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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만님 '
' 소혜님 '
' 백내님 '
' 기며주님 '
' 비백님 '
' 들단님 '
" 야, ○○○ "
" ……응. "
" 그럼 지금 내가 이 앞에서 니가 좋아하는 애 말하면 기분 좋겠냐? "
" ……. "
" 그렇게 따지면 여기 좋아하는 애 없는 너도 상관없으니까 말해도 되겠네, 응? "
김종인을 잡고 있던 두 손의 힘이 점차 느슨해졌다. 정착하지 못하고 불안정했던 시선도 한 쪽으로 방향을 고정했다. 가슴께가 욱신거려왔다. 저릿할 만큼 냉정한 눈빛으로 냉정한 말을 하는 변백현이 유난히도 낯설었다. 처음 듣는 말은 언제나 낯설다. 그러니 놀란 표정을 숨기기도 어렵다. 이번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당황스러운 얼굴을 숨길 수가 없었다. 변백현을 그렇게도 겪어보고, 또는 그렇게도 당해봐도 놈을 알기란 여간 쉬운 게 아니었다. 여전히 내 눈만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는 변백현과 나란히 시선이 맞물렸다. 비정하게 얼룩진 마지막 한숨과 함께 빠르게도 제 등을 돌려버리는 변백현이었다. 처음부터 날 당황하게 했던 놈은 이번 역시 그러했다. 적막이 가득한 노래방 문이 열릴 때부터 다시 닫힐 때까지 어느 하나 나서서 입을 열려는 사람은 없었다. 콩콩, 뛰던 심장은 다시금 쿵쿵 울림을 더해갔다. 그때까지도 불안정한 정적은 계속되고 있었다.
" 아, 짜증나 씨발. "
죽어가는 침묵 속에 제일 먼저 입을 연 건 김종인이었다. 사실 말을 했다기보단 욕을 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지만. 방금 전까지만 해도 미스에이의 '다름 남자 말고 너' 가 흥이 나게 울려 퍼지던 곳이 맞는지 노래방 내부에는 서늘한 긴장감이 감돌 정도로 어색한 침묵만이 공존할 뿐이었다. 반사적으로 노래방 문쪽을 바라봤다. 자리를 피하듯이 나가버린 변백현의 행동에 알지 모를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누구를 좋아했었냐고 묻던 말이, 그래서 누구보다 김종인의 기분을 잘 알지 않느냐고 했던 질문이 놈에게는 그렇게도 기분이 나빴던 걸까.
" 야, ○○○ 어디 가? "
" 변백현하고 얘기 좀 하고올게. "
" 지금? 이 상황에서? "
" 나 때문에 화난 건데 그냥 모른 척 해? "
" 너 때문에 화났다고? "
" 가서 말이라도 하고올게, "
저도 모르게 몸이 움직였다. 모두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더도 없이 급한 건 오로지 나 하나 뿐인 듯했다. 반보다 조금 더 많이 열려있는 문을 향해 힘껏 한 손을 뻗었다. 그때였다. 누군가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몸이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돌아갔다. 그 원인에 끝에는 피멍이 들 정도로 꽉 내 한쪽 손목을 잡고 있는 김종인이 보였다.
" 너 때문에 왜 화났는데. "
" ……. "
" 말해봐, 너 변백현한테 좋아하는 애 있었냐고 물어봤어? "
" 뭐? "
" 지금 쟤 내가 너한테 윤은별 얘기 말했다고 저러는 거잖아. "
" ……그, "
" 왜, 넌 뭐가 궁금해서 윤은별 얘기 꺼낸 거야. "
기막힌 상황의 연속이었다. 변백현에게 그 이야기를 꺼낸 원인이 다름 아닌 넌데, 네가 나한테 그런 질문을 하면 난 뭐라 대답을 해야 하는 걸까. 머릿속에선 멈출 리 없는 시계태엽 소리가 잘도 째깍째깍 굴러갔다. 일정한 정착 없이 불안하게 흐려져가는 초점도 지겨울 만큼 폭을 넓혀갔다. 짝사랑을 하고 나서 무의식적으로 늘어가는 건 바로 거짓말이었다. 내 마음을 들키지 않게 자꾸 거짓말을 하고, 또 그 거짓말에 거짓말을 하고, 또 그 거짓말을 거짓말로 덮는다. 모든 건 내 마음을 감추기 위한 처절한 수단일 뿐이다. 이번에도 다를 건 없다. 난 놈에게 솔직한 내 이유를 털어놓을 수 없다. 그렇게 따지면 난 죽어도 이기적인 년이었다. 난 어떻게든 김종인에게 내 감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온갖 구차한 방법을 다 쓰는 데에 비해 변백현이 했던 짝사랑은 세상에서 제일 가벼운 감정으로 분리해버리지 않았느냐, 그래서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물어보지 않았느냐.
그제야 뇌리에 스치는 강렬한 무언가였다. 아, 나 방금 변백현한테 엄청 무례한 짓을 저질렀었구나.
