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게 익어가는 가을
김 진 삼 명예교수(전 총장직무대행, 상경대학 무역학부)
짧은 가을이 깊어져 간다. 고운 햇살은 창가를 기웃거리고 찬바람은 목덜미를 파고든다. 아파트 마당에는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 꽃 사과나무의 붉은 꼬마 사과, 노랑나비를 온몸에 두른 은행나무들로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담벼락에 있는 대나무 잎사귀는 바람에 실려 사그락 거린다. 귀를 기울이면 한여름의 소나기 같기도 하고, 파도에 쓸리는 조약돌 소리 같기도 하다. 늦가을 소리이다.
토요일 오후 이웃에 살고 있는 아들은 휴대전화로 “아버지, 손녀와 산책하러 갑니다. 같이 가실래요?”라고 한다. 주말이면 이처럼 비상이 잦아서 다른 약속을 잡지 않는다. 아들은 딸을 유모차에 태우고 멀리서 손을 흔든다.
우리 집 삼대가 산책을 나섰다. 손녀가 꾸벅 인사를 한다. “누구 집 손녀가 이렇게 이쁘냐?” 하니, 치마 입은 배롱나무가 웃는다. 살고 있는 아파트는 ‘남산 100년 향수길’ 투어의 끝자락에 있고 수녀원과 담을 마주하고 있다.
천주교 대구교구는 전국의 신자들이 순례하는 성지이고, 각종 천주교 신심행사와 종교의식이 거행되는 사적지로 대구의 명소이다.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그분들의 축복 속에 오늘도 행복하다. 주위에 나무가 많아 바람과 새소리들로 자연의 숨결을 듣는다.
우리는 수녀원 담 길을 따라 대구교구청 정문에 들어섰다. 고목인 가로수 느티나무는 터널을 이루고 우거진 숲 사이로 햇살이 내려앉는다. 신자들의 기도처이며 도심의 깊은 산속 같다. 텃새들이 무리 지어 지저귀며 반겨주었다. 손녀는 새를 가리키며 짹짹하면서 좋아한다.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이 차갑게 느껴진다. 성모 당 앞 노천 의자에는 몇 사람이 묵상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간절한 사연을 두 손에 모아 기도하는 모습에 숙연해진다. 선 자세로 가족의 안녕을 빌었다. 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성모 마리아는 매일 신도들의 간절한 소망으로 영일이 없겠다. 백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신도들은 오로지 가족의 안녕을 빌고 빌었으리라. 동쪽으로 가면 고목인 팽나무 그늘에 몇 개의 탁자와 의자가 있다.
여기가 우리의 베이스 켐프이다. 맞은편에는 조그만 카페가 있어 신자와 산책 나온 사람들로 붐빈다. 손녀와 이곳저곳 산책을 나섰다. 카페 앞 작은 물레방아는 삐거덕거리며 돌아가고 있다.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에서 허 생원과 성 서방네 처녀의 사연이 깃든 물레방앗간이 얼비친다. 소운동장은 시절을 알리는 누런 잔디로 덮여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공놀이하였고 곁에서는 비둘기 한 쌍이 먹이를 쪼고 있다.
구절초 꽃잎은 지고 마른 꽃대만 바람결에 흔들린다. 빵 부스러기를 뿌려주니 금세 비둘기들이 모여들고 손녀는 그 무리에 섞여 신나게 뛰어논다. 이 모습에서 친구의 환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어느 모임에서 친구가 손자 자랑을 하면서 즐겁게 살고 있다고 한다. 그때는 웃기만 했는데 지금은 이해가 된 듯 실없이 웃었다. 늦가을 나무는 새봄을 품고 성모 당 늙은 왕벚나무는 찬바람을 가르며 당차게 서 있다.
아들딸 키울 때는 몰랐던 손녀의 이쁜 모습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뀐 희미한 그림자가 다가온다. 단독주택에 부모님, 아내, 아들딸 삼대가 함께 살았다. 직장 생활한다는 핑계로 아이들은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조부모와 엄마의 손끝에서 자랐다.
단독주택 마당에는 목련 라일락 모란 장미 배롱나무가 계절마다 꽃 잔치를 벌이고 윙윙거리는 하객들은 분주하기만 했다. 스피츠 종류의 작은 ‘깜둥이’ 개는 마당 한 모퉁이에 자리 잡고 주인 노릇을 했다. 아이들과 친구 되어 장난치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은 저절로 크는 줄만 알았다. 초등학교에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엄마 둥지에서 자랐다. 그 시절에는 모두 그랬다고 자위해 보지만, 아버지인 나는 가장의 역할을 하지 못 한 것 같다. 결혼하여 부모와 함께 십여 년간 살았으니, 직계가족(대가족)을 이루다 분가하여 핵가족이 되었다.
아들은 집에서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때론 목욕도 시켜주는 등 자상하게 아이들을 돌봐준다. 그러나 이런 일을 한 번도 해 복 적이 없는 나는 새삼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늦가을 찬바람은 스산한 마음을 밀고 저만치 떠나간다.
아들이 이웃에 살고 있지만, 우리 부부가 온종일 손자 손녀를 돌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건강한 인생살이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욕심을 부렸다. 하늘에 계시는 부모님이 내려다보며 “우리는 손자 손녀를 십여 년간 키워주었는데 너는 어찌하여 그렇게 하지 않느냐.”라는 꾸중이 들리는 듯하다. 이에 “어머니, 어느덧 제 나이가 칠순이 넘었습니다.” 꿈 인양 바람결이 창문을 흔든다.
젊은 부부는 낮에는 직장에 근무하고, 밤에는 집 안 정리와 아이를 돌본다. 주말과 공휴일에도 휴식을 취할 시간이 없다. 이런 환경에 아들 내외는 남매를 두었으니, 한편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며느리에게 아이들 키우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바람이 떠나간 자리에 하얀 햇살이 가득하다. 그렇지만 저녁과 주말에는 전화벨이 자주 울린다. 잿빛 하늘이면 어떠랴, 의미 있는 미소를 머금고 우리 부부는 삶의 온기를 찾아간다.
아들딸 키울 때 느껴보지 못했던 손자 손녀의 사랑스러운 감정은 흰 포말이 되어 파도처럼 밀려온다. 절에 가면 부처님께, 성모 당에 가면 성모 마리아께 가족의 안녕을 빈다. ‘지금처럼 행복하게 해 달라고---.’ 너무 좋아도 슬퍼도 눈물이 난다고 한다. 내 삶이 가을걷이 끝난 휑한 빈 들판처럼 다가온다. 어쩌면 단순하고 허전함은 범부(凡夫)가 누릴 수 있는 지고(至高)의 행복인지 모를 일이다.
토요일 짧은 오후 시간, 성모 당 운동장에서 비둘기 쫓던 손녀가 지루하다고 보챈다. 아들과 손녀, 우리 삼대는 성모 당 왔던 길로 되돌아 나오니, 빨간 산수유 열매를 쪼던 직박구리가 고개를 까딱이며 인사한다. 이 늦가을의 추억을 노을 속에 묻는다.
어린 시절의 연두색이 푸른색으로 붉은색으로, 익어가는 계절의 끝자락에 한 쌍의 까치가 나무를 쪼아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