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닝>은 공포라는 특정 장르를 넘어 작품적으로도 거의 ‘완벽’에 가까운 영화다. 좀 길다는 것 빼고는. 스티븐 킹의 원작소설을 영화로 옮긴 이 작품은 스탠리 큐브릭의 자신감으로 가득한 작품이기도 하다. 사실 <샤이닝>은 한 줄의 줄거리로 설명하기 어려운 해석에 있어 의견이 분분한 영화다. 어떻게 보면 어렵다고도 할 수 있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도 할 수 있다. 아빠가 나머지 가족들을 다 죽이려 하지만 왜 그런지 직접적인 이유도 분명히 나와 있지 않다.(우리나라 관객들은 아주 ‘분명한 걸’ 좋아하지 않는가) 그렇다고 막연히 그 이유를 ‘폐쇄증후군’식으로 이야기하기에도 뭔가 어색하다. 확실한 건 ‘아빠가 가족들을 죽이려 한다’는 것과 ‘어린 아들이 혼령에 쓰인 듯 뭔가 이상하다’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가족들이 머물게 된 호텔이 ‘이상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소설로는 매우 재밌지만(소설은 강추 한다. 사실 <샤이닝> 원작소설은 스티븐 킹이 글이 안 써지는 자신의 처지를 모티브로 쓴 것으로 작가의 고뇌를 스티븐 킹 특유의 ‘분위기’로 멋들어지게 꾸며냈다.) 자칫 영화로 잘못 옮길 경우 실패할 확률이 큰 이야기를 큐브릭은 아주 ‘능란하게’ 반죽을 하는데 성공했다. 처음 타이틀이 등장하면서 나오는 ‘차 안 씬’이 대표적이라 하겠다. 조용히 집중하며 글을 쓰기에 좋은 ‘조용한’ 호텔에 관리인으로 머물기 위해 먼 길을 차를 타며 향하는 세 가족의 모습을 무미건조하게 보여주는 이 씬은 가족들의 관계와 인물들의 성격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 자체로 이 영화의 앞으로의 전개방향과 성격을 모두 대리설명해 주고 있다. 난 이 첫 씬 하나만으로도 오싹함을 경험할 수 있었다. 존 보이트가 출세를 위해 촌 동네에서 뉴욕 대도시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의 ‘길고 긴’ 씬이 돋보이는 <미드나잇 카우보이>와 함께 영화 시작과 함께 차 안에서의 긴 씬을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차 안에서 가족들 간의 여행이라는 ‘재미없는’ 스케치샷치고는 꽤 긴 시간을 할애하는데 그 동안 나오는 대사라고는 어린아들이 엄마한테 칭얼거리고 몇 마디 부부간에 대화를 ‘툭툭’ 주고 받는 게 다다. 그 외에는 잭 니콜슨이 운전하는 차가 국도(?)위를 달리는 모습만이 헬기촬영으로 위에서 아주 작게 보여진다. 이런 도입장면이 큐브릭의 ‘재치’라고 생각한다. 사실 모든 공포영화에서 초반에 ‘어디를 향해’ 가는 모습은 필수적으로 나온다. 이는 주인공들과 함께 관객에게도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불안감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큐브릭은 이 도입부분에서 ‘공포영화’의 클리셰를 피하면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헬기로 찍은 부감샷으로는 작은 잭 니콜슨 가족들의 차와 함께 주변의 광활한 수풀림과 높디높은 산들같은 ‘거대한 자연’들이 보여진다. 언뜻 여행사 홍보영상 같이도 보이는 이 모습에서 관객들이 놀라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편안함을 느끼지도 않는다. 큐브릭은 이 ‘거대한 자연’을 반복해서 ‘크게 잘라’ 보여줌으로써 그 크기에 눌리는 경험을 선사한다. 자연의 크기에 눌리면 잠시 후에 ‘이들의 여행이 휴식을 취하는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겠다는 걸 직감하게 된다. 그랜드캐넌은 지켜보는 것으로 놀랍고 흥분되는 ‘관광’의 경험이지만 그 안에 갇힐 경우 그건 ‘생존’을 해야 하는 ‘공포’스러운 경험이 된다. 큐브릭은 말 없고 건조한 차 안장면과 더불어 이 ‘거대한 자연’을 보여주는 전략으로 관객으로 하여금 ‘새로운 긴장감’을 느끼게 함과 동시에 영화가 ‘초자연적인’ 공포를 다루게 됨을 은연중에 암시하는 것이다. ‘완벽주의자’ 큐브릭이 생전에 왜 그리 ‘자신감’으로 가득 찼었는지를 알 수 있는 영화의 도입장면이다. <샤이닝>은 그 시작만으로도 ‘처음 느끼는 알 수 없는 공포’를 완벽히 느끼게 하는 영화다. 조금 길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