" 궁금해서 물어본 거 아니야, 윤은별이라는 이름 꺼내지도 않았고. "
" 그럼? "
" 아무 생각 없이 말하다가 나도 모르게 얘기 비춘 거 뿐이야, 그거 때문에 오해 생긴거고. "
" ……. "
" 나 때문에 화난 거니까 내가 말하고올게. "
생각보다 몸이 먼저 빠르게 움직이는 내가 신기할 정도였다. 실뭉치가 더 복잡하게 엉키기 전에 먼저 매듭을 지어야 했다. 모든 건 일이 커지고 나서야 깨닫는다는 게 문제였다. 물론 내가 김종인을 좋아하는 지금이 현재진행형이라고 해도, 나중에 시간이 지나 지금이 과거가 되고, 그래서 또 다른 사람이 찾아온다고 해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짝사랑은 내게 있어 늘 숨기고 싶은 존재로 남게 될 것이다. 그걸 간과하지 못한 거였다. 남이라고 해서, 그리고 또 늘 장난스러운 모습만 보여줬던 변백현이라고해서 다를 건 없다. 그 자식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다. 가볍게 생각한 내 탓이었다. 느리게 굴러가던 두 다리를 더 빠르게 움직여갔다. 저 멀리 조그마한 점이 되어 가고 있는 변백현을 향해 무작정 한 손을 뻗었다.
아무 생각 없이 속도를 높여가고 있던 변백현의 몸이 내가 서 있는 반대편으로 완전히 꺾였다. 예상치 못한 내 등장이 저 딴에는 꽤나 석연치 않은 건지 그런 나를 대꾸 없이 뚫어져라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급한 맘에 생각하지 못하고 달렸던 두 다리가 느슨하게 긴장이 풀리며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 그렇게 가면 어떡해? 김종인이랑 나 둘 다 그런 뜻 아니라고 했잖아. "
" 왜 나와? "
" 내가 너 화나게 하려고 그런 질문 한 게 아니라는 거 몰라? "
" ……. "
" 네가 화난 이유를 알아야 제대로 사과를 할 거 아니야. "
" 넌 김종인이 너랑 내 사이 또 오해했으면 좋겠냐? "
" 뭐? "
" 이러고 있으면 김종인이 또 너가 나 좋아한다고 오해할 거 아니냐고. "
" 그건 너 말고 내가 신경 써야할 문제고! "
" ……. "
" 그렇게 가면 내가……, "
커다란 죄책감과 비례하는 묵중한 무게를 가진 돌이 강하게 목 부근을 짓눌렀다. 저릿한 고통이 마치 죄스러운 낙인이라도 찍힌 것처럼 선명하게 날 자극해왔다. 나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다. 윤은별이라는 그 이름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종인이를 이해해달라며 저도 모르게 변백현의 아픈 기억을 꺼낸 건 다름 아닌 나 아니냐. 질끈, 두 눈을 한번 감았다가 뜨기를 여러 번이었다. 인생의 큰 거사를 앞두고 있는 사람처럼, 아님 사고를 저지르고 간곡히 석방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콩알만큼 작아진 심장이 점차 데시벨을 높여갔다. 변백현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깊지도 않은,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은 딱 일정한 만큼의 길이였다.
" 굳이 좋지도 않은 일 알 필요 없는 사람까지 아는 게 싫어서 그래, 됐냐? "
" ……. "
" 좋아하는 사람한테나 집중해, 괜히 필요없는 사람한테 신경 쓰지 말고. "
" 야, "
" 내가 좋아하던 사람이 있던 말던 넌 내가 김종인 이해만 해주면 되는 거 아니냐? 아까 그 부탁 했잖아, 너. "
" ……. "
꼬였다. 놈은 지금 완전히 배배 꼬인 상태였다. 내가 전하고 싶은 의도는 그런 식이 아니었음에도 지금 변백현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아니꼬운 형식으로 되풀이될 게 뻔했다. 침울해진 기분에 저도 모르게 미간 사이에 자잘한 힘이 들어갔다. 그 잔인하게 조각난 말에 용기를 내어 꼬리를 이을 수 없었다. 끝내 마지막 말을 잇지 못하고 놈은 내게서 다시 등을 돌리고 멀어져 갔다. 불편하게 어긋난 공간에 죄인마냥 무거운 입술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억울했다. 아니, 조금 더 많이 울컥했다. 애초부터 김종인이 나한테 아무렇지 않은 듯 가볍게 말했으니 받아들이는 나로서도 무거운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건데. 짝사랑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그 이야기를 함부로 꺼냈다는 자체는 물론 잘못이지만, 그게 변백현에게 있어 숨기고 싶은 흑역사라는 걸 알고 있었다면 난 죽어도 그걸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을 거다. 잘못을 하고 인정을 해도, 받아들이고 이해하기까지는 힘들다. 저는 김종인 앞에서 잘도 내 짝사랑을 조롱했으면서, 난 그냥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왜 저렇게 화를 내냐 이 말이었다. 미안함에 웅어리졌던 마음이 일순간 빠른 속도로 자잘히 공중에 분해되어 갔다. 정말 알 수 없는 놈이었다. 놈이 내게 말한 화난 이유는 꽤나 설득력이 없었다. 내가 자기 이야기를 아는 게 싫어서 그랬다니, 그럼 지가 나한테 했던 행동은? 이거 완전 모순 아니냐.
