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태영 어울림학교 교장
2011년 가을, 지천명을 넘긴 나이였다. 자의반 타의반 모든 것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에 빠졌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이고 싶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지금은 어울림학교에서 일하고 있다. 그 이야기다.
1. 어울림학교 만들기
학력이 인정되는 중고 통합과정의 조그만 대안학교를 만들고 싶었다. 지인들에게 학교법인부터 만들겠다고 하니, “돈 구하러 다니다가 여생을 마칠 셈이냐”며 말렸다. 이구동성으로 ‘공익을 위한 일은 공적 자원을 동원해야 하는 것’이라며, 교육청을 통하여 뜻을 이뤄보라고 했다.
이미 교육자치, 민선교육감이 들어서면서 대안교육의 성과를 공교육에서 긍정적으로 수용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었다. 공교육을 적대시하기 것은 시대착오적이며, 적극 협력하여 부족한 점을 상호 보완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많은 문제들은 있지만, 대한민국 산업화와 민주화의 1등 공신은 교육 아닌가?
교육청의 정책 자료와 예산을 살펴보았다. 학교폭력 피해자 대책이 부족했다. 가해자에 대한 대책과 예산 투입이 압도적이었다. 피해학생들과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을 집중했다. 피해학생과 학부모의 절박한 요구는 학업중단 예방, 정서회복, 학교 적응력 향상이었다. 이 일을 하고 싶었다.
관련 연구결과를 살펴보니 피해학생들은 불안, 우울, 신뢰관계 상실, 자존감 저하 등의 모습을 보인다고 했다. 효과적인 프로그램을 찾아보았다. 전문화되어 있는 프로그램이 참으로 다양했다. 문제는, 하나의 프로그램에 매몰되거나, 여러 가지를 혼자 다 하려들거나, 투자하지 않고 과실을 기대하거나... 이런 모습을 반면교사로 삼으며,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했다. 그리고 프로그램과 운영 시스템을 그려보았다.
제안서를 작성하여 보냈다. 경기도교육청에서 협의하자는 연락이 왔고, 우리나라 최초의 학교폭력 피해학생 대상 장기위탁 학교를 만드는 일이 시작되었다. 담당 교육공무원들은 창조적이고, 헌신적이었다. 어울림학교는 그분들에 의해 구체화되고, 설계되고, 현실화 되었다. 예산을 비롯하여 행정적으로 수반되는 많은 일들이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지속적으로 기울여졌다.
좋은 교육목표를 실현하려면 교사, 시스템, 관리능력 등이 준비되어야 한다.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약한 신호도 놓치지 않고, 부지런히 응답하는 교사. 학생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고, 즐겁게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시설과 관리능력. 그리고 상황 대처능력과 개인 맞춤형 프로그램 동원력 등이 준비되어야 했다. 소식을 듣고 대안학교 출신의 교사 세분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지인들의 네트워크와 조언에 힘입어 학교폭력 피해자 대상의 프로그램이 구체화되었다. 이완훈련, 갈등코칭, 생활예절, 공감훈련을 하나하나 점검하면서 도입을 준비했다. 2명의 생활교사가 합류했고, 외부 전문인들의 도움으로 프로그램과 시간표가 확정되었다. 뜻을 둔지 18개월, 교육청과 협의한지 9개월 만에, 어울림학교는 2013년 5월 8일 5명의 학생으로 문을 열었다.
2. 어울림학교 학생들
어울림학교 학생은 경기도내 중학생으로 본인과 보호자가 원하면, 소속 학교에서 의뢰하여, 교육청에서 심사를 하고, 어울림학교에서 면담을 하여 입소를 최종 결정한다. 2013년 28명, 2014년 7월말 현재 13명이 학교를 이용했다.
학생은 학교폭력 피해자들이다. 등교를 거부하며 방문을 잠그고 꼭꼭 숨어있던 학생, 보건실이나 상담실에 숨어있던 학생, 말을 안 하는 학생, 머리털을 광속으로 뽑는 학생, 분노조절 안 되는 학생, 우울과 불안 장애로 치료중인 학생, 부모에게 달라붙어 있는 분리장애 학생, 자해하는 학생... 이 특별한 학생들은 출석일수가 모자라 유급의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학생들은 월요일 오전 9:30~10:00 김포공항에 모여서 강화도로 등교한다. 공항에서 학교까지는 50분 정도. 스쿨버스가 아니라, 교사들이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다. 하교는 금요일 오후 3:00경 같은 장소에서 이뤄진다. 넓은 경기도 전역에서 학생들이 오기 때문에, 이동경로를 최적화한 결과다.
