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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동부 캐나다 기행문
2009, 7, 10
큰딸애가 2년간 머물고 있는 보스턴에 가기위해 동 미국, 캐나다 여행을 하게 됐다.
비행기 값에 조금만 더 쓰면 여행을 할 수 있다고 큰 딸이 회갑선물로 예약을 해 놓은 바람에 모든 일정을 접고 여행도 하고, 10일간 여행을 마치고 나서 딸애 집에 들려 머물고 오려고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며칠 동안 여행준비에 분주 했다.
맛깔스런 김치를 담아주고 오리라 맘먹었기에 그 준비가 만만치 않았다.
인천비행장에 가기 위해 리무진을 탔다.
눈을 감고 편히 쉬고 싶은데 뒤 자석 말소리 때문에 잠이 오질 않았다
아마도 친정 부모님 모시고 해외여행을 가나보다 그런데 부모님은 여권을 유효기간 지난 것으로 잘못 가져왔나보다 순천에 아빠는 두고 오고 엄마는 광주에....
옆집 아줌마께, 순천은 오빠께 설합 을 뒤져봐라 번호 키 는 몇 번...서해안 고속으로... 비행기로 와야 시간이 되겠다. 등등 전화 하는 말소리, 남에 일에 신경이 곤두세워져 애가 탔다. 나이가 들면 저렇게 되나보다.
3층 출국장 M카운터 14번 출입구 12번 탁자에서 하나투어 담당과 미팅하여 수속을 끝내고 저녁 8시 뉴욕 가는 비행기를 탔다.
14시간 비행 끝에 한국보다 11시간 늦은 뉴욕비행장에 10일 밤 10시에 도착했다.
기내에서 입국 세관신고 카드를 써 놓은 것을 제출하고 열손가락 지문 찍고,사진 찍고 까다로운 입국 절차를 마치고서야 밖으로 나왔다. 현지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접수한 페키지 상품이라서 일행이 누군지도 모르고 각자 개별적으로 왔기 때문에 미국에서 버스를 타고서야 두각이 나타났다. 여름 방학 이라서 주로 애들과 가족단위 여행객이 많았다. 호텔로 이동하는 동안 허드슨 강 과 맨해튼 중심가 야경을 구경시켜 줬다. 밤12시가 넘었는데도 별아 별 사람들이 다 모여 북적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맨해튼은 뉴욕시를 이루는 5개구 ( 브룩클린, 퀸즈. 스타이튼. 아일랜드 브롱스 )중에 가장 작은 구이지만 경제 문화 상업의 중심지로 뉴욕 자체를 상징 하고 있었다.
새벽 2시가 넘어서야 호텔에 도착 했다.한국은 낯3시이겠지. 시차 때문인지 잠이 오질 않았다.
<뉴욕> 7월11일
조식 후 8시에 출발하여 뉴욕시내 관광을 시작했다.
뉴욕 시 는 “맨해튼”으로 연결되는 해저 터널이 4개가 있다고 했다 그중 2km길이인 링컨터널을 지나 “사우스 스트리트 씨포트 ”에서 유람선을 타고 자유의 여신상을 관람했다. 자유의 여신상은 1886년 미국 독립 10주년 기념하여 프랑스에서 기증한 것으로 미국과 프랑스의 우호 증진을 위한 선물 이였지만 지금에 와서는 전 세계인들에게 미국의 상징, 자유의 상징으로 인식 되고 있다. 옆구리에 끼고 있는 책은 독립선언문이고 오른손엔 횃불을 들고 있는 여신상은 프랑스에 있는 에펠탑을 세웠던 “에펠”이 세워주고 갔다했다.