" 야, 변백현은? 갔어? "
" ……갔어. "
" 얘기하고 온다며, 벌써 갔어? 변백현한테 무슨 말 했는데, "
" 야, 내가 뭘 잘못했어? "
" 응? "
" 내가 뭐 지를 조롱하기나 했어 놀리기나 했어? 그냥 너도 짝사랑 해봤으니까 내 마음 조금 더 이해해달라고만 했는데 왜 지 혼자만 피해자 코스프레냐고! "
" ……무슨 일 있었어? "
" 진짜 개짜증나, 변백현 저 새끼. 진심으로 성격파탄자같아. "
연신 애타는 표정으로 저에게 사건의 개요를 말해줬으면 하는 수지에게서 매정히 등을 돌렸다. 이번엔 나도 꼬일 때로 꼬인 모양이었다. 그런 뜻이 아니지 않느냐. 왜 저 혼자 과대 해석해서 생각하는 건지. 내가 김종인을 좋아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변백현을 싫어하는 것도 아닌데. 놈은 좋은 친구다. 근데 좋아하는 사람한테나 신경 쓰라니. 애초부터 내가 변백현을 좋게 생각하지 않으면 따라나서지도 않았을 텐데. 아, 계속 생각하면 나만 머리 아플 뿐이다. 대화가 안 통하는 사람하곤 싹수부터 잘라버리는 게 맞다고 했다. 나야말로, 나야말로 짜증 나는 일이다. 나야말로.
짝사랑의 조건 열두 번째 : 늘 그렇듯, 고백은 한순간이다.
우울한 노래가 끝나면 또 다른 우울한 노래가, 그 우울한 노래가 끝나면 또 다른 우울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노래방 예약 순위엔 구십 퍼센트 이상이 우중충한 노래로 쫙 도배되어 있었다. 어떻게든 분위기를 띄어보려고 되지도 않는 클럽 노래를 선택하던 김종대의 노력은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짜게 식어가기를 여러 번이었다. 다시금 흘깃 김종인과 내 눈치를 보며 선곡한 배수지의 정통 발라드 '또르르'가 흘러나왔다. 또르르, 눈물이 흘러간다 또르르, 또르르르. 가사는 참 슬픈데 기분은 왜 이렇게 잡치냐 이 말이다. 네 사람 사이에선 한 마디의 대화도 일절 터지지 않았다. 맨 앞에선 푹푹 한숨만 쉬어대며 슬금슬금 우리 눈치를 보는 김종대가 있었고, 그 옆으론 어떻게든 가라앉은 공기를 올리려 발라드를 재즈버전으로 바꿔 부르는 배수지가 보였다. 노래방 구석에선 의미 없는 페북 좋아요만 눌러대는 나도 있었고, 그런 내 옆으론,
" ……. "
표정 하나 없는 무채색 톤으로 뚫어져라 노래방 화면만 응시하고 있는 김종인이 있었다. 아, 어디서부터 꼬인지 모르겠다. 난 정말 종인이가 아무렇지 않게 말해서 나도 따라 아무렇지 않게 말한 것뿐인데……조롱하려는 의도도 없었고, 그저 너도 짝사랑을 해봤으니 조금만 더 이해를 해달라고……그래, 백 번을 생각해봤자 뭐 하냐. 이미 변백현은 저 혼자 오해하고 가버린지 오랜데. 흘끔, 옆쪽으로 고개를 돌려 김종인을 바라봤다. 무표정을 하고 있음에도 주름져있는 미간에 아직도 분이 안 풀린 모양이었다. 난 분명 명백한 원인이 있는데도 이렇게 되면 꼭 내가 죄인이라도 된 것 같지 않으냐. 따지고 보면 나도 화내고 소리 지를 수 있는 입장인데, 왜 지들끼리 더 크게 싸워서 나만 새우 꼴로 만드냐 이거였다.
" 걔는 왜 너한테까지 화를내냐. "
" ……응?"
" 그렇잖아, 화났으면 내가 너한테 윤은별 이야기한 거 때문에 나한테 화나야지 왜 너한테까지 화내는데. "
" ……어, "
" 아까 너도 걔 잡으러 나갈 때 나 때문에 화났다고 했잖아. "
" ……. "
" 변백현한테 윤은별이야기만 한 게 아니야? "
" 응? "
" 아니, 너가 변백현한테 걔 얘기만 했으면 나한테만 화내는 게 맞는데 아까 너한테도 화난 상태였잖아. "
" ……. "
" 그게 이해가 안 가서 그래, 지금. "
그렇다. 종인이의 말이 틀린 건 하나도 없었다. 내가 윤은별 이야기를 했다는 전제로 놈이 내게 그렇게 화를 낼 이유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내게 가볍게 말을 흘린 건 김종인이고, 난 아무 생각 없이 그걸 말한 것뿐이니까. 까맣게 얼룩져있던 머릿속이 뜨겁게 움직여가기 시작했다. 생각해내야 했다. 내가 변백현한테 무슨 말을 했더라. 무슨 말을……무슨 말을.
