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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장 영원한 것을 소유하라
Ⅰ. 멍에 아래 있는 종들1~2
A . 믿는 종들이 주인을 대하는 태도(1)
<1무릇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멍애 아래 있는 종들>이란 자유가 완전히 박탈되어 주인의 권위아래서 생활해야 만 했던 당시 로마시대 노예들을 가리고 이는 것입니다. 여기서 <멍애>라고 하는 것은 어떤 물건들을 끌기 위한 기구로서 짐승의 목에 메어 끄는 기구를 말합니다. 당시의 노예들이 어떤 취급을 받고 있었는지는 지래 짐작케 하는 단어입니다. <멍애>란 자유가 없이 속박당한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당시에 로마제국은 타국과 전쟁에서 승리를 거둠으로 식민지화와 노예들을 확보 할 수 있었는데 당시에 대부분의 노예가 되는 예는 남의 돈을 빌렸다가 갚지 못하므로 자신을 저당 잡혀 노예 신분이 되거나 또한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가 노예 가 된 사람들 이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예 신분이 된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고 자연히 노예 신분에 있는 자들은 자유를 누리게 되었고 그들 중에는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여 주인을 대할 때 경거망동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애 대해 바울은 아직까지 멍에아래 있는 종들에게 참 자유가 무엇인지 설명하면서 그들에게 교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B . 믿는 상전이 있는 종들이 지켜야 할 도리(2)
<2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경히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니라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
멍에아래 있는 종들은 자기가 섬기고 있는 주인이 복음을 먼저 받아들이고 , 그 다음 종들이 복음을 받아 주인이 종들을 형제자매 같이 따뜻하게 대한다 할지라도 종은 자기 위치를 망각하여 주인을 대할 때 자신과 같은 신앙인이라 하여 존경심을 잊은 채 경거망동하지 말고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아야 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이 어떤 위치에 있던지 자기의 위치를 벗어나지 말고 자기의 위치를 더 성실하게 지키는 것이 믿음의 도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공경한다>는 말은 종이 주인을 위해 헌신하고 주인의 말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 합니다.
이 것이 섬기는 자의 위치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질서인 것입니다.
Ⅱ . 이단에 대한 경고 3~5
A . 교회 안에 들어온 다른 교훈(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본문에서는 <바른 말>과 <다른 교훈>이라는 대조적인 단어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바른 말>이란 뜻은 본 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다른 교훈에 착념치 말고 하나님 말씀에만 착념 하라는 뜻입니다.
“착념”이란 허탄한 생각을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유익을 주지만 <다른 교훈>은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여기에<다른 교훈>란 당시의 헬라 철학자들의 사상을 가리키는데 당시의 철하자들은 자기의 사상을 남들에게 주입시키는데만 열심을 가지고 있었지 자기 자신들은 그 깨닫는 바를 실천하는데 등한시 하였습니다. 당시에 교회 안에 이러한 헬라철학자들과 유사한 자들이 나타났는데 이들은 영지주의 이단에 물든 자들로 이단 사상가지고 교회에 가만히 들어와 교회안 그들의 사상을 퍼뜨려 혼란에 빠뜨리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러한 잘못된 사상에 성도들이 착념치 못하도록 그들을 일깨우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A . 다른 교훈을 묘사한 단어들 (4~5)
<4저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5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사도 바울은 교회 안에 잘못된 사상을 가지고 들어와 퍼뜨리는 자들을 향해 교만한 자들이라고 힐책하고 있습니다.
왜 그들을 교만한 자들이라고 했을까요?
그 것은 경건에 대한 교훈 즉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교회 안에 이단 사상을 퍼뜨리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진리와 비 진리에 대해 분별력이 없기 때문에 자기의 잘못된 사상을 따라 행동함으로 그들을 교만한 자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사상을 주입시키기 위해 언쟁을 좋아 하여 투기와 분쟁을 일으켜 진리를 훼방하는 자들입니다.
전통사본에는 오늘 본문 5절 끝에<너는 그런 자들로부터 떠나라>는 말씀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성도들의 교제의 문제는 아주 중요합니다. 악은 교제를 통해 누룩처럼 번지는 성질이 있습니다.
