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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기생
레이싱모델 김다운
레이싱모델 연다빈
미스코리아 출신.,'머슬 퀸' 김근혜
미스코리아 출신.,'머슬 퀸' 김근혜
'머슬퀸' 김근혜 오다은 김태린
미스코리아 김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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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 & 이하늬
2018년 현재, 우리나라 여성의 체형은
전세계 어느 나라의 여성보다.,아름답다.
불과, 반세기 만에 서구 여성을 능가할 정도.
우리 민족은 어디서 기원한걸까?
처음부터 한반도에 살고 있었을까?
아니면, 다른 곳에서 흘러 들어왔을까?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기록은
그 어디에도 없다. 문자가 없었기에
우리가 속해 있는 아시아대륙의
동북지역에서 발견된 원시시대의
유적과 유물, 우리민족의 피부색, 체격,
언어 등을 통해 그 사실을 짐작할 뿐이다.
엉덩이 몽고반점.
황색피부, 검은 모발,
체모가 상대적으로 적고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체격,
이것이야말로
우리나라 민족을
특정 짓는 것들이다.
엉덩이나 등 쪽으로
멍든 것 같은 몸고반점
아시아인 80%쯤 나타나며
대부분 수년 내에 없어지는데
우리 민족은 90%이상 나타난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사람들이
언제부터 한반도에서 살았는지
해답을 찾는데는 어려움이 있다.
2010.02.22 조선족 가수 김미아
2012.09.09 만주 '연변' 조선족자치주 설립 60주년
................조선족........................
조선족은 근면하고, 용감한 민족이다.
중국 거주 조선족은 1,923,842명(2000년).
그중 지린성에는 1,145,688명이 살고 있다.
조선족은 주로 지린성연변조선족자치주와
장백산조선족차치현과 지린시에 살고 있다.
흑룡강성에 388,458명이 살고 있는데,
주로 목단강시, 가목사시, 송화강 지역에 분포
흑룡강성에는 388,458명이 사는데 주로 단동시에 분포.
그 밖에 산둥성, 하북성, 광동성, 내몽골자치구,
베이징, 티엔진 등 대 · 중도시에 분산되어 거주.
조선족은 자신의 언어와 문자를 가지고 있다.
자모표는 21개 모음과 19개 자음으로 구성되었다.
문자 획순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이다.
언어계는 아직도 확정되지 않았다.
학술계는 어얼타이계에 속한다는 주장.
조선어는 형태 특성으로부터 보면 ‘첨착어’.
조선족 문자는 15세기 중엽에 창제되었다.
현재 조선족은 자기 민족 언어와 문자를 사용
신문 간행물, 라디오방송국, TV 방송국, 출판 등
연변에는 『연변일보』, 『중국조선족소년보』 등
10여종 신문, 8개의 라디오 방송국, 7개의 TV방송국,
474개 위성텔레비전 기지국며, 19개 위성중계점이 있다.
중파, 조핀, 텔레비전, 유선라디오 방송,
유선텔레비전으로 네트워크를 구성하였다.
흑룡강성에는 한국어로 된 『흑룡강신문』
흑룡강 인민라디오 방송국에 한국어 방송.
요녕성에서는 『료녕조선문보』를 발행.
전국 7개의 출판사와 32개의 잡지사는
한국어 도서와 잡지를 편찬 출간한다.
연변조선족자치주와
장백조선족자치현은
조선족 최대 밀집지역.
연변조선족자치주는
1952년 9월 3일에 설립된
동북지역 유일 소수민족자치주.
자치주 총면적은 4.27만km에 이르고,
이는 지린성 전체면적의 4분의 1이 된다.
지형은 산지, 구릉, 분지가 계단식
서쪽이 동쪽보다 높은 특징을 띤다.
연변 지역의 지리적 특징을 종합하면
‘8개 산, 하나의 물, 절반의 땅’ 정도다.
자치주의 전체인구는 약 218만 4,500명.
그중 한족이 58.54%, 조선족이 38.55%.
압록강을 분기점으로 연변은
중 · 조 · 러 삼국 접경지대 위치
동북은 러시아 빈해강과 마주본다.
남쪽으로 도문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함경북도, 양강도와 마주본다.
변경선의 길이는 755.2km에 달하는데
중조 변경선은(68개 자연툰) 약 522.5km
이며 중러변경선은 2,327km에 달한다.
변경선 부근에 5개의 변강현시, 22개 변강향진,
238개의 변강촌(전 동북에648개 자연촌이 있음).
변경선 주변에는 10개의 대외개발 진출구가 있는데
중러변경 출입구는 2곳 중조변경출입구는 8곳이 있다.
연변은
지린성, 흑룡강성, 요녕성에
거주하는 조선족들의 중심지이며,
중국 동북 대내외로 통하는 중요 창구.
동북아 지역 경제, 문화, 지리적 교차점
또한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와의 육로,
항공로에서도 중요한 연결 작용을 한다.
1958년 9월 15일 국무원의 비준을 받고 설립된
장백조선족자치현은 지린성 통화현의 관할이다.