세계경제의 중심인 “월스트리트” 다리미 와같이 생겨 부르는 “플랫 아이언”빌딩, 차이나타운, 소호(soho)그리니치 빌리지 중심에 위치한 워싱턴 “스퀘어파크” 명품거리 5번가, 세계최대 도심공원 “센트럴파크”, 컬럼비아 대학 할렘가 등 맨해튼 전체를 차창으로 경유하면서 관광했다. 시내가 복잡하고 주차하기가 어려워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월스트리트”의 마스코트로 사랑받고 있는 “돌진하는 황소” 상 앞에서는 잠시 내려 사진을 찍었다 세계경제의 비즈니스 의 중심인 이곳은 옛날 우시장 이였다고 했다.
‘코’ 나 ‘불알’을 만지면 부자가 된다는 소리에 다들 쓰다듬고 만지느라 야단 이었다.
다음코스는 1980년에 완공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전망대 높이 443m 102층, 사람이 올라 갈수 있는 층은86층까지 올라가 시가지를 조망하고 내려오기 까지 줄서느라 허리 아프고 다리 아프고 시 차 때문인지? 잠이 쏟아지고 죽을 지경 이였다.
중간에 스카이 라이드를 30불 지불하고 관람했다
대형스크린과 시율레이션 의자에 앉아 마치 헬리콥터를 타고 맨해튼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느낌을 주는 체험도 했다.
밤에는 뉴욕시티를 방문하여 뮤지컬을 희망 하는 자만 보기로 했는데 관람료가 130~190불이라 너무 비싸서인지? 희망자가 적어 포기하기로 했다.
사위가 시킨 데로 “라이온 킹” 보려고 했는데........
다음은 유엔본부로 갔다. 세계 각국의 정부 대표단이 들어 있는 UN복합단지로 미드타운 동쪽 이스트 강변에 위치한 이곳은 1953년 완공되어 150여 회원국이 기증한 예술작품들로 꾸며져 있다는데, 우리들은 들어갈 수 없고 밖에서만 쳐다보고 사진 몇 장 찍은 걸로 만족 해야만 했다. 그러나 UN사무총장 ‘반기문’ 씨가 한국인 이라 는 게 자랑스러웠다.
다음은 성요한 성당으로 갔다 이 성당 은2050년 완공 예정인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성당이 될 것이라 했다. 1892년 초석을 놓아 7개의 예배당 각기 다른 국적의 이민자 그룹들이 각각 사용하게 될 예정이며 집 없는 이들을 위한 쉼터 그래픽과 조각 스트디오 체육관 원형극장 등이 들어설 예정으로 어마어마했다.
6시에 저녁을 먹고 나니 잠이 쏟아져 씻지도 않고 자버렸다.
<워싱턴> 7월 12일
아직 시차 적응을 못 하여 새벽 2시에 눈을 떠 아무리 잠을 청 해봐도 오질 않았다 일찍 일어나서 인지? 뱃속에서는 쫄쫄 거렸다. 조식 후 9:30 에 뉴욕 출발하여 볼티모어경유 워싱턴으로 이동 하였다
약5시간 소요돼는 시간동안 산이 없어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 주변엔 나무가 많아 눈 피로를 덜어주는 듯 했다 가끔 자귀나무 꽃도 보이고, 누런 원추리 꽃이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자동차바람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2시쯤에 도착하여 점심을 육개장, 비빔밥, 곰탕, 중 선택하라기에 난 곰탕을 먹었다
미국사람들은 뼈를 먹지 않기 때문에 진짜 사골국물 이겠거니 하는 믿음으로....역시진국 이었다 점심 후 자연사 박물관에를 갔다. 입장료가 없어서인지? 너무 사람이 많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박재 해놓은 갖가지 동물들... 잘해놓았지만 피곤해서 슬쩍 둘러 봤다. 나이든 우리들에게는 별 관심 밖 이였기 때문이다.
그 부근에 위치한 백악관은 정말 검소하고 아담했다 큰 나라 대통령이 계신 곳 치고는 너무 초라하게도 보였다.
제3대 대통령 제퍼슨 기념관에는 제퍼슨 동상이 백악관을 바라보며 서있고 링컨기념관에는
링컨동상이 호수건너 독립기념탑과 일직선으로 국회의사당 둠이 보이는 곳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독립 기념탑은 169M 높이로 마치 이 쑤시게 같이 뾰족하게 생겼다.
