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내게 오는 자는
Date 2011. 4. 3
Text Jh 6,34-37
(34)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35)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36)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37)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1. 요즘 우리는 초대장 홍수 속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골목길을 걷다 보면 발에 차이는 것이 온통 초대장입니다. 집 우편함에도 별아별 초대장들이 다 있습니다. 각 지자체들은 서로 자기 동네가 살기 좋은 곳이고 기업하기 좋은 곳이라며 도로변과 대형 건물 벽에다 초대형(超大型) 초대 광고판을 붙여놓았습니다. 대통령이 직접 T.V에 나와서 “**한 대한민국으로 오세요~”라 하기도 하고 지자체 단체장들도 요란한 손동작까지 곁들여서 “부산시로 오세요~ 경남으로 오세요~”라고 초대하고 있습니다. 개업식, 결혼식, 졸업식, **수여식 등에 오라는 초대장도 숱하게 받지요. 쓸데없는 초대장 말고 정말 행복하고 기분 좋은 초대장 많이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성경은 어떤 의미에서 전부 초대장이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생들을 천국으로 초대하시는 초대장 말입니다. 어떤 초대가 기억나십니까? 마11,28이지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요7,37-38도 기억해야 할 초대입니다. “(27)명절 끝 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28)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사55,1-3도 꼭 기억해야 할 초대장입니다. “(1)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3)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할렐루야~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도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자신에게로 오라고 하시는 초대장입니다. 초대장의 내용은,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내게 오는 자는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입니다. 다른 초대는 몰라도 주님의 초대만큼은 절대 무시하지 말고, 기쁘게 응하셔야 합니다. 아멘.
2. 주님의 초대는 어떤 초대입니까? 첫째,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최고의 만찬으로의 초대입니다. 생명의 떡과 생명의 음료수를 먹고 마실 수 있는 만찬입니다. 먹으면 늙지 않고 마시면 청춘으로 계속 살 수 있는 생명의 떡과 생명의 음료수를 풍성하게 준비하여 놓고 있는 잔칫집으로의 초대입니다. 갈까 말까 망설일 이유가 없는 잔치입니다. 무조건 가야할 초대입니다. 그런 생명의 떡과 생명의 음료를 무엇과 바꿀 수 있단 말입니까? 무조건 고고 씽이지요.
성경은 천국으로의 초대를 얘기할 때, 잔치로의 초대라는 비유를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22,1-14에는 임금이 아들 결혼식을 위해 준비한 잔치에로의 초대라고 하였고 눅15장에서는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양과 드라크마, 죽었는지 살았는지 생사를 모르고 있다가 다시 찾은 아들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벌린 잔치가 주님이 벌리고 싶은 잔치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역사가 모두 끝이 나고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나라가 시작되는 날을 계19장에서는 어린양 혼인잔치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잔치는 무엇보다도 먹는 잔치가 넉넉하고 좋아야 잘했다 소릴 듣습니다. 먹는 것이든 마시는 것이든 먹고 싶은 만큼 양껏 먹을 수 있도록 넉넉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또 맛난 것으로 준비해야 하지요. 저희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어땠는지 저로서는 무어라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만 하여간 제 기억으로는 마을에 잔칫집이 있으면 늘 불려 다니셨습니다. 그리고는 우리들에게는 잔칫집에 오더라도 고방 쪽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부잣집 애들은 기웃거려도 뭐라 않지만 가난한 집 애들은 그런데 와서 기웃거리면 거지취급 받는다며, 절대로 기웃거리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여러분, 주님은 먹거리 중의 최고 먹거리인 생명의 떡과 음료수를 넉넉하게 준비해 놓은 잔치를 열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서 고생하고 있는 인생들을 초대하십니다. 그냥 있다가는 영혼과 육신이 함께 지옥불에 던져질 운명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초대하십니다. 오기만 하면 죽고 망할 운명이 영생과 면류관 상급의 운명으로 바꾸어지는 복을 받을 수 있는 초대입니다. 주님께서 사순절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우리에게 초대장을 주십니다. 초대장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네~”하고 얼른 따라나서셔야지요.