1985년 4월 시가 현을 관리하는 체제가 실행되면서
혼강시에 소속되어 혼강시의 관할을 받았다.
장백조선족자치현은 지린성 동남쪽에 위치
장백산의 남쪽 기슭과 압록강의 상류와 연결
동남쪽은 북한과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다.
북쪽은 무송현에 닿아 있으면
서쪽은 혼강시와 잇닿아 있다.
장백조선족자치현은
6개 진과 5개 향, 77개 행정촌,
총인구는 8.7만 명이며 조선족은
전체인구의 16.4%를 차지한다.
현성인 장백진은
전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이다.
연변 백두산 지역은 “장백림해”라 불린다.
이곳은 땅이 넓고 자원이 풍부한 것으로 유명.
첫째, 이곳은 토지자원이 풍부하다.
임지는 농용면적의 87%를 차지하고
경작지는 5.2%를 차지하며 초원 0.9%
인구당 경작 지면적은 약 1.5이다. 이는
전국과 지린성의 평균치를 초과하였다.
둘째, 수자원이 풍부하다.
구역 내에는 하류가 487개.
연평균유량은 150억m이며
지하수자원 총 매장량 27.4억m
채취 가능한 물량은 13.3억m이다.
물 에너지 매장량은 140.5억kw에 달한다.
기후는 중온대 습윤성계절풍기후, 토지가 비옥
이곳은 중국에서 유명한 논의 고향이라 불린다.
셋째, 생물자원이 매우 풍부하다.
연변은 전국의 임업기지 중 하나.
삼림면적은 약 322.8만ha에 이르며,
삼림 피복률이 79.2%에 도달하며,
전체 저축량은 3.52억m에 이른다.
또한 삼림자원도 매우 풍부하다.
야생 경제작물은 1,800여 종이나 된다.
그중 약용식물은 875종, 야생동물은 500종
이곳에서 나는 인삼, 녹용, 달피는 동북 3대 보배
연변의 쌀, 잎담배, 사과배, 황소 등은 명성을 떨쳤다.
넷째, 마지막으로 광산자원이 풍부.
조선족 지역에서 50여 종 금속광산과
40여 종의 비금속광산이 발견되었다.
황금매장량과 산량은
지린성에서 중요한 위치
석회석 매장량은 9,800만 톤
가량이며, 지린성에서 제일 많다.
석탄매장량은 6.67억 톤 ,
연간 채광량은 309만 톤.
탐사를 거쳐 측정된 석유의
매장량은 약 1억 톤 이상 된다.
연변 지역은
중국 30개 소수민족자치주
가운데서 유일하게 두 번 연달아
국무원에서 발급한 ‘민족단결 진보
모범주(民族团结进步模范州)’의
칭호를 받은 자치주이다.
.................................
중국에서 조선족은
소수민족에 속하지만
우수민족으로 공인되어
자녀를 2명까지 장려하는
중국의 1가구 1 자녀 산아제한
대상에서 제외되는 특혜의 대상.
조선족은 중국 내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이다.
.........연변 조선족 자치구...............
중국 동북 지역 지린 성(吉林省)의 자치주
연길면적 43,474 km2, 2009년 인구 217만9천
이 곳은 80만명 재중동포가 거주하는 지역이다.
남쪽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북도와 량강도,
동쪽은 러시아 프리모르스키, 북쪽은 헤이룽장 성 무단장,
서쪽은 지린 성 바이산, 백두산은 이 지역 남서쪽 끝에 있고
해란강(海蘭江)과 가야하(嘎呀河) 등 주요 하천이 남쪽으로 흘러
두만강 수계는 쑹화 강(송화강) 수계와 무단 강(목단강) 수계,
두만강 수계가 주이며 라즈돌나야 강(쑤이펀허) 수계도 존재한다.
이 곳은 고대에는 부여와 북옥저, 고구려,
발해둔화 시 동모산(東牟山)은 발해건국 출발지
발해 중심지였던 만큼 현재도 발해 관련 유적들이 많다.
대표유적으로는 1949년 발견된 정혜공주묘(둔화 시 육정산
(六頂山) 고분군 제1구역 2호분)와 1980년 정효공주묘가 발견된
허룽 시(和龍市)의 룽터우 산 고분군(龍頭山古墳群) 등이 있다.
19세기 중반부터 조선의 함경도 사람들이
두만강을 건너와 거주하였고 1881년1907년에는
옌지(延吉, 연길)에만 조선인 가구수가 5만호(戶)
한족(漢族)은 조선인의 4분의 1도 되지 않았고,
3·1 운동 전인 1916년 1930년에는 옌지 현, 허룽 현,
훈춘 현, 왕칭 현 등 4개 현의 조선인은 39만명으로
해당지역 총인구의 76.4%, 연변에는 김씨 성씨가 많다.
연길은 러시아 및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경과
가까운 '훈춘'은 '변경 개방도시'로 지정되어 있다.
...................................................................
고구려 고분 벽화
조선족은 주로 1945년 이전 만주의 간도 지역으로
이주한 한민족한족을 제외한 민족 중 13번째로 많다.