" ……아까 김종인때문에 화난 거 아니지? "
" ……. "
" 아니, 아까 너가 김효정 얘기 돌려말하는 거 같아서 기분 나빠하는 거 같더라고. "
" ……. "
" 야, 아무리 그래도 김종인이 김효정 얼마나 좋아했는지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 안되지. 지금 제일 심란할텐데. "
" 누가 누굴 걱정해 지금, "
" ……. "
" 지가 김효정한테 계속 병신짓했던 게 잘못이지 그런거로 왜 기분나빠하고 지랄이야, 사람 병신 만드네. "
" 변백현 너도 좋아하는 애 있었다며, 그럼 알 거 아니야. 지금 얼마나 답답한지. "
" ……너 그거 누구한테 들었어? "
" 지금 그게 중요해? 너 화나라고 한 말이 아니라 이거잖……, "
그래, 김종인을 이해해달라고 했다. 너도 짝사랑을 해봤으니 조금 더 답답한 마음을 헤아려달라고. 그냥 조금만 종인이한테 배려해주면 좋겠다고. 석연치 않은 꽉 막힌 느낌에 콩콩 작게나마 가슴 부근을 두드려댔다. 물 한 통을 원 샷해도 갑갑하게 목이 조이는 기분을 타파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구마다. 김종인만 고구마가 아니라 변백현도 고구마다. 이유가 있으면 시원하게 말을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야 어떤 식으로든 화해를 하지. 그때였다. 옆에서 인기척 없이 날 바라보고 있던 김종인이 자세를 고쳐잡고 내 쪽으로 더 가깝게 밀착해오는 것 아니냐. 앞에선 배수지와 김종대가 나란히 또르르의 절정 부분을 불러대며 저들만의 게릴라 콘서트를 만든지 한참이었다. 갑작스러운 잘난 비주얼에 놀란 심장이 왜 예고 따위 안 해주냐며 야단이었다.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힘이 들어간 목 부근엔 선명하리 만큼 핏대 여러 개가 서 있었다. 콜록, 하고 촌스러운 헛기침도 터져 나왔다. 한 뼘 거리 정도의 거리에서 무어라 말도 없이 날 바라보기만 하는 놈이었다. 그 눈빛에 의미가 꽤나 음흉해 보여 설혹, 드라마에 본 듯한 상황이 머릿속에서 떠오르곤 했다. 예를 들면, 상남자스러운……뭐 그런 거 있지 않느냐.
" 변백현이 너한테 관심있는 거 아니냐? "
" 응? "
" 야, 아무리 생각해도 그 새끼가 너한테 화낼 이유가 없다니까? 네가 괜히 자기가 좋아했던 애 알아버리니까 지 입장에선 빡칠 수도 있지. "
" 그래서 화난 거 아니라니까? "
" 그럼 뭐래, 왜 화난지 말해봤어? "
김종인이 미친 게 분명했다. 쓸데없는 궁금증에 말해야 할 것, 또는 그러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 못하고 무턱대고 말부터 꺼내는 듯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 앞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는 현실이 그득하게 아려왔다. 이상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정말 변백현이 김종인이 아닌 내게 화를 낼 이유가 없지 않으냐. 먼저 내게 말한 건 김종인이었고, 먼저 기분이 상한 건 둘 사이였는데. 그럼 남은 건 단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 우선 첫 번째는 내가 김종인을 이해해달라고 부탁해서고, 또 다른 하나는……,
" 걔 너한테 관심 있는 거 같은데. "
" ……. "
" 진짜 그게 아니면 너한테까지 화낼 이유가 없다니까, 모르고 말한 건 잘못이 아니잖아. "
놈은 어제 봤던 명탐정 코난이 꽤나 감동스러운 모양이었다. 되지도 않는 어색한 추리를 하며 날카로운 척하는 모습이 내 눈에는 지독히도 달갑지 않게 느껴졌다. 변백현이 날 좋아한다니, 이게 무슨 어이없는. 내 짝사랑을 놀리고, 조롱하고, 비꼬는 데에 한참 재미가 붙은 놈이다. 뭐, 요즘 들어선 그러기보단 날 더 도와주고는 있다만……아니지, 그게 무슨 도와주는 거냐. 그냥 자기만 혼자 알고 있는 이 사실이 재미있어서 제멋대로 감추려는 거지. 큼, 어색한 감정에 연신 헛기침을 터뜨렸다. 그럼에도 김종인은 뭐 대단한 사실을 발견했다는 듯 계속해서 장난스러운 입꼬리를 가느다랗게 올린 채로 날 응시하고 있었다. 기막힌 상황에 온몸 전체에 후끈한 열이 차올랐다. 급한 마음에 다급하게 손부채질을 한다는 게 놈에게는 내가 저의 말에 당황한 듯 보였는지, '너도 뭐 있네.'라는 말을 흐리며 그제야 내 곁에서 제 몸을 떨어뜨리는 김종인이었다.
아, 할 수만 있다면 온갖 공구들을 들고 놈의 머릿속에 들어가 그게 아니라며 무지 상태로 완벽히 고쳐놓고 싶었다. 더 가능하다면 김종인이 좋아하는 이상형을 나로 바꾸는 것까지. 언제 끝날지 도무지 갈피가 안 잡혔던 '또르르'의 마지막 후렴 부분이 하이라이트를 찍어가고 있었다. 하하, 억지로 쓴 미소를 띠며 규칙에 안 맞는 엇박자로 손뼉을 짝짝 칠 수밖에 없는 나였다. 모든 게 정상적이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 나도, 변백현도, 김종인도, 그리고 느릿하게 흘러가고 있는 노랫소리의 엇박자도.