악을 용인하고 악한 자들과 자주 교제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악에 물들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른 교훈을 저버리고 불경건하고 교만하고 땅에 것을 탐하는 자들과 교제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들과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멀리하는 자들과 멀리하는 것이 지혜인 성도입니다. 악인은 우리의 전도의 대상이지 교제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Ⅲ. 지족하는 마음 6~8
A . 지족의 단어의 의미(6)
<6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지족>이라고 하는 단어는 [헬.αὐταρκεία 아우탈리케이아]라고 하는 단어로 그 뜻은 “완전한 자족”을 가리키는데 물질적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자기의 처지와 형편에 감사하며 만족 해 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지족이라고 하는 이 단어는 이단 사상을 가진 자들이 물질에서 만족을 구하는 사상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가운데서 얻어지는 경건한 마음을 통해서만이 얻어지는 만족감을 말합니다.
경건한 마음이란 세상적인 물질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떨쳐 버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자들에게 오는 마음입니다.
한 끼의 끼니를 위해 무엇을 먹을 까 무엇을 입을 까 염려하지 말고 경건한 믿음의 생활을 하는 자들이 구할 것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들에게 모든 것을 더해 주신하고 하였습니다. [마6:31,33]
지족하는 마음이 주는 경건의 유익은 세상의 물질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들이 얻게 되는 유익을 말하는데 이 유익은 물질적인 부요 보다 영적인 부요함이 더 큰 것입니다.
그 것은 인간의 행복이 물질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만을 바라는 경건한 성도에게 이 세상에서 의식주의 필요를 공급해 주시고 영생의 나라에 넉넉히 들어감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B . 공수래공수거 (7~8)
<7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8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고사 성어에 “공수래공수거”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빈손으로 왔다가 인간은 빈손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빈손으로 왔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지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알몸으로 태어난 우리가 다시금 하나님 앞에 갈 때 가져갈 것 자기 자신 밖에 없다는 것 말합니다.
바울의 권면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정당한 부의 축적마저 부인해야 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최소한의 먹을 것 입을 것만 취하라는 말이 아니라 위의 것과 아래 것 어느 것이 더 소중하며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생활해야 하는 야에 대한 언급인 것입니다.
성도들은 먹고 입는 것에 대한 관심보다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생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6:25~28]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25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26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골3:2]에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Ⅳ. 부 하려 하는 자들의 위험 9~10
A . 부 하려 하는 자들의 타락 (9)
<9부 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경건하고 지족하는 성도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이 세상에는 부 하려 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탐심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탐심은 무엇을 조금 더 가지려는 마음 , 곧 부해지려는 강열한마음을 말합니다. 이런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정욕>이라는 원어는 [헬 .ἐπιθμία 에피두미아]라고 하는 단어로 “욕망”이라고 하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족한 것을 가지려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이것들은 결국 사람을 파멸케 하는 원인이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려는 욕망은 그 목적이 쾌락에 있습니다.
도에 넘치는 부는 결국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 사람을 완전히 불행하게 만듭니다.
성경에는 부자에 대한 경계가 여러 곳에 기록 되어 있습니다.
[마19:23~24]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인데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 우니라 >라고 하였고 야고보는 [약5:1~6]의 말씀에서는 <1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2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3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4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5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6너희가 옳은 자를 정죄하였도다 또 죽였도다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 하였느니라> 불의 한 재물에 대해 공고하고 있습니다.
A . 악의 근원 (10)
<10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원문에는 본절 초두에 <왜냐하면>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왜 부 하려 하는 자들이 파멸케 되는가?
그 이유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일만 악>이라는 원어는 “모든 악”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회의 나쁜 사건들은 모두가 돈 때문에 벌어지기 때문에 돈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도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는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약1:15] 공직자 부정부패도 , 청소년 윤락행위도 , 어린 소녀의 유괴와 살해사건도 다 돈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특히 성도가 돈을 사랑하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찌르게 된다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탐심과 믿음은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탐심은 우상숭배이기 때문에 참된 믿음과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마6:24]을 보게 되면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돈을 사랑하면 물질의 노예가 됩니다. 돈을 사랑하면 돈이 우상이 됩니다.
오늘 본문은 두 가지로 인간의 행복의 조건으로 두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참된 경건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나의 현실에서 지족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 두 번째 물질에 노예가 되면 사람이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니라 타락하게 만들고 멸망으로 이끈 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신앙 안에서 지족하는 마음을 가지고 늘 감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살전5:18]에 <18절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Ⅴ . 하나님 사람의 임무 11~12
A . 이것을 피하라 (11a)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구약에는 제사장 선지자 사사와 같은 자들은 하나님이 세운 특별 사람들입니다. 신약에서는 보편적으로 성도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호칭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세상에서 택함을 받은 특별한 사람입니다.