아래쪽 과 위쪽 돌 색깔이 조금 달랐다
그것은 만들다가 남북 전쟁 때문에 중단했다가 다시 만들었기 때문 이라 했다.
많은 박물관과 미술관 등등 공공 기관들로 미국의 역사 정치 과학이 숨쉬는 미국에 수도 워싱턴을 단 4~5시간에 본다는 것은 무리였다
저녁 식사는 순두부찌개 와 불고기였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으로 찾아다니니 그동안 식사문제는 별 불편함이 없었다.
<나이아가라 폭포> 7월 13일
아침새벽 4시에 출발했다 국경을 넘어 캐나다 나이아가라 까지 가려면 이렇게 빨리 서둘러야 하나보다. 쭉 뻗은 하이웨이를 달리는 버스는 어둠을 삼키며 계속 질주를 했다.
우리일행은 비몽사몽 일어나 잠자리만 바뀌었다 는 듯 또다시 잠에 취해 있었다.
얼마쯤 갔을까? 어둠이 걷히고 하늘이 붉어지더니 광활한 대지 수평선위로 쟁반 같은 붉은 해가 솟아올랐다. 해돋이를 차창 밖으로 만끽 하며 “펜실베니아”에 도착하여 아침식사는 미국식으로 먹었다.
“써스궤아나”강 주변 미국의 농촌이 함께하는 지방도로를 타고 지나면서 산이 많고 목장이 많은 “펜실베니아”을 지나갔다.
“펜실베니아”는 ‘윌리아’ ‘펜’의 앞 글자와 ‘베니아’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마치 우리나라 ‘청학동’마을처럼 문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유기농 하며 모여 사는 아메실 이라 했다
주로 낙농과 옥수수를 재배 하고 있었다.
4:30분 만에 “코닝”을 지나 “버팔로” 라는 곳도 지났다
버팔로는 닭 날개 튀김으로 유명 하다고 했다. 서양에서는 별로 쓸모없는 날개를 아주매운 소스를 발라 장작불 에 구워 먹었더니 그 맛이 너무 좋아 지역 명을 따서 “버팔로윙”이라고 선풍적인 인기라 했다. 버팔로는 실지로 소의 종류인데 난 그 이름 하면 “양들의 침묵”이 생각나서 오싹 해 진다.
드디어 매년세계각지에서 약 12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아오는 나이아가라 미국 쪽 폭포에 도착했다. 폭포 상류 지역에서 옵션으로120달러를 주고 “젯트보트”를 타면서 좋아 라 고함치는 사람, 무서워 우는 사람들 틈에 끼여 흠뻑 옷을 젖어보는 경험을 했다.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인 나이아가라 강이 두 줄기로 나뉘는 중심에 염소 섬 과 자매 섬을 구경 후 레인보우 다리를 건너 국경을 통과하여 캐나다 쪽으로 갔다.
강 하나를 두고 이쪽과 저쪽에서 관광 수입이 대단해 보였다. 캐나다 쪽에서 바라다 볼
수밖에 없는 웅장하고 멋진 폭포, 해가 서편으로 기울면서 폭포가 품어내는 물안개에 무지개가 환상적 이었다. 이 아름다움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까?
“우와” 하고 입을 벌리곤 다물어지지를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람이 불적 마다 이슬비처럼 내리는 물안개를 맞으며 사진 찍느라 야단 이었다 미국 쪽 폭포 폭은270m, 높이56m, 캐나다 면사포 폭포길이680m이며 높이54m, 1번 떨어지는 물 양 은 서울 시내 하루 쓸 수 있는 물 양 이라했고 연간30cm씩 침식돼 7만년후면 없어질 거라고도 했다.
