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상
「섶다리」 외 2편
반연숙
섶다리 / 반연숙
강나루터 예닐곱 울누이가 건너간 길
주천 오일장 강물굽은 물길따라
마음굽이 산길따라
청솔 다릿목 아래 물볕의 은빛 그리움 뉘여와
아오라지 물목 세월의 강
내 아버지가 회돌아 오신
군둥치 아리랑 고갯길의 생
한탄강 주상절리의 아홉구절 화첩 풍광이
예 고석정 꽃물 흘러든 학 여울목에 닿아
화적연 못이박힌 샛강 어디즘
이녁
징검징검 에돌아 온 어머니의 아라리 삶이 놓여있다
거기
옹이진 암각 석화石花에 시붉은 그리움
풍화의 연흔 전설 속
쥐라기 생흔이 억겁의 비상을 꿈꾸어낸다
활화산 / 반연숙
백두산정 억겁의 고요
소멸된 천년의 그리움 뉘일 곳 없어
성난 혼 끓는 가슴 달래어가듯
제 뿌리 내리어 아득인 본향에 닿으리
호로고루성 혼불이 천 리 강물로 에돌아와
편 기왓장 잿빛 사연 잊힌 듯
푸른 이끼 잔재로 남아 박제되어 뒹군다
응얼진 등걸의 세월이고
다시 물이 되어 흐르리
그녁의 님이여
두 동강 허리 잇대어 궤어낸
일심으로 망향가를 부르리
화심
휴화산 불성 오르지 못한 수직의 꿈
그날에
한라 천지 못 자맥질 물길 내어
평화의 상선약수로 흐르리라
누름돌 / 반연숙
질항아리 오짓 물빛에 곰삭은 장맛
또아리튼 세월 속에 허연 소금꽃이 피었다
살강 위 수북이 쟁여둔 그리움 뉘여와
마음의 처소를 단장하며
찔레꽃으로 피어난 모정
문틈 새 울 엄니 살뜰인 혜안의 생이 놓여있다
선홍빛 배롱나무 꽃숭어리 화알핀 촉수가
목울대 드리워 매달려있다
빨래터에서 품어온 몽돌들이 돌무덤 되어
백일홍 꽃대와 나란여낸 어머니의 심향
심연의 열꽃
붉은 단심
억장을 다독여 누름돌 조근히 눌러내 오셨을 당신
■ 제3회 한탄강문학상 심사평
시인-작품-독자 간의 소통을 중요시하는 문학 현상론적 관점에서 비중을 두고 심사
2023년 제3회 한탄강문학상 응모작 중 최종심에 오른 것은 25인의 작품 101편이었다. 한탄강을 중심으로 한 연천군의 명소와 군사 분계선 등을 소재로 한 시와 시조다. 심사기준은 시인-작품-독자 간의 소통을 중요시하는 문학 현상론적 관점에 비중을 두었다. 이에 따른 현대적 감수성, 주제의 초점화와 시상 전개의 통일성, 현대 미학적 ‘보여주기’ 화법, 어조(톤), 율격 ․ 표상 ․ 의미의 조화 문제 등 세부 척도가 동원되었다.
고심 끝에 선정된 대상 수상작 반연숙의 시「섶다리」는 심사기준을 최우선적으로 통과한 작품이다. 이 시에서 어린 누이, 아버지, 어머니가 건너온 섶다리는 한 가족 사이면서도 한탄강과 함께 흘러온 우리 민족의 애환이 서린 역사다. 아스라이 거슬러 간 억겁의 시간대에서 쥐라기의 생혼에까지 접맥되는 그리움까지 환기한다. 모국어를 절차탁마하는 노력도 감동적이다. 독자들에게 좋이 읽힐 작품이다.
금상 수상작 진순분 시조「재인폭포에 들다」는 우리 정형시만의 특성인 음절 수의 유연성과 완급률의 조절 능력을 십분 발휘한 시조다. 시조에서는 희귀한 역동적인 이미지가 느즈러졌던 감성의 G현을 화들짝 일깨운다. 주제의 초점화와 전개의 통일성이 돋보인다.
은상 수상작 최형만의 시「여기 한탄강에서 듣는다」는 현대적 감수성, 가붓한 상징, 주지적 표상화 기법, 잔잔한 어조가 주목을 끈다. 현대시적 창작 기량은 탁월하나, 추상성에 기울어 독자를 잃을 위기 징후를 보인다. 애석하게 으뜸상, 버금상을 놓쳤다. 김종길의 시「님 계신 곳을 바라보며 서럽게 울다」는 제목이 길고 원색적이며 진부한 것, 감각적 표상성이 아닌 ‘들려주기’ 화법으로 일관한 것은 근대시적 퇴행성의 증거다. 유려한 리듬에 실려 흐르는 결곡한 서정은 감동 소통의 절정을 가늠한다. 수상작에 오른 이유다.
동상 수상작 김용의의 「재인폭포」는 폭포에 담긴 전설을 바탕으로 통곡에서 마그마처럼 내뿜는 사랑으로, 울부짖는 소리로 형상화하면서 가만가만한 어조가 마음 선을 켕긴다. 또한 김봉임의「통일전망대에서」는 국토 분단의 아픔과 좌표를 몰라 방황하는 애타는 심경을 알차게 실은 3연 시조다.
휴전선을 가로지르는 한탄강은 민족 비탄의 기막힌 물길이다. 선사시대의 유적이며 창칼이 부딪치고 포탄이 불을 뿜은 역사의 교차지이기도 하다. 이런 현장을 소재로 한 창작품에는 보다 충전도 높은 언어와 치열한 예술 정신이 요청된다. 뜨뜻미지근한 작품들로는 무심하기 짝이 없는 독자들을 감동시킬 수 없다.
이 소중한 한탄강문학상을 제정 ․ 운영하시는 종자와시인박물관 신광순 관장님과 연천군 관계 인사 제위께 찬사를 올린다. 진심이다.
- 심사위원장 김봉군(문학평론가, 시조시인, 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