성도들에 무엇을 피하라고 하였습니까?
4절~10절에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과 탐욕”등을 피하라고 하였습니다.
왜! 이런 것들은 신앙 성장을 가로막고 우리를 믿음에서 떠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피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B . 좇으라. (11b)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본 절에서는 성도들이 좇아야 할 것 즉 성도들이 지켜야 할 것 다섯 가지 덕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입니다.
첫째 덕목인 의라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가 성도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벧전2: 24]을 보게 되면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집자가의 영향력은 성도들이 십자가의 공로를 힘입어 의롭게 된 것을 가리킵니다.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 의인이 되었으므로 범사에 의롭게 살아가도록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의(義)에 반대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의에 반대되는 것은 바로 죄(罪) 입니다. 성도는 모든 죄를 버리고 자신을 하나님 앞에 의의 도구로 쓰임 받도록 힘써야 합니다. 이제는 죄인으로 살아온 것은 과거의 삶입니다.
성도들은 현재와 미래에는 의만을 위하고 의롭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성도의 생활입니다.
성도들이 좇아야 할 두 번째 덕목은 경건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지난 과거와는 달리 ,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를 두려워하며 그를 섬기며 그에게만 순종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믿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을 뿐만 아니라, 또한 성경에 계시된 그의 모든 진리 즉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고 듣고 묵상함으로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롬14:23] 하 반절에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경건은 바로 믿음의 표현입니다.
성도들이 좇아야 할 세 번째 덕목은 무엇입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 주신 새 계명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 계명은 그 내용이 무엇일까요?
[요13:34]에<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성도에게 있어서 최고의 덕목입니다.
[고전13:13]에 <그런즉 믿음 , 소망 ,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신앙을 나무에 비유한다면 믿음은 나무의 뿌리에 속하며 , 사랑은 나무에서 핀 꽃과 열매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하나님을 사랑함과 형제 사랑함이 없다면 우리는 참된 성도가 아닙니다.
성도들이 좇아야 할 네 번째 덕목은 인내 입니다.
인내란 불행과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변함없는 경건한 믿음을 가리킵니다.
환란과 연관하여 야고보는 [약1:4]에서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라고 하였습니다.
다음은 구원과 연관지어 [마24:13]에서 예수님은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들은 어떠한 환란 중에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고 끝까지 인내하여야 합니다.
성도들이 좇아야 할 다섯 번째 덕목은 온유 입니다.
온유와 겸손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마11:29] 상 반절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라고 하였습니다. 온유한 마음은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을 말합니다.
성도들이 꼭 지녀야 할 마음입니다. 요사이 신문 상에 영성운동이라고 하는 말을 많이 쓰는데 은사자라고 하는 자들이 알지도 못하고 지껄이는 말들입니다. 영성이란 예수님의 마음 즉 성품을 말하는 것으로 성도들이 지녀야 성품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영성운동은 예수님 닮기 운동이 되어야 합니다.
C .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12a)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
이 세상은 영적인 전쟁터와 같고 , 성도의 신앙생활은 영적인 전쟁과 같습니다.
[엡 6:12]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의 믿음을 없애거나 약화 시키려는 세력들 뒤에는 악한 사단의 세력들이 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하와에게 접근하여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케 만들었던 그 사탄은 오늘날도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신앙을 심어주기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엡6:11]에 <11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그 것은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입니다.
영생이란 선한 싸움을 싸운 결과로서 얻어 지게 되는 상급입니다.
영적인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 성도에게는 영생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값진 것은 권세나 명예나 돈 또한 건강이 아니라 인간이 이 땅에서 인간이 소유 할 수 있는 것 보다 더 귀한 내세에 대한 확실한 소망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영생을 위하여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요구를 지금 이 시간에 나와 여러분에 적용 하여야 마땅할 것입니다.
Ⅵ . 예수 그리스도 앞에 한 명령 13~16
A . 명령 (13~14)
<13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14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사도바울은 하나님 앞과 그리스도 앞에서 디모데에게 명한 것이 무엇입니까?
위에서 언급한 11절~12절의 다섯 가지 명령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것들을 지킬 때에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이 없는 성도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피할 것을 피하고 좇을 것을 좇으며 싸울 것을 싸우고 취할 것을 취하라는 것입니다.