밤에는 폭포에 컬러풀한 조명을 비추어 더 아름답게 보이 도록했고 관광객이 잠든 밤엔 물 수위조절 하여 수력발전에 이용 한다고 했다. 우리가 쉬고 있는 호텔은 폭포가 보이는 특급 호텔이여서 창밖으로 보고 또 보고 너무 아름다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폭포 주변에는 카지노 등의 수많은 오락시설로 관광객이 충분히 휴식과 쾌락을 함께 할 수 있도록 꾸며진 도시였다.
이 폭포가 우리나라에 있다면 관광수입으로 경제보탬이 되겠다는 욕심도 났다.
7월 14일
아침 해가 살짝 고개를 쳐들고 나올 적에는 그 빛에 반사한 물안개는 마치분홍색 솜사탕 이 뭉개 뭉개 부풀어 오른 것 같았다.
조식 후 우비를 입고 유람선을 탔다 폭포 가까이에 가서 느껴보는 ‘안개속의 숙녀 호’ 그리고 지하로 내려가 폭포가 떨어지는 뒷모습 을 감상할 수 있는 ‘씨닉터널,’ 전망대에 올라가 폭포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스카이론 타워에 올라가 마지막으로 폭포를 조망하고 또 봐도 질리지 않은 나이아가라 폭포를 떠나야 했다.
어제 제트보트를 타고 월풀(물이 소용돌이치며 도는 곳)장소와 케이블카를 타고 강을 건너는 곳을 돌아보고 ‘온더레이크’ 라는 한가롭고 평화스러운, 꽃으로 장식된 아늑한 마을을 지나 ‘와이너리’에 있는 아이스 와인 공장에를 갔다.
아이스 와인 을 만들게 된 동기는 포도 농사꾼이 어느 해 된서리에 얼어버린 포도를 버리기 아까워 술을 담았더니 더 달고 맛이 좋아서 그 다음부터는 일부러 얼도록 기다렸다가 따서 만든 술이 바로 아이스 와인이라고 했다. 2홉 쯤 한 병에 6만원정도, 달콤하고 맛있지만 비싸서 사지 못했다.
<토론토>
1시간 30분쯤 이동하여 캐나다 경제의 중심이라는 토론토에 도착했다.
서울시의 1.5배의 토론토는 국민소득 3만 불 , 6대 금융도시라고 했다
“토론토”라는 말은 인디언어로 만남의 장소라는 뜻이라 했다.
구 시청 청사와 신청사를 구경했다 구 시청은 시계탑이 곁들인 영국 풍 건물의 아름다움이
영국이 독립시켜준 나라답게 그 모습에서 풍겨났고, 신청사는 현대 건물로써 핀란드 사람 건축가“빌리오레벨”이 디자인 한 건물로 눈동자를 상징, 중심에 둥근 돔 건물과 양쪽에 원을 그리듯 유리창으로 둘러 휘어진 20층 27층의 각각높이가 다른 아치형 특이하고 멋진 건물 이었다. 누군가 쳐다보고 있으니 양심껏 일하라는 뜻이 담긴 눈동자 건물, 퍽 인상적 이었다. 다음은 토론토 대학으로 이동 했다.
1975년 건립한 지지물이 없는 단독타워로 세계에서 최고 높이인 토론토 상징이 된 533m 높이의 CN타워가 멀리서 보였다, 생김새가 남산타워와 비슷했다
CN타워가 정면으로 보이는 토론토대학은 인슐린 발명으로 유명하며 한국 유학생이 약500여명 된다고 했다. 본관건물이 한 쪽은 탑이 있고 한쪽은 없다, 한쪽의 탑은 학생들 자기스스로 쌓으라는 뜻 이란다 참! 의미 있는 건물 모양 이였다.
우리들은 마치 학생 커플인양 포즈를 하고 잔디에 누워 사진을 찍곤 했다.