둘째, 주님의 초대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에게만 효력이 있는 초대입니다. 사실 앞에서 말씀드린 그런 생명떡과 생명수, 먹으면 늙지도 않고 마시면 영원히 건강한 청춘으로 살 수 있는 그런 음식을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믿어지지는 않습니다만 그런 귀한 것도 마다하는 사람들이 그냥 지옥에 가겠다는 사람들이 있긴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몰라서 그렇지 알기만 한다면 거부하지 않지요. 문제는 그 당시 거기 예수님 곁에 있던 사람들처럼 그런 생명의 떡과 음료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시라는 것을 믿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구세주로 보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 말씀 36절에서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41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라며 수군거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39-40절에서 “(39)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47-48절에서도 분명하게 밝히기를 그 원하는 생명의 떡과 음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주어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47)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48)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문제는 요즘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인들은 기독교의 다른 것은 다 좋아하면서도 예수님께서 유일한 구세주 되심만은 절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만 하나님께서 준비한 생명의 떡과 생명수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은 거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 은총에 대한 감격과 감동보다는 예수님께서 가지고 있는 기쁨, 평안, 위로를 판매하려는 경영기법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만으로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만 위하여 사는, 예수의 사람이 되는 것보다 예수스러운 것들을 누리고 즐기는 예수식 삶의 방식에 더 치중하고 있습니다. 대중은 예수 없는 교회가 되라고 강요하고 있고, 교회도 예수 없는 조직과 성과급에 더 매달려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잃으면 다 잃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읽어버리면 다 잃는 것입니다. 예수님 그 분 자신이 기쁨의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 은총 그 자체에 감동하고 감격하여야 합니다. 내가 생각해내고 지어낸 말이 아닌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충만하여 성령께서 주신 언어로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소금이 진짜 소금처럼 보이는 외모보다 짠 맛이라는 본질을 지켜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등은 켜 있는 불이 본질입니다. 주님께 초대 받은 잔치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소금의 짠 맛이요, 등에 켜져 있는 불입니다. 초대 받은 우리는 예수의 사람으로 초대 받았습니다. 오직 주의 사람으로 따라 나서야 하겠습니다. 아멘.
셋째, 주님이 초대하시는 잔치는 확실하고도 영광스러운 보상이 보장되어 있는 잔치입니다. 37절 말씀을 잘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오늘 읽은 부분이 아닌 39-40절에서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를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다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막10,29-30에서 답하시기를, “(29)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확인을 해주셨습니다.
청와대에 초대를 받아서 다녀온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분들을 봤습니다.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열리는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 받은 분들은 너무 기분 좋아하면서 만사 다 제쳐놓고 가는 것을 봤습니다. 그럴만도 하지 않습니까? 대통령 취임식 자리가 얼마나 의미 있고 또 귀한 자리입니까? 여러분, 주님의 초대가 아무려면 대통령의 초대만도 못하겠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실체가 아닌 철학적 개념 혹은 사상으로만 받아들이기 때문에 쉽사리 주님의 초대를 무시합니다. 주님을 위한 희생을 광신이나 맹신으로 취급합니다. 심지어 하늘나라의 상급 이야기를 돈을 갈취하려는 협박이나 사기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주님의 초대를 영광스러운 것으로 확신한 스데반은 담대히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서부터인가 하나씩 둘씩 돌이 날라오기 시작합니다. 아팠습니다.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다시 용기를 내어 당신들은 메시야를 죽였노라고 회개하고 그를 구주로 믿으라고 외칩니다. 그 외침에 머뭇거리고 있던 사람들마저 돌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극단적인 공포심에 덜덜 떨고 있을 때, 갑자기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던 주님께서 돌을 맞는 자신보다 더 아파하시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시는 것이 보입니다.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었고 고통은 극에 달하고 있었지만 보여진 그 광경이 공포심보다 강한 확신과 받을 상급의 영광스러움에 감격하게 합니다. 그는 얼마 후 미소를 띤 얼굴로 시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지 더 오랜 후, 그의 그 이상한 죽음을 본 한 지독한 젊은 핍박자가 그가 외치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게 되었습니다. 기고 그보다 더 많은 세월이 흘러갔을 때 그 핍박자는 전무후무한 세계적 전도자로 사역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3. 어쩌시겠습니까? 지금 주님은 ‘나의 사랑하는 사람아 겨울도 가고 비 그쳤으니 일어나 같이 가자.’고 당신에게 손을 내밀고 계십니다. 제발 모른 체하지 마시고 그분의 초대를 기쁘게 받아들이시고 따르시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