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동을 배경으로 한 야담의 특성
이원걸(문학 박사)
(목차)
1. 조선 후기 사회 변동과 야담의 형성
2. 조상 추모심을 높임
3. 외조부의 음덕에 의해 성현 퇴계가 태어남
4. 영남의 문흥과 문벌 과시
5. 평범한 인물의 국난 극복 역량 고취
6. 가부장의 전형 안동 권진사
7. 신분을 초월한 사랑과 여성 의식의 향상
8. 맺음말
1. 조선 후기 사회 변동과 야담의 형성
조선 후기 우리 사회의 다양한 변화 과정 가운데 농업 경영상의 변화는 특히 주목된다. 이모작의 발달과 시비법의 개발 등으로 인한 농업 기술의 변화와 더불어 원예․특용 작물의 재배로 인해 농촌 사회는 분화를 촉진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부 농민 계층은 부농층으로 기반을 다졌지만, 대다수의 농민들은 소작농, 임금 노동자, 유민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는 「흥부전」에서 잘 확인된다. 흥부는 실제로 소작의 기회를 상실한 품팔이꾼이었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줄줄이 딸린 아이들의 입에 풀칠이라도 하게 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들에게 유일한 생계 수단은 품팔이 노동이었는데, 그 노동의 대가는 저임금이나 무보수 형태였으므로, 그들 가족의 최저 생활마저 보장될 수 없었다. 그래서 흥부는 남 대신 매를 맞고 보수를 받고자 매품꾼을 자청했던 것이다.
이러한 농촌 사회의 변화는 상업이나 광업, 수공업 등의 발달도 촉진시켰다. 즉, 토지로부터 이탈된 농민들의 이농 현상이 가속화된 것이다. 농촌 인구의 도시 집중화, 전국 각 지방 특산물과 재화가 도시로 집중되면서, 17-18세기 서울의 도시 규모는 매우 방대해진다. 그러다 보니, 당시의 서울은 무작정 살길을 찾아 이농해 온 빈민 집단, 몰락 양반들, 벼슬을 구하러 온 시골 한량, 풍각쟁이, 건달패, 유흥가의 기생들, 전문적 이야기꾼, 각양의 장사꾼 등이 서로 부대끼며 각박하게 살아가는 공간으로 변모하게 된다.
야담(野談)은 이러한 도시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해서 형성된 것이다. 특히, 야담의 형성 배경에는 이야기책을 낭독하는 강독사(講讀師)와 이야기를 노래로 구연하는 강창사(講唱師), 원래 이야기를 시청자의 구미에 맞게 재현해서 구연하는 강담사(講談師)들의 역할이 지대했다. 즉, 신흥하는 17-18세기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변모 양상을 동반한 각종 이야기들이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유전되다가, 이에 관심을 가진 계층에 의해 기록된 것이다. 기록을 담당한 이들로는 사(士) 계층뿐만 아니라, 중서층(中庶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이러한 시정 세태를 주목한 이야기는 19세기에 이르러 소위 3대 야담집으로 불리는 청구야담(靑邱野談), 계서야담(溪西野談), 동야휘집(東野彙輯)으로 집대성된다. 물론 이 외에 이본을 포함한 조선 후기 야담집은 수십 종에 달하며, 전체 이야기 숫자를 추정한다면, 중복되는 이야기를 포함하여 수만 종을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화집이 국내에만 산재(散在)한 것은 아니다. 우리 역사의 형편상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일본이나 유럽 등지의 도서관에 수장(收藏)된 것을 선학(先學)들이 학계에 소개하여 후속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이상에서 조선 후기 야담의 형성 배경을 언급했다. 원래 야담은 보고들은 것을 기록한 것 이라는 정의에서 보듯이, 17-18세기를 배경으로 한 우리 사회의 생기발랄한 시정 세태를 수용한 문학 양식인 바, 종래 전통적인 시문학에 비해 소홀히 취급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찍이 용재총화(慵齋叢話)의 저자 성현(成俔)은 야담을 비롯한 필기류는 경술과 문장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야담 역시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문무자(文無子) 이옥(李鈺), 담정(藫庭) 김려(金鑢)의 한문단편 못지 않게 우리나라 조선 후기 한문 소설사에서 응당 시민권이 부여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여러 야담집을 읽던 중, 안동 지역을 배경으로 한 작품과 안동 토박이를 작중 인물로 설정해서 서사된 작품을 접할 수 있었다. 물론 그다지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매우 흥미로운 내용들이었다. 안동을 배경으로 창작된 야담 작품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문학성과 시사성이 돋보인다. 작품에 담긴 작가 의식을 중심으로 이러한 면모를 검토하기로 한다.
2. 조상 추모심을 높임
해당 작품은 천예록(天倪錄) 소재의 것인데, 조상의 혼령들이 후대 자손들에게 현몽하여 조상 추모에 대해 소홀히 하고 있는 후손을 꾸짖고 무지를 개선시킨다는 것이다. 대본은 일본 천리대본 천예록 26․29화이다. 26화의 내용을 요약한다.
《26화-아둔한 후손이 여러 번 묘를 못 찾자, 엄하게 꾸짖다. 「答頑孫數其妄錯」》
①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이 안동으로 유배를 와서 태사 선평(宣平)의 묘소를 찾으려고 애를 썼다.
② 그러다가 안동부 벼슬아치의 안내로 봉분이 큰 묘를 찾아가 지석(誌石)을 파서 보았으나, 허사였다.
③ 그 날 밤, 그 벼슬아치는 꿈에 귀인에게 붙잡혀 가서, 자신 선조의 묘를 알아보지 못하고, 김상공 선대의 묘소로 착각해서 분묘의 흙을 파헤친 죗값으로, 볼기를 50대 맞고 꿈을 깼다.