월~금까지는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한다. 아침 7시에 기상하여, 8시 이후 취침이 가능하고 11시에 소등하도록 한다. 숙면을 위하여 휴대폰을 비롯한 각종 전자기기는 잠 잘 때와 수업할 때 보관소에 맡겨둔다. 청소년기 수면의 중요성을 설득하면 잘 따라준다. 식사는 학생들과 교사들이 꼭 함께한다. 학교와 가정에서 혼자 밥 먹던 아픈 기억을 덮어주기 위한 배려다.
학생들은 1~2주 적응과정을 거친다. 이때 임상심리전문가, 정신보건 임상심리사에 의해 4종의 심리검사가 이뤄진다. 그리고 갈등코칭 전문가에게 자신의 코칭 주제를 상의한다. 담임교사와 생활교사의 세심한 관찰 의견이 제시된다. 이를 종합하여 학부모와 함께 위탁기간과 훈련 목표를 설정한다.
안전하고, 편안하고, 즐거운 학교
어울림 학교는 잔소리 없는 학교다. 명백한 가해행위가 아니면, 교사들의 개입도 최소화한다. 상처를 건드리는 강요된 상담은 없지만, 본인이 원하면 언제든 상담이 가능하다. 각종 검사와 관찰 결과, 학부모와 소속 학교 교사의 의견, 본인의 주장 등을 종합하여 불안과 걱정의 원인을 살핀다. 안전하고, 편안하고, 즐거운 학교생활을 느끼게 하는 것이 일차적 과제다.
스스로 잘 자고, 잘 먹고, 운동하고, 공부하는 학생
대부분의 수업은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뭔가를 함께 만들어보는 것을 추구한다. 날씨가 좋으면, 강화도 ‘나들 길’을 걷거나, ‘아라 뱃길’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산에 오르기도 하며 주간 운동량을 늘려나간다. 어울림농장 텃밭에서 감자, 호박, 고추, 상추, 토마토 등을 직접 기르기도 한다. 강화도 인근의 목수들과 침대, 책상, 화분을 제작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3개월 지나면, 대부분 심리 정서적 안정을 보이고, 체력도 향상된다. 그리고 잘 자고, 잘 먹고. 운동하고, 공부하는 학생으로서의 일상생활에 적응해 나간다.
신명나게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체험활동
매주 창의체험활동, 동아리 활동이 다채롭게 이뤄진다. 진로, 생활문화, 전통문화, 예체능 등으로 분야를 나눌 수 있지만, 가장 중시하는 것은 ‘좋은 기억 만들기’다. 강화도의 산과 바다, 갯벌, 역사의 현장과 유물 등은 체험활동의 최적지이다. 학생들의 ‘버킷리스트’에서도 활동 소재를 찾는다. 웨딩체험, 승마, 애견센터, 여행, 케익 만들기, 축제... 댄스, 연극, 밴드, 봉사 등도 학교 적응력을 높이는데 효과적이다.
3. 어울림학교 프로그램
‘어울림 트레이닝’ 과정은 ‘폭력’과 ‘왕따’의 피해자들이 몸과 마음의 안정과 위기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과 능력을 체험하고,‘커뮤니티 형성’으로 예방적 환경을 조성하여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지원함을 목표로 한다.
1) 상담/진단 프로그램(Consultation programs) 임상심리전문가, 정신보건 임상심리사에 의해 상담과 심리검사가 이뤄진다. 학생과 학부모의 인지/정서적 치유를 통해 학교 복귀를 위한 역량강화. 관계 기관과 연계하여 개별, 집단 상담과 치유프로그램 연결.
2) 이완훈련(Autogenes Training) 긴장에서 이완으로, 이완을 맛보는 것. 긴장과 이완의 균형을 통해 건강한 심신 되찾기. 충분한 수면, 밥, 소통, 휴식 등을 통해 자기조절과 균형감 향상하는 프로그램.
3) 갈등코칭(Conflict Coaching) ‘코칭’전문가의 도움과 사례학습으로 개인의 내면, 개인과 개인, 개인과 가족, 개인과 집단, 각종 사회관계 등에서 갈등이 어떻게 발생하고 어떻게 접근하는지를 배우고, 자신의 갈등에 대한 해결 방법을 찾아가도록 상황에 따른 갈등관리 방안 코칭. 자신, 가족, 친구, 남녀, 집단 등 각종 상황별 갈등 대처 능력 배우기. 단국대학교 갈등해결센터에서 진행.