주로 옛 만주 지역인 중화인민공화국 둥베이베이징과
상하이, 칭다오 등과 같은 대도시로 이주하고 있기 때문.
요하 주변과 만주 지역은 한민족의 오랜 거주지
신화에 따르면, 기원전 24세기 이미 만주 지방에는
기원전 10세기 한민족의 조상 예맥족이 고조선을 건국
기원전 2세기 한민족의 조상 부여(예맥)족이 부여를 건국
기원전 37년 주몽이 말갈족과 연합하여 고구려를 건국하였다.
..............말갈족...............
말갈족은 각 부족별로 나뉘어
산과 계곡 사이에 거주하면서
수렵과 농경에 종사했다.
중국의 수당시대에는 수십 개 부족 가운데
7개의 부족이 강성해 말갈사회를 주도했다.
고구려가 강성해지면서 흑수부를 제외한 6부는
고구려의 지배를 받거나 그 영향 아래에 들어갔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고구려화되었던 일부 부족은
고구려인들과 함께 요동의 영주 일대로 강제 이주.
대조영이 고구려의 재건을 시도하자 이에 적극 협조
이들은 발해 건국의 주체세력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발해 멸망 이후 모든 말갈족이 거란 지배하에 들어갔다.
이들의 후신인 여진족은 고려와 요의 변경을 침입하면서
그 문화적 영향을 받다가 금을 세우고 만주와 북중국을 지배
그뒤 이들은 중국 최후의 왕조 청을 세운 만주족 원류가 되었다.
......................................................................................
...........발해.........
668년 고구려 멸망 후
698년 대조영은 말갈족들을
거느리고 동만주지역에 나라를 세웠다.
당은 705년 발해를 인정했고
713년에는 외교관계를 맺었다.
발해가 영토확장사업을 벌이자
신라는 721년 강릉 이북에
장성을 쌓아 대비했다.
732~733년에 발해와 당·신라의 긴장관계가
계속되었으나 문왕의 평화외교로 해소되었다.
문왕은 대내적으로는 체제정비에 힘쓰고
대외적으로는 평화적 교역의 증대에 관심을
기울여 사회적·문화적 발전을 도모하였다.
818년 선왕은 말갈세력,
흑수말갈에 대한 통제력도
장악했으며, 소고구려를 영역에
포함시키면서 대국으로 성장했다.
선왕 이후 점차 쇠퇴를 보이다가
9세기 후반부터 성장한 거란은 925년
발해를 공격해 발해를 멸망시켰다.
................................................
발해라는 이름은 713년 당이 건국자인
대조영 진국이라 칭했으며 일본과의 사절
교환시 고구려 계승을 강조하며 '고려'로 칭.
한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고조선(古朝鮮)
첫 임금 단군을 우리 민족의 시조로 보는.,단군신화.
천제(天帝)인 환인(桓因)의 서자 환웅(桓雄)의 아들인
단군이 BC 2333년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고
단군조선을 개국했다는 건국신화이다.
그러나 전세계 인류 중에서 한민족이 차지하는
위치와 민족의 계통분류 및 그들의 이동역사에 따르면
한민족의 형성시기는 훨씬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체적 형질의 특징으로 볼 때, 세계의 3대인종인 황색 몽골 인종
몽골 인종은 그들의 집단이동과 지역분포에 따라
서로 다른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신체적
형질과 생활양식에 차이가 생겨서 '고시베리아족'과
'신시베리아족(Neo-Siberians)으로 구분된다.
그중 한민족은 신시베리아족,
.
알타이어족에 속하는 민족들은 제4빙하기의
후기구석기시대까지 시베리아의 예니세이 강과
알타이 산 기슭에 살고 있었다. 그후 기온이 상승하여
빙하가 녹으면서 후기구석기시대 및 신석기시대 때
시베리아로부터 남쪽으로 이동했다.
터키족은
중앙아시아와
중국의 북쪽까지,
몽골족은 외몽골을 거쳐
중국의 장성 및 만주 북쪽까지,
퉁구스족은 흑룡강 유역까지,
그리고, 한민족은
중국 동북부 만주 서남부
랴오닝[遼寧] 지방을 거쳐
한반도 남부까지 이동하여
하나의 단일 민족으로서
초기 농경시대에 정착
생활을 시작했다.
이와 같은 한민족의 형성 및
이동 과정에서 발전된 문화는
지금까지 남아 있어 후기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철기시대의
고고학적 유물과 유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역사상 고대의 중국문헌에 나타나는
숙신(肅愼)·조선(朝鮮)·한(韓)·예(濊)·맥(貊)·
동이(東夷) 등의 여러 민족들은 그 전부 또는
일부가 우리 한민족을 가리키는 말이다.
특히 랴오닝 지방의 한민족은
북부의 초원지대에서 목축하는 한편
남부의 평야지대에서 농경을 주로 하면서
농경·목축 문화를 발전시켰고, 한반도 남부까지
내려온 한민족은 자연환경의 조건에 따라
목축을 버리고 농경에만 집중하면서
독특한 청동기문화를 발전시켰다.