④ 그는 꿈에서 깨어났으나 여전히 볼기의 통증이 심했으며, 하루가 지나서 차도가 있었다.
⑤ 이튿날, 그는 재차 묘소를 찾아가 지석을 찾았는데, 과연 그의 선대 묘소였다.
⑥ 그는 청음을 찾아가 전말을 상세히 알려 주었다.
위에서 두 가지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청음이 먼 조상의 묘소를 찾으려는 열성을 드러냄이며, 둘째는 귀신의 현몽을 통해 청음이 채 정승의 반열에 오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재상의 관작을 호칭함으로써 후일 그가 오르게 될 작위(爵位)를 예견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보아 전자에 더 큰 의미를 두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작중 안동부의 벼슬아치란 아마 안동 고을 수령이 아닌가 한다.
그가 유배 온 청음이 조상의 묘소를 찾겠다는 것에 감격하여 정체 불명의 묘소로 솔선하여 안내했는데, 그가 지석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선대의 묘소를 건드려 도리어 혼이 난 셈이다. 그는 비록 꿈이기는 하지만, 볼기를 50대나 맞는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물론 그는 이 덕분에 먼 조상의 묘소를 제대로 찾게 된다. 여기서 청음이 찾고자 했던 묘소의 주인공은 태사 김선평으로, 고려의 개국 공신이다. 그는 당시 고창군(古昌郡)의 성주(城主)였는데, 930년경에 권행(權幸)․장길(張吉) 등과 합세하여 고려 태조를 도와 후백제의 견훤을 이곳에서 물리쳤다. 이 전투를 병산전투(甁山戰鬪)라고 한다. 당시, 후백제 견훤의 군사는 일만 명이었고, 왕건의 군사는 삼천 명의 약세였으므로, 세 분이 지역세를 몰아 왕건을 지원함으로써 고려 건국에 이바지했던 것이다.
현재 삼태사의 사당인 태사묘(太師廟)는 안동시 북문동에 있으며, 묘소는 안동시 서후면 천등산 남쪽 기슭에 있다. 그런데 권태사 묘소는 현전하지만, 두 분의 묘소는 아직까지 미확인된 채 제단만 남아 있다. 위 본문에서 청음이 찾고자 했던 김태사의 묘소는 아직까지 찾지 못한 채 숙제로 남아 있는 셈이다. 다음은 29화의 내용이다.
≪제삿날 찢어진 옷을 입고 와서 음식을 먹다. 「忌辰會羞攝弊衣」≫
① 약봉(藥峯) 서성(徐渻)이 제사날에 신주 뒤에 앉아서 맏아들에게 바깥에 계신 세 분의
대감 혼령을 차례로 모셔오게 했는데, 세 분은 모두 평소 친하게 지내시던 분들이었다.
② 그런데 두 분의 의관은 매우 성대했지만, 세 번째 모신 혼령의 의관은 매우 남루했다.
③ 아들은 갑자기 제수를 준비할 수 없어서 술만 올렸는데, 세 혼령이 취해 돌아갔다.
④ 약봉의 아들은 남루한 차림의 혼령 아들과는 대물림으로 과거 급제 친구인 바, 그의 선친 염습에 관해 물었다.
⑤ 친구는 탄식하며 선친이 함경도 유배지에서 왜란을 만나 돌아가시어 시신 수습할 길이 없어 선친이 평소 입던 남루한 의관으로 염습해 드렸다며 울먹였다.
⑥ 그 다음 날, 약봉 아들의 꿈에 친구의 선친이 새 관복을 얻게 되어 기쁘다며 알렸다.
위에서 검토한 작품은 조상 묘소에 대해 소홀히 하는 후손들을 훈계한 반면, 이 작품은 조상의 염습시, 소홀함에 대해 권고하는 측면도 드러난다. 문면에 위 작품처럼 조상이 후손에게 볼기를 치게 하는 과격성은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잔잔하면서도 곡진하게 후손을 인도하는 선대의 정을 느끼게 된다. 선대 혼령은 유배지에서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수의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염습 당한 것이 늘 미흡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후손들에게 어떤 위해 행위도 가하지 않았다. 다만 친구 약봉의 기일을 빌미로 현시해 간접적으로 그의 민망함을 보임으로써 문제의 실마리를 원만히 풀고 있다. 문제 해결이란 아마 다른 야담집의 경우처럼 그 후손이 의관을 마련하여, 정결한 곳에서 그것을 불태우고 정성껏 제사를 올림으로써 마무리가 되었을 것이다.
이는 논어에서 상례(喪禮)와 제례(祭禮)에 있어 후손이 예와 정성을 다 해야 한다는신종추원(愼終追遠)의 의미를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위 두 작품의 서사 구조를 따져보면,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위 26화에서 사건의 해결을 받은 쪽이 안동 고을의 수령이고 보면, 여전히 마무리되지 못한 자는 청음이다. 그리고 29화에서는 해결되지 못했던 의관 문제가 결국 해소되었지만, 아들 친구의 간접적인 전달 루트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그러므로 두 작품에서 실제 주인공격에 해당하는 인물로 청음과 약봉의 아들 친구를 꼽을 수 있다. 엄격히 말하자면, 이 두 인물의 행동양상을 제대로 보도하자는 게 작가의 본연 의도라는 점이다. 작가는 혼령으로 하여금 안동 고을 원님의 볼기 50대를 치도록 방치한 이면에는 청음 후손의 조상 묘소 관리 소홀에 대해 질책의 의미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약봉 친구의 경우에서도 혼령이 불만을 후손들에게 끝내 현시하지 않았던 점은 결국 후손들에 대한 반감 의식의 역설적 표출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혼령은 시종 후손과는 외면한 채 친구 아들에게 불만을 해소하도록 했으며, 일이 다 해결된 뒤에 친구 아들에게 다시 현몽하여 사례를 표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후손들로 하여금 조상을 추모하는 마음을 고양시키려는 의지가 투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3. 외조부의 음덕에 의해 성현 퇴계가 태어남
이 작품은 청구야담에 실린 것으로, 여러 야담집에 동시에 실려있는 작품이다. 다소 신이적인 장치가 구비된 작
품인데, 퇴계 외조부의 음덕에 의해 동방의 대현(大賢) 퇴계가 태어났다고 결말짓고 있다. 문제는 이 작품의 지리적인 배경이 함창(咸昌)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언급한 것은 안동을 다루면서 퇴계를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안동과 함창이 다소의 지리적으로 거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이 작품은 퇴계 탄생 배경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함께 다루게 되었다.
