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십대제자
◈ 1. 智慧第一 사리불(舍利弗 Sariputra)
지혜제일(智慧第一)이라 불리는 부처님 제자 중의 으뜸으로,
사리자舍利子, 취로자鷲鷺子, 신자身子 라고도 한다. 마가다국의
브라만 출신으로 인도 왕사성의 북쪽 나라촌에서 출생.
목건련과 함께 외도인 회의론자(懷疑論者)
산자야 벨라따뿟타(Sanjaya Belatthaputta)를
섬기다가 후에 마승비구(馬勝比丘. 부처님 처음
제자 5비구 중 한사람)의 외양에 이끌려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산자야 벨라따뿟타 : 육사외도(六師外道)의 한 사람이며,
유명한 회의론자이다. 객관적인 진리에 대하여
불가지론(不可知論)의 입장을 취하며,
모든 판단에 관한 단정을 피했다.
그는 항상 확답을 피하고 애매모호한 답을 내놓음으로서
‘아마라비케파(amaravikkhepa. 뱀장어 같이 잡기 힘든 논의)’
라고 불렸다. 형이상학적 문제에 관하여 판단중지(判斷中止)를
처음으로 주창한 사상가(思想家)다.
사리불은 수행·정진·교화에 노력하였는바,
부처님께서는《화엄경華嚴經》《반야심경般若心經》등 어려운
경전을 말씀하실 때에는 언제나 사리불을 중심으로 이야기하셨다.
산자야(육사외도의 한사람)의 제자로서 250명의 제자를 데리고
부처님께 귀의할 때 산자야 가피를 토(吐)했다고 한다.
부처님의 장자라 칭송받으며 ‘장로 사리불(長老 舍利弗)’로 불렸다.
◈ 2. 神通第一 목건련(目揵連 Maudgalyana)
보통 줄여서 목련目蓮이라고 부른다. 마가다국 왕사성 밖의
콜리타村 사람으로 바라문족 출신이다. 신통력이 대단히 뛰어나
신통제일神通第一이라고 불린다.
어느 날 신통으로 지옥을 보니 그곳에 자신의 어머니가
고통 받고 있었으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천도했다고 한다.
사리불과 더불어 산자야(sanjaya)의 제자였으며,
함께 석가모니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마가다국의 브라만 출신이며, 석가모니 부처님보다 나이가 많았다.
불교에 귀의한 후 여러 고장을 찾아 부처님에 교화의 법을 전하였다.
《目連經》등 목건련을 중심으로 설해진 경전이 여럿 있다.
수제자로 부처님의 사후 교단을 이끈다.
나중에 탁발하는 도중에 브라만교도들이 던진 기왓장과 돌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수행 중에 브라만교도들이 던진 돌에
맞아죽었다고도 한다.
◈ 3. 頭陀第一 가섭(迦葉 Kasyapa)
두타제일(頭陀第一)이라 불리는 부처님 제자이다.
보통 마하가섭이라고 부른다. 사엽파迦葉波라고도 하며
대음광大飮光, 또는 대구大龜라고 번역한다. 인도 왕사성에서
바라문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이 결혼하였으나,
12세에 부모를 잃고 세속적 욕망의 무상함을 깨달아
부부가 함께 출가 수행자가 되었다.
부처님께 귀의한지 다자신처多子神處에서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8일만에 바른 지혜의 경지를 자기 옷을 부처님께 바치고 부처님이
마을 밖의 쓰레기 더미에서 주워온 헌옷의 천으로 만든
분소의(糞掃衣)를 입고 아라한(阿羅漢)의 과위를 증득한 그는 항상
의식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심신을 수련하는 두타행을 행하였다.
사위국(舍衛國)에 오랫동안 머물다가 길게 자란 수염과 머리,
헌옷을 입은 채 기원정사(祇園精舍)를 찾아갔는데 사람들은
그를 경멸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比丘)들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잘 왔다. 가섭이여, 여기 내 자리에 앉아라.” 하고는,
가섭존자가 얻은 훌륭한 공덕이 자기자신이 얻은 공덕과
다를바 없다고 칭찬하며, 모든 무상(無上)의 정법(正法)을
가섭에게 부촉(咐囑)하고,
죽은 뒤 모든 수행자의 의지처가 될 것이라고 했다.
부처님 입멸 후 가섭은 불교교단의 으뜸가는 제자로 존경받고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후 불교교단을 운영하게 되었으며,
500명의 제자들을 모아 부처님께서 설하신 경(經)·율(律)을
결집하였으며, 선가(禪家)에서는 부처님 법을 전한
‘제1조 조사(第一祖 祖師)’로서 받들고 있다.
