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그간 별고없이 잘 지내시죠? 저도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답니다.
어머니 지난 금요일, 괜스레 마음이 울적하기에 용기를 내어 오륙도행 버스에 올랐더랍니다. 오륙도 하면 먼저 스카이 워크를 생각하게 되는데, 연장 공사를 하느라 내년 초에 개방을 한답니다. 좀 아쉽긴 하였으나, 이왕 용기를 낸 김에 옆에 있는 동산을 오르기로 마음먹고 급 경사로 이루어진 황토길에 발을 들여놓았답니다.
경사가 좀 심하다 싶어 조심스레 한 발 한 발 올려놓아 보았답니다. 가다 쉬다를 계속하여 올라가니 또 조금위로 나무계단이 있지 않겠습니까. 어찌하나 고심하다 용기를 내어 나무계단에 발을 올려놓았습니다. 연못 주위를 돌아 억새를 본다음 집으로 오기 위해 내리막을 조심스레 밟았답니다. 그런데, 다 왔나 싶었는데, 또 내리막이 어어져 있었어요. 돌 계단이었답니다. 세어보진 않았으나 제 짐작으로 사, 오십계단은 되어보였습니다.
제가 다리가 좋지못한 지라 내리막 계단은 저에게 치명적입니다. 계단 에 서서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던 스물 서넛되어 보이는 아가씨가 저와 눈이 마주치자 웃어보였답니다. 저도 마주,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용기를 내어 한 계단을 내려갔어요. 그런데 그곳에는 난간이 설치되어 있지않아서 저 처럼 다리가 성치 못한 사람들은 내려 가기가, 아니 내려 갈 수가 없게 되어 있었어요. 겨우 한계단 내려가서 머물러 서서 계단을 내려다 보며 한숨을 쉬고 있을때, 사진을 찍고 있던 아가씨가 내 옆으로 오더니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속으로 참 잘 웃는 아가씨로구나'하고 마주 웃어 주었답니다. 그러자 아가씨가 팔을 나에게 쑥 내밀었답니다. 잠시 머뭇거리다 나도 평소에 알기라도 하듯 그 아가씨의 팔을 잡았습니다. 그러자 아가씨는 한 걸음 계단밑으로 내려가더니 또 나를 보고 웃었답니다. 저도 서스름 없이 아가씨의 팔을 잡고 한 계단 내려갔습니다.
이렇게 반복된 행동으로 아가씨는 나에게 팔을 맡긴채 계단 끝까지 나를 도와 주었답니다. 가는내내 아가씨는 한 번도 말을 하지 않고 미소만 보였답니다. 다 내려 간 다음, 덕분에 잘 내려올 수 있어 고마웠다는 말과 함께 '복많이 받으세요' 하고 덕담을 하고는 헤여저, 나는 집으로 오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집으로 오는 내내 궁금한게 많았습니다. 그 아가씨는 왜 한 마디 말이 없었을까? 그제야 생각해 보니 아가씨의 얼굴이 떠오르며 '아 외국인 이구나' 베트남 계열 같았음을 깨우쳤답니다. 아마 한국에 온지 오래돼지 않아서 우리말이 서툰 아가씨였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답니다. 진작 그걸 깨달았으면 서툰 영어지만, 'Where are you from, Miss? ' 하고 물어보았을걸, 'Thank You' 하고 인사해 줄걸, 못내 아쉬웠습니다.
집에 도착하여 내내 그 아가씨의 미소가 제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답니다. 그녀가 내민 팔뚝에서 내 심장속까지 감사한 마음이 스며들었답니다. 이 일은 제가 삶의 마지막 날이 와도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전혀 일면식도 없는 노인에게 그런 친절을 배풀어줄 젊은이가 몇이나 있겠습니까. 너무나 깊은 감동을 주었기에 눈물이 고였답니다.
이런건 한국의 젊은이 들이 본받아야 할 일인듯 합니다. 그리고 그 아가씨는 노인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답니다. 간혹 도움을 주는 분 들을 만나도 자신이 노인의 팔이나 손을 잡고 리드를 하는데 그 아가씨는 자신의 팔을 마꼈습니다. 성한 사람이 불편한 사람을 자신이 잡고 걸어가면 따라가기에 무척 힘이들고 오히려 혼자 가는것만 못한때가 있지요. 그 아가씨는 나로하여 자신의 팔을 잡게 하고, 자신이 한 계단 밑에서 내가 내려갈 수 있도록 무언의 도움을 주었답니다. 그 아가씨는 자신의 팔로 나의 지팡이 역활을 하였답니다.
어머니! 제가 오늘은 말이 좀 길었습니다. 꼭 그 아가씨를 다시 만나 고마움을 한번 더 전하고 싶답니다. 혹시나 하여 오륙도에 다시 가 볼까 합니다.
어머니, 오늘은 날씨가 제법 쌀쌀해 졌습니다. 계신곳도 사계절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감기 드시지 않게 조심하세요. 다시 만날 때 까지 편히 쉬십시요, 저도 조심조심 어머니 께서 걱정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ㅡ 어머니의 딸 자야가
첫댓글 아름다운이야기입니다.
꼭 그 아가씨를 다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게요. 그 아가씨를 한 번 더 만나기를 기도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