4) 인간의 길(Realize & Sympathy Training) 감각과 감정, 그리고 사유작용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자신과 타인의 상태, 환경의 변화 등을 알아차리고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반복하는 트레이닝. 더불어 학생의 개별 심리, 스트레스 상태, 지능, 성격유형 등에 대한 검증된 진단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개별 처방을 제시함. 타인의 입장에서 함께 느끼고 공감하기. 자신의 내면 살피기,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환경 변화 알아차리기. 특수, 과학교사가 진행
5) 예절과 멋(Manner Training) 공동체에서의 예의범절과 생활예절 훈련. 가족, 친구, 이성, 미디어 등 다양한 인간관계에서의 소통, 배려를 이해하고 실천하도록 안내함. 예지원의 예절프로그램을 상황으로 설정, 각색하여 연극교사가 진행
6) 문화예술활동(Art & Sports activity) 정서적인 안정과 자아정체성 형성, 새로운 지식 및 매체를 활용한 예술적 표현력 확대. 음악, 미술, 미디어, 연극, 밴드 등 퍼포먼스 및 활동 중심 수업. 전문 극단과 공연 팀, 문화예술단체의 지원.
7) 자립교과(Self-reliance Training) 식-의-주 일상을 스스로 하기. 미각교육, 텃밭, 목공 등. 식생활교육국민네트워크, 강화도 어울림농장, 강화도 지역의 목수와 미술교사 등이 참여
8) 기본교과 : 각 학년 수준에 부합하는 기본교과 교육. 국어, 수학, 영어, 사회, 과학 교과(각 교과별 주 2단위) 강화도 인근의 교사 출신자들의 참여
4. 어울림학교 교사들
어울림학교 교사들은 학생들이 학교를 안전하고, 편안하고, 즐거운 곳으로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한다. 학생들이 잘 먹고, 잘 자고, 운동하고, 공부하는 기본생활이 습관이 되도록 노력한다. 학생들을 ‘뜯어고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무엇인가를 함께하고, 서로서로의 강점을 살리고, 약점을 덮어가는 과정에서 세상살이 적응력을 높이고자 노력한다.
이 과정에 참여, 헌신하시는 분들이다.
학생들과 두 시간을 함께하는데, 하루가 걸리는 지리적 악조건을 감수하고 있는 죽전 단국대학교 갈등해결센터의 김학린, 전현준, 박영욱, 이용호, 강보선 선생님. 미각교육을 담당하셧던 양재동 식생활교육국민네트위크의 윤여훈 선생님. 임상심리사 안도현 선생님, 예지원의 순남숙 박사님, 보건교육포럼의 우옥영 이사장님....
‘풍요와 힐링의 섬’ 강화도에서 학생들은 좋은 분들을 만나고 있다. 어울림농장 오성기, 목공 김일수, 국어 강현, 미술 인경화, 영어 홍성환 선생님은 강화도 인근에 거주하시는 분들이다. 미디어 활동의 어일우 이혜리 선생님 부부는 매주 볼음도에서 배를 타고 어울림학교에 오신다. 또 강화도의 자랑 함민복 시인도 백일장으로 비롯하여 틈틈이 학생들을 만나신다. 이분들 외에도 함께하시겠다는 강화도 분들을 적극적으로 모실 계획이다.
새벽 다섯 시부터 좋은 식단으로 밥을 준비해주시는 영양사 선생님을 비롯한 조리담당자들, 냉난방과 냉온수를 비롯하여 각종 시설을 관리해 주시는 분들 등 어울림학교를 지원 담당 선생님들. 이분들은 경기도학생교육원 소속으로 어울림학교를 돕고 있다.
생활교사 박성순, 송은지 선생은 학생들의 밤사이 안녕을 돌보신다. 아프거나, 잠 못드는 학생들을 토닥여주고, 이야기 들어주고, 기분까지 세심하게 살펴보신다. 아침 산책이나 체조, 식사하는 것이 습관이 되도록 안내해 주신다.
담임교사 허성준, 강혜연 선생은 월요일 아침 김포공항에서 만나서 금요일 오후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학생들의 몸과 마음을 살핀다. 학교생활을 즐겁게 하도록 안내하고, 한명 한명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고 헤아린다. 곽우년 선생은 학생들이 들고 날 때의 복잡한 행정업무와 아우토겐 트레이닝을 담당하면서 학생들이 이완을 알게 한다.
어울림학교는 이제 2년차다. 평가하기 이르다. 프로그램과 운영 시스템은 학기마다 개선해 나가고 있다. 3년차 쯤 해서 사례를 종합하여 정리할 생각을 하고 있다. 어울림학교의 문은 늘 열려 있으니, 많은 관심과 지도 바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