이처럼 오늘의 중국 랴오닝 지방과
한반도에서 농경과 청동기문화를 발전시킨
한민족이 하나의 단일 민족으로서 부족연맹체의
족장사회를 통합하여 고대국가를 성립시킨.,고조선
................
................
동아시아 동부를 무대로 삼게 된 한족.
특징으로 하는 신석기문화를 성립시켰다.
한족 가운데 만주 서남부에 거주한 갈래는
기존의 신석기문화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BC 10세기 랴오닝식 동검을 표지적 요소로
하는 랴오닝 청동기문화를 성립·발전시켰다.
이 동검은 랴오닝 청동기 대표유물로
검의 봉부(鋒部) 하단에 돌기가 있고
검몸의 아랫부분은 크게 호선을 이루어
비파 몸체를 연상케 해 일명 비파형 동검.
몽골계 종족의 오르도스식 동검이
검몸과 자루가 함께 주조된 것과 달리,
랴오닝식 동검은 검몸과 자루를 따로 만든 뒤
못 등으로 연결·고정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랴오닝 청동기문화를 쓴 한족의 갈래는
예족(濊族)에 속한 조선족(朝鮮族)이었다.
이들은 발달된 청동기문화를 바탕으로 만주
서남부에서 한반도 중북부 일대 세력권을 형성
한족의 다른 갈래인 맥족(貊族)과 한족에게도
정치적·사회적·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이후 조선족은 자신들의 세력이 크게 강화되자
이를 바탕으로 고대국가 고조선(古朝鮮)을 세웠다.
예족의 또 한갈래 부여족은 고조선의 성립에 자극받아
부여를 세웠으나 국가발전 정도는 고조선에 미치지 못했다.
랴오닝 청동기문화는 한반도를 주무대로 하고 있던
한족의 또하나의 작은 갈래인 한족에 전파되어 보다
세련된 단계의 문화인 한국 청동기문화를 성립시켰다.
한반도를 주무대로 성장하던 한족은 한편으로는
종족의 갈래가 옛 시베리아족을 흡수·동화해나가고,
다른 한편으로는 북방의 랴오닝 청동기문화를 바탕으로
보다 발달한 청동기문화를 사용해 독자적인 세력권을 형성했다.
만주 서남부와 한반도 일대에 걸쳐
동방청동기문화권을 성립시킨 한족
BC 6~5세기경부터 중국의 발달된
철기문화와 접촉하면서 서서히
철기시대로 이행되었다.
청동기문화를 발전시키면서
이미 어느 정도 사회 내 계급분화를
이루었던 만주 서남부와 한반도 일대의
여러 집단은 철기문화의 수용과정을 통해
계급간 분화를 심화시키면서 집단간 통합으로
보다 크고 응집력이 있는 정치체를 성립시켰다.
고구려·백제·신라는 크고 작은 다수의 정치체들 가운데
집권국가 단계에까지 이른 한족의 각 갈래들이 모체가 된
나라들이며 부여와 가야연맹은 연맹국가 단계까지 성장한 나라들
이들 나라 사이에 어느 정도의
동족의식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각 나라의 건국신화 등 내용으로 보아
부여와 고구려는 상당히 짙은 동족의식
백제는 고구려와 시조가 같다.
6~7세기 150여 년 간의 삼국항쟁은
삼국간의 인적·물적 교류를 증대시켰다.
삼국간의 교류 증대는 넓은 의미에서의
인종적·문화적 동질성에도 불구하고
정치체제와 사회구성상의 차이 등으로
심화되어 가던 삼국 주민간 이질성 해소
고구려의 계승을 표방하고
추진된 북진정책이 만주에서
남하하려는 여진·거란 등의
북방민족과 끊임없는 갈등을
일으키면서 옛 고구려·백제 의식은
급속히 소멸되고 혈연·문화 등의 여러
측면에서 고려인(高麗人)과 비(非)고려인을
구별하는 전근대적 의미의 민족의식이 생겨났다.
근대적 민족의식과 달리
전근대적 민족의식은
민족구성원에 대한 차등성,
즉 신분제를 전제로 성립된 것.
13세기 몽골의 침략은
고려인의 민족의식을 자극하고
역사의식을 심화시켜 오랜 역사에서
민족의 시조인 단군과 그가 세운
고조선을 찾아내게 했다.
고구려·부여·삼한·옥저·동예 등은
단군을 공동시조로 한 민족이된다고
서술한 〈제왕운기〉 등의 문헌은
이 시기에 보다 구체화된
민족의식을 보여주었다.
이를 계승하여 우리말과 일치되는
문자체계인 훈민정음이 창제되는
조선 초기, 곧 15세기 중엽은
한족이 하나의 민족으로서
제반요건이 완비되는 시기.
전통적인 신분체제가 변화되고
역사인식이 심화되면서 인간평등
의식이 높아지던 조선 후기는
근대적 의미의 민족의식이
태동하고 발전하던 변혁의 시기.
19세기 들어서 격화되는 외세의 물결은
근대적 민족의식 형성에 큰 자극이 되었다.
1897년 조선의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꾼 것은
이러한 민족의식이 그 배경이 되었다.