≪큰 현인을 내리려고 선녀가 산실을 정해주다. 「降大賢仙娥定産室」≫
① 퇴계의 외조부는 살림이 요족하고 후덕해서 고을 사람들이 영남부자(嶺南夫子)라고 불렀다.
② 그런데 엄동설한의 어느 날, 문둥병 걸린 여인이 하루 밤 재워달라고 간청했다.
③ 온 집안 식솔들이 매우놀랐으나, 퇴계 외조부는 자신의 방에 데려와 윗목에 자도록 허락했다.
④ 여인은 아랫목까지 다가와 노인의 이불 속에 발을 넣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노인은 여인의 발을 밀쳐냈다.
⑤ 이튿날, 여인은 인사도 하지 않고 슬그머니 사라졌다가, 몇 일씩 건너 와서는 재워달라고 했다.
⑥ 그래서 온 집안에 소동이 일어났으나, 노인은 전과 같이 대해주었다.
⑦ 하루는 그 여인이 선녀로 변해서 노인을 시험했다고 말하며, 둘이 전생의 인연이 있으니 부부 인연을 맺자고 하 고 그 날부터 노인과 동거했다.
⑧ 열흘이 지나자, 헤어질 기한이 되었다고 하면서, 안뜰에 산실을 지어서 동성(同姓) 산부(産婦)를 거기서 해산하도 록 하라고 지시하고는 이내 사라졌다.
⑨ 노인은 그 말대로 만삭의 딸을 거기에 들여보내 해산케 했는데, 거기서 태어난 분이 퇴계였다고 한다.
서두에서도 언급했지만, 전체 문면에 허구와 신이적 요소가 짙게 깔려있다. 물론 이 야담이 퇴계의 탄생과 직접적인 연관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퇴계 외조부의 인간미는 높이 살 만하다. 당대에 있어 문둥병은 천형(天刑)이었다. 문둥병에 걸린 채 걸인과 다를 바 없는 천한 인생을 온 식구들이 문전 박대하지만, 그 노인은 도리어 식솔들을 설득한다.
노인장께서 말씀하셨다. 내쫓지 말아라. 저 여인네가 비록 몹쓸 병에는 걸렸으나, 이처럼 날이 저물고 날씨마저 매서운데 어찌 내쫓을 수 있을꼬? 우리 집에서 안 받아주면, 어느 집에선들 받아주겠어? 게다가 밤도 깊었으니, 저 여인은 추위에 떨다가 얼어죽게 될게다. 그러고는 차마 내보낼 수 없어 자신의 방에 불러들여 윗목에 재워 주었다.
진한 인간애가 절로 우러나오는 대목이다. 실제로 누구도 이 상황을 쉽게 수용할 만한 여건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걸인 문둥이 여인의 딱한 신세를 외면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여인의 요청은 몇 일을 건너 계속되었기에, 온 집안에서는 대소동이 벌어진다. 그렇지만, 노인의 후덕은 조금도 변함 없이 그대로 적용되어 급기야 그 여인을 탈각(脫殼)하도록 한다. 곧, 그녀는 인간 최악의 추한 형상에서 가장 이상적 미인인 선녀로 변신한다. 그런데 이 선녀의 시험 과정에서 노인이 단 한 차례라도 그녀에게 박대를 했다면, 이는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녀는 여러 차례에 걸쳐 그를 시험하여 그가 인간미 넘치는 위인임을 확인하고 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중간 부분에 선녀와 노인의 재미난 로맨스가 삽화되었다. 실상 이 여인은 첫날부터 방의 윗목에서 아랫목까지 노인의 잠자리 영역을 침범하는 대범함을 보였는데, 이는 장차 이러한 만남의 계기를 제공하려는 일종의 복선적 장치라고 봐야 할 것이다. 선녀로 변신한 그 여인은 대뜸 둘의 전생 인연을 운운한다. 이를 빌미로 선녀는 열흘 간 노인과 동침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 노인과 여인의 열흘 간 애정 행각이 추하게만 보여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둘의 관계는 애당초부터 범상한 그런 차원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느 인간이 감히 할 수 없는 문둥이 여인을 포용한 노인, 그리고 그 인간미에 감복한 선녀의 지고한 애정이 합치되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이 작품의 미학이 담겨있다고 본다. 다음은 선녀가 노인에게 보은을 실천하는 단계인데, 퇴계의 탄생으로 종결된다. 실제로 퇴계도 선대의 이러한 후덕과 못지 않게 인간애를 실천한 분이었다. 퇴계언행록」과 행적에 보이는 수많은 미담과 일화는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곧, 위대한 성현 퇴계의 탄생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님을 확인해 주는 사례라 하겠다.
4. 영남의 문흥과 문벌 과시
예로부터 영남은 문흥의 고장이며, 족세를 형성한 족성(族姓)을 중심으로 각자의 문벌을 중시하고 과시하려는 욕구가 강했다. 안동을 배경으로 한 야담에서도 이런 경향은 예외가 아니었다. 예천과 순흥, 안동의 지인(知印)들이 모여 자기네 고장 출신 지인 자랑으로 의기투합을 하기도 하며, 자기 남편의 벼슬이 서로 뒤지기를 싫어하는 두 자매의 전형도 부각된다. 세 지인들의 소란 현장을 탐방한다.