◈ 4. 解空第一 수보리(須菩提 Subhuti)
수정제須淨提, 수부제須扶提라고도 하며 선善, 선보善實 등으로
번역한다. 공空을 가장 잘 이해해서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고 불린다.
무쟁삼매(無諍三昧)의 법을 깨쳐 모든 제자들 가운데 제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공사상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반야부 경전에는
항상 수보리가 등장한다.
사위국의 브라만 출신이다. 특히 16나한(羅漢) 중의 하나로서
그는 어려서 성질이 사나워 부모·친척들 사이에서 큰 골칫거리였는데,
마침내 그러한 환경 속에서 출가, 입산수도하여 훌륭한 불제자가
되었다고 한다.수보리 존자는 지혜가 총명하여
그 누구도 따를 자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처음 에는 성품이 악하여 모든 것에 성을 잘 냈다고 한다.
수보리는 부모친족이 자신을 싫어하자 집을 떠나 산속으로
들어갔고 여기서 선인을 만나 부처님께 인도되어 불법에 귀의 했다.
우주의 평등한 진리, 공(空)한 이치를 깊이 체득하였으며,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찬진백연경(撰進百緣經)》 등에
그의 전기가 실려 있다.
또 《금강경金剛經》은 부처님과 수보리와의 대화를 기록한 것이다.
◈ 5. 說法第一 부루나(富樓那 Purna)
만원자滿願子,
만자자滿慈子,
부루나미다라니자富樓那彌多羅尼子라고도
불리는 부루나(푸르나)는 ‘설법제일說法第一’이라 불리며,
말을 잘하여 남을 교화시킴이 훌륭해서 부처님 제자 중 설법이
가장 뛰어났다고 한다.
그는 설법 때마다 그는 먼저 변재辯才로써
뭇사람들을 기쁘게 만들고,
다음에는 폐부를 찌르는 고언苦言으로 그들의 마음에
절실한 가책감苛責感을 가지게 하고,
끝으로 밝은 지혜로 모든 것이 공空함을 가르쳐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예외 없이 해탈하게 하여,
9만 9000명을 열반에 이르게 했다고 한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심을 펴신지 십여년이 훨씬 지난 어느날 제자들에게,
“너희들도 웬만큼 알았으니 세상에 나가서 교를 설해 보아라”고 하셨다.
그 때 ‘부루나’가 수로나輸盧那라는 곳으로 설하러
가겠다고 나섰다.
부처님께서 수로나라는 곳은 사람들의 마음이 몹시 험(險惡해서
여간 어려운 곳인데 “네가 아무리 열심히 교를 설하더라도,
그들이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으셨다.
부루나는 “들어 주지 않아도 저는 조금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듣지 않는다면 저를 비웃지 않는것을 고맙게 생각하겠습니다”고 대답했다.
부처님께서 “만약 모두 네 말을 듣고 비웃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으시니,
“몽둥이로 치고 돌로 때리지 않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부처님께서 “몽둥이로 치고 돌로 때리면 어떻게 하겠냐”고 하시니,
“그 때는 칼로 찔러 상처를 입지 않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또 “칼에 찔리어 부상하면 어떻게 하겠냐”고 물으시니,
“죽음을 당하지 않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또 “죽게 되면 어떻게 하겠냐”고 물으시니,
“그 때는 부처님의 거룩한 교를 펴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여 설법제일의 면모를 보여 주었다.
《법화경 500제자 수기품》에서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았으며, 이후 법명여래라 불리게 될 것이라 한다.
◈ 6. 天眼第一 아나율(阿那律 Aninuddha)
천안제일天眼第一이라고 불린다. 아니루타阿尼樓陀
또는 아우룻다라고 하며 무멸無滅, 여의如意 등으로 번역한다.
정반왕의 동생 감로반왕의 아들로 석가모니 부처님과 사촌이다.
부처님께서 득도 후 고향에 가셨을 때,
아난다와 난타, 데바 등과 함께 출가하였다.
사위국을 지나는 길에 어느 과부의 집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과부는 그를 보고 음의淫意를 일으킴에 부처님께서
그의 비법非法을 훈계하였으니 이것이 부인동숙계婦人同宿戒가
정해진 동기라고 한다.
후에 부처님 앞에 앉아 졸다가 부처님에게 꾸중을 들은 일이 있었다.
아나율은 그후 밤낮으로 자지 않고 수도 정진하다가
그만 눈이 멀었다. 그러나 그는 육신의 눈은 잃었지만
참 지혜의 눈인 천안통天眼通을 얻었다고 한다.
◈ 7. 論議第一 가전연 (迦旃延) Katyayana)
가연자迦延子라고도 한다. 마하가전연, 카트야나 라고도 불렸다.
