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암
전용신
지리산 배경으로 산과 산 겹겹 쌓여
한 줄기 아름다운 남강으로 흘러가고
귀 먹고 눈 먼 벼랑에 촉석루가 서 있다.
그 옛날 논개 낭자 핏빛 어린 강물 아래
타 내린 슬픔처럼 젖은 이끼 끼었어도
생각은 등잔불처럼 꺼질 듯 되살아난다.
얼마나 많은 이가 여기 와서 울었을까
찢어진 역사 속에 한 떨기 꽃 진 자취
나그네 장승이 되어 갈 길 조차 다 잊는다.
- 『인동초』(한글문화사, 2013)
역사적인 사실을 현실적인 정감으로 육화 / 시조시인 김덕남
작품을 보면 작품을 쓴 사람이 보인다. 전용신 시인을 보면 의령에서 출생하여 자굴산 자락의 자연풍광과 의병장의 정기를 담뿍 받고 자라서일까 넉넉하면서도 올곧은 성품의 선비가 느껴진다. 시조집 『인동초』에서 자연과 역사물에 대한 애정이 곳곳에 비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으리라.
작품 「의암」은 하나의 바위가 의로운 바위로 탈바꿈하는 논개의 이야기를 역사적인 관점에서 되살려 읽는 이로 하여금 뭉클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의암이 있는 진주성은 임진왜란 당시 진주대첩으로 왜군을 물리쳤으나 정유재란 시 3만여 명의 왜군에 맞서 3천여 명의 조선군이 항전하다 함락되었다. 이에 왜군은 승전의 기념으로 촉석루에서 잔치를 벌였으며, 이때 논개는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뛰어내려 순국한다. 논개의 열손가락에는 옥가락지가 끼어 있어 왜장이 절대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여 미리 치밀한 계획에 의했음을 알 수 있다. 어찌 총칼로만 전쟁을 할 수 있으며, 조국의 풍전등화 앞에 남녀가 따로 있을 수 있으며, 신분의 귀천을 따질 수 있겠는가. 실제 논개에 대한 이야기는 광해군 대에 『어우야담』에 실려 있다.
변영로 시인이 “양귀비 꽃 보다 더 붉은 그 마음”이라 읊었던 논개를 전용신 시인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읊고 있다. 즉, 첫 수에서는 의암이 있는 풍경을 그리고 있으면서 “귀 먹고 눈 먼 벼랑”이라는 지적으로 그 시대의 암울한 조정을 비판하고 있다. 둘째 수에서는 “생각은 등잔불처럼 꺼질 듯 되살아”나는 화자의 마음을 투사하여 오랜 세월이 흘러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를 강조하고 있다. 마지막 수를 보면 “찢어진 역사 속에 한 떨기 꽃 진 자취/나그네 장승이 되어 갈 길 조차 다 잊는” 전용신 시인이 서 있다. 조국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전 시인의 예리한 눈이 논개의 역사적인 사실을 현실적인 정감으로 받아들여 육화한 작품으로 태어났다.
이 외에도 전 시인은 역사를 바라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다. 《처용무를 보며》, 《간절곶에서》, 《단양 온달산성》, 《대가야 순장 소녀》, 《악양벌 설화》, 《수우재에서》 등 곳곳에서 역사의 아픔을 문학적으로 승화하는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 《부산시조》 2014. 상반기호(통권 제3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