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연스님 속명 『전견명(全見明)』으로 공인받음[국제학술대회]
삼국유사 저자 일연스님의 속명(俗名)이 전씨(全氏)라는 것을 학계에서 공인받은 순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2017.08
普覺國尊碑 集字의 特性과 一然의 俗姓 考證
김병헌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
② 2022.12
대구광역시 군위군(軍威郡) · 군위문화원(軍威文化院)에서 발간한
「삼국유사 초·중기본 복원판각사업 비교대조용 영인본 자료집」
③ 2024.09
계명대 교수 「노중국」이 발표한 논문
[일연 스님과 『삼국유사』 : 『삼국유사』의 서지를 중심으로]
삼국유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 국제학술대회에서
계명대 교수 「노중국」이 발표한 [일연 스님과 『삼국유사』 : 『삼국유사』의 서지를 중심으로]논문에서
【비문을 다시 판독한 결과 전씨(全氏)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하였다.
아래는 논문 중에서 속명 관련 부분을 발췌하였습니다.
II. 일연 스님 1. 활동
일연 스님이 살아온 모습은 스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6년 뒤인 1295년(충렬왕 21) 8월에 세워진 < 보각국사정
조탑비 (普覺國師靜照塔碑>(이하<정조탑비>로 축약)를 통해 알 수 있다. 여기서는 스님이 불교에 받을 들어놓
은 이후 주석한 절과 스님이 말았던 공식적인 활동 등을 간략히 정리해 두기로 한다.
스님의 처음 이름은 견명(見明)이었는데 후에 일연(一然)으로 고쳤다. 자는 회연(晦然)이고, 장산군(경북 경산
시) 출신이었다. 성씨는 종래 김씨(金氏)로 보았지만, 비문을 다시 판독한 결과 전씨(全氏)로 보는 것이 타당하
다.
일연 스님은 1206년(고려 희종 2)에 태어나서 1289년( 충렬왕 15)에 입적하였다. 세수는 84세였다.
스님은 1219년(고종 6: 14 세)에 설악산 진전사의 대웅 장로(大雄長老)에게 나아가 머리를 깎고 계를 받았다. 1
277년(고종 14년: 22 세)에 승려들의 과거시험인 선과의 상상과(上上科)에 합격하였다. 이후 일연 스님이 주석
한 절은 포산[包山 : 대구 비술산]의 보당암, 묘문암, 무주암, 인흥사(인홍사), 용천사와 남해의 정림사, 길상암과
강도(江都 : 강화도)의 운해사, 선월사와 개경의 광명사, 포항의 오어사, 청도의 운문사였다. 마지막으로 79세(
10: 1284)에 군위 인각사에 주석하다가 84세(충렬왕 15 : 1289) 7월 인각사에서 입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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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옥천전씨 수당공파 전원열
문경문화원장 전홍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