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
카이퍼에 따르면, “악당을 타도하라”는 볼테르(Voltaire)의 광적인 외침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현대주의의 슬로건이다. 프랑스 혁명의 원리는 모든 신적 권위로부터 해방된 인간의 자유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신성모독을 자행한다. 카이퍼는 자연인의 이성을 앞세워 기독교를 대적하는 현대주의적 세계관에 대항하여, 기독교적 정체성을 상실한 이들에게 참된 기독교적 세계관의 필요와 당위를 역설했다. 기독교는 그리스도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반면, “성숙한 형태의 불신앙”을 보여주는프랑스 혁명은 사회주의(socialism)나 다름 아니며, 따라서 그리스도의 사역에 반대되는 것이다.
칼빈주의 세계관의 정당성의 토대를 놓기 위해, 카이퍼는 칼빈주의의 정의를 유기적 관점에서 설명하며 시작한다. 칼빈주의는 분파, 고백, 교단이라는 협소한 의미로 여겨질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학문적 관점에서 역사적, 철학적, 정치적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비록 역사, 철학, 정치라는 세 가지 의미가 상호 구분 되나, 포괄적인 삶의 체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모두 역사적 의미를 내포한다. 이를 통해 칼빈주의적 요소를 지닌 교회들은 비록 중심과 주변으로 구분될지라도, 나뉘지 않으며, 모두 칼빈주의적 세계관 내에 자신의 위치를 확보한다.
세계관을 이루는 필수적 3 요소는 하나님, 인간, 세계이다. 이 3 요소는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는데, 왜냐하면 무한자 이신 하나님은 인간과 세계를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세계관의 출발점이 피조의 세계를 넘어 계신 하나님이실 때에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간 생활의 형식, 즉 포괄적인 삶의 체계가 파생된다. 오직 하나님이라는 출발점으로부터만,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 관계의 다양성은 자신의 위치에 대한 권리를 되찾고 노예제도, 귀족주의, 무차별주의에 빠지지 않으며 하나님 앞에서의 동등성이라는 권리를 주장하고 회복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세계는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 있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일반 은혜와 섭리 속에 자신의 삶을 지탱해 나간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칼빈주의 세계관은 이교, 이슬람교, 로마 카톨릭의 세계관들보다,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 세계의 관계를 가장 정당하게 취급한다.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피조물의 관계에 대한 설명에서 발견되는 존재 혹은 보존의 대한 카이퍼의 관심은 그의 일반 은혜 교리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그의 세계관 논의가 계시로서의 인식의 원리보다는 존재와 보존으로서의 세계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세계관의 주제들, 즉 종교, 정치, 문화, 예술, 학문, 미래 등이 상호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는 어떻게 절대자이자 무한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은혜가 저 피조 세계에 이르는지를 더 없이 부요하게 설명한다. 비록 기독교 세계관과 세상의 세계관 사이에 대립이 존재하나, 카이퍼의 칼빈주의적 세계관은 자연을 보다 더 유기적으로 이해함으로써, 어떻게 피조 세계가 은혜의 통치의 영역이 될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카이퍼가 유기적이라는 단어를 바빙크만큼 자주 사용하지는 않지만, 그의 유기적 개념은 그의 글 『칼빈주의 강연』전체에 스며들어 있을 뿐 아니라, 기독교 세계관의 모든 주제들을 통합함으로써, 은혜가 자연을 회복한다는 원리가 그의 사상 근저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류길선, “아브라함 카이퍼의 칼빈주의 세계관: 유기적 관점에서 본 은혜-자연-회복의 관계“, 『개혁논총』. |
첫댓글 위 소논문에서 눈여겨 볼 부분 몇 가지를 댓글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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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신칼빈주의는 하나님의 주권이 온 세상의 모든 영역에 미치고 있으며, 불신자들과 중생한 이들의 사상 사이에 근본적인 대립(antithesis)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운동으로 출범했다. 대표적인 신학자는 아브라함 카이퍼와 헤르만 바빙크이며 이 두 학자의 이름은 그저 개별적인 이름에 지나는 것이 아닌 신칼빈주의의 “상표명”(a brand name)이 되었다.
류길선, “아브라함 카이퍼의 칼빈주의 세계관: 유기적 관점에서 본 은혜-자연-회복의 관계”,『개혁논총』, p.105.
한번 부딪혀서 잘 읽어 보겠습니다. 쉽지는 않겠지만요.
짚어주신 몇 가지라도 잘 보겠습니다.
카이퍼의 칼빈주의가 하나님과 인간과 세상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포괄하는 해석학적 렌즈를 제공했음을 드러내는 것이 본고의 취지다. 본 논문은 카이퍼에게 칼빈주의라는 유기적 세계관은 종교, 정치, 학문, 예술 따위의 주제들을 통합적으로 이해함으로써 은혜-자연-회복의 원리를 드러냄을 증명한다. 필자는 먼저 카이퍼의 칼빈주의의 정의를 살펴보며 시작한다. 그런 다음 세계관으로서의 칼빈주의에 함축된 세 가지 요소, 즉 하나님, 인간, 세계의 관계를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칼빈주의의 주제들인 종교,정치, 학문, 예술의 상호 관계를 드러낼 것이다. 이 작업을 위해, 카이퍼의 『칼빈주의 강연』(Lectures on Calvinism)을 주 자료로 삼고 분석할 것이다.
류길선, “아브라함 카이퍼의 칼빈주의 세계관: 유기적 관점에서 본 은혜-자연-회복의 관계”,『개혁논총』, p.109.
