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科學者의 세상읽기] 지구 식혀줄 萬能해결사? 비행기도 띄운 배터리의 限界

[黑面書生]

2022. 10. 14 

배터리에 저장된 에너지로 하늘을 나는 전기 여객기가 개발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이비에이션(Eviation)이라는 모험적 스타트업이 설계·제작한 9인승 ‘앨리스(Alice)’가 지난 9월 27일 미국 워싱턴주에서 첫 시험 비행에 성공했다. 8분 동안 고도 3500피트(1066m)까지 비행했다. 물론 온실가스는 한 톨도 배출하지 않았다. 리튬이온 배터리를 사용하는 앨리스는 30분 충전으로 1시간 동안 비행한다.

휴대폰과 같은 작은 전자제품에나 사용하던 배터리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지구를 식혀주는 만능 해결사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배터리는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내연기관을 대체하는 전기자동차의 핵심 기술이다. 충전 시간과 중량을 줄이고, 충전량을 늘리는 것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폭발·화재 위험을 제거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온실가스를 뿜어대는 비행기 타기를 거부하는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환영할 정도로 친환경적인 전기 여객기의 개발에도 꼭 필요한 일이다.

▲ 지난 9월 27일 시험 비행에 성공한 이스라엘 스타트업 이비에이션의 전기 여객기 ‘앨리스’. 30분간 충전한 배터리를 동력으로 1시간 동안 비행했다. / 뉴시스

화학으로 작동하는 배터리 

1800년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알레산드로 볼타가 처음 발명한 배터리는 금속이 가지고 있는 ‘전자(電子)’를 이용해서 전기를 만들어낸다. 배터리는 ‘-극(음극)’의 아연 금속이 이온으로 산화(酸化)되는 화학반응에서 방출되는 전자를 이용한다. 전기 회로를 거쳐 ‘+극(양극)’에 이동한 전자가 전해질 수용액 속에 녹아 있는 구리 이온을 금속으로 환원(還元)시켜 준다. 전통적인 건전지·축전지를 비롯해서 1990년대 말까지 널리 사용되던 알칼리 전지, 니켈-카드뮴 전지, 수은 전지가 모두 화학적인 산화·환원 반응을 통해서 전기를 만들어낸다.

휴대폰이나 전기차에 사용하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1992년 일본의 도시바와 아사히가 공동으로 개발한 새로운 개념의 배터리다. 폭발 위험을 무시할 수 없는 리튬(Li) 금속 대신 화학적으로 안정한 리튬이온을 이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방전 과정에서는 -극에 모여 있는 리튬이온이 비수용성 폴리머 전해질을 통해 +극으로 이동한다. 외부의 전기를 이용하는 충전 과정에서는 리튬이온이 반대로 +극에서 -극으로 이동한다. 너무 빠른 과(過)방전과 과충전에 의해 지나치게 많은 열이 발생하면 화재·폭발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리튬이온을 가둬두는 음극과 양극의 소재와 고분자 재질로 만든 비수용성 폴리머 전해질이 리튬이온 배터리의 품질을 결정한다. 양극 소재에는 리튬 이외에는 니켈·망가니즈·코발트·알루미늄·철 등의 금속이 사용되고, 음극 소재는 흑연이 많이 사용된다.

118종의 원소 중에서 가장 가벼운 금속 원소인 리튬을 이용해서 배터리의 중량을 최대한 줄이고, 충전과 방전이 가능하도록 만든 것이 리튬이온 배터리의 성공 열쇠였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개발에 기여한 공로로 미국의 존 구디너프와 스탠리 휘팅엄, 그리고 일본의 요시노 아키라가 2019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리튬이온 배터리가 없었더라면 휴대폰과 전기차의 놀라운 발전은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배터리는 1932년 영국의 물리학자 마이클 패러데이가 발명한 기계적인 ‘발전기(dynamo)’보다 훨씬 작고 가볍게 만들어 휴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화학적으로 작동하는 배터리는 기계식 발전기처럼 불쾌한 소음을 내지 않는다. 영구자석 속에 들어 있는 육중한 코일을 회전시키기 위해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화석연료를 사용하지도 않는다. 수력(水力)을 이용하기 위해 거대한 댐을 건설할 필요도 없고, 원자로처럼 관리하기 어려운 시설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배터리가 기후위기의 해결사로 등장하게 된 것은 배터리의 그런 장점 덕분이다.

배터리의 친환경성과 기술 패권 다툼 

배터리를 사용한다고 반드시 달아오르는 지구를 시원하게 식혀줄 수 있는 친환경 기술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배터리의 친환경성은 배터리 충전에 사용하는 전기의 생산 방식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석탄·LNG 화력에서 생산되는 전기를 사용하는 배터리는 기후 위기 극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전력 생산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실질적으로 감축할 수 있는 원전의 비중을 확대하지 못하면 배터리의 친환경성은 무의미한 환상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를 확보하는 과정도 친환경과는 거리가 멀다. 리튬은 지구상에서 비교적 희귀한 원소다. 화학적으로 반응성이 매우 큰 특징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리튬은 오래전 바닷물이 증발해버린 염호에서 생산된다. 오스트레일리아·중국·칠레·볼리비아가 리튬의 주요 생산국이다. 리튬 금속을 생산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심각한 수질 오염에 의한 생태계·생활환경 파괴를 감수해야만 한다.

리튬이온 배터리를 이용한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ESS)에 대한 섣부른 기대도 경계해야 한다. 리튬이온 배터리에 전기를 저장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하게 경험했듯이 리튬이온 배터리를 이용한 ESS와 전기차의 화재·폭발 위험을 극복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온도·먼지·충격에 대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한 정밀 전력장치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태양광·풍력 설비의 규모가 영세한 우리의 현실에서는 ESS의 관리가 쉬운 일이 아니다. 전기차의 화재·폭발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특히 아파트의 지하주차장 구석에 무분별하게 설치해놓은 충전 설비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화재·폭발 사고에 대한 더욱 적극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리튬이온 배터리가 비교적 가벼운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튬이온 배터리의 크기와 중량이 전기차의 주행 거리를 제한하는 한계 요인이다. 전기 여객기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리튬이온 배터리를 이용하는 전기 선박의 크기와 운항 거리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수소 연료전지를 대안으로 활용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튬이온 배터리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2020년 기준 전 세계 배터리 시장 규모는 10년 동안 40배 가까이 늘어나서 767GWh로 성장했다. 앞으로도 리튬이온 배터리의 수요는 더욱 빠르게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글로벌 시장의 극심한 경쟁을 극복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전 세계 시장의 64.6%를 중국이 차지하고 있고,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를 비롯한 우리나라 배터리 3사의 시장점유율도 25.8%나 된다. 여전히 국제 무역질서를 외면하고 있는 중국과의 경쟁은 힘겨운 것일 수밖에 없다.

엎친 데 덮친다고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다툼이 나날이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최근에 미국 의회를 통과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은 그 시작일 뿐이다. 리튬이온 배터리 원자재의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치명적인 규제일 수밖에 없다. 언제나 그렇듯이 원자재 수급원을 다양화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외교력이 캐나다·일본과는 비교하기도 어려운 우리가 글로벌 시장에서 K배터리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일은 결코 쉬울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이덕환 /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

출처 : 주간조선(http://weekl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