'대한'이란 국호는 '조선'의 정통을 계승하면서
민족구성원 전체의 통합과 자존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가치를 지녔던 것이다.
일제강점기 일제의 가혹한 수탈과 억압,
동화정책에 대해 한민족의 민족의식은
더욱 깊어지고 민족공동 운명체로서의
동포의식은 보편화되었다.
근대적 의미의 민족의식은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 그러나
1945년 식민지에서 해방된 후,
한민족은 곧이어 1민족 2국가 체제로
분단된 채 반세기에 가까워지면서
양체제 내부에서 단일민족으로서의
1민족 1국가 체제로의 회복이
요구되고 있다.
............
............
민족과 민족 사이를 구별하는
특정 언어를 사용하던 한 민족이
정치적·문화적 측면에서 주변 민족에 대한
영향력을 증대하면 그것은 곧바로 그 민족이
사용하는 언어의 확산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언어의 역사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의
흥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국어는 언어특성상 몽골어·터키어·
퉁구스어 등 알타이 제어 및 일본어와
공통된 요소가 많은 언어이나 이들 언어와
구별되는 근본적인 차이도 많아 아직 명확한
계통이 밝혀져 있지 않다. 때문에 한국어는
일본어와 함께 언어사용인구의 규모상
큰 언어이면서도 주변의 다른 언어들과
구별되는 고립성을 지니고 있다.
한국어의 역사는 한국민족의 기원 및
형성과정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매우 이른 시기에 알타이어계의
여러 종족에서 갈라져나온 한족이
서남만주와 한반도에 정착한 시기와
지역에 따라 예·맥·한으로 세분되고
이들이 고조선·부여·고구려·옥저·동예·
한 등의 나라로 나뉘었는데, 한국어는
고조선·부여·고구려·옥저·동예 등을
하나로 하는 북쪽 갈래와 한의
여러 나라를 하나로 하는
남쪽 갈래로 구분되어 사용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은 초기 한국어의 조어를
부여·한조어(夫餘韓祖語)라고 부른다.
고구려가 서남만주와 한반도 중북부의
크고 작은 나라들을 아우름에 따라 북쪽
갈래의 한국어는 고구려어로 통합되었고
남쪽 갈래 한국어는 백제어와 신라어로 대표
문헌에 남은 언어의 편린으로 보아
삼국의 언어 사이에 근본차이는 없었고,
고구려어와 신라어 사이에는 방언적인
차이가 있었으며, 백제 지배층의 언어와
고구려의 언어는 사실상 같았던듯 여겨진다.
가야어는 현존 자료상
고구려어와 친연성이 깊었던 것
계통상 부여어 한 갈래 가능성이 짙다.
단일한 조어(祖語)에서 출발하여
정치적·문화적 갈래에 따라 지역적·
시기적 분화의 길을 걸었던 한국어는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어로 큰 줄기를
잡은 뒤, 신라의 삼국통일을 계기로 하여
경주 중심의 신라어로 통합되기 시작했다.
고려의 후삼국통일 및 발해유민 흡수는
단일한 한국어 형성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단일어는
고려의 후삼국 통일 후 수도였던
개성지방의 언어를 모체로 형성된 것.
본래 백제·고구려의 옛 땅이었고
통일신라의 변방이던 개성어에는
삼국의 언어적 특징이 모두 담겨져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언어구조 특성상 한국어는
알타이 계통과 가까우며
특히 만주·퉁구스어와 가깝다.
두 언어의 이러한 친연성은
한민족과 퉁구스계 민족과의
역사적·지리적인 친근성과
관계가 깊은 듯하다.
언어구조상 한국어와
알타이 계통 언어들과
닮은 점은 다음과 같다.
모음들이 같아지는 경향 모음조화는
터키어와 몽골어, 만주어·퉁구스어 등
알타이 제어와 한국어에서 모두 발견된다.
② 단어의 첫머리에 오는 자음,
특히 유음(流音)의 제약이다. 한국어에는
본래 'ㄹ'로 시작되는 단어가 없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몽골어의 경우에도 'r'로 시작되는
외국어를 차용해 쓸 때, 그 앞에 모음을 덧붙이며
터키어나 퉁구스어에서도 단어의 첫머리에
'r'가 오는 것을 피하는 것이 관례이다.
③ 단어의 첫머리에
자음군(子音群)이 오지 않는다.
한국어와 알타이 제어에서는 모든
단어를 모음이나 하나의 자음으로 시작하며
둘 이상의 자음으로 시작하는 것을 가능한 한 피했다.
접미사의 연결이 매우 기계적이고 그 기능이 단일한 점은
한국어와 알타이 제어를 세계의 다른 언어와
구별하는 특징적 요소 중 하나이다.
이와 같이 한국어와 알타이 제어가
여러 가지 닮은 점을 지니고 있으나,
다른 점도 적지 않게 지적된다.
한국어에는 주격접미사가 없으나
알타이 제어에는 있다는 점과 한국어는
명령형 어미를 지니고 있지만 알타이 제어는
동사 어간 그대로를 명령형으로 쓴다는 점도 차이점.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어의 주격조사 '이'는 대명사
'이'에서 나온 것이며 만주어·퉁구스어에
속하는 일부 종족의 언어에서는 명령형
어미가 쉽게 발견된다고 한다.
