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세때 공과대학2년시절 그러니까 85년 여름 이었다. 봄부터 대인관계가 위축되는 것을 느꼈다. 전조증상 이었다.
등굣길 버스차창 넘어로 보이는 신경정신과(정신건강의학과)를 매번 들릴까 말까 하다 괞찮겠지 하고 지나쳐 버렸다. 그때 병원에 들렀으면 인생이 또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 아버지는 주색에 빠져 집안에서 매일 술타령에 여자를 집에 끌어들이기 까지 하였다. 술을 먹는 날이면 온가족이 잠을 자지 못했다.
기계공학과 공부가 원래 의대공부 빰치는 공부다. 난 특수 귀마개를 하고 공부를 했다. 그해여름 학교에서 대학성적표와 장학금 통지서가 우편으로 왔다. 정원130명중 3등으로 성적우수장학금을 탓다 평균평점 4.02이었다. 난 그동안 시험을 못쳐서 학사경고가 나오지 않나 내심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평균평점 4.02면 A+라는 뜻이다. 아버지의 주색은 도가 넘었고 난 가정을 위해서 ROTC장교로 장기복무를 하려고 학군단에 지원 신청 해놓고 어머니와 상의 했다. 무지한 어머니는 무조건 반대였다. 4년간 등록금받고 군 2년3개월과 7년을 장교로 의무복무해주고 하면 된다.
여기서 스트레스를 받고 학창시절 고교.대학시절 선배가 선배대접 않한다고 기합을 주고 그 선배때문에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에 아버지의 주색은 도가 넘었다. 참다 못해 길거리에서 크게 고함을 질렀다. 그순간 갑자기 몸이 균형을 잃는가 싶더니 생각이 왔다갔다 했다. 미팅때 만난 여학생하고 커피숍에 가서 내가 마음이 넓어졌다고 애기를 하니 여학생이 어떻게 마음이 넓어질 수 있냐고 되묻는다.
여학생은 40분후 날 따라나오지 마세요하고 나가버린다. 아! 내가 무슨 이상이 있구나! 버스를 타도 몸의 균형이 자꾸 흐트러지고 생각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바로 집으로 가서 편지를 써서 어머니와 남동생께 내가 이런이런 사유가 있어 정신이 이상이 있는 것 같으니 날데리고 정신과에 데려다 달라고 하니 피식 웃는다.
이윽고 몇일후 정신이 헛갈리고 상황에 맞지 않는 웃음을 짓는다. 세들어 사는 사람들이 미쳤다고 수근댄다. 9월2일은 2학기 개강 이었다. 난 어머니에게 학교를 못찿아 가겠다고 하니 무지만
어머니는 왜 못찿아가냐 하면서 빗자루 몽둥이로 때리기 시작한다. 울면서 대학생가방에 책을 넣고 버스를 탓는데 난 내가 분명히 학교가는 버스를 탓는데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강의실에 갔는데 혹시나 하며 다른 학생께 물어보니 내강의실이 이니었다.
난 빨리 집으로 왔다. 집에 와서 어머니께 상황애기를 하고 초발인 환자가 대부분 그렇듯이 대학병원 정신과를 가자고 애기 했다. 난 이미 정신과에대한 내용을 익히 병나기전 알고 있었고 정신분열병(조현병)에 대해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집에 70년대 나온 가정의학대백과사전이 있었다.
거기에 정신분열병에 대한애기가 나온다. 그리고 84년에MBC에 탤런트 이정길씨가 정신과의사로 나오는 싸이코드라마가 6개월간 방영 되었고 친구가 뒷목이 댕겨 대학병원 정신과에 같이 간적이 있었다. 우리집안 환경이 않좋기에 조현병에 않걸리려고 무척 애를 썻건만 인력으로 되지 않았다.
대학병원 원무과에 접수하고 정신과를 가자고 하니 어머니는 신경과에 가야한다고 우기기 시작한다 그래서 내가 정신과에 접수했다. 대학병원에 가서 2시간을 기다리니 내차례가 되었다. 난 교수께 집안사를 장황하게 애기히니 그애기 말고 증상을 애기 하란다. 증상을 애기하니 기분이 붕붕뜨느냐고 묻더니 내가 아니라고 하니 mmpi와 로샤검사를 하자고 해서 했다.
mmpi하는데 무려 2시간이 걸리고 로샤검사는 다른교수와 했다. 2주후에 오란다 2주를 참고 대학병원에 갔다. 주치의가 어머니를 부르더니 거미줄같이 살짝 이상 있다면 입원실에 입원시켜야 한다고 입원예상기간을 6개월 잡았다.
