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원본 : http://festivaleconomy.kr/2021/08/14/%ec%9a%b0%eb%a6%ac%eb%af%bc%ec%a1%b1%ec%9d%98-%ec%9b%90%ed%98%95-%ec%bd%98%ed%85%90%ec%b8%a0-%ec%b9%a0%ec%9b%94%ec%b9%a0%ec%84%9d-%ea%b2%ac%ec%9a%b0%ec%a7%81%eb%85%80-%ea%b2%ac%ec%9a%b0%eb%8a%94/
페스티벌이코노미 신문 : http://festivaleconomy.kr
[우리민족의 원형 콘텐츠 - 칠월칠석 견우직녀] 견우는 소를 끌고 어디로 가나
▲사진=음력 칠월 칠석에 견우와 직녀를 서로 만나게 하기 위해 까마귀와 까치가 은하수에 모여서 자기들의 몸을 잇대어 오작교(烏鵲橋)를 만들었다. /사진=픽사베이
|우주에 던져 올린 사랑의 이야기|
음력으로 7월 7일. 양력으로는 8월 14일. ‘칠월 칠석’이다. 우리네 엄마나 할머니들이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새벽에 정안수 한 그릇 장독대에 올려놓고 북두칠성께 치성을 올리는 날이다. 지극정성으로 치성을 드리면 반드시 북극성에 계신 마고님이 감응한다고 믿는다. 물론 이승의 삶을 마치고 돌아가는 곳도 북두칠성을 통해 가는 곳 그 정점은 북극성이라고 믿었다. 이렇듯 우리 선조들의 삶을 영위하는 사유체계에서 생이란 탄생과 죽음의 순환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원의 서토에서는 사랑에 빠진 직녀에게 형벌을 내리신 분이 서왕모(西王母)라 한다. 그분은 바로 우리민족의 원형성을 집대성한 부도지에 나오는 ‘마고(삼신)’님이다. 서왕모가 자운거(紫雲車)를 타고 전상(殿上)에 내려와, 장수(長壽)를 원하는 한무제(漢武帝)에게 요지선도(瑤池仙桃)를 전한 날 역시 칠석이다. 이렇게 견우‧직녀의 사연이 우리 선조들의 사유체계가 됐고 그 영향은 생활방식이 되어 천문으로 끌어 올려 하늘에 만들어놓은 사랑의 이야기가 됐다. 이처럼 생명가진 것들은 만나서 헤어지고 태어나고 죽는 사후의 영역까지 확대시킨 민족적 원형성을 간과하고 우리 후손은 아직 선조들의 해원의 실천과 삶의 철학성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오작교를 만들어 민족의 울분을 해원해주고 있는 해원의 철학을 오늘에 살려야 한다. 오늘날엔 발렌테인처럼 연인들의 만남을 기리는 축하 이벤트로 삼는 것이 우리민족의 원형에서 꺼내는 위대한 자산 원형 콘텐츠다.
[페스티벌이코노미=정노천 시인] 내 사랑 견우가 소를 몰고 나가네. ‘님이여 그 소 이까리를 놓으소서. 저 혼자 두고 가지 마소서’ 직녀가 소를 끌고 풀밭으로 나가는 견우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흐느끼고 있네. 소의 꼬리도 아래로 축 처져 있고 하염없이 흘러내린 눈물을 멈출 수가 없네. 눈물은 강물이 되어 더욱 넓어지고 길어져 가네. ‘직녀님 울음을 멈추세요. 울수록 두 사람의 거리는 더 멀어지고 만남이 더욱 힘들어집니다’하고 뒤에서 여우(신수 구미호)가 직녀를 달래고 있다.
