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역사를 품다 10> 시조21, 2023. 겨울호 연재
물길 따라 천삼백 리
김덕남
수도꼭지를 틀면 낙동강 물이 살여울처럼 쏟아진다. 아직도 나는 어머니의 품속인 듯 “낙동강의 젖꼭지”(서태수 「황지 – 낙동강·558」)를 물고 살아간다. 어릴 때는 수도꼭지를 쪽쪽 빨아서 얼굴이 하얗다고 한 도회의 친구가 부러웠다. 나도 언젠가는 수도꼭지를 빨아 보리라 생각했다. 그 수도꼭지를 찾아 낙동강 물에 기대어 산 지도 50년이 넘었다. 낙동강 물거울에 나를 비춰보다 여울목의 소용돌이에 비틀거리기도 했다. 하나의 물방울이 물줄기가 되고 강이 되어 바다의 품으로 돌아가기까지 강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짚어본다.
산소 도시 태백 한복판, 해발 700m 황지공원에 들어선다. 공원 중심에 상지, 중지, 하지로 이루어진 황지가 있다. 둘레 100m 상지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수굴이 있어 가뭄이나 홍수에도 변함없이 하루 5천 톤의 맑은 물이 쏟아져 나온다. ‘황지연못 전설 스토리텔링 조형물’이 길거리 갤러리가 되어 전설을 말해주고 있다. 욕심 많고 심술궂은 황부자가 노승에게 시주 대신 쇠똥을 퍼 주었는데 이를 본 며느리가 놀라서 시아버지의 잘못을 빌며 쌀 한 바가지를 시주하였다. 그러자 노승은 “이 집은 운이 다하여 곧 큰 변고가 있을 터이니 살려거든 날 따라오시오. 절대로 뒤돌아보지 마시오.”라고 했다. 스님을 따라가다 벼락 치는 소리에 놀란 며느리가 돌아본 순간 황부자 집은 땅속으로 꺼져 못이 되어버렸다. 상지는 집터, 중지는 방앗간터, 하지는 통시터라고 안내되어 있다. 돌아본 며느리는 미륵바위가 되고 황부자는 큰 이무기가 되어 이 연못 속에 살고 있다는데.
길손도 시원 찾아 정수리 더듬는 곳
낙동강 천삼백 리 첫발을 딛는 소리
뉘라서 태백에 와서 고개 기웃 않겠는가
길이야 멀다 해도 가다 보면 닿을 것을
가면서 굽이치는 아리랑 저 곡조를
적시는 모롱이 돌아 어디쯤에 울리는가
- 박홍재 시조 「황지못」전문
“시원 찾아 정수리 더듬”어 발원지에 닿았다. 황지는 사방을 둘러봐도 산도 계곡도 없는 도시 한복판이다. 엎드려 물을 마실 수 있는 깊은 계곡을 상상했으나 연못가를 돌며 구경할 뿐이다. 상지 물밑에는 동전 바가지가 덩그렇다. 황부자 똥바가지를 피해 며느리 쌀바가지에 조준하여 너도나도 동전을 던진다. 똥바가지에 넣으면 액운을 막고 쌀바가지에 넣으면 행운을 준다나. 온갖 잡때가 묻어있는 동전을 이 신성한 청정수에다 던져넣다니. 관리자가 매주 월요일 동전을 수거하여 향토장학기금으로 쾌척한다는 교차로 신문을 코팅하여 난간에 붙여놓았다. 돈을 모으기 위해 사행심을 부추기는 것 같아 묘한 기분이다.
수굴에서 솟아난 이 물길은 어디에서 시작했을까? 황지에서 국도를 따라 북쪽을 향해 백두대간이 지나가고 낙동정맥의 시작점인 삼수령으로 향했다. 피재라고도 불리는 삼수령三水嶺은 해발 935m 고개로 세 바다로 물길을 가르는 분수령이다. 하늘에서 떨어진 빗물이 북으로 가면 한강을 통해 서해로, 동으로 가면 오십천을 통해 동해로, 남으로 가면 낙동강을 통해 남해로 간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방향 따라 물길을 잡는 삼수령 주변은 방금 풀을 베었는지 풀내가 상큼하다.
이튿날 아침 일찍 내친김에 삼수령을 넘어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로 발길을 옮겼다. ‘뱀 조심’이란 현수막이 군데군데 붙어있고 복자기나무, 호랑버들, 까치박달 등 이름표를 붙인 나무들이 줄을 섰다. 명상하기에 좋은 숲길이다. 계곡물이 아침햇살을 받아서인가 은빛이다. 엎드려 벌컥벌컥 마시면 세속에 찌든 내 속도 씻어질까. 하루 2천 톤가량의 물이 석회 암벽을 뚫고 흘러내리며 사계절 내내 9°C를 유지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땀이 쏙 들어간다. 검룡소의 물줄기는 정선, 영월, 단양, 충주, 여주로 흘러 양수리에서 한강을 만나 서해로 간다.
