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에서의 5년의 근무를 마치고 1996년3월1일자 논산공고로 발령을 받았다.
이곳에 오니 처음보는 얼굴들이라 좀낯설었지만 동운 선배님들의 배려로 쉽게 적응 할수 있었다.
맡은 반은 기계과 3학년, 용접파트를 그리고 학생과의 업무를 맡았다.
학생들이 서산에서보다는 좀더 제멋대로다. 학생들이 처음왔다고 약간 깔보는 경향이 있길래 기선제압하는 의미에서 용접실습장을 모조리 바꾸면서 말을 듣지 않으면 몽둥이로 마구 때려줬다.
(참고로 그때까지만해도 매가 허락되었다.)
그랬더니 점점 자리가 잡혀가고 말도 잘듣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는 학생들편에서서 대변해주고 무슨일이든 빨리끝나면 자유를 주면서 학생들이 좋아하는것들을 많이 생각해주고 그렇지 않고 반대로하면 가차없이 몽둥이 얼차례 등으로 벌을 주었다. 결국 학생들과의 유대관계가 좋아졌다. 자격증 취득률도 많아졌고 실습장도 깨끗해지고 학생들도 더욱 밝아진 느낌이 들었다.
그러한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나의 학교생활이 이웃학교 선배님들까지 퍼져나갔다.
체육대회가 있으면 아이들과 한몸이 되어 싸웠고, 실습시간도 한몸같이 했다.
논산공고에 부임한지 2년째 봄인지 여름인지 어느날 과선생님들과 서천에있는 마량하메서 고깃배를 빌려 외연도라는 섬으로 야유회를갔다.
텐트와 낚시대 그리고 취사도구와 재료들 기타 필요한것들을 가지고 섬에 도착하니 텐트를 펴고 갯바위 낚시를 하는데 좀처럼 잡히지 않다가 6시경 갑자기 학꽁치가 잡히기 시작하더니 우럭새끼 놀래미 등등 쉴틈이없이 잡히더니 1시간가량지나니 잡히지 않더라. 저녘을 먹고는 그많던 물고기를 도승욱 과장선생님이 하나하나 회를떠서 산더미처럼 쌓아놨더라.으린 그걸로 술한잔하며 즐거운 밤을 보냈는데 아침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곧바로 철수하였다. 배를 타고 바다를건너는데 파도가 거의 1미터 이상 치었다. 난 태어나 그리 큰 파도는 처음봤다. 그런데도 선장님은 똑바로서서 아무렇지도 않다는듯이 배를 운전하였다. 정말로 대단하였다. 우리중에는 멀미 하는 사람도 있었고 나도 두려움도 있었는데 쉽게 마량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선장님이 운영하는 식당에 가서 농어 지리탕을 끓여 먹었는데 난 처음 맛보는 탕이라그런지 정말 맛있게 먹고있었다. 그런데 그때 국현우 선배님이 맛있게 농어탕을 먹다가 목에 큰 가시가 걸리고 말았다. 응급치료를 해도 어림없어 병원을 찾았지만 일요일이라 개원한데도 없고 정말 난감했는데 서천방향으로 가다보니 정형외과가 있길래 무작정 들어가 사정얘기를 하고는 가시를 뽑이냈다.
디들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힘들게 집으로 올수있었다.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겨놓았다.
3년째 되던 해에는 학교업무가 실과부로 옮겼졌는데 학교에 있는 오든 기자재 총책임을 맡았다. 학교에서 가장 힘들고 까다롭고 점검 할 때마다 숫자가 틀릴 정도로 파악하기가 정말 어러워 다들 기피하는 업무였다.
어찌하면 쉽게 관리 할수있을까 집에가서 곰곰히 생각하던중에 처가의 사촌이 컴퓨터 조립및 판매를 하는데 그곳에 문의를 하니 엑셀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된다 하였다. 그리고는 엑셀 프로그램을 하나 장만하고 책을 주문해서 공부를 하였다.처음보는것이지만 해보니 정말 재밌고 쉬웠다. 여러번 시도끝에 기자재 프로그램을 만들고 나서, 각각학과의 사무실에 엑셀 프로그램을 설치해주고는 선배님들께 학과에있는 모든 기자재를 한번만 입럭해 달라고 애원하며 입럭을 마치고는 전체를 수합해 하나의 파일로 만들어 교장선생님께 보여드리니 이런것을 기다렸다면서 그것을 교육청에 자랑하시고 나에게 칭찬을 해주시며 무척 아껴주셨다. 난 그렇게 잘 나갈수 있었다.
그런데 그시절에 난 테니스에 푹 빠져있어 장대환, 박석우, 김현수 등과 함께 테니스의 재미를 만끽하며 집은 등한시하고 밖에서만 지내고 있었다. 주말이면 시합간다고 나가고 평상시엔 근무후에 운동후 한잔의 추석으로 밤늦게 들어가서는 줄곧 부부싸움이 잦았다. 그렇게 1년가량 싸우다보니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자 내가 아내한테 다른 지역으로 옮기자고 제안했고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전북으로 옮기면서 3년의 논산 생활은 끝이났다. 그때 떠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미래를 알수가 없으니 이것이 나의 운명 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현이는 나에대한 불만도 쌓이게 되었다. 학교를 자주옮기니까 친구가 없어진다는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초2였던 현이였기에 이해가 간다.
미안하고 전부다 죄지은 마음뿐이다.
난 나대로 가족을 위한다고 생각했는데 내생각만 하고 살아온것 같아 정말 후회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