즉 세계의 다른 언어들과는 달리
한국어와 알타이 제어 사이에는
닮은 점이 있는데 이로 보아 두 계열의
언어는 매우 이른 시기에 공통의 조어(祖語)에서
갈라져나왔을 가능성이 짙다.
..............한민족의 체형..............
모든 생명체는 같은 종(種)에 속해도
각기 다른 환경에서 오랜 기간 주어진
환경의 영향으로 체질적 변화가 일어난다.
인간도 이러한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다.
계절·일광·기온·습도·기압·우량·수질·토양·
음식 등 수많은 인자로 이루어진 지역환경.
상이한 요소가 주는
영향이 장기간 누적되면
인간의 체격·피부·모발·홍채 등의
형질요소는 지역에 따라 차이를 가져온다.
알타이계에 속하는 한민족이
같은 알타이계 터키·몽골·퉁구스
제족과 구별되는 것은 이와 같은
인문지리적· 역사지리적 차이 때문.
한국인은 언어상 알타이계 제족과
구별될 뿐아니라 체질적으로도 주변의
몽골인·일본인·중국인 등과 다른 점이 많다.
한국인의 평균(이하의 계측치는 모두 평균치)
두개 용적은 남자가 1,475㏄, 여자가 1,330㏄로
대두형에 속하며 뇌중량 역시 남자가 1,413g,
여자가 1,268g으로 세계적으로 높은 편이다.
두장은 남자가 175.0㎜, 여자가 168.2㎜이며
두폭은 남자가 142.4㎜, 여자가 138.6㎜이다.
이 두 계측치를 바탕으로 산출한 두지수는
남자가 81.5, 여자가 82.7로 두장 지름이
짧은 특이한 단두형에 속한다.
단두형은 서투르키스탄 일대와
알프스 지방, 한국에서만 발견된다.
반면 중국인과 일본인은 중두형이며
두고는 남자가 140.0㎜, 여자가 133.3㎜로
두장고지수는 남자가 80.1, 여자가 79.4로
남녀 모두 고두형이다.
몽골인은 정두형이다.
두폭고지수는 남자가 98.5, 여자가 96.2로
남자는 약한 첨두형, 여자는 높은 종두형에
속하여 저두형인 몽골인과 구별된다.
전두최소폭은 남자가 92.4㎜, 여자가 89.2㎜이며
전두두폭지수는 남자가 65.0, 여자가 64.3으로
남녀 모두 협액형이다. 일본인은 중액형이다.
한국인 안장은 남자가 95.5㎜, 여자가 93.6㎜
협궁폭은 남자가 136.0㎜, 여자가 126.5㎜이다.
이러한 계측치에 의한 안지수는
남자가 90.6으로 약한 협안형에 속,
여자는 89.4로 강한 중안형에 속한다.
상안고는 남자가 73.9㎜, 여자가 68.6㎜.
상안지수는 남자가 54.5, 여자가 54.3으로
남녀 모두 중상안형에 속. 중국인은 협상안형.
비폭은 남자가 25.7㎜, 여자가 25.2㎜이고
비고는 남자가 53.8㎜, 여자가 49.9㎜이다.
따라서 비지수는 남자가 48.2, 여자가 50.7로
남녀 모두 중비형이다. 중국인은 협비형이다.
한국인의 평균신장은
남자 167.7㎝, 여자 155.5㎝
남자는 상중형, 여자는 중중형.
따라서 한국인은 황색인종
가운데서도 큰 편에 속한다.
수지수는 중수형,
족지수는 중족형이며,
상지지수이다.
상체지수는
남녀 모두 장상체형이며
골격지수는 단골격형이다.
소마토타입 체형분류에 의하면
한국인 남자는 절반 이상이 중배엽형
여자는 절반 이상이 내배엽형이다.
.............................................
불과, 수십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인의 체형은 서양인보다 작았다.
오늘날, 한국인의 체형은 크게 달라졌다.
서양인도 부러워할만큼
몸매도 체형도 늘씬하며,
체력 지구력도 강력해졌다.
해마다 새롭게 배출되는
걸그룹들을 보면 놀랄 정도.
서양인들이 부러워할 정도이다.
트와이스
소녀시대
에이 핑크
레드벨벳 평양공연
레드벨벳
레드벨벳 아이린
고준희
2015.08.31 고준희
2016.02.01 고준희
2016.03.02
에이핑크 박초롱
...................미녀와 야수..............
아름다운 성에 잘생겼지만 이기적이고
허영심 가득한 왕자가 살았는데 어느 날
노파가 찾아와 하룻밤 재워주는 조건으로
장미 한 송이를 왕자에게 주겠다고 제안한다.
추한 노파의 모습을 보고
왕자는 그 제안을 거절한다.
왕자의 마음 씀씀이가 괘씸했던
노파는 마녀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왕자를 야수 모습으로 바꾸어버린다.