아무리 사랑하는 여자가 옥황상제의 손녀라 해본들 사랑에선 자기 자신이 주인이다. 자신의 맘에 안 들면 떠나는 수밖에 더 있겠나. 은하수 넓은 강물 앞에 두고 동서로 갈라 못 만나게 한 벌칙 이전에 소를 끌고 제 본연의 일을 하러 나가는 하늘의 목동 견우. 사랑은 하느님의 소관이 아니라 인간의 특권이고 내가 사랑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 한들 내 사랑에선 내가 마음대로 할 것이라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느릿느릿 소를 끌고 나가는 견우. 이랴! 이랴! 가슴이야 찢어지고 아프지만 저 너른 초원으로 나아가야한다. 그동안 직녀를 만나 숲과 들녘을 쏘다니며 사랑에 빠져 게을리 먹인 소에게 풀을 듬뿍 먹여야 한다. 내 한숨이 바람이 되고 태풍이 되어 세상의 모든 것을 날려 버리지만 그대 직녀여 미뤄둔 베를 짜소서. 내 별리의 한숨으로 몰아주는 구름과 그대 가문의 맑은 햇살을 교직으로 짜소서. 때로는 새의 문양도 좀 넣으시고 철꺽! 철꺽! 아름다운 비단을 짜소서. 강 건너 초원에서 그대 베틀소리 들으며 동강난 내 마음을 달랠 것이오. 그대 별리가 슬퍼서 우는 눈물이 우리 사이를 더욱 가르는 은하가 되고 있네요. 울음을 멈추세요. 나는 소 몰고 저 너른 초원으로 가서 소를 더욱 배불리 먹이고 살을 찌우겠소. 우리 만날 날을 기다릴 테니 그대는 나를 황홀케하는 아름다운 비단을 짜소서. 그리고 내 소식일랑 까마귀에게 전하리니 울지 말고 기다리소서. 1년에 한 번 칠월 칠석 우리 오작교(烏鵲橋)를 건너서 만나야지요. 아침에 내리는 비, 저녁에 내리는 비속에 우리의 상열지사는 녹아있지요. 사랑이란 참 많은 현상들을 만드는군요. 한숨은 바람이 되고, 눈물은 강물이 되고, 비가 되고, 때로는 번개도 되고, 구름도 되고, 두 사람을 막아서는 은하수가 되고, 아우라지가 되고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소. 님은 기어이 건너다가 빠져 죽었으니 장차 이일을 어쩌리오!’ 공무도하가 노래가 터져 나오는 온갖 애환이 서리는 것이 모두 사랑의 장난들이군요. 인간의 오랜 강물 되어 흘러가는 물결이 되는 건가요? 사랑이란 무엇인지? 그럼 우주는 온통 사랑의 장난 터인가요?
▲사진=견우직녀도. 덕흥리벽화무덤 앞칸남쪽천정 견우(牽牛)와 직녀(織女).
◇덕흥리벽화무덤(남포시 강서구역 덕흥동 | 408년)
덕흥리벽화무덤은 고구리의 대신 급 인물인 ‘진’이 묻힌 곳이다. 408년에 만든 두칸 무덤이다. 인물풍속도를 그린 무덤의 벽과 천정에는 갖가지 그림들과 그것을 설명하는 600여자의 글자가 있다. 무덤안길 좌우 벽에는 문지기 괴물과 인물들이 그려져 있다. 거기에는 이 무덤을 408년 2월 2일에 닫았다는 내용의 글이 있다. 무덤의 주인공 ‘진’은 고구려 고유의 작위인 대형을 지낸 다음 여러 장군작과 태수직을 거쳐 유주지사를 지냈다. 나이 77세에 죽어 고구리 광개토대왕의 영락 18년 12월 25일 이곳에 묻혔다. 덕흥리 벽화무덤은 주인공과 그 축조 년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유일한 무덤이다. 풍부한 벽화와 자세한 설명으로 4세기 후반 5세기 초 고구려의 강대성과 당시 동아시아아의 정세를 진실하게 밝혀주며 고구리의 우수한 문화와 풍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다. 그 벽화 중 앞 칸 남쪽천정에 견우(牽牛)와 직녀(織女)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정노천 시인|remicom1@hanmail.net
< 저작권자 © 페스티벌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