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웅천왕의 국가철학과 단군왕검의 국가의식
한웅천왕은 국가철학을 만들었고, 단군왕검은 한웅천왕이 만든 국가철학을 실천할 수 있도록 국가의식을 만들었다. 한웅천왕이 만든 국가철학을 천웅지도天雄之道라 하였고, 단군왕검이 만든 국가의식을 계불지의禊祓之儀라 하였다.
한웅천왕은 천웅지도를 수행하는 데에 중점을 두어 천웅지도를 만들었고, 단군왕검은 천웅지도를 실천하는 데에 중점을 두어 계불지의를 만들었다. 그래서 한웅천왕은 천웅지도 앞에 수修자를 붙여 표현하였고, 단군왕검은 계불지의 앞에 행行자를 붙여 표현하였다. 수修는 도를 수련한다는 뜻이고, 행行은 의식을 행한다는 뜻이다. 단군왕검시대에는 천웅의 도를 발전시켜 덕교德敎라 하였다.
한웅천왕과 단군왕검 두 분의 시대 사이에 1800년이라는 시대적 간극이 벌어져 있다. 그러나 계불지의를 행함으로써 두 분 시대의 간극을 극복하였다.
한웅천왕은 천웅지도를 만들어 배달나라시대에 여러 인종과 종족을 신시체제神市體制로 통합하는 데에 썼다. 그러나 단군왕검은 신시체제를 발전시켜 제국체제로 가는 데에 주력하였다.
배달나라시대를 구려시대九黎時代라 하는데, 이 시대에 9인종이나 종족이 한웅천왕이 만든 천웅의 도를 수행하는 데에 진력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대국이 9국, 소국이 12국이 조선에 통합되어 있었으므로 이들 대국과 소국을 통합하는 국가의식을 만들어 이 의식을 행하면서 이들을 구이九夷라 하였다.
<부도지>에서 좀 더 알아보기로 한다.
桓雄氏生壬儉氏 時四海諸族 不講天符之理 自沒於迷惑之中 人世因苦
壬儉氏懷大憂於天下 修天雄之道 行禊祓之儀 繼受天符三印
(한웅천왕이 임검씨를 낳았다. 그때 세상의 많은 인종이 천부의 이치에 대한 가르침을 듣지 않았다. 스스로 미혹함에 빠져 세상살이가 고통스러워졌다. 임검씨는 세상에 대하여 큰 근심을 품고 천웅의 도를 닦으며 계불의식을 행하여 천부삼인을 이어받았다.)
이 문장에서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임검壬儉은 단군왕검을 말한다. <부도지>에서는 임검이라 하였는데 다른 사서에서는 왕검이라 했으니, 임검과 왕검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임검과 왕검은 같은 뜻이다. 임검은 하늘이 세운 왕검이라는 뜻이고, 왕검은 백성들의 추대를 받아 임금이 되었다는 뜻이다. 임壬자의 삐칠별丿자가 임검이 하늘에서 세워준 임금임을 말해 주고 있다. 말하자면 하늘이 별을 내려 세워주었다는 말이다. 왕王은 천지인天地人이 합심하여 세웠다는 뜻이다. 삼三이 천지인을 말하고 곤丨이 세웠음을 말한다. 그 징표로 왕검에게 천부삼인을 주었다.
사해제족四海諸族은 마고성이 폐쇄될 때 동서남북 사방으로 흩어진 황궁, 청궁, 백소와 흑소의 제종족을 말한다. 단군왕검이 왕검에 등극할 때 인종은 5가에서 8가로 불어났고, 국가는 대국이 9국, 소국이 12국이 되었다.
불강천부지리不講天符之理는 천부의 이치를 가르쳐도 듣지 않았다는 말이다. 천부는 마고의 가르침인 해혹복본인데, 이를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몰어미혹지중自沒於迷惑之中은 미혹迷惑에 빠져 천부의 이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이는 지금 우리 현실과 같은 경우로 볼 수 있다. 조상의 올바른 가르침을 모두 의심하고 폄하하고 버리고, 외래의 것을 숭상하기를 하늘을 섬기듯 한다. 이러한 행태가 가장 심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외래 종교와 사상 쪽이다. 예컨대 공자를 받아들였으면 공자를 우리 것으로 만들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공자에 빠져 익사하고 말았다. 역사도 우리 역사를 찾지 못하고, 사대역사에 빠져 제나라 역사를 모두 버린 형국이 되고 말았다. 종교도 대한민국에 천주교가 들어온지 단 2백년, 개신교가 들어온지 단 1백년 만에 기독교국가로 전락하였다. 이러니 마고, 황궁, 유인, 한인, 한웅, 단군왕검을 모두 잊어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인세인고人世因苦는 세상이 고통스러워졌다는 뜻이다. 그 첫째 이유는 국가철학이 없어진 때문이다. 우리 현대사를 보면, 국가철학이 있었던 시대에는 민족의 저력이 살아났고, 민주주의의 기초가 다져졌다. 그러나 국가철학이 없어진 시대에는 계속해서 국가가 어지러워졌다.