어머니는 돈이 없어 입원 못시킨다고 하고 나도 입원해도 약주고 밥주고 증상얘기하고 이 것이다라고 생각 하고 약만 받고 집에 왔다. 집에 와서 약을 한때먹고 자리에 누으니 여기서 내인생이 끊나고 아무런 희망이 없었다. 약을 먹으니 눈이침침하고 입이 바싹바싹타고 초촘걸음 걷고 오줌누는데 한시간이 걸린다. 다음번에 갔을때 교수께 물었다. 내 병명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노이로제란다. 몸은 4개월이 다 되도록 진전이 없었다.
그래서 노이로제라고 하니 약을 끊었다. 그리고 약만 타놓고 약을 안먹었다. 생각은 그동안 약을 먹어서 그런지 어느정도 되었다. 6개월후 입영영장이 나와 병사용진단서를 끊으니 정신분열증이라고 나와서 외래 간호사에게 잘못되었다고 하니 그냥 가란다. 아! 내병이 정신분열병(이하 조현병)이구나 하고 입원경력이 없기에 병사용진단서와 고교생활기록부와 인우보증인 2인을 세워서 인우보증서를 작성하고 병무청에 냈다.
6개월간격으로 3회제출하고 군의관에게 가서 검사도 받고 군면제가 되었다. 어머니가 약을 않먹는다고 교수께 애기해서 약을 다시 먹었는데 몸에 이상 증상이 와서 약을 바꾸어 먹었다 한달뒤 깨끗이 나았다.
그뒤 약을 임의로 끊었다 이후 복학후 학교를 다녔으나 이후 87년 6월항쟁때 병이 다시 서서히 진행되었다. 서서히 진행되었다. 남이 자꾸 날쳐다 보는 것 같고 이웃 아주머니 인사치례 웃음이 나를 비웃는 것 같고 아주서서히 몇개월을 두고 아주 서서히 진행 되었다.
옛날 모대기업그릅 입사동기를 만나러 나혼자 찿아가서 하루밤 자고 비라다주는 입사동기가 왜자꾸 따라오는지 의심이 한 없이 들고 시외버스를 탓는데 대각선 뒷자리에 앉은 아저씨가 신문을 펴서 보니 날 감시 하는 안기부직원인 것 같아 버스가 서자마자 택시타고 집에 와서 다른 대학병원가니 교수님이 왜그리 얼굴이 불안해 보이냐고 물었다.
내가 안기부직원이 날 감시한다니까 어머니께 입원요구해서 바로 입원했다. 관계망상이었다. 입원후 한달만에 병동병동에서 나왔다. 다시 한달뒤 약 타러 왔는데 주치의가 바뀌었다. 그래서 약을 언제까지 먹어야 하나요 하고 물으니 아직 끊으면 않된다고 말했다.
또 단약했다.. 단약하니 한달동안 머리가 그토록 맑았다.이후기억력이 서서히 감퇴되기 시작해서 머리가 둔탁해졌다.
어느날 어머니가 날 잡고 통곡을 하셨다 니 친구들은 돈을 벌어 결혼도 하고 자식도 놓고 집도 사고 하는데 니는 어떻하려고 하니? 하시면서 이십여분 동안 우셨다. 어머니 얼굴에 하염 없이 흐르는 두줄기 눈물을 보고 난 느꼈다.
병나고 삼년간 난 아무것도 해놓은 것이 없었다. 재발과 입원과 단약과 삼년을 무의 도식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난 느꼈다. 나도 친구들 처렁 살아야 겠다는 강한 의지가 생겼다. 그래서
다른대학병원교수께 가니 이 병은 낫고도 몇년을 더 먹어야 한다고 애기 하셨다.
집에 와서 어머니와난 대학교가는 차창넘어 개인병원에 가서 증상 얘기 하니 입원을 주치의가 요구해서 병을 고치기 위해서 자진입원 했다. 그당시 한강이남에서 최고의 시설이었다. 환자중에는 의과대학 본과2년제적생도 있었고 대학교수딸도 있었고 간호사근무중 발병한분 사업하다 발병한분 첫 아이 놓고 발병한분등 각계각층 다 있었다.