21세 되는 해의 생일 이전까지
한 여성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한다면
본 모습을 찾을 수가 없는 저주를 내린다.
..............
.............
.
프랑스에 있는 한적하고 조용한 마을
그곳에는 엉뚱한 개발자 모리스의 딸인
'아름다운 처녀' 벨이 사는 평화로운 마을
그녀는 평화롭지만 평범한 일상이 반복되는
마을에 따분함을 느끼고 어딘가에 있을 다른
삶을 살곳을 기대하며, 책을 통해 욕구를 해결.
'벨'은 운명의 상대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는 낭만을 꿈꾼다.
그런 그녀를 향해 마을 사람들은
처녀 벨이 자신들과 다르다고 한다.
마을에는 잘 생겼지만 자만심에 가득 차고
허세 부리기 좋아하는 청년 개스통이 산다.
그는 벨의 미모에 반해 끊임없이 구애하지만
벨은 자만심 강하고 예의 없는 그를 싫어한다.
한편 엉뚱한 것을 끊임없이 개발하는
괴짜 발명가인 벨의 아버지 모리스는
발명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우연히 한 어둡고 낡은 성에 도착하는데,
그곳에는 온몸이 털로 덮인 야수가 살았고
곧바로 모리스는 성안의 감옥에 갇히게 된다.
주인없이 혼자 돌아온 말을 의아하게 여긴 벨
아버지가 갇혀 있는 어두컴컴한 성에 도착하고,
그곳 성안 감옥에 갇혀 있는 아버지를 발견한다.
그때 나타난 야수에게 벨은
자신이 대신 감옥에 갇힐테니
아버지를 풀어달라고 애원한다.
벨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한 야수는
모리스를 풀어주고 벨을 대신 가둔다.
감옥에 갇혀 지내는
그녀가 안쓰러운 야수
넓고 안락한 방으로 안내.
한편 마을로 돌아온 모리스는
술집으로 가서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나, 개스통이 갑자기 들이 닥쳐
야수 타령 모리스를 망신주고 내쫓는다.
한편, 성안 감옥에 갇힌 벨은
난폭하고 상냥하지 못한 야수가
싫어 방문을 닫아걸고 두문불출.
그녀의 행동에 야수는 화를 낸다.
그런 야수를 성안의 여러 옷장, 찻잔,
촛대, 시계들이 야수를 달래고 말린다.
원래, 이 물건들은 사람이며 성의 식구들.
그러나, 왕자와 함께 마녀의 저주를 받아
옷장, 찻잔, 촛대, 시계 등으로 변해버린 것.
밤에 배고파 몰래 방을 빠져나온 벨을 발견한
촛대 뤼미에르는 벨 그녀를 주방으로 안내하고.
성의 식구들을 몽땅 불러 춤과 노래를 선보인다.
사물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즐겁게 보고
만찬을 즐긴 벨은 성을 구경하겠다며 나선다.
벨이 성을 구경하며 탑으로 향하는 계단에 당도.
그때 갑자기 촛대 뤼미에르와
시계 콕스워스가 벨을 막아선다.
한사코 그곳에 가지 말라 말리지만
호기심 많은 벨은 그들의 경고를 무시.
몰래 탑을 향하는데 그곳에는
아름답게 빛나는 장미꽃 한송이.
그 꽃은 앞으로 남은 야수의 21세
생일을 카운트 다운하는.,모래시계.
꽃에 손을 대려는 벨을 발견한 야수는
그녀에게 고함치고, 놀란 벨은 말을 타고
서둘러 성을 벗어나려다 늑대 무리를 만나
위기에 빠지는데 그녀를 뒤따라온 야수가
늑대 무리와 혈투를 벌여 큰 상처를 입고
그녀를 구해내자 야수의 내면에 감춰졌던
상냥함을 발견한 벨도 닫혔던 마음을 연다.
...........
............
.
한편 마을에선
수상한 남자와
개스통이 음모.
벨의 아버지를 협박해서
벨과 결혼하겠다는 음모.
야수는 벨에게 온통 책으로 들어찬 방을 선물한다.
그 방에는 마을에서는 볼 수 없던 귀한 책들로 가득.
벨은 야수의 선물에 감동하고 그들은 점점 가까워져
하얀 눈이 쌓인 성의 정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면서 벨은 점점 야수의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한다.
가까워지는 둘의 사이를 지켜보던 성의 식구들은
마녀의 저주가 풀릴 시간이 머지않았다고 기대한다.
그들은 다시 인간으로 돌아간 뒤의 생활을 기대하며
밤에 열릴 야수와 벨의 무도회를 위해서 만반의 준비.
무도회는 시작되고, 청색 양복을 입은 야수와
황금빛 드레스를 입은 벨은 함께 손을 맞잡고
흘러나오는 폿스 부인 노래에 맞춰 춤을 춘다.
벨은 야수에게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아버지 모습을 보여 달라 부탁.
마법의 거울을 통해 보인 것은
벨을 찾아나서는 험난한 모험에
병들어 가는 늙은 아버지의 모습.
안타까워하는 벨의 모습.