복잡한 시내중심에 전차가 다니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1967년에 없어 졌는데, 이 나라 시민들은 불편 함 을 감소하겠다며 그대로 두자 했다는데, 빨리빨리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여유로움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킹스턴, 오타와, 몬트리올> 7월 15일
새벽 5시에 출발하겠다는 가이드 말에 불안했던지 새벽2시에 깨어나 도무지 잠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눈을 감고 있으면 자는 것과 같이 피로가 풀린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것 같아 눈감고 있었다.
새벽 5시가 되니 지각한사람 한명 없이 눈 비비며 다 나왔다.
도시락 한 개씩 받아들고 차에 올랐다.
마치 흔들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듯 흔들거림에도 다들 잠도 잘 잔다.
얼마쯤 갔는지? 가이드가 깨웠다 해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휴게소에 들려 도시락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평소에 먹지 않은 커피를 마셨다 피로가 풀리려나? 하는 기대감으로, ...해외여행 때마다 느낀바 이지만 우리나라처럼 휴게소의 화장실 깨끗하고 먹 거리 풍부한곳 찾아 볼 수가 없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서 얼마쯤 달리다보니 ‘킹스턴’이란 곳에 도착했다.
‘세인트로렌스’강에 위치한 천섬을 구경한다고 했다
천섬은 정확히 1864개의 섬이 모여 있다고 했다.
오대호의 하나인‘온타리오’호수 상류에 위치한‘세인트로렌스’강은 간만의 차가 없기에 물가 30cm에 집을 지어도 범람하지 않는다 하니 ‘온타리오’ 호수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짐작하게 했다. 아주 작은 섬에서부터 큰 섬마다 집이 다 지어져 있었다.
부자들이 섬 하나씩에 별장을 지어 놓은 거라고 했다. 큼직한 섬에는 그 하나 만에 세계처럼 궁전같이 꾸며진 건물도 있고 전망대인 타워도 있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섬은 백만장자 호텔경영자인 ‘볼트’가 세운 하트 섬의 “볼트성”이라했다
마치 디즈니 만화에 나온 성과 많이 닮았었다. 이모든 섬 들이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원주민들은 “위대한 영혼의 마당” 이라는 의미로“마니토마”라 불렀다 고한다. 캐나다와 미국을 연결하는 다리 밑을 유람선은 지나갔다
강 중심선으로 국경을 나뉘어 2/3을 차지한 섬은 캐나다에 소속된 섬이라고 했다.
천섬의 전설은 아름다운정원을 가진 자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마니토마’신이 아름다운 정원을 담요에 담아 하늘나라로 가져가던 중에 담요가 찢겨져서 쏟아져 낱낱이 흩어진 것이 아름다운 작은 섬 들이라고 했다.
중식 후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로 이동했다 ‘오타와’란 물건을 사고, 판다 는 뜻이란다.
국회의사당 옛 총독관저인 리도 홀에를 갔다.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다녀간 흔적으로 기념식수도 봤다.
우리들은 다시 이동하여 국회 의사당에를 갔다
국회의사당은영국풍 건물로 고풍스러웠다.
파란잔디위에 한가로이 노니는 시민들, 그리고 요가를 하고 있는 단체도 있었다. 깨끗하고 좋은 도시라는 느낌이 든다.
국회의사당 정문 앞 광장에는 둥근 원반처럼 생긴 물분수대 중심에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12개주를 상징하는 돌판 에 주 이름이 새겨져 빙 둘러있고 중심엔 물이 철철 넘치는데도 큰 불기둥이 꺼지지 않고 타고 있었다.
캐나다는 영원하다 는 상징 불탑이라고 했다.
‘태리박스’ 마라톤선수동상이 국회의사당길 건너에 세워져 있었다. 인공다리하나로 암 환자를 위해 뛰었다는데....
우리는 다시 북미의 파리라고 말하는 퀘백주 몬트리올로 이동했다.
하계올림픽 1976년에 최초 우리나라 양정모선수가 fp스링 에서 금메달 따온 도시다.
노트르담은 “우리들의 엄마”라는 뜻이 담긴 말이라고 했다.
