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인가, 행위인가?
율법을 완성하는 길은 어디에?
그토록 율법을 강조한 바리새인들, 그토록 안식일을 강조한 바리새인들 그런데 그들에게 희년은 왜 이상이었던가? 그것이 참으로 의문이었던 적이 있다. 안식일, 안식년, 희년으로 이어지는 자유와 해방의 정신은 하나로 통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죽도록 일해야 하는 종에게도 하루의 안식을 주며 그의 존엄을 지켜주었으며 부채도 7년 면제년에는 탕감해주고 노예도 해방된다. 희년에는 자기 땅이 반환되어 삶의 터전이 회복된다. 그런데 이 놀라운 자유와 해방의 시작인 안식일을 그토록 강조했던 바리새인들에게 안식년과 희년으로 이어지지 않았던 원인은 무엇일까?
사실 그 해답을 제공해주는 이가 바울이 아닌가 한다. 바울은 표면적 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면적 할례가 중요하다고 했다. 표면적 안식일이 중요했던 바리새인에게 이면적 안식일의 본질적 가치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본질적인 자유와 해방의 법으로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자기공로와 자기의에 사로 잡혀 예루살렘 종교와 경제의 기득권자가 되어 버린 자신의 처지가 보이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예수님은 모든 율법을 다 지켰다고 한 젊은 부자에게 전 재산을 다 팔고 나를 따르라고 했다. 그 젊은이는 십계명을 다 지켰다고 했다. 아마도 그 젊은이는 표면적 십계명에 주목했지 십계명과 율법의 본질적 가치에 대해 집중하지 못했던 것 같다. 여기서 그의 재산은 그의 대토지를 가리킨다고 한다. 십계명을 지키지만 대토지 소유자로 존재하는 모순에 대해 젊은이는 얼마나 고민을 했을까? 이면적 십계명은 시내산 계약의 본질적 가치에 대해 주목하게 한다. 이 땅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태어난 모든 존재가 존엄하며 그 존재가 평등하고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는 정신 말이다.
당대 가난한 자, 눌린 자, 눈먼 자에게 기쁜 소식을 전한 유대인들은 그 소식이 이방인에게도 해당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베드로도 환상을 통해 고넬료와 같은 이방인에게도 성령이 임하는 것을 눈으로 보았지만 그의 삶과 철학 전체가 이방인에게 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기쁜 소식이 이방인에게도 해당한다는 신학 체계를 바울은 수립한다.
그렇다면 율법이 없는 이방인에게는 어떻게 율법을 완성할 수 있단 말인가? 창조의 영이 바울에게 임한 듯 하다. 바울은 그 율법이 바로 이방인의 모든 마음에 있는 양심이라고 해석한다. 이로써 바울은 유대인에게 국한 되어 있는 복음의 논리를 이방인, 세계 모든 보편 시민에게 적용되는 복음으로 확장한다. 기독교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오늘날 구원을 소유했다고 생각하는 기독교인, 그러나 복음의 열매와 차별성을 보여주기보다 구원의 확신에 사로잡혀 목소리만 높이기만 하는 것은 아닌가. 바울이 마주했던 유대인들의 강력한 배타적 선민의식과 오늘날 구원을 소유했다고 착각하는 기독인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방인은 지옥의 땔깜으로 치부했던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보수 기독교인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다. 3대 세습을 강력히 비판하지만 정교분리를 내세우며 하나님의 종은 세습도 가능하다는 모순적 입장을 공유한다. 그렇게도 열심히 새벽기도를 하는 강남의 교회들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 전문직 종사자들이 대다수의 교인을 이룬다. 강남의 노른자 땅이 복덩이가 되어 교인들의 재산이 늘고 교회 건물도 새롭게 짓는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부동산 값에 주거비가 올라 피눈물이 흐르는 데에는 공감을 하지 못한다. 그들이 가고자 하는 천국에는 대한민국 루저들은 들어 올 수 없다. 그들에게는 기쁜 소식을 전하려는 의지조차 없다.
오늘 한국교회 기독인의 표상중 하나는 구원의 확신이며 자기가 옳다 믿고 있는 의에 대한 자신감일지 모른다. 그런데 한국 교회 전체에게 비치는 모습이 이 땅의 눌린 자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지 못한다면 어쩌면 바울이 그토록 배격하고자 했던 자기의에 사로잡힌 공로주의자, 율법주의자의 모습과 우리는 얼마나 다를까? 이신칭의만으로 구원을 말하기에 이 시대는 너무나도 율법의 본질과 멀어져있지 않은가?
고민하는 분들에게 이 자리를 초대합니다.
* 3차 희년신학포럼 "바울 서신과 복음서의 구원론"
(발제:강인태, 토론:권연경)
* 개별참석(회원:오천 원, 일반:1만 원) 현장등록도 가능합니다.
* 희년신학포럼 일정확인 및 신청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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