야수는 21세 생일을 앞에 두고
사랑하는 벨을 아버지에게 보낸다.
아버지를 만난 벨은 마을로 돌아가지만
개스통의 음모가 시작되어 마을 사람들이
모리스를 미치광이로 몰고 잡아가려고 한다.
개스통은 벨이 자신과 결혼해 주면
아버지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오해를
풀어주겠다고 제안하며 협박도 하지만,
벨은 진짜 야수를 보여 주겠다며 야수가
준 거울을 통해 그를 마을사람들에게 공개.
꾀가 난 개스통은 거울 속의
야수가 마을을 습격할 것이라며
야수를 죽이자고 사람들을 선동한다.
흥분한 마을 사람들은
야수의 성으로 쳐들어가고,
성의 식구들은 대항해 싸운다.
벨은 죽을 위기의
개스통을 살려주었으나
벨과 모처럼 재회하던 야수를
개스통이 등뒤에서 칼로 찌른다.
큰 상처를 입은 야수는
벨에게 마지막으로 당신을
보아 기쁘다고 말하며 죽는다.
슬픔에 빠진 벨이 그를 껴안고
사랑한다고 고백하자, 갑자기
하늘에서 알록달록한 불꽃이
떨어져 내리더니 털북숭이였던
야수가 매끈한 피부를 가진
아름다운 청년으로 되돌아왔다.
벨의 고백에 힘 입어
마녀 저주가 풀어진 것.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이제야 진심을 깨닫고
사랑을 확인한다.
어두웠던 성은 다시 예전처럼
밝고 아름다운 활기를 되찾고,
성의 식구들도 모두 원래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벨과 야수는
'미녀와 야수'가 아니라
'美女와 美男'인 연인(戀人).
'나는 어떤 남자와
언제 어디에서 만나
어떻게 사랑하게 될까?'
.
사랑한다는 것은
갑자기 닥치는 파도에
온 몸이 흠뻑 젖어드는 일.
사랑하는 것도
사랑하지 않는 것도
내맘대로 일이 아니다.
청순
발랄
뇌쇄
상큼
시크릿
신비
궁금
호기심
색시~
농염
유혹
男心 저격.
셀레나 고메즈
2017.4.3 최설화 손소희 공민서
소녀시대 태연
소녀시대
............................비키니(bikini).................
작은 브래지어 상의와 배꼽이 드러나는 짧은 팬츠.
1946년 북태평양 비키니 섬에서 최초 원자폭탄 실험과
때를 같이해, 파리에서 재키 하임(Jacques Heim) 디자인.
앞뒤 부분은 가는 끈으로
뒤나 옆에서 묶도록 디자인.
1946년 소개되어
1960~1980년대 유행.
............................
비키니 섬은 적도 북쪽에
간조시 수면보다 약 2m밖에
높지 않은 작은 섬들로 이뤄졌다.
1944년 일본이 마셜 제도에서 철수하자
비키니 포함한 섬들과 환초는 미국이 관리
1946년부터 비키니는 미국 원자폭탄 실험장.
1954년부터는 수소폭탄 폭발 실험을 했다.
200여명 원주민들은 첫 원폭 실험 전에 이주.
2017,7,19 미니스커트. 배꼽티 입고
거리를 걷는 여성의 5초짜리 영상에
사우디아라비아가 발칵 뒤집어졌다.
외부 공간에서 여성은 얼굴ㆍ발ㆍ손을 제외한 온몸을 가리고
두건을 써야 하는데 이를 대놓고 어겼다며 구속을 요구하는 여론.
BBC 등에 따르면 사우디 나즈드주 사막지대의 역사 유적 지대에서
긴 머리 여성의 5초짜리 영상이 모바일 메신저 스냅챗에 올라왔다.
사막 등으로 장소를 옮겨서도 편한 복장의 모습.
‘쿨루드'라는 이름의 모델이라고 BBC는 소개했다.
사우디는 아랍권에서도 특히 보수적인 국가로,
여성은 밖에선 몸을 가리는 아바야를 입어야 한다.
대개 검은색, 어깨나 머리로부터 몸에 붙지 않는 형태.
눈 외에 얼굴을 모두 가리는 베일인 니캅과 함께 착용.
이를 어기면 무타윈 이라는 종교 경찰이 감시할 정도다.
동영상이 촬영된 장소는 수도 리야드 북부 무슬림 순례지
사우디에서도 보수적인 나즈드 지방에 속해 있다.
나즈드는 이슬람 원리주의 사상을 이어받아 보수주의
‘와하비즘'을 창시한 압둘 와하브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경찰이 수도 리아드에서 이 여성을 체포했고,
이는 이 왕국의 보수적인 이슬람 드레스 코드를
어겼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1960년대 미니스커트
북한 스튜어디스
중국 여군 중위.
중국 여군.
중국여군
중국 여군
중국 여군
미국 여군
청계천
월드 피트니스 참피온
비키니 대회., 김예슬
비키니 그랑프리 수상.,김시아
김시아
김시아
'2017 머슬 마니아' 비키니 그랑프리 수상.
박시혜
클라라
이 다연
김주리.
김재경.,남심 저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