≪세 지인이 다투어가며 자기 고향 자랑을 하다. 「三知印競誇渠鄕」≫
① 영조 때 경상감사가 순흥을 순도(順到)하다가, 부석사를 유람함에 순흥․예천․안동 지인이 각 수령을 모시고 왔 다.
② 안동의 아전이 순흥 지인에게 별미를 주며, 맛을 보라며 거드름을 피우자, 화가 난 순흥 지인이 안 문성공이 안 동을 지날 때, 그 아전의 선대가 그에게 발을 씻긴 역사가 있다고 대항하자, 안동 지인이 발끈했다.
③ 그때, 곁에 있던 예천 지인이 두 지인을 둘러보며, 예천 지인 출신 인물을 들어 두 지인을 억누르려고 하였다.
④ 결국, 판결이 나지 않자, 세 고을 수령이 이마를 맞대고 합의하여, 예천 지인이 이겼다고 판정했다.
경상감사의 지방 순찰에 세 고을 원과 하속이 순흥의 부석사에 모였다. 처음부터 사단은 이웃 고을에 온 안동의 아전이 맛난 별미를 먹고 남은 음식을 순흥 지인에게 평소 맛을 못 보았을 것이라 고 생각하고 준 데서 시작된다. 순흥 지인은 안문성공(安文成公)을 내세워 지방색을 과시한다. 순흥 지방의 거유(巨儒) 안향을 내세워 안동 지인을 압제하려고 안간힘을 썼더니, 옆에서 지켜 보던 예천 지인까지 합세해서 두 고을을 짓누르려고 한다. 예천 지인은 예천 지인 출신으로 고관을 누렸다는 인물을 들어 결국 압승을 차지한다는 이야기이다.
위에서 두 가지 면모를 읽게 된다. 애향의식의 표출과 함께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의 문흥의식(文興意識)을 드러내고 있다. 애향심은 매우 건설적 발상이라 할 수 있다. 위 문면에 등장하는 세 지인들은 막무가내의 의기투합은 매우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하속 지인 세 명이 모여 자기네 고장 출신 지인의 출세 영역을 잣대로 해서 세 고을의 우열을 일시적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이 투합은 결국 세 수령까지 동원되어 해결이 되었지만, 한편으로 매우 우스꽝스러운 정경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작가는 세 지인의 아둔한 행각을 빌어 순흥․안동․예천 곧, 영남권의 문흥과 인물배출 역량을 이 작품에 간접 투시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 세 공간이 한국 유학의 자양지(滋養地)였음도 동시에 부각시킨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것이 다만 좁은 무대 공간에서 소수 특정인에 국한되어 단선적으로 공연되었을 뿐이다. 이것을 확대해서 보면, 결국 당대 영남 문화권의 지적 역량과 인물 배출 양상의 과시라는 대형 타이틀로 자리 매김이 된다. 다음은 남편의 출세와 관련된 두 자매의 투합 양상이다.
① 안동에 강록사(姜錄事)는 가세가 넉넉했고, 두 딸이 있었는데, 어려서부터 갑을을 다투며 일체 양보를 모르는 채 자라났다.
② 첫째 딸은 김씨에게 시집을 가서 남편의 벼슬이 침랑(寢郞)이 되었다.
③ 둘째 딸은 안씨에게 시집을 갔는데, 남편이 발신(發身)할 도리가 없고 언니에게 뒤진 것을 늘 통한해했다.
④ 그런데 어미의 고민을 안 아들이 어미에게 3천냥을 얻어 이조참판의 상행길에 동행하며, 곤란에 처한 자를 도우 는 의기를 보이고 찾아뵙고 부친의 미관말직을 부탁하여 안씨는 재랑(齊郞) 벼슬을 얻었다.
⑤ 이에 둘째 딸은 남편을 부임하지 않게 함으로써 남편의 벼슬이 형부보다 한 등급 높게 되자, 의기양양했다.
이 작품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한 인물은 둘째 딸이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언니와 서로 다투면서 이해와 타협을 모르는 극한 이기적 인간이었기에, 그 성행은 시집을 가서도 종결되지 않는다. 이제 그녀의 경쟁 심리는 한 가정 내의 사소한 것이 아니라, 남편의 출세 경쟁심으로 확대되는데, 형부가 침랑의 말직을 얻자, 그 못된 심보가 다시 발동된다.
안씨 부인은 한 가지 일이 언니를 따라잡지 못하자, 곡기를 끊고 죽기를 작정하고 꽁꽁 앓았다.이 팔자는 어려서부터 여태까지 한 번도 언니에게 져 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 가장의 문벌이 언니를 따라 잡지 못하니, 내 창피하여 어떻게 살아갈꼬?
어쩌면 이 여인은 언니와의 무한 경쟁을 위해 태어난 존재로 착각할 정도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형부의 승진을 축하하지는 못할 망정 이렇게 못된 심술을 부려대는 몰골이 몹시도 얄밉다. 그녀에게는 남편의 문벌이 낮은 것이 이처럼 고통스럽다. 물론 이 고충은 아들의 교묘한 술책에 의해 해소되는데, 형부보다 자기 남편의 관직이 한 등급 높게 되자, 그녀는 더 이상 경쟁을 하지 않는다. 마무리가 매우 싱겁게 처리된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핵심 사안은 그녀의 고집불통 경쟁 심보를 질책함이 아니라, 해학 수법 뒤에 담긴 작가의 본 의도는 문벌 의식의 고집이라고 볼 수 있다. 극히 사소한 미관말직에 아웅다웅하는 속물 근성을 들어서 문벌을 중히 여기는 당대 안동 지방의 유풍(遺風)을 표현한 것으로 봐야 논리가 성립된다.