" 분위기 별론데 오늘은 각자 집 가자, "
" ……. "
" 그리고 김종인 넌 나랑 같이 변백현네 집 가고. "
" ……아, 나 왜. "
" 니네 싸워서 여자애들까지 피해본 거잖아. "
" 어차피 집가서 롤하면 화해할 거 알잖아. "
" 아, 니네 롤 하면서 존나 어색하게 있을 거잖아. "
" ……어, 그럼 난 먼저 갈게. "
" 어, ○○○ 너 우리랑 방향 다르냐? "
" 아, 나 반대방향. 수지도 너네랑 같은 방향이니까 같이가. "
" 어, 그래……조심히 가라. 괜히 김종인이랑 변백현때문에 분위기 다운됐네. "
" 아니야, 진짜 괜찮아. 갈게, 내일 보자. "
" ○○아, 가면 보미있는 단톡에 갔다고 말해줘야해? "
" 알겠어 알겠어. "
찝찝하기 그지없는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느릿하게 등을 돌렸다.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양손에 한 톤이나 되는 무게에 짐을 들은 사람처럼 어깨 축지 중심이 삐딱하게 한 곳으로 기울어졌다. 아, 마냥 개운하지 않은 기분이었다. 분명 억울한 게 확실했음에도 자꾸 변백현의 독설 아닌 독설이 반복되어 오버랩된다는 현실이 지겹게도 내 골머리를 썩이게 만들고 있었다. 그보다 더한 건 김종인의 눈치 제로 추리까지. 종인이와 알콩달콩 더 많이 친해질 둘도 없는 기회였는데, 이 무슨 불행이냐 말이다. 사실 불행해진 건 마냥 김종인 때문도 아니지. 요즘 들어 더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했던 변백현과도 둘도 없이 멀어져버렸으니,
" 택시타고 가자. "
그때였다. 도망치기에 바쁜 몸이 누군가에 의해 강제적으로 돌려졌다. 그 당사자를 확인하고 난 내 표정이 마냥 행복할 리가 없었다. 오히려 난감하다면 난감했지, 절대적으로 좋을 리가 없었다. 분명 수지와 김종대와 같이 반대쪽 정류장으로 걸어가던 김종인이 왜 지금 내 눈앞에서 내 팔목을 잡고 있냐 이거였다. 반복적으로 두어 번 눈을 깜빡였다. 눈앞에 있는 형체를 믿을 수 없어 나름대로 정신을 차리라는 주술을 건 셈이었다. 그제야 정말로 김종인이 내 팔목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주술의 효과가 꽤나 강력한 듯했다. 아니, 그러니까 지금 김종인이……정말로 김종인이, 어……그러니까 왜?
" 왜? "
" 할 말 있어서. "
" 무……, "
김종인은 참을성이 꼭 지 못생김만큼 없나 싶었다. 무슨 말이냐 말을 꺼내기도 전에 박력 넘치게 나를 바로 보이는 택시 쪽으로 끌고 가는 것 아니냐. 사실 이게 마음 없는 상대라면 무례함이 정점을 찍는 짓인데, 내가 좋아하는 상대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그는 박력이 넘치고, 상남자고, 또는 멋지기까지. 원래 콩깍지라는 게 그런 것 아니냐. 영문을 모른 채로 정말 택시 안에 나란히 올라탄 김종인과 나였다. 내 몸이 내 의지와는 다르게 종인이의 의지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저리게도 허무했다. 아, 난 진짜……자존심도 없나.
" 무슨 할 말? "
" ……. "
" 야, 무슨 할 말? "
" 넌 변백현 어떻게 생각하나 싶어서. "
쾅, 하고 모든 게 땅속으로 꺼져버린 듯했다. 자동적으로 미간 사이엔 여러 개의 물비늘의 줄을 이루고 있었다. 목구멍에 커다란 돌이라도 막고 서 있는 것처럼 제멋대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좋아하고 있는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김종인이. 실망할 건 없었다. 애초부터 이 줄다리기는 항상 내 승리로 끝날 경기니까. 매번 말하지만 종인이는 어차피 반대편 줄을 잡을 생각도 안 할 테니까. 그저 나 혼자만 밀고 당기고, 상처받고, 그러다 합리화하고, 결국 또 포기하고, 그러다 다시 좋아하고. 그러니 실망할 건 없다. 김종인 입장에선 정말 날 좋은 친구라 생각해서 변백현에 대해 물어보는 게 분명했다. 사실 사람이 그렇다. 머리로는 그런 식으로 합리화하려고 해도, 나날이 쿵쾅대기 바쁜 심장은 속일 수가 없었다.
" 변백현 걔가 분명 이유없이 화낼 애는 아니거든, 여태까지 우리랑 다니면서 화낸 적도 거의 한 두번? "
" ……. "
" 오늘도 분명 이유 있을 거고. 우리끼리 윤은별 이야기 존나 자주한단 말이야, 솔직히 김효정 이야기도 자주하고. 장난으로 디스하거나 놀릴 때. "
" ……그래서? "
" 근데 겨우 윤은별 이야기 하나 했다고 화낼 애는 아니잖아, 그 전부터 기분 나빠하고 있었던 것도 같고. 생각해 보니까 그때 내가 너랑 장난 엄청 치고 있었잖아. 막 서로 고구마라고 놀리면서. "
" ……그니까 그래서? "
" 응, 아니……, "
" ……. "
" 넌 변백현 어떻게 생각하냐고. "
" 나 좋아하는 애 있다고 했잖아. "
" 응? "
" 좋아하는 애 있다고 했잖아, 변백현 아니라고 했잖아. 내가 그렇게나 말했는데 왜 계속 걔 얘기만 해? "
" 아니, 난 내가 김효정이랑 안 좋게 끝났으니까 혹시 변백현이 너 좋아하는 거면 잘……, "
" 좋아하는 애 있다고, 몇 번을 말해? 너같으면 네가 짝사랑하는데 자꾸 다른 사람이랑 엮으면 기분 좋겠어? 너 진짜 이기적이다, 내가 그렇게……! "
" ……. "
" 그렇게……, "
" ……. "
" ……. "
싸한 적막이 깊고 낮게 깔려갔다. 놀란 눈을 그대로 굳히며 빤히 날 내려다보는 그 시선이 처음으로 밉게 느껴왔다. 놈을 보고도 설렌다는 생각 따위가 들지 않았다. 실망할 게 없어도, 그래서 내가 다칠 게 없어도 적어도 난 그동안 진심으로 내 마음을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존심 따위가 상하더라도 김종인이 내 마음의 한 자릿수 정도는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내게 친절히 대해준 거고, 그래서 내게 장난을 쳐준 거고, 그래서 내게 설레는 말 따위를 했을 거라 생각했다. 모든 게 착각이었다니. 울렁임에 가득 찬 고통이 진득하게 아려왔다. 놈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의도로 했던 말이, 한 사람에겐 평생에 남을 기억이라는 걸 정녕 알지 못하는 걸까. 자기도 그렇게 당해봤다면서.