다시 발길을 돌려 황지에서 흘러내리는 황지천을 따라 고생대 국가지질공원 구문소에 이르렀다. 황지천과 철암천이 만나는 지점이다. 두 물길이 힘차게 굽이치면서 우리나라 유일 지상 자연 동굴 소沼가 생겨났다. 내[川]가 바위를 뚫어 ‘뚜루내’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물은 산이 있으면 돌고 활력이 넘칠 때는 뚫어버린다. 뚫린 구멍으로 지류가 본류를 만나 얼싸안고 돌아간다. 구문소 옆에는 1937년 일제강점기에 뚫었다는 인공 바위 터널이 나란하다.
강마을을 품으며 물길은 구절양장으로 달린다. 봉화, 안동에서 선비문화와 독립운동가를 키우며 물의 뼈대를 세우더니 시대의 영웅이자 풍운아 견훤의 고향 상주를 지난다. 상주는 낙동강 천삼백 리의 중간기착지로 “낙동강의 배꼽”(서태수 「상주 – 낙동강·559」)이다. 흔히 낙동강을 칠백 리라고도 한다. 이는 조선시대 조운선 등이 부산 구포에서 상주까지 운행했기에 상주를 시작점으로 본 말이다.
구미보에 이르렀다. 보의 시원한 낙차로 물보라가 무지개를 그리자 왜가리는 먹이를 낚아챘는가, 목줄이 꿈틀한다. 낙동강 최후의 방어선 칠곡 다부동 전적기념관이 눈앞이다. 국토의 10%만 남은 위기에서 대한민국을 구한 55일간(1950. 8. 1.~9. 24.) 다부동 전투 현장이다. 이곳이 무너지면 대구가 적 손아귀에 들고 바로 부산이 짓밟히기는 초읽기다. 대한민국이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
입구에 들어서니 올해 7월에 제막식을 한 백선엽 장군, 이승만·트루먼 대통령 동상이 우뚝 세워져 있고 지게부대 위령비도 눈길을 끈다. 이태 전 올 때와는 다른 모습을 갖추었다. 전쟁이 나던 날 이승만 대통령은 주한미국대사 무초를 불러 “우리는 남자·여자·아이들까지 나와서 필요하다면 몽둥이와 돌멩이를 들고서라도 싸울 것입니다.”라고 결사 항전 의지를 표명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남침 보고를 하는 딘 애치슨 국무장관에게 “딘, 우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개자식들을 막아야 합니다. Dean. we′ve got to stop those sons of bitches no matter what.”이라고 우방을 목숨 걸고 지키도록 지시하였다.
대한민국 최초 4성 장군 백선엽 장군 동상 기단에 새겨진 “조국이 없으면 우리도 없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내가 앞장서서 싸울 테니,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는 결의에 찬 음성이 정수리를 친다. 삶과 죽음이 종이 앞뒷면과 같은 긴박한 전쟁 사진들이 둘레석이 되어 동상을 지키고 있다. 장군 동상은 매일 10시 30분과 14시 30분에 30분씩 자유 대한을 지키기 위해 360도 회전하며 사방을 주시한다. 몸은 비록 대전 현충원에 묻혔으나 정신은 살아 다부동에 우뚝하다.
유월이 다 가도록 잊혔던 유학산에
저 먼저 신열이 도진 패랭이꽃 앓고 있다
포성이 잠시 멈춘 밤 먹뻐꾸기 집을 찾고
기억조차 없다는 듯 허물어진 참호 안엔
쓰다 만 편지 한 장만 그날을 증언한다
사진 속 각인 된 날은 하늘마저 외면했다고
전열을 가다듬은 나무들이 숨을 고른다
아무도 주인 아닌 땅 고지를 지키려는,
유월엔 귀뚜라미가 마음 저리 애태운다
- 최재남 시조 「여름, 유학산」 전문
6·25 전쟁을 겪은 지 73년이 되었다. 포성이 멈춘 유학산엔 “기억조차 없다는 듯 허물어진 참호 안엔 / 쓰다 만 편지 한 장만 그날을 증언”한다. 이 고지를 지키려 서로 간 얼마나 많은 생떼 같은 목숨이 피를 흘렸던가. 미물인 “귀뚜라미”도 “마음 저리 애태”우거늘. “유월이 다 가도록 잊혔던 유학산”을 바라보는 마음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군번도 철모도 없는 흰 바지저고리 지게부대, 학도병, 경찰들이 피 흘리며 쓰러져 간 이곳에는 전열을 가다듬은 나무들이 숙연하다.