이 병원은 그릅제가 있었다. 5그룹에서 외출과외박도 할 수있고 퇴원도 가능한 1그룹이 있었다. 3일에 한번씩 개인면담이 있었고 일주일에 한번씩 그룹회의로 그룹조정이 있었다. 한그룹 올라가려면 환자도 과반수 손을 들어야 하고 원장님도 찬성 해야 한다. 않그러면 보호자가 않빼주는 한 퇴원을 못한다. 난 매주 한그룹씩 올라갔다. 한달 보름 만에 1그룹이 되었다.
이 개인병동은 사회복지사가 두명이었다. 여성 사회복지사어게 물었다. 언제까지 조현병인데 언제까지 먹어야 하느냐고 물으니 3의 제곱승으로 먹어야 한단다. 초발일때는 3년.재발일때는 9년. 세번이상 재발일때는 평생 먹어야 한다고 했다.
이윽고 한달 보름만에 1그릅이 되어 퇴원했다. 퇴원해서 주치의에게 물었다. 언제까지 먹어야 히느냐고 하니 이 병은 재발할지 않할지는 나도 모르고 이세상 아무도 모르고 금전적이나 모든면에서 평생 먹는 것이 낫다고 밀했다.
그이후 난 임의대로 약을 끊어본적이 없다. 약조절기간 일년후 22세때 병이 나서 26세때 약조절 끊나고 26세 여름 운전면허증 하루 만에 따고 27세 봄에 직장을 구했다. 처음 몇번은 실패했다. 가만히 생각하니 남들은 다 잘다니는데 왜나만 몇일 못 버티고 나올까 했는데 원인은 나에게 있었다. 입사후 무조건 견디었다.
입사 2년동안 월급전액을 정기적금 저축했다. 그 돈을 타서 일반인 아내와 중매로 결혼 했다. 그러니까 29세 봄에 중매로 결혼했다. 2년 꼬박 모아서 결혼한 것이다. 먼저 단칸방부터 시작해서 큰방으로 옮겼다 결혼초 집사람에게 내가 심인성 두더러기가 나단고 애기 하고 약을 먹었다.
처음 6개월은 어머니가 타주고 6개월이 지나고 집사람에게 말해주었다. 내가 조현병때문에 약을 먹는데 약만 잘 복용하면 사회생활하는데 아무지장 없다고 애기 해주었다.
그다음날 부터 자꾸 날 이상히 쳐다본다. 이상히 볼 필요가 없다고 했다 원래 내가 정리정돈을 잘하고 깔끔해서 그러니 이건 성격인 면이지 병과는 아무상관이 없다고 이해 시키고 그뒤부터는 별탈없이 의의제기 한 바가 없다.
그뒤 부터른 집사람이 약을 두달분씩 타오고 주치의에게 물어보기도 했단다. 화이트칼라인 직업인 기계설계사이고 돈많이 벌어주고 집사람 끔찍히 생각 해고 출퇴근 차도 회사서 제공하니 아무런 문제가 않된다. 그뒤 자식 셋을 놓고 아파트도 당첨되어 아파트사고 출퇴근 승용차도 세번 구입했다 직장도 옮겨서 생산관리차장까지 하고 퇴직하고 그뒤 사업도 했다.
지금은 50대 중반이지만 자식들중 첫째는 스카이대 공대 졸업후 박사과정 하고 있고 간호대학 학업중이고 막내는 스카이대 2년 마치고 내년에 군에 간다 지금은 자이프렉사 복제약을 먹지만 과거 날 일으킨 약은 전부 할로페리돌 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자이프렉사가 월등히 낫고 아무리 스트레스를 받아도 다 이겨 낼 수 있다. 이렇게 이룬 것은 자신에게 맞는 약을 찾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약 많큼 스트레스 관리잘 하고 나도 살아야 겠다는 의지가 강해야 일어설 수 있다.
추기: 1.첫째는 서울시 스카이대 공대 박사 수료하고 박사과정 하고 있고 둘째는 대학병원 4년차 간호사가 되었으면 막내는 서울 신촌 스카이대 생명공학과에 3학년1학기 하고 공군 의무병으로 공군에 제대하고 6개월 독학하여 국립대 약학대학 약학과에 다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