남인도 아반타국의 크샤트리아 출신이다.
왕명으로 석가모니부처님을 모시러 갔다가 출가하여
깨달음을 얻었으며, 귀국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파하였다.
교리에 밝아 논의제일論議第一이라고 한다. 부처님 제자 중
논의(論議)를 함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질을 가졌다고 한다.
그는 불법에 귀의한 뒤 뛰어난 언변과 말솜씨로 논리 정연하게
상대방의 주장을 꺾음으로써 논의제일이라고 칭송받았다.
가전연 존자는 바로 이들 외도와의 교리 논쟁에서 지는 법이
없었으며 뛰어난 말솜씨 로 널리 불법을 폈다고 전한다.
인도 전역을 돌아다니며 중생 교화 포교에 힘썼으며,
특히 마두라에서 아반티풋 국왕을 만나
사성(四姓) 제도의 모순을 설득한 것으로 유명하다.
부처님의 사후 왕사성결집에서 율의 송출을 담당했다.
◈ 8. 持戒第一 우바리(優波離 Upali)
우바리優婆梨라고도 하는데 근취近取 또는 근집近執이라 번역한다.
인도의 4성 계급 중 가장 천한 노예 계급인 수드라 출신이다.
석가족의 이발사였다. 아난과 난타, 아나율 등이 출가할 때
머리를 깎아주러 갔다가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세속에서는 지위의 고하와 종성의 차별이 있지만
일단 불문에 들어오면 차별 없이 평등하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계율을 잘 지켜 지계제일持戒第一이라고 하며,
부처님 열반 후 왕사성 밖 칠엽굴에서 제1회 불전 결집을 할 때
계율에 대한 모든 사항을 암송하여 율장 성립에 크게 기여하였다.
◈ 9. 密行第一 나후라(羅喉羅 Rahula)
밀행제일(密行第一)이라 불리는 부처님 제자로서,
부처님께서 출가하시던 날 밤에 태어난 부처님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다. 산스크리트명은 라훌라(Rahulla)이다. 장애라는 뜻도
지닌 말이다. 사실 ‘라훌라’라는 이름은 아수라의 일종으로
그 아수라의 무리 중에서 가장 힘이 센자를 일컫는 말이다.
신화에 근거하여 ‘라훌라’라는 말은 월식으로 불리게 되고
결국에는 장애라는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다. 싯다르타가
생로병사의 고통을 목격하고 출가를 결심하여 돌아오던 길에
아들이 태어나 “라훌라(장애)가 생겼구나”라고 통탄했다는 일화가 있다.
라후라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후 고향에 갔을 때
사리불과 목건련을 스승으로 하여 15세에 출가,
최초의 사미가 되었다.
그의 이름을 라훌라라 한 것은 그가 태어날 때 라후라아수라왕이
달을 가렸기 때문이라 하며, 이후 출가한 그는 남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언제나 선행 및 수행을 철저했기에
밀행제일(密行第一)이라 불린다.
이후 법회 회상에 태어나 도칠보화여래(蹈七寶華如來)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았다. 부처님의 비서로써 25년간 부처님을 섬겼다.
불화에는 부처님 좌측에 마하가섭,
우측에 아난존자가 배치됐는데,
라후라는 가섭이 위치한 자리에서 약간 위에
머리를 단아하게 깍은 젊은 비구의 모습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 10. 多聞第一 아난(阿難 Ananda)
환희歡喜, 무염無染 등으로 번역한다.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
불리며, 부처님의 제자이자 사촌 동생이다. 데바닷다의 친동생으로
8세에 출가해 부처님이 깨달은 후 고향에 갔을 때 제자가 되었다.
잘생긴 얼굴 탓으로 여러 차례 여자들로부터
유혹이 있었음을 전하고 있는 바,
부처님 입멸 후 수행에 전력한 끝에
깨달음의 경지인
아라한과를 증득하게 되었다.
언제나 부처님을 따라다닌 까닭에 부처님 법의 내용을
가장 많이 들어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 불렸으며,
부처님 입멸 후 마하가섭에 의해 경전이 결집되던 당시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의 내용을 그대로 외워
경전을 결집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아난존자는 25년 동안의
시자 노릇을 한 자로서의 체험에 의해 결집을 시종 이끌며
경전을 완성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오늘날 우리들이 원시불교의 경전을
읽을수가 있는 것은 이 아난존자의 힘이 큰것이다.
부처님께 여러 번 간청하여
이모 마하파자파티가 출가하도록 허락을 얻었다.
이로써 여성 출가가 가능하게 되었다.
제1차 불전결집 때 가섭과 더불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불경에서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고 시작되는 我는 아난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