노트르담성당, 세계 두 번째 규모의 성 요셉 대성당을 구경하고 ‘자끄까르티에’광장과 ‘봉스꾸르’마켓에서 쇼핑을 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 사고 싶은 의욕도 없었다.
난 식욕이 왕성해서 배고프면 먹으려고 간식거리를 사들고 나왔다.
우린 트로이리베로 이동하여 호텔에 휴식을 취했다.
<퀘백> 7월 16일
조식 후 8:30분에 출발하여 1시간30분 동안 직선으로 뚫린 도로를 달려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지역으로 지정된 ‘캐나다’ 에서 가장 오래된 프랑스의 전통이 숨쉬는 성곽 도시 올드 퀘백 에 도착했다.
‘퀘백’ 이란말뜻은 강폭이 점점 좁아진다는 뜻이라 했다.
‘세인트 로렌스’ 강이 흐르고 있는 ‘퀘백’ 중심부 절벽에 위치한 윗마을 ‘샤또프론트낙’ 호텔 주변 ‘다름’광장에는 루이 14세의 동상이 있고 우체국 등 ....고풍스런 주변 건물 들을 보느라 관광객들이 많았다.
‘뒤프랭테라스’ 는 옛 성벽위에 테라스를 만들어 강 건너주변을 구경하게 만들어져 있고 성벽 아랫마을(하천부지)에는 아기자기 한 상점과 레스토랑이 즐비한 ‘프티샹플랭’ 이라는 거리가 있었다. 거기에서 실크 스카프를 샀다 색깔이 너무 예뻤다. 그 외 고양이 목각 인형도 사고 싶었지만 가지고 갈 것도 생각해 보라면서 눈 흘기는 바람에 사지 못했다.
‘르와이알’광장엔 생활 풍습을 그려놓은 큰 벽화가 2군데가 있었고.
거리에는 악사들이 듬성듬성 자리하고 있었다.
어떤 이 는 타이타닉 주제가를 연주하고 있었다. 돈을 줄까말까? 갈등하다가 지나치고 말았다.
시가지를 구경하고 나니 소나기가 쏟아졌다 12시까지 차에 오라고 했는데 어떤 모녀 팀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30분 늦어졌고 가이드 는 걱정 돼 안절 부절 하였다.
첨에는 단체에 규칙을 지키지 않아 원망스럽더니만, 말도 통하지 않고 핸드폰도 없는데 어떻게 찾아 나설까? 하고 걱정 하고 있을적에 나타나니 다행이다 싶어 밉지가않았다.
점심식사 후 현수교를 건너면 미국 땅, 캐나다를 가슴에 묻어두고 이제 떠나는 구나!
캐나다 에서 마지막 점심을 먹고 커피 한잔으로 캐나다를 가슴에 넣으라는 가이드 말이 의미 있었다.
내가 언제 캐나다에 또 올 것인가?....
미국 국경을 통과 하는데도 까다로웠다, 특히 현지학생들에게는 일일이 확인을 해서 몹시 시간이 걸렸다.
루시 몽고메리 빨간 머리 앤 작가의 고향을 지나고 끝없는 숲속을 가로 질러 질주하다가 큰 바위얼굴이 있는 ‘유엠퓨샤’ 산 밑에서 산을 올려 다 봤다 지금은 무너져버린, 상처 만 남아 있었다. 한없이 남쪽으로 7시간동안 달려 보스턴에 도착 했다.
일년이 넘도록 전화로 목소리만 듣고 보지 못했던 그리운 내 딸이 살고 있는 ‘보스톤’ 에 도착한거다 내일이면 만나보겠지 저녁에 가슴이 벅차 잠이 오질 않았다.
<보스턴> 7월 17일
보스턴은 1630년 영국 청교도 인들이 이주하여 기반을 잡고 그들만의 사회와 문화를 형성한곳으로 보수적 성향이 있고 도시 전체가 영국적 색깔이 많이 띠고 있지만 현재 미국의 기반이기도 하여 200년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문화와 역사의 중심 이며 교육도시라고 했다.