임검씨회대우어천하壬儉氏懷大憂於天下는 단군왕검이 국민의 올바르지 못한 정신자세를 보고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였는가를 보여주는 문장이다. 단군왕검은 요임금이 토의 반란을 일으켰을 때, 환부와 권사를 보내어 철저하게 응징하였다. 사상적인 반란에 대하여 추호도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국가역사와 국가철학을 등한시하여 나라 꼴이 우스꽝스럽게 되고 말았다.
수천웅지도修天雄之道는 깊이 음미해 보아야 할 말이다. 수修는 정신수양精神修養을 의미하는 말이다. 천웅天雄은 천왕한웅天王桓雄이라는 말이다. 지도之道는 한웅천왕의 가르침을 말한다. 그가 가르친 것이 재세이화在世理化의 도였다. 재세이화란 국가를 이치대로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도道는 그 방법이다.
한웅천왕시대의 정치체제를 신시神市라 하였다. 배달나라를 신시체제로 이끌어가는 것을 신시이화神市理化라 하였다. <소도경전본훈>에 실린 글에서, <참전계경叅佺戒經- 소도에서 가르친 선가仙家의 지침서>을 가르친 을파소 선생이 신시이화를 이루려면 8훈과 5사를 행해야 하고, 사물을 씀에 있어서 홍익을 위하여 써야 한다고 하였다.
8훈은 성誠, 신信, 애愛, 제濟, 화禍, 복福, 보報, 응應을 말한다. 성은 정성이요, 신은 믿음이요, 애는 사랑이요, 제는 구제요, 화는 누린 만큼 빼앗기는 것이요, 복은 준 만큼 받는 것이요, 보는 베푸는 것이요, 응은 베푼 만큼 되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오사는 곡穀, 명命, 병病, 선악善惡의 5가지이다. 곡은 농림農林, 명은 제정祭政, 병은 의료醫療, 선악은 사법司法을 의미하였다. 그러니까 신시시대의 국가조직을 5부로 나눈 것을 말한다. 사물은 재물을 의미한다. 재물을 씀에 있어서 홍익이 되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중략)
한웅천왕시대에 천웅지도를 완성하여 태백진교라 하였다. 태백진교는 천부(하늘의 이치)에 근원하여 지전地轉(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합치고, 또 인사人事를 바르게 하는 데에 있다고 하였다. 화백(의정議政)으로 정사政事를 보고, 책화責禍(사법司法)로서 덕德을 세워야 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하는 것이 재세이화의 도를 완성하는 것인데, 천부에 비추어 거짓이 있다면 이를 재세이화의 도라 하지 않았다. 또한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도 맞추어 가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
행계불지의行禊祓之儀는 단군왕검이 천웅지도를 어떻게 실천했는가를 밝힌 것이다. 행行은 시행했다는 말이다. 계불은 부정을 쳐내는 것을 말한다. 마고가 마고성을 폐쇄할 때 천수를 끌어들여 청소했는데, 이러한 행위가 부정을 쳐내는 일이다. 부정을 쳐내는 행위가 곧 푸닥거리이고 굿이다. 계불지의는 굿의 형식을 정하여, 그 형식에 맞추어 굿을 하였다는 뜻이다.
단군왕검시대에 굿을 어떻게 하였는가가 계禊자에서 밝혀진다. 계禊는 시示+계契자로 이루어진 문자이다. 그 뜻은 해, 달, 북두칠성 삼신에게 10인이 계를 모아 계주가 제사 지낸다는 뜻이다.
그래서 당골이라는 말이 생겨났고, 단군왕검을 무당이라 칭하기도 한 것이다. 당골은 단군인데, 계주라는 뜻도 있는 말이다.
계수천부삼인繼受天符三印은 천부삼인을 인수인계했다는 말이다. 본문에서는 한웅천왕과 단군왕검이 1천8백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서 1:1로 천부삼인을 인수인계했다는 뜻이 된다. 이 말은 단군왕검이 신내림을 통하여 한웅천왕으로부터 오늘날 무당이 굿을 할 때 의물儀物로 걸어놓는 명두明斗를 받았다는 말이 된다. 명두는 천부삼인이다. (이하 생략)
필자; 노중평 선생
출처; https://cafe.daum.net/godam/NCJX/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