" ……미안, 내가 너 생각을 못했다. "
" ……. "
" 난 그때 김효정이 너랑 싸운 이유가 나 때문이라고 했을 때 솔직히 김효정 말은 신뢰도 안 갔고, 넌 화장실 앞에서 변백현한테 고백했던 일이 쪽팔려에 걸려서라고 했고, 변백현도 너가 자기말고 다른 좋아하는 애 있다고는 했는데. "
" ……. "
" 작년까지만 해도 여자랑 친하게 잘 안 지내던 놈이 갑자기 너랑 친하게 다니니까 그게 뭔가 있나 싶어서 그랬어, 그래서 김종대랑 나도 계속 의심했었던 거고. "
" ……. "
" 그래서 난 너도 변백……, "
" ……너 진짜 못됐다. "
" 나쁜 의도로 그런 거 아니야, 진짜 백현이 괜찮은 애라서 말해주고 싶……. "
" 8개월 동안 너 좋다고 따라다니면서 이렇게 못된 새끼라는 거 처음 알았어. "
" ……뭐? "
" 내가 누굴 좋아해? 변백현을? 그래서 친해졌다고? 너 진짜 제대로 헛다리 짚었다. 김효정은 진짜 제대로 말했네. 나 그날 너 때문에 싸운 거 맞아. 김효정이 내가 너 좋아하고 있다는 거 알고서 절대 이어질 수 없다고 나 엄청 무시했었거든. "
" ……. "
" 난 또 그거에 열받아서 내가 먼저 머리채 잡은 거야, 애가 사람을 너무 깔고 무시하는 게 재수없어서. "
" ……. "
" 근데 괜히 쓸데없는데 힘썼네, 어차피 이어질 수 없는 거 맞는 말인데. 그동안 네가 했던 말이나 했던 행동 하나하나에 설렜던 내 시간이 아깝다. 너 지금 되게 어이없겠다, 지 혼자 좋아해놓고 왜 지 혼자 화내나 싶지? 근데 내가 널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고 해도 그 사람 의사 상관 없이 누구랑 이어주려고 하는 거 되게 못된 거거든? 너도 그렇게 사람한테 상처 받았으면서 그런 거 하나 구분 못해? "
" ○○○. "
" 네가 내 이름 하나 외웠다는 사실 하나에도 밤새 잠 못자고, 자연스럽게 네가 나한테 스킨십이라도 하면 그날은 그냥 아예 밤 새고 학교 갈 지경이었어. "
" ……. "
" 지금 되게 어이없어도 참아주라, 너도 알잖아. 지금 내 기분이 얼마나 허탈할지. "
" ……. "
" 나 너 진짜 많이많이 좋아했거든, 어쩌면 네가 김효정 좋아했던 것보다 더 많이. "
속상한 마음이 잔인하게 가슴통을 울려왔다. 꼭 목울대 중앙을 바늘로 콕콕 찔러대는 것처럼 찌릿한 고통도 일렁였다. 했다. 정말 놈에게 내 마음을 전했다. 그 고백의 시작이 결국 짝사랑의 끝을 알리는 것과 같아 아득한 서러움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난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시작하고 혼자 상처받는 드라마 속 서브 여주로 밖에 비춰질 수 없구나 싶었다. 바보 같은 김종인은 그 잘난 얼굴에 바람둥이 기질은 하나도 없어서 여자를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 모르는 티를 제대로 내고 있는 듯했다. 어버버, 그게 딱 김종인을 표현하기에 정확한 단어였다. 사실 지금 당시는 후련한 마음보다는 비참한 마음이 더 크게 느껴졌다. 비참하고, 참담하고, 잔혹한 그런 기분.
익숙한 우리 집 놀이터 정문에 도착하자마자 아무 일도 없던 사람처럼 한쪽 손등으로 거칠게 제 얼굴을 닦아내고 힘껏 차 문을 열어젖혔다. 바보 같은 김종인이 내 이름을 부를까 말까 안타깝게 애쓰고 있는 듯한 얇은 호흡이 느껴졌다. 미련을 남기고 오고 싶지 않았다. 김종인은 정말 날 끝까지 비참하게 만들어버렸으니까. 쾅, 하고 문을 닫자마자 택시는 매정하리만큼 쌩하니 놀이터 정문을 빠져나갔다. 차라리 잘 됐다. 김종인이 바람둥이가 아니라, 김종인이 어장남이 아니라, 김종인이 나쁜 남자가 아니라 아무것도 못하는 순수한 놈이라서. 그래야 적어도 이 정도로 끝날 수 있을 테니.