워커 장군이 낙동강 방어선 사수 명령을 내렸다. 동북쪽은 국군이, 서남쪽은 미군이 막아서며 왜관 일대 주민 소개령을 내리고 왜관철교를 폭파하였다. 적의 전차가 넘어오지 못하게 하여 공격 지연에 성공했다. 혈맹국의 희생으로 지킨 자고산, 뺏고 뺏기는 혈전으로 주인이 열다섯 번 바뀐 328고지, 고지 쟁탈전으로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강을 이루며 아홉 번 주인이 바뀌며 탈환한 유학산은 이제 푸른 숲으로 우거졌다. “태어난 날은 달라도 죽는 날은 한날한시로 하자”는 장병들의 비장한 맹세가 환청처럼 들린다.
다시 낙동강은 휘돌고 감돌아 칠곡보에 닿았다. 4대강 보 16개 중 낙동강에 절반이 있어 식수로, 농공산업용수로 활용되며 넉넉하게 들판을 살찌운다. 새들이 날아드는 강변공원은 산책, 하이킹으로 힐링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황지연못을 기점으로 성주, 달성, 고령, 창녕, 합천, 밀양, 김해벌을 적시고 부산 을숙도에 이르는 동안 곳곳에서 흘러드는 샛강과 합치며 유유히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샛강이 안고 온 너겁도 받아안고 청정계곡의 서늘한 생수도 들이켜며 물새들을 키운다. 샛강이 콜록거리면 본 강은 드러눕는다. 강은 인간의 신경계만큼이나 올올이 얽혀있다.
강물은 흐르면서 일 년 내내 시를 쓴다
바람 잘 날 없는 세상 / 굽이마다 시 아니랴
긴 물길 두루마리에 바람으로 시를 쓴다
낭떠러지 떨어지고 돌부리에 넘어진 길
부서진 뼛조각을 물비늘로 반짝이며
수평의 먼동을 찾아 휘어 내린 강의 생애
온몸 흔들리는 갈대숲 한 아름 묶어
서사는 해서체로, 서정은 행서체로
시절이 하 수상하면 일필휘지 초서체다
비 섞고 눈을 섞고 햇볕도 섞은 시편詩篇
파고波高 높은 기쁨 슬픔 / 온몸으로 새겼어도
세상은 시를 안 읽고 풍랑風浪이라 여긴다
- 서태수 시조 「강이 쓰는 시-낙동강·415」 전문
500여 수나 낙동강 연작 시조를 쓰고 있는 서태수 시인은 낙동강에서 태를 묻고 삶을 이어가는 명실공히 낙동강 시조시인이다. “바람으로 시를” 쓰는 “긴 물길 두루마리”를 낙동강 둔치에 펼쳐본다. 천삼백 리 굽이굽이 에돌아온 물길이 가슴에 출렁인다. “낭떠러지 떨어지고 돌부리에 넘어진 길”은 바로 시인의 생애요 우리의 역사가 아니던가. “온몸 흔들리는 갈대숲 한 아름 묶어 / 서사는 해서체로, 서정은 행서체로 / 시절이 하 수상하면 일필휘지 초서체”로 흘러간다. 물길이 강을 낳는 동안 시인은 시를 낳고 예술을 낳았다. 눈비와 햇볕과 바람을 엮어 온몸으로 새긴 시편이다. 그런데도 “세상은 시를 안 읽고 풍랑이라” 여기니 안타까울 뿐이다.
강원도 태백시 삼수령에서 떨어지는 빗물은 땅 밑으로 스며들어 황지에서 콸콸 솟아 강원도, 경상도, 부산 을숙도 앞 바다를 만나기 위해 쉬지 않고 달린다. 가락의 동쪽 강인 낙동강은 그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삭이며 도도히 흐른다. 푸른 물결의 함성으로, 통곡의 핏물로, 숙연한 추모로 인생을 담고 역사를 담았다. 물머리에서 물꼬리까지 굽이마다 돌부리에 부서져도 생명을 잉태하고 새끼를 키우며 아무 일 없다는 듯 만장으로 흐른다.
오늘도 수도꼭지를 튼다. 황지연못으로부터 흘러온 강의 파동이 내 혈관을 타고 쉬지 않고 출렁인다.
<김덕남>
- 2011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 시조집 『젖꽃판』 『변산바람꽃』 『거울 속 남자』
- 현대시조100인선 『봄 탓이로다』.
- 올해의시조집상, 이영도시조문학상 신인상, 오늘의시조시인상 수상 등
[출처] 물길 따라 천삼백 리 / 김덕남|작성자 시조21
첫댓글 선생님! 낙동강 천삼백리 물길 만큼이나 선생님의 끊임없는 정진과 열정에 갈채를 보내며 오늘도 배웁니다.
감사한 마음 담아 더욱 정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