왜냐하면, 작가가 그녀의 못된 소행을 궁극적으로 강조한 것이라면, 그녀는 남편을 극구 임지로 보내야만 했고, 향후에도 그 못된 소행을 지속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 이후의 행동은 여기서 더 이상 포착되지 않는다. 결국 이 작품은 해학성을 구비한 문벌의식의 강조로 귀결된다고 하겠다. 위 작품과 연결한다면, 당대 영남 문화권의 문흥․문벌 과시 욕구가 일련 작품 속에 간접 투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5. 평범한 인물의 국난 극복 역량 고취
우리 역사상 국가적 위기 앞에 수많은 인물들이 애국의기를 드러내었다. 국난 극복에 있어서 전 국민적 참여하에 숱한 국가위기가 극복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역사의 뒤안길에서 평범한 인물들이 국가위기 극복에 있어 상당한 역할을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간과되는 안타까움이 있다. 즉, 무명 인물들의 애국의기가 역사 무대에서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야담과 야사에서는 이러한 인물들의 애국 역량을 대체로 주목하고 있다. 이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인물로, 서애 유성룡의 숙부를 들 수 있다.
《왜놈 중을 혼낸 유거사의 선견지명. 「劫倭僧柳居士明識」》
① 유거사(柳居士)는 안동 사람 서애의 숙부로, 평소 행색이 어리숙하며 과묵했다.
② 하루는 서애와 바둑 내기를 해서 세 판 거듭 이겨 서애를 굴복시켰다.
③ 서애는 그가 비범함을 알고 지도 받기를 자청하니, 그는 몇 일 뒤 괴이한 중이 찾아오면, 절대 집 안에 재우지 말고 자기가 거처하는 암자로 보내라고 당부했다.
④ 서애가 그 말대로 했더니, 숙부는 놈이 왜놈 첩자임을 밝히고는 혼을 내며 임란 시, 왜놈들이 안동 지역을 범치 못하게 당부하고는 보냈다.
⑤ 임란에 서애 숙부의 덕으로 안동 지역은 왜놈들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서애는 평소 숙부에게 비범한 역량이 숨어있음을 채 인식하지 못한다. 그런데 어느날, 평소 아둔한 숙부가 내기 바둑을 걸어와 세 판이나 연승함으로써 조카를 굴종시킨다. 이로써 서애는 숙부의 비범성을 인정하게 되었으며, 그에게서 향후 계책을 의논하기에 이른다. 그 계책이란, 풍신수길이 서애를 암살하러 보낸 왜놈 첩자를 징치하는 일이다. 만약 서애가 그 왜놈 중을 자기 숙소에 재워줬다면, 그는 암살 당했을 것이고, 그 여파로 조선은 엄청난 화근을 자초했으리라는 것이 작가의 작품 서사논리이다.
그러나 평소 어리숙한 숙부의 비범한 역량은 놈의 계획을 무산시키고 도리어 조선에 출중한 인물들이 번뜩이고 있음을 경고하면서, 애국 의기를 드높인다. 숙부는 왜놈을 암자로 유인한 뒤에 놈을 제압하고, 대국적인 의기를 마음껏 발휘한다.
거사가 길게 한숨짓고 탄식하면서 위협했다. 우리나라에 칠두(七斗)의 화가 있게 됨은 하늘 운수에 달렸다. 내 네 한 놈 죽이기는 어린 병아리나 썩어빠진 쥐새끼 같이 쉬우니, 죽인들 무익하다. 네놈을 살려보내니, 이후로, 네놈들이 한 발자국이라도 안동 땅을 침범하면, 모조리 휩쓸어 전멸시킬 것이니, 속히 달아나거라!
임란을 배경으로 한 야담의 일면이다. 실제의 임란에서는 우리 민족이 위기일로였지만, 작중 주인공은 신출귀몰한 재주를 지녔을 왜놈 첩자를 수완이 있게 제압하고 완승을 거두어 통쾌한 장면을 독자에게 공개한다. 그것도 일개 평민 신분으로서 애국적 역량을 유감 없이 발휘하여 대리 징치감을 누리게 한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국난 극복의 주체 세력을 종래 지배계층에 국한하여 배려한 국면을 선회하여 평범한 인물들에게도 출중한 전투 역량이 잠재되어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작중 서애는 민첩한 숙부와는 대조적인 인물로 투영되어 있다. 곧, 서애는 당대 지배 계층의 전형적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는 점이다. 도리어 숙부의 지대한 역할은 서애를 능가하는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례는 당대 야담의 여러 곳에서 보여진다. 임란 시에 우리나라에 원병 온 명나라 제독 이여송이 평양을 탈환하고, 그곳의 명승을 탐내어 몰래 조선왕을 없애버리고 스스로 왕이 되려는 흑심을 품게 된다. 그런데 이여송이 연광정에서 성대한 잔치를 벌이는 중, 결례를 범한 무명의 노인에게 유인되어 혼이 난 뒤에 그 망상을 버리는 것도 이런 부류라 할 수 있다. 무명 노옹이 이여송의 조선 탈취 음흉을 조기에 제압하여 포기시킨 것이다.
결국 작가는 무명 노옹에게 무장 이여송을 넉넉히 압도할 수 있는 역량이 숨어있음을 과시함으로써 명나라가 평양을 넘보는 실책을 미연에 방지케 한 것으로, 이 역시 민족 의기를 드러낸 것이다. 문제는 안동과 평양이라는 지역 안보에 약간 편중된 감이 있다. 그렇지만 작가가 국가의 총체적 위기에서 평범한 인물의 비범 역량과 활약상을 조명함으로써, 국토 수호애와 애국 역량의지를 결집하려고 한 점은 높이 평가된다. 이러한 무명 인물들의 애국 잠재역량이 뒷날, 일제치하에의 항일운동으로 구체화되었음은 물론이다.