천근만근, 온몸이 꼭 귀신이라도 붙은 사람처럼 축 처져왔다. 늘 5분 거리면 도착했던 우리 집인데도 시간은 벌써 15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걷고 걸어도 발등에 속력이 붙지 않았다. 커튼 마냥 길게 늘어뜨린 머리를 방패 삼아 일말의 미련을 감춰왔다. 해는 벌써 제 빛을 잃어가고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그게 또 마냥 내 짝사랑이 끝났다는 무언의 의미 같았다. 씁쓸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진짜 끝났구나, 나 진짜 끝났어. 보미가 칭찬이라도 해주려나. 그렇게 하라고 난리쳤던 고백을 내 스스로 하고 말았으니. 느릿하게 휴대폰을 들었다. 걱정돼니 집에 도착하면 바로 카톡하라는 수지의 말이 생각난 거였다. 사실 늘 한결같은 친구들을 보고서 위안이라도 받을 셈이었다. 일순간, 카톡창에 들어가 수지와 보미가 함께 있는 단톡방을 찾던 내 시선이 의아한 한 곳에서 멈췄다.
[변백현] 몇신데 안와ㅡㅡ
[변백현] 아니 김종대랑 너 둘다 전화 왜 안받아
[변백현] 둘이 여행이라도 갔냐ㅋㅋㅋㅋ?
[변백현] 야ㅠㅠㅠ좀 받아라ㅠㅠㅠ
[변백현] 카톡을 보낸지가 몇신데 아직도 안봐;
[변백현] 야 설마 나한테 화났어?
[변백현] 와 솔직히 니가 화나면 안되는거아님?
[변백현] 아 일단 어딘데 그러니까 ㅅㅂ
[변백현] 나 너네 집앞이야
[변백현] 헐 나 혹시 주소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님?
[변백현] 야 여기 맞아? 앞에 놀이터있는 곳
고개가 갸우뚱 꺾였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자아를 가지고 있는 카톡이 다름 아닌 변백현 한 사람한테 온 카톡이 맞냐 이거였다. 아라비아 숫자도 아닌 것을 쉽게 이해하기 힘들어 한참이고 같은 글자만 뚫어져라 읽어내려갔다. 우리 집? 우리 집이라고? 그때였다. 두 손으로 곱게 받치고 있던 휴대폰에 웅장한 진동이 느껴져왔다. 다시금 카톡창에 들어가 마지막 수신 카톡에 해당되는 말풍선을 차근차근 읽어내려가면,
" 아, 늦었어 존나. "
" ……. "
" 휴대폰 왜 가지고 다녀? 없으면 왕따당할까봐? "
" ……야, 변백현. "
" 아, 아까 화낸 거 말이야. "
" ……. "
" 내가 윤은별이야기에 원래 심하게 반응하는 편은 아닌데……. "
" 야……너. "
" 아, 그러니까 내가 어……어. "
" ……. "
" 신경……, "
" ……. "
" 신경 쓰이잖아, 아……. "
" ……. "
" 어, 아까 화난 거 그러니까……, "
" 야, 변백현 어떡해……, "
" 야, 너 왜 그래 울어? "
당근보단 채찍이고, 또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하지만 지금으로선 난 무조건 반대가 필요했다. 채찍보단 당근이고, 미운 놈보단 내 마음을 알아줄 사람이 필요했다. 잔잔하게 흐르는 그 미소에 꾹꾹 눌러왔던 무언가가 한방에 폭발한 나였다. 어린아이가 대형 할인 마트에서 엄마를 잃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현실의 서러움과 앞날의 두려움이 절묘하게 섞여 뿌연 앞 시야에서 당황스레 날 바라보고 있는 놈을 향해 모든 걸 터뜨렸다. 조금이라도 예뻐 보이고 싶던 마음에 바르고 또 발랐던 비비가 끈덕거리게 질퍽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울음은 그칠 생각은 안 했다. 바보 같은 김종인은 죽어도 여자를 위로해주는 법을 몰라 끝까지 내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 난 그것도 너무 속상하다. 그게 아쉽다고 생각하는 지금도 너무 비참하고, 여전히 생각나는 그 얼굴이 너무나도 밉고 아득했다.
