 24.05.17 12:10

    중생했지만 죄성이 남아있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믿던 신실한 목사에게 몸과 마음과 돈을 뺏기는 순진한 교인들이 있습니다. 위 도르트 신조의 해설 내용을 읽으면 죄성 있는 교인을 전적으로 신뢰하면 아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작성자 24.05.17 21:31

    좋은 분볗이십니다. 공감합니다.

  • 24.05.18 06:25

    매우 공감합니다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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