6. 가부장의 전형 안동 권진사
이는 조선 후기 모든 종류의 야담집에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즉, 동패락송․기관․계서야담․청구야담․선언편․동야휘집 등에 골고루 실려 있을 뿐 아니라, 여타 화집에도 예외 없이 실려 있다. 그리고 작중 전달하기 어려운 권생의 축첩 행위를 엄격한 권진사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고담」을 빌어 전달하면서, 이 이야기의 제목을 「고담(古談)」으로 달았는데 선행 연구된 바 있다. 이 이야기는 그만큼 당대에 있어 많은 독자층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안동이라는 지역 설정과 토성(土姓)이며 강성(强姓)인 안동 권진사를 내세움으로써, 안동 양반 가문의 전형적인 가부장제의 유풍을 잘 보여주며, 구성 또한 매우 치밀하다.
≪엄한 시아버지가 두려워 사나운 며느리가 맹세의 말을 제출하다. 「畏嚴舅悍婦出矢言」≫
① 안동 권진사는 성품이 지엄하고 치가에 법도가 있었으며, 외아들을 두었는데 며느리는 성깔이 사납고 투기가 심 했다.
② 권생이 처가댁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비를 만나 객점에 들렀는데, 먼저 온 젊은 청년을 만나 술을 주고받다 가 먼저 곯아 떨어졌다.
③ 깨어나니, 18․9세쯤 되어 보이는 소복(素服) 차림의 여인만 곁에 앉아 있기에 연유를 물었다.
④ 그녀는 원래 서울 양반 가문의 딸로, 14세에 출가해서 15세에 청상과부가 되었고 부친마저 작고해 오라버니에게 의탁해서 살아왔는데, 오라버니의 계교로 개가할 대상을 찾아다니다가 여기에 이르렀다는 사연을 듣고 인연을 맺었다.
⑤ 권생은 엄한 부친과 못된 성깔의 부인을 의식해서 사실을 아뢸 수 없어 고민을 하다가 꽤 많은 친구를 찾아가 그녀와의 기연(奇緣)을 설명하고 대책을 물었더니, 친구는 주연을 베풀어 권생을 초대했고, 권생도 부친의 허락 을 얻어 친구들을 초대해 주연을 가졌다.
⑥ 친구는 주연에 권진사를 초청했고, 권생의 기연을 「고담」으로 엮어 권진사에게 들려준 뒤에 이야기의 주인공이 권생임을 알려준다.
⑦ 권진사는 안색이 변하며 대뜸 마당에 자리를 깔고 작두 위에 권생의 목을 올려놓게 하고는 엄중히 문책하며 하 인에게 작두를 밟으라고 명한다.
⑧ 이에 권생의 모친과 며느리는 땅에 머리를 박아 피를 흘리며 아뢰다가, 노부인은 피하고 며느리만 남아 권진사 에게 아들의 소행을 용서해 주고 목숨만 살려달라며 애걸한다.
⑨ 권진사와 며느리는 계속 실랑이를 벌이다가 며느리가 「그녀를 소실로 맞되 평생 동안 투기를 부리지 않겠다」는 맹세문을 쓰자, 권진사는 권생의 비행을 용서했고, 궐녀를 권생의 소실로 맞았다.
작중 대표적인 인물로 권진사․며느리․권생․궐녀 오라버니․권생의 친구를 들 수 있다. 나머지 인물은 보조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청상 과부인 누이동생의 새 인생모색을 추구하는 오라버니의 신흥 가치관이 당대 전통적인 가부장의 권위를 행세하려는 전형 인물인 권진사와 맞닥쳐 상호 팽팽한 대립을 유지하다가 결국 가부장의 권위 아래 모든 실마리가 해결되는 과정을 묘사한 작품이다. 그런데 작중 난제 해결 과정에서 세 차례의 속임수(Trick)이 구사된다. 그러면서 상호 긴밀한 조응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전체 작품의 서사 단계를 재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오라버니의 누이동생 개가를 위한 속임수를 실행함(객점을 찾아든 권생의 신분확인 및 개가 대상의 적격자임을 확 인함-술에 곯아떨어지게 하여 누이동생과 합방시킴-은 500냥을 둔 채 도주함--내행의 행차로 가장함)
② 권생의 친구가 권생의 비행을 권진사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의 속임수를 실행함(먼저 친구를 초청해서 주연을 가짐 -이어 권생이 친구들을 초대하도록 함-술좌석에서 권생의 비리를 고담으로 들려줌--권생의 비행을 고담으로 속여 전달함)
③ 권진사가 며느리의 투기심을 굴복시키고 권생의 비행을 수용함(마당에 자리를 깔고 권생을 작두판 위에 올려두고 협상함-며느리의 투기 안 부리기 각서를 받고 사건을 마무리짓다--작두 아래 권생 목을 미끼로 며느리의 투기심을 낚아챔)이다.
여기서 3단계의 트릭이 구사되고 있다. 각 단계에 소용된 소도구는 내행․고담․작두라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실제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권진사와 며느리로 집약된다. 물론 전반부의 궐녀와 오라버니는 애당초 사건을 유발한 장본인들이지만, 이 작품을 전반적으로 이끌어 간 인물이라고는 볼 수 없다. 초반 무대에서 사건 전개의 계기를 제공하고 그 바톤을 후반부의 두 인물에게 넘겨 문제를 해결케 했던 셈이다.
그렇다면 본 작품에서 실제 주인공으로 권진사를 지목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그녀를 맞아들이고, 며느리의 독한 투기심을 이 기회에 말끔히 제거하는 작업, 아들놈의 맹랑한 도전 행위를 여유 있게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권위에는 조금도 손상을 입지 않은 능란한 수완은 이를 입증하고도 남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권진사가 그렇게 자신의 권위를 고수했지만, 결과는 궐녀를 수용하였다는 데에 있다. 이 점은 남성이 아닌, 여성들의 목소리를 청취해야만 풀려진다.