이것들 중 어느 하나도 중단하거나 대충 대충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피해야 할 돈에 대한 사랑은 반드시 피해야 하고 , 좇아야 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는 반드시 좇아야 하는 것이며 , 싸워야 할 믿음의 싸움은 반드시 싸워 영생을 취해야 한다는 것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표에서 마지막 대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 주로 강림하시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끝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몇 가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B . 하나님에 대한 증거 (15~16)
<15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16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
첫째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시고 능하신 자 이십니다. <능하신 자>란 원어의 의미로는 "주권자"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에 유일하신 주권자 이십니다.
그는 지혜와 능력이 무한하신 탁월하신 주권자이신 것입니다. 그는 실로<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오직 하나님께만 죽지 아니함이 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 되시며 영생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하나님만이 모든 만물의 생탈 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누구에 의하여 생명을 얻으신 분이 아니시고 스스로 계신 분이십니다.
[출 3:14]에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 하십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여호와 그분의 이름은 그가 스스로 계심을 나타내는 호칭입니다.
우주 속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하나님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습니다. 그는 살아계시고 영원히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인생들이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십니다.
그것이 그의 거룩하심이며 그의 영광 즉 빛이십니다. 그는 인생이 거하는 이 세상과는 질적으로 다른 분이십니다.
그는 이 피조 세계를 초월하여 저 높이 빛 가운데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빛은 또한 그의 도덕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는 도덕적으로도 무한히 거룩하시고 의로우시며 선하시며 진실하신 하나님, 곧 도덕적으로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넷째 하나님은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으신 분이 십니다.
예수님이 말씀 하신대로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이 세상에서 기체 외에 물질적인 것들은 육신의 눈으로 다 볼 수 있습니다. 영은 다릅니다. 영은 물질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비물질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은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가지고 있는 인격체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영이십니다. 그러나 그는 무한하시고 완전한 영이십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이 인생들에게 복이요 생명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에 유일하신 주권자이십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죽지 아니함이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십니다.
그는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도 없으신 분이십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이렇게 증거 한 후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리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요약하면 , 유일하신 주권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다시 나타내실 것인데 , 그때까지 하나님의 사람들 곧 주의 종들과 모든 성도들은 성실하게, 온전하게 피할 것을 피하고 좇을 것을 좇고 싸울 것을 싸우고 취할 것을 취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Ⅶ. 부자들에 주는 교훈17~19
당시 디모데가 목회를 하고 있는 지역인 아시아 주의 수도인 에베소는 상업이 융성한 도시로서 부자가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도 부유한 신자들이 많이 섞여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디모데를 통하여 교회 안에 <이 세대에 부한 자들>에 대한 신앙인에 대한 교훈 하고 있습니다.
A . 부자가 해서는 안 될 두 가지(17)
첫째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헬,ὑψηλοφρονέω 휩셀롭흐네오]라고 하는 단어로 “높은 생각을 갖지 말라”라는 뜻입니다.
재물이 많으면 생각과 마음이 높아지기 쉽습니다.
[신8:12~14]에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높아진다.” 고 하는 것은 교만한 생각을 말합니다.
재물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그러나 분에 넘치는 재물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듭니다.
이 사회는 물질이 부요한 사람을 인생에 있어 흔히 성공한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신자의 생각입니다.
그 부라고 하는 것은 잠간일 뿐입니다.
[약1:10~11]에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돈에 자기 인생을 건 사람은 결국 어떻게 될까요?
[잠18:12] 에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잠30:8~9]에 기록한 말씀과 같이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 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 함이니이다>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재물을 좋아 하는 사람은 이 재물이 자 인생에 있어서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부자가 되면 교만하기 쉽기 때문이지요.
두 번째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정함이 없는>이라고 하는 원어는[헬.ἀδηλοʹτητι 아데로테티] 라고 하는 단어로 “불확실 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재물이 불확실 할까요?
잠언서 기자는 [잠23:5]에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고 하였습니다. 재물이란 한번 재앙을 만나게 되면 날개가 달린 듯 흔적도 없이 날아가는 것입니다.
B . 부자가 꼭 해야 할 세 가지 (17~18)
첫째 부자가 해야 할 것은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라>고 하였습니다.