이퍼에게 칼빈주의란 “총체적인 세계관”이며 “종교개혁을 통해 순수하게 정화된 기독교”를 의미한다고 평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카이퍼에게 칼빈주의는 기독교 세계관과 동의어이다. 카이퍼는 그의 『칼빈주의 강연』에서 칼빈주의가 “모든 일반적인 삶의 체계를 지배하는 것”으로서 하나님과 인간의 “직접적인 교제”를 제시하는 세계관이라고 주장한다.
류길선, “아브라함 카이퍼의 칼빈주의 세계관: 유기적 관점에서 본 은혜-자연-회복의 관계”,『개혁논총』, p.110.
아브라함 카이퍼의 칼빈주의의 정의를 살펴보기 전에, ‘칼빈주의’라는 용어가 함축하고 있는 다소 복잡한 사안에 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이는 ‘칼빈주의’가 단어 자체 내에 내포되어 있는 부정적 혹은 긍정적 의미와 모호함으로 인해 오해들을 수반하고, 그 단어에 대한 학자들의 입장이 다양하며, 역사적 관점에서 칼빈주의의 의미를 규명하는 작업이 가진 난해함 때문이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칼빈주의’ 혹은 ‘칼빈주의자’라는 말은 1552년 루터파의 요아킴 베스트팔(Joachim Westphal)이 칼빈의 성찬론을 비판하면서 생겨난 단어이다. 성찬교리를 놓고 발생한 루터파와의 논쟁에서, 칼빈은 ‘칼빈주의자’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이해하고, 자신을 복음주의, 혹은 개혁 신학자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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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게리쉬(Brian Gerrish)에 의하면, 칼빈은 스스로를 “개혁주의자”로 여겼던 반면, “칼빈주의자”로 여기지 않았다.
류길선, “아브라함 카이퍼의 칼빈주의 세계관: 유기적 관점에서 본 은혜-자연-회복의 관계”,『개혁논총』, p.110.
『칼빈주의 강연』의 주제들의 유기적 관계는 주제들의 배치와 내용의 연관성으로부터 분명해진다. 칼빈주의 강연은 총 6회의 강연으로 되어 있으며 순서별 주제는 칼빈주의, 종교, 정치, 학문, 예술, 미래이다. 맨 앞의 칼빈주의는 강연의 주제요 나머지 다섯 개의 주제들은 칼빈주의를 플랫폼으로 하여 순서별로 세워진 주제들이다. 카이퍼는 이러한 주제들을 별도의 주제로 구분하였으나, 이 주제들은 개별 주제들 안에서 상호 연관된다. 엄밀한 의미에서 학문과 예술이라는 주제는 정치라는 영역에 속한다. 또한 칼빈주의의 여섯 번째 강연 주제인 “칼빈주의와 미래”는 독립적인 주제라기보다는 강연의 결론과 칼빈주의의 회복과 발전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다루어진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칼빈주의와 정치’부분을 다룰 때 학문과 예술이라는 주제와의 관련성을 살펴볼 것이며, 미래라는 주제는 다루지 않기로 한다. 그리하여 본 논고의 목적대로, 칼빈주의의 개별적인 주제들이 우연하거나 선별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일종의 유기적 순서를 따라 배열되어 있다는 점을 증명하는데 집중할 것이다.
류길선, “아브라함 카이퍼의 칼빈주의 세계관”,『개혁논총』, p.124.
책 칼빈주의 강연에서 인용을 많이 하셨나 보군요.
카이퍼에게 칼빈주의의 유기적 세계관은 이와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은혜로 시작하여, 그의 피조물 가운데 발생한 문제들을 회복하기 위한 유일한 대안이다. 브렛이 카이퍼의 말을 잘 인용한 것처럼, 카이퍼에게 “전체의 창조는 하나님의 생각, 즉 로고스, 유기적 통일체, 법적 구조의 표현”이다.
류길선, “아브라함 카이퍼의 칼빈주의 세계관: 유기적 관점에서 본 은혜-자연-회복의 관계”,『개혁논총』, p.129.
하나님의 생각이라는 표현이 경이로운 것 같습니다.
카이퍼의 '칼빈주의 강연 6편' 전체를 듣는 것 같은 효과를 주는 좋은 논문 같습니다.
칼빈신학의 특징을 잘 잡아낸 것 같아요. 칼빈의 논점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인간과 세계, 즉 피조물의 정체성과 행복한 관계를 위해서는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의 말씀을 순종해야 한다는 것 같습니다.
유익한 논문 담아두었다가 꺼내서 읽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용이 비교적 건조하고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읽고 공감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장코뱅 저는 이 포스팅이 어려워서 카이퍼 목사님의 다른 글, 하나님께 가까이를 읽어 보았습니다.
카이퍼가 말한 칼빈주의 세계관이 하나님과 인간의 직접적인 교제를 제시하는 세계관으로서 모든 일반적인 삶의 체계를 지배하는 것이라는 설명이 아주 와닿네요. 그만큼 유기적으로 서로가 모든 것들이 계속 연결되어 있다는 건데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정치 종교 학문 예술이 유기적으로 총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죠. 근현대 사회 구석구석에 칼빈주의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겠죠.
네, 공감합니다. 님이 이해하신 것이 맞는 것 감사합니다.
카이퍼의 동판 얼굴이 극 사실적이네요. 머리카락 한올 한올과 얼굴선이 정말 예술입니다!
네덜란드 사람들의 제조기술 능력이 스위스, 독일 쪽 못지 않게 정확합니다. 그래서 카이퍼와 바빙크 같은 정확성을 기하는 신학이 나온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카이퍼의 인자한 얼굴이 내한 선교사의 자식인 인요한 박사와 닮은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