조식 후 ‘메사츄세츠’주 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 ‘하버드’ 대학교를 방문했다
이 대학교는 1636년 메사츄세츠 식민지 일반의회의 결의 에 따라 설립했으며 1639년 도서와 많은 유산을 기증한 하버드 목사 이름을 따서 하버드 대학 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했다. 켐퍼스 에 하버드 목사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왼쪽 발 을 만지면 가족 중 하버드 대학 합격한다는 속설 때문에 발을 만지는 포즈로 사진 찍느라 줄을 서고 있었고 발등은 많은 사람들의 손에 닳아져 번들번들 했다. 나도 손자들 중 누군가 가길 원하며 발등을 만지며 사진을 찍어 뒀다.
학교건물들 중에 식당 건물이 가장 멋있었다.
식당건물은 돔이 있고 마치 성당을 연상하게 했다. 이는 전쟁 때 하버드학생들의 죽음을 추모하는 뜻에서 그렇게 지어졌다고 했다. 본관 벽에는 희생학생 들 이름이 써놓은 액자가 걸려있었다.
SCIENCE CENTER 라고 써놓은 건물 빈 강의실에 가이드가 우리들을 데리고 들어가더니 마치 가이드는 교수인양 칠판에 학교 교문 위쪽에 세 겨진 3권의 책 (두 권은 오푼 돼 있고 한권은 엎어져 있는) 에 각각 VE. RI. TAS.라고 써놓은 그림을 그리더니 그 이유를 설명했다. 두 권은 보여 주지만 엎어놓고 보여 주지 않은 한권은 여러분 학생 스스로 진리를 찾으라는 교훈 이라고 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중 부부간에 찍은 사진들이 벽에 쭉 걸려 있는데 그중 동양인이 있어 유심히 봤더니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말했던 김우중 부부 사진도 걸려 있었다.
그분도 이 학교에 기부금을 많이 냈나보다.
세계에서 유명한 이 학교는 기부금으로 재력이 튼튼하여 학교에 그만큼 투자를 하기 때문에 좋아질 수밖에 없다고 가이드는 말하였다.
학교건너편 상점에서는 하버드마크가 새겨진 옷을 사느라 야단 이였다. 나도 손자 손녀들 주려고 몇 벌 샀다.
우린 다시 이동하여 MIT, 메사츄세츠대학을 방문했다 세계 최첨단 과학 기술의 산실인 공과대학으로 유명한 이 학교는 켐브리지에 역사와 전통이 가장 깊은 공과대학이라고 했다
지질학자 WB 로저스가 과학의 진흥과 개발을 목적으로 1861년에 설립하여 1865년에 개교했다고 하였다
MIT교수나 졸업생 가운데 노벨수상자가 73명이나 된다고 하니 과연 노벨상 사관학교라고 불릴 정도였다, 그중 한국인 5명도 포함돼 있고 현제 250 여명이 대학원에 재학 중이라 하니 “자랑스러운 한국인”, 가슴으로 외쳤다.
후문으로 돌아 나와 찰스강 다리가 하버드 브릿지 라 했다 MIT학교가 가까운데 왜? 하버드 다리라고 했을까? 궁금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점에 대해 MIT학교에서 늘 불만이라고 하였다.
점심은 아리랑 식당에서 한국식 뷔페를 먹었다.
점심 후 나는 우리 일행들과 마지막 인사를 해야 했다 12시30분에 딸이 우리 부부를 데리러 온다고 하였으니 여기서 헤어져야 만 했다.
초초하게 기다리던 중에 사위와 딸이 나타났다 모두 부둥켜안고 울먹였다.
딸은 부었는지? 살이 쪘는지? 몰라보게 변해버렸다. 우린 딸집으로 가기위해 차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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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여행은 언제나 즐겁고 행복한 삶의 활력소인거 같습니다. 멋진 여행기 잘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