전통 사본에는 <하나님께>라는 말에 <살아계신>이라는 말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생명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가지지 말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모든 것> 속에 영적인 것 육적인 것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편기자는 [시 23:1]에서<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약1:5]에서 야고보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 해야 할 것은 <18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라>고 하였습니다.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은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일 것입니다.
선행은 우리를 거듭나게 한 목적이라고 하였습니다.
[엡2:10]에서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고, [딛2:14]에서는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救贖)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선한일이나 선한 사업은 같은 의미를 가진 말인데 전자는 일반적인 선행을 말하는 것이고 후자는 구체적인 선행을 말하는 것입니다. <선한 사업에 부하라>고하였습니다.
그러면 선한 사업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19:17]에서 예수님은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온전한 분은 하나님 한분뿐이십니다. 그러기에 선한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선한 사업은 첫째 복음사업입니다. 복음사업은 생명을 살리는 사업이요 운동인 것입니다.
또한 선한 사업은 또한 물질적으로 어려운 이웃들을 돌아보는 것 또한 선한 사업에 포함 됩니다.
예수님은 믿는 어린 소자(小子) 한 사람에게 선을 베푼 것이 곧 당신께 베푼 것이라고 고 [마25:40]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해야 할 것은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성도의 교제를 말하는 것인데 전자는 가난한 이웃에게 재물을 나누어 주되 억지나 인색함으로 하지 말고 즐거움으로 하라는 것이며 후자인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는 것은 단순히 재물만 나누어 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교제를 나누라는 것입니다.
[시37:25~26]에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라고 하였고 [잠21:26]에서는 <어떤 자는 종일토록 탐하기만 하나 의인은 아끼지 아니하고 구제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잠11:24~25]에서는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를 통해 주신 말씀을 그리스도인 부자들이 지키게 되면 <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앞 절에서 말씀한 선행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좋은 터>란 “저축” 혹은 “보화”란 뜻이며 또한 “장래”란 “장차”올 세상 곧 예수님의 재림으로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 자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선한 사업에 힘쓰는 그리스도인들은 장차 오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참 생명을 상급으로 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막10:21]에서<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고 하였습니다.
[잠19:17] 에<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선한 사업은 선한 일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되면 물질은 줄 어 들지 몰라도 우리의 마음은 더욱 더 부요하게 될 것입니다.
Ⅷ. 부탁한 것을 지키고 피하라. 20~21
A . 지켜야 할 것과 피할 것 (20)
<20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
여기서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부탁한 것은 디모데 서신서 에서 교훈으로 준 내용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우리에게 당신의 말씀을 지키는 것을 원하십니다.
보수신앙의 원천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그대로 지키는 것이 보수 신앙입니다.
이 세상에는 , 기독교 안에 거짓지식이 많이 섞여 있습니다. 그것을 지식이라고 불리지만 사실 참된 지식이 아닙니다. 초대교회 안에 독버섯처럼 자리 잡고 있던 영지주의 사상과 같이 거짓된 교리들이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참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 ,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지식 ,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는 지식 이것들이 참된 지식 인 것입니다.
잠언서 기자는 [잠1:7]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잠9:10]에서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과 상관없는 지식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지식은 망령되고 헛된 말과 변론을 일으키는 지식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말과 변론을 피해야 하는 것입니다.
B . 거짓된 교훈의 좇는 결과 (21)
< 21 이것을 좇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 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 지어다>
거짓 된 교훈은 믿음을 벗어난 교훈을 말합니다.
여기서 <좇는>이라고 하는 원어의 의미는 “공헌하는 고백”이란 뜻으로 교회 안에서 잘못된 지식을 좇는 공언(公言)을 말하는데 이 말의 뜻은 “여러 사람 앞에 명백하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 안에 거짓교리를 공개적으로 말하는 자들이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이단들이 있고 가라지들 즉 쭉정이들이 섞여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탄의 활동을 생각하면 그것이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가라지와 쭉정이와 이단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아니고 사탄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바로 이런 자들은 참된 믿음에서 이탈된 자들입니다. 성도들은 이런 자들을 용서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바른 말씀 분별하고 그 안에 거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대로 믿고 행하는 보수적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면서 마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을 세부적으로 부자들에게 대한 다섯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마음을 높이지 말라> 두 번째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 세 번째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는 것 네 번째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일을 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라> 다섯 번째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또한 본문은 우리 모두에게 거짓된 지식과 헛된 변론을 피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을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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