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내
“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에베소서 5장 28절)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에베소서 5장 28절)
나의 장인 장모님은 충청북도 괴산군 영풍면 주진리가 고향이시다. 두 분은 잘살아보기 위하여 자녀들을 데리고 고향을 떠나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신광리에 자리를 잡았다. 처가에는 딸 5형제와 아들 1명이 있었고 그중 나의 아내 서정옥 권사는 셋째 딸이었다.
장인어른은 한학을 공부한 분으로 유교 사상을 철저히 신봉하셨다. 여자는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장인어른의 생각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들은 대학까지 교육을 시켰어도 딸들은 예외 없이 초등학교도 보내지 않고 한문만 조금 가르친 후 출가시켰다.
아내는 젊었을 때는 자녀들을 키우고 남편의 사업을 돕느라 바빴다. 그러나 자녀들이 모두 장성하고 차차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한 것 같았다. 교회 생활도 그런 열망을 키우는 데 일조를 했을 것이다. 다른 이들과 어울리면서 제대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을 느낄 기회가 더 많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내의 마음속에는 공부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수소문 끝에 YMCA에서 초등학문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아내는 나이 50세에 초등학교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그때 YMCA에서는 공부할 기회를 잃은 만학도들을 모아 초등학교 교육 6년 과정을 3년에 가르치고 있었다. 아내는 원만한 성격인데다 교회 생활을 하면서 익힌 리더십 덕분인지 입학하자마자 반장이 되었고 3년째에는 전교 학생회장까지 되었다. 아내는 회장이 된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는 듯도 했지만 그보다는 책임감 때문에 부득이한 경우에도 결석할 생각을 하지 못했고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되어 좋아했다.
처음에는 초등학교 과정만 하자고 시작했는데 과정을 마치고 나니 아내는 욕심이 생기는 듯했다. 중학교 과정도 이어서 하고 싶었던 것이다. 원효로에 있는 수도고등공민학교에 입학을 하였다. 30대의 젊은 동료들과 경쟁하며 늦게 배우기 시작한 영어와 수학을 쫓아가느라 힘들어 하기는 했지만 본인이 원해서 시작한 공부라 그런지 아내는 학교에 다니는 내내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늘 공부할 시간을 할애해 주어야 하고 남들에게는 비밀도 지켜야 하는지라 만학도의 남편이자 학부모로서 나의 고충도 적지는 않았지만 아내가 그처럼 원하던 공부를 즐거이 해 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나에게도 기쁨이 되었다.
아내의 학교 생활은 항상 즐거워 보였다. 워낙 온화한 성격인데다 학생 중에서 가장 연장자이다 보니 늘 반장을 하였다. 졸업 후에는 반 동창회 회장도 하고 있다. 젊었을 때 공부하지 못한 아쉬움이 큰 만큼 동료애도 뜨거운 것인지 어렵게 함께 공부한 친구들과 지금도 형제처럼 친하게 지낸다. 아내는 학교 생활을 하면서도 학교에 떡을 쪄서 가져가기를 좋아했다. 본인이 떡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다른 학생들에게 뭐든 해주고 싶은 어머니 같은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내는 중학교 과정 3년을 마치고 졸업한 후에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을 하였다. 그리고 다시 동신 실업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3년을 더 공부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아내의 나이 60이었다. 아내는 대학까지 다니고 싶어 했지만 그 이후의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큰아들 내외가 미국에 유학 가서 첫 손자를 얻게 된 것이다. 큰아들 내외가 함께 공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안사돈이 미국에서 6개월간 아이를 양육해 주셨는데 우리 집에서도 모른 척할 수 없어서 아내가 학업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손자를 돌보게 된 것이다. 아내는 그 후 손자 보는 재미에 빠져서 학업에 취미를 잃고 말았다. 그 후에는 손자를 데리고 귀국하여 손자 보는 일에 많은 시간을 빼앗기다 보니 대학까지 진학할 만큼 학업에 열중하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고등학교 졸업에 만족해야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십 수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동창들과 어울려 일년에 몇 번씩 만나며 연장자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만년 동창회 회장이다. 늦깎이 공부를 하였지만 그런대로 공부한 보람을 느끼며 자랑스러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