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2. 17.
닷새 동안 잠잠하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이 엉뚱한 곳에서 훨씬 더 무서운 모습으로 다시 등장했다. 해외여행 경력도 없고, 확진자와의 접촉도 없었던 노부부의 감염은 몹시 당혹스러운 일이다. 방역이 훨씬 더 어려운 지역사회 감염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코로나19가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는 대통령의 발언은 국민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희망고문이었다. 어제까지 경쟁적으로 일상 복귀를 들먹이던 정치인들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비록 30명의 감염자가 발생했지만 코로나19의 방역은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19일에 입국한 첫 감염자를 공항에서 곧바로 확인했고, 완벽한 격리 치료에도 성공했다. 국내에서 2차·3차 감염 사례도 발생했지만, 감염자의 동선 공개에 의한 혼란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슈퍼 감염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감염자의 격리 치료도 만족스러웠고, 700명이 넘는 우한 교민의 철수와 격리도 성공적이었다.
아무 전문성이 없는 보건복지부 장관과 서울시장이 경쟁적으로 상황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던 2015년 메르스와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사실 5월 20일 바레인을 여행한 1명의 감염자가 4개월 동안 186명의 감염자와 38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메르스는 정부의 어설픈 방역이 만들어낸 재앙적인 인재였다.
이같은 메르스 사태 이후 차관급으로 격상된 질병관리본부의 활약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할 수 있다. 감염자의 동선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즉각 공개함으로써 불필요한 사회적 불안을 잠재워주었다. 감염병 전문가로 현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의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도 돋보였다.
그러나 아쉬움이 없을 수는 없다. 질병관리본부장이 짊어지고 있는 짐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귀에 거슬릴 정도로 남발하는 극존칭이 거슬리기는 하지만 차분하고 전문적인 브리핑이 대단한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 세계의 감염 확산 상황을 면밀히 분석해서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본부장의 최우선 과제라는 사실이 간과되어 버렸다.
실제로 1월 20일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되고 있는 언론 브리핑은 언론 대응이 전문인 청와대 대변인도 쉽게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힘겨운 언론 브리핑에 나날이 지쳐가는 본부장의 모습을 온 국민이 걱정해야 하는 상황은 절대 정상이 아니다. 하루 빨리 충분한 전문성을 갖춘 유능한 대변인을 영입하고, 본부장은 본연의 임무에 전념해야 한다.
마스크 착용에 대한 중구난방의 언론 보도를 서둘러 정리해주지 못한 것도 아쉽다. 실외에서보다 감염자의 침 폭탄을 맞을 수 있는 실내에서 대화할 때 마스크 착용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려줬다. 감염 의심자의 마스크 착용과 자발적인 노력을 강조하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도 분명하게 전달해줬어야 한다.
내 건강도 걱정스럽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자발적인 노력이 훨씬 더 중요하고 효율적이라는 것이 WHO가 가장 강조하는 방역의 기본 원칙이다.
전문가 단체와의 긴밀한 협조와 소통도 아쉽다. 질병관리본부가 의사협회와 의학회에게 소통 창구를 활짝 열어주고, 정책 제안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줘야 한다는 뜻이다. 전문가 단체들이 정부와 국민을 상대로 공개적으로 방역대책 강화를 요구하는 모습은 매우 혼란스러운 것이다. 전문가들이 신뢰하지 못하는 정부의 방역 대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질병관리본부의 방역 정책에 힘을 실어주고, 추가적인 해명을 해주는 것이 전문가의 역할이 되어야만 한다.
지역확산의 가능성을 걱정해야 하는 지금부터의 방역 대책이 진짜 중요하다. 어설픈 수요·공급 방정식이나 확산방정식에 의한 섣부른 미래 예측은 절대 믿을 것이 아니다. 중국의 통계를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지나친 비관도 금물이지만, 지나친 낙관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방역은 철저하게 현실적·전문적이어야 한다. 모자라는 방역보다는 조금은 과도한 방역이 반드시 필요하다. 국민들도 인포데믹(정보 전염병)을 경계해야 한다.
대통령의 리더십도 중요하다. 아무리 가까운 이웃이라고 해도 전염병의 고통까지 함께 감수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국무총리가 신촌 상인들에게 던진 어줍잖은 농담을 지적하는 언론에게 '일국의 총리를 대하는 온당한 태도'를 요구한 여당 대변인의 논평은 해괴한 것이다.
자칭 '코로나 총리'의 적절치 못한 발언이 경제를 더 걱정하는 대통령의 최근 희망 고문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덕환 /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디지털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