먼저 궐녀는 당대 남성위주의 가치관 즉, 여성의 개가는 절대 엄금하고 수절녀는 적극 선양한 반면, 사대부가의 축첩 행위는 정당시된 모순 논리에 대해 거부하는 여성이었다. 실상 당시 사회가 열녀를 선양하고 개가를 엄금한 이면에는 사대부가 남성들의 비인간적 추태가 도사리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다음 여성은 권생의 본처이다. 그녀는 남달리 질투가 심했다고 한다. 서두에 소개되는 그 성행은 후반부에 전개될 상황을 위한 복선이다. 이는 유교적 질서에 의하면, 응당 칠거지악(七去之惡)에 해당하는 죄목이었다. 그러나 이 여인의 투기를 단지 추잡한 것으로 치부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녀는 시아버지 권진사에 의해 남편의 목을 미끼로 소실을 맞이하되, 절대 투기를 부리지 않겠음을 공개적으로 강요당한 여인이었다. 그렇다면 그녀가 한 가장을 두고 자기가 차지해야 할 남편에 대한 애정의 몫이 타의에 의해 강압적으로 소실에게 분배되어지기를 강요당한 자체는 역설적으로 분배 당하기를 거절한다는 소극적 저항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타의를 조종하는 인물은 역시 권진사이다.
그러므로 주인공 권진사는 두 여인의 희망 사항인 개가와 전통적 질서에 대한 불순종을 한 손에 움켜잡고 도도히 버티고 서있는 당대 남성 편향주의를 대표하는 전형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위 작품은 개가를 문제화하되, 여성들과 남성들의 대결양상을 그린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미미한 여성들의 권익 옹호 의지가 당대 차별적 질서를 고수하던 기존의 완강한 남성위주의 질서관에 전달되면서, 소극적 저항의지로 표출된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기존의 엄청난 장벽이 이를 조소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작가는 여성의 인권이 기존 규범적 질서에 무시․억압당해지는 것에 대한 반발작용으로 이를 작품화하되, 자신의 권익옹호를 주장하는 여성들의 음성을 작품에 반영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를 저지․차단하는 완강한 목소리도 동시에 포착함으로써 구 가치관이 여전히 득세하고 있던 당대 안동 가부장의 전형 권진사를 재확인시켰다. 여기에서 안동은 당시 18․9세기 새로운 가치관이 일어나던 정황하의 서울과 지리적인 대칭을 이룸으로써, 신․구 가치관의 대립 양상과 구 가치관이 여전히 득세한 당대의 현실을 뚜렷이 각인해 내는 데에 일정한 기여를 했다고 본다.
7. 신분을 초월한 사랑과 여성 의식의 향상
위에서 검토한 안동 지방의 야담은 너무 고답적인 인상을 준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신분을 넘는 남녀의 진솔한 애정을 반영한 것도 있으며, 남성들의 완력 앞에 굴종하지 않은 여성들의 작품도 있다. 이제 마지막 대목에서 이런 점을 부각해 보기로 한다. 성수총화(醒睡叢話)의 내용을 요약한다.
① 조판서의 처가가 안동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외아들이 외가를 다녀오다가 시냇가에서 빨래하던 송 처녀를 보고 반 하여 거의 미칠 지경에 이르게 된다.
② 급기야 소년은 꿈에서 그녀를 만나 정표로 시를 건네준다.
③ 그는 도저히 그녀를 만날 길이 없어 주막집 노파의 손녀딸로 변복하여 그 처녀의 집에 가서 그녀를 만났는데, 놀랍 게도 그녀도 그와 같은 꿈을 꾸었다고 한다.
④ 그런데 그녀가 백정의 딸이라는 점인데, 둘의 사랑은 이미 가열되어 떼어놓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⑤ 둘은 장래를 약속하고 운우지락을 누린다. 소년은 상경했지만, 그녀를 못 잊어 상사병으로 위중지경에 이르는데, 늦 게야 부모들이 알고는 어림없는 일이라며 단언한다.
⑥ 때마침, 조판서의 친구 송진사가 관내에 머무르다가 조판서로부터 이 딱한 사정을 듣고 계책을 꾸몄다. 즉, 안동 송 백정의 딸을 일전에 폭사한 자기 딸로 속여 서울로 데려와 갑작스런 혼례를 치르게 함으로써 둘은 부부로서 해로 했다.
이 작품은 신분의 장벽을 극복하고 고귀한 사랑을 이룬 남녀의 애정 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전체 작품의 짜임새도 매우 긴밀하며 필연성과 개연성도 잘 구비되어 있다. 작품 분량면에서 장편이어서 이른바 소설화된 야담이다. 서울 판서댁 미소년이 안동 어느 개천에서 빨래하던 처녀의 미모에 반해 급기야 신분 장벽을 헤치고 둘의 사랑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기성 세대의 트릭 구사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신분 장벽은 조 소년과 송 처녀가 감히 접근할 수 없는 한계였으며, 위험 부담 그 자체였다. 중간에 신이적 장치인 몽중 연애 행각이 다소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나머지 대목들은 대체로 현실성을 구비한 작품으로, 조선 후기 우리 사회 신분 계층의 추동 양상을 보여준다. 주목되는 것은 조생의 끈질긴 애정 집념이 신분 극복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는 그녀가 백정의 딸이란 점을 그다지 문제삼지 않는다. 목숨을 담보한 조생의 집념이 결국 백정과 사족의 장벽을 극복한 사랑의 완성으로 결집된다. 청구야담에는 과부의 보쌈 이야기가 흥미롭게 전개된다. 대신 보쌈 당한 권진사의 횡재담이다.