" 나 고백했어, 나……김종인한테 고백했어. "
" 뭐? "
" 나 고백했다고, 말했다고 김종인한테……, "
" ……. "
" 말, 말했는데 근데 진짜 끝까지……, "
" 고백했다고? "
한쪽 손을 들어 내 뒤통수를 감싸고 제 품속으로 당겨버리는 변백현이었다. 사실 정확히 따지고 보면 김종인은 잘못한 게 없었음에도 가슴속은 끊임없이 그 때문이라고 욕하길 반복했다. 날 먼저 설레게 했던 것도, 날 착각하게 했던 것도, 내가 좋아하게 만든 것도 다 김종인 너였는데. 자괴감 때문이라는 걸 알면서도, 쓸데없이 잘못을 넘기는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난 계속 그렇게 김종인을 욕하고 비난하고 할퀴고 있었다. 변백현은 그런 내게 별다른 코멘트 하나 없이 계속해서 괜찮다는 말만 반복해왔다. 괜찮다, 괜찮다. 그러니 잘했다. 목구멍에 비릿한 생채기가 생길 정도로 엄청난 통곡은 계속됐다. 눈물은 멈출 기세가 없었다. 내 8개월간의 시간이 다시금 필름처럼 나열되어왔다. 바보같이 그의 행동하나에 좋아하고 설렜던 내가 너무 창피하고 모자랐다. 이전보다 조금 더 나아졌지만, 또 저번보단 훨씬 나아졌지만 늘 결과는 똑같다. 난 항상 이렇게 비정한 결말을 맺곤 한다.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저들끼리 눈이 맞아서 잘도 사귀는지, 난 죽어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날 먼저 사랑해주는 기적이란 없던데. 끝까지 바보 같은 김종인은 마지막까지 내 이름 하나를 못 불렀지만, 변백현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내 상처를 토닥여줬다. 놈의 가슴팍이 꼭 내가 숨어야 할 쥐구멍이라도 된 것 같았다. 마침내 태양이 완전히 빛을 잃으니 캄캄한 어둠으로 하늘이 채워져가고 있었다. 김종인은 태양이다. 태양, 적어도 어제까지는 그랬다. 태양이 졌다. 그리고 달이 떴다.
" 괜찮아, 잘했어. "
" ……. "
" 괜찮아, 괜찮아. "
" ……. "
" 괜찮아, 잘했어 ○○아 "
짝사랑의 조건 열두 번째 : 고백은 참 한순간, 그러나 생각나는 건 평생이다.
백현아ㅠㅠㅠㅠ이제 여주 좋아한다고 말해ㅠㅠㅠㅠㅠ그것만말하면 끝이야ㅠㅠㅠ
그래도 잘했네 백현이랑 잘되라ㅜㅜㅜ
헝..ㅠㅠㅠㅠㅠㅜㅜㅜㅜ안아줬어ㅜㅜㅜㅜ
여주야 ㅠㅠㅠㅠㅠ 걱정마 괜탆아질거야 ㅠㅠ
마지마대사레알심쿵
그럼이제백현쓰랑.....!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07.21 21:15
백현이랑 백현이랑 백현이랑
백현이 ㅜㅜ 야아....종인이 헛다리짚은거 아니란말야 ㅜㅜ
고백햇어..너무갑자기고백해서독자로서당황스럽다..근데너무허무해ㅠㅠㅠㅠ
눌렀던게 터져서ㅠㅠ
ㅠㅠ종인이는 정말 1도 눈치 못챘나보다.... 그동안 보면서 쪽팔림을 감수하기 위해 니니가 눈치 못챘으면 좋겠다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조금이라도 눈치를 채줬으면 하는 바램..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백현이 왜저렇게 다정해ㅠㅠㅠ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ㅠㅠㅠㅜㅜㅜ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07.30 13:30
진짜 갑자기 고백해서 당황하긴 했는데 여주마음도 이해 될듯....
여주야ㅠㅠㅠㅠㅠㅠ여주도 힘들겠고 당황한 종인이도 뭐 그나름대로 황당하긴 했을듯
여주 진짜ㅜㅠㅜㅜㅠ 너무 속상하겠다ㅜㅠㅠㅜㅜㅠ 백현이 위로해주는 거 진짜 너무너무 설레요ㅜㅠㅜㅠㅜㅠㅜ
달이 백현이 너였으면.....
백현아ㅠㅠㅠㅠㅠㅠ아진짜ㅠㅠㅠㅠㅠ넌따뜻해..ㅠㅠㅠㅠ
여주 마음아프겠다ㅠㅜㅜㅜㅡㅡ
백현 맴찢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1.03 01:25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1.12 12:38
내입장이였으면 그냥통곡했겠다....정색하고다닐듯
변백현이랑변백현이랑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1.28 04:05
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어떡해ㅠㅠㅠ
여주 맴찢..
여주 진짜 마음 아프겠다ㅠㅠㅠ 백현이랑 잘 됐으면
후련한것보다는 너무 아프다ㅜㅠ
종인이한테 고백할때 얼마나 가슴이 먹먹하고 제가 다 맘이 아프던지...
근데 백현이가 여주맘을 토닥여줬어ㅠㅠㅠ 아 맘껏울어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2.30 19:04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2.31 03:57
여주 어떡해여ㅠㅠㅠ 그와중에 백현이 위로에 설레네요
여주야ㅠㅠㅠㅠㅠ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1.18 22:44
와 이번에 여주 너무 맘 아팠을것같아요ㅠㅠㅠㅠ위로해주는 백현이 너무 머싯는..ㅜㅜ
ㅠㅠㅠ보는데제가슴이다저릿해왔어요ㅠㅠ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2.16 01:17
백현이 여주 좋아하는거 맞으면 되게 마음 안좋겟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2.25 22:06
여주 어떡해요ㅠㅠㅠㅠㅠㅜ이제 종인이얼굴 어찌봐요ㅠㅠㅠㅠㅠㅠ백현이도 자기가 여주 좋아하는거 알았는데 여주 위로해주면서 얼마나 마음아팠을까요..
여주ㅠㅠㅠㅠ맘아프다ㅠㅠ
맴찢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ㅜㅜㅜ 종인가자꾸 그런말해서 얼마나 힘들었으면 ㅠ
백현이 넘나멋있다 여주울디마ㅜ
백현아 가자.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6.17 23:40
진짜 종인이랑 여주 어떻하냐ㅠㅠㅠㅜ 백현이도 얼마나 힘들었을까ㅜ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