① 안동의 권진사는 빈천한 처지에 일찍이 상처하여 슬하에 한 점 혈육마저 없는 고적한 홀아비 신세였는데, 이웃의 상민 과부는 살림이 꽤 넉넉하였으며, 그의 처지를 늘 동정해 왔다.
② 그런데 어느 날, 이 홀아비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여 배불리 먹게 하고는 서로 옷을 바꿔 입고 장난을 치자고 하자, 권진사는 시키는 대로 따라했다.
③ 그녀는 잠시 밖에 나갔다고 올 테니, 기다리라고 하고는 나갔는데, 도무지 소식이 없었다.
④ 삼경이 다 될 무렵에 건장한 사내놈들이 방에 들이닥치더니, 그를 이불에 둘둘 말아 둘러매고는 달아났다. 그제야 권진사는 과부가 자기를 대신 보쌈 당하게 했음을 알고 묵묵히 놈들의 행동을 따랐다.
⑤ 보쌈을 주도한 놈은 같은 마을의 이방 놈이었는데, 그를 이방 딸의 방에 넣어 하룻밤을 지내게 했다. 권진사는 오래 홀아비로 지낸 터에 미인과 합방하자, 정이 동해 그 날 밤 이방 딸과 인연을 맺었다.
⑥ 이튿날, 권진사는 이방에게 불호령을 낸다.사위를 맞으려면, 행색을 갖출 것이지, 무엇이 이다지도 무엄할까?라 며 선수를 치자, 이방은 사색이 되었다.
⑦ 결국 권진사는 이방의 딸을 정실로 맞고, 상민 과부를 후실로 삼아 일생을 편안하게 지냈다.
이 역시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트릭이 구사된 작품이다. 과부녀는 이방놈이 보쌈해 올 것을 미리 감지하고 대처해 위기를 모면했을 뿐 아니라, 홀아비 권진사를 이방 딸과 결연시키는 이중 효과를 획득한다. 즉, 한밤중에 이방 졸개들이 월장해서 과부를 보쌈 하러 오다. → (과부를 훼절시키고 축첩하기 위함) ← 이씨는 권진사를 자신처럼 변복시켜 대신 보쌈 당하게 하여 이방 딸과 결연됨의 대응 구조를 이룬다. 그런데 문제는 이방댁 식구들이 과부대신 보쌈 당해 온 권진사를 아가씨 방에 두고 그녀와 하룻밤을 지내게 한 데에 있다. 이 날 밤에 과부의 역습 트릭이 실현된다.
이방의 망상이 졸지에 홀아비 권진사를 사위로 맞게 되는 희극을 연출한다. 일련 과정에서 과부녀의 재치있는 행동이 돋보인다. 일반 야담집의 이런 경우는 과부녀가 위기 모면책으로 자결을 하거나, 죽지 못해 보쌈에 응하는 정도였지만, 작중 그녀는 대담무쌍하다. 주도면밀하게 권진사를 유인하여 대리 보쌈을 당하게 하여, 이방놈의 소행에 응분의 보복을 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남성인 권진사를 택해 제2의 인생을 개척한다. 말하자면 배우자 선택을 타의에 의해 강요당한 것이 아니라, 손수 선택하는 개방적인 사고를 지닌 여성이었다. 그리고 당대 봉건 윤리에 맞서 정면 대결을 시도하여 목적한 바를 이루는 담찬 여성 형상이라 할 수 있다.
8. 맺음말
조선 후기 우리 사회의 변동 양상과 야담의 형성 배경을 토대로 여섯 항목에 걸쳐 안동을 배경으로 해서 창작된 야담의 양상을 살펴보았다. 물론 이 이야기들은 안동 지방의 문집류에는 전혀 보이지 않은 것이다. 일본이나 유럽 등지의 도서관에 수장되었다가 역수입되어 학계에 알려진 작품들이다. 야담이 17-18세기 우리 사회의 역동하는 변화 양상을 여실히 반영한 문학임이 분명한데 안동을 배경으로 창작된 야담에 그런 생동감은 다소 감소되었음을 볼 수 있다. 유교의 고장 안동이라는 면모와 그러한 정서가 위 몇 편의 야담에 잘 반영되어 있다.
조상에 대한 추모심 선양은 조상의 음덕에 의해 후손들이 복을 받는다는 논리로 전개되었으며, 인재의 고장 영남의 문흥과 문벌의식도 강조되고 있었다. 주목되는 것은 서애 숙부를 통해 안동이 강직한 선비의 고장이라는 면모를 재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애국 역량이 후일 안동에서 민족의 선각자를 어느 지역 못지 않게 많이 배출해 내었으며, 항일 투쟁에 있어서 깐깐한 선비 형상으로 부각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안동 권진사는 철저한 가부장의 전형 인물이었다. 그러한 인습이 아직도 우리 사회 도처에 남아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권진사와 며느리의 팽팽한 긴장 관계는 언제든지 우리 사회를 어둡게 할 요소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상호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구태의 그런 관계는 마땅히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조생과 백정딸의 아름다운 사랑과 과부녀의 담찬 행동은 위 야담들과는 다소 시각을 달리한다. 즉, 남녀의 애정을 축으로 해서 부수적으로 파생되는 문제는 충분히 극복될 수 있다는 논리를 제공한다. 서울 사족(士族) 조생과 안동 상민녀(常民女)의 결합은 당대 우리 사회 계층 구조 변화의 한 양상을 충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며, 남녀의 애정 구가는 인간 성정의 진솔한 표출임을 수긍한 일면이기도 하다. 그리고 과부녀와 홀아비 권진사의 결합 과정에 드러난 궐녀 형상은 여성에게도 남성 못지 않은 인간적 권리와 삶의 선택권이 있음을 보고했으므로 역사적 전진성을 갖는다.
출처 : 이원걸, [조선 후기 야담의 풍경], 도서출판 파미르,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