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길에서
김성문
흥무대왕(김유신 장군)은 충북 진천에서 탄생했다. 진천은 신라의 변방 지역이었다. 북쪽으로는 고구려군, 서쪽으로는 백제군이 있었다. 흥무대왕이 탄생한 진천을 서기 2019년 3월에 가 보았다.
충북 진천군 진천읍에는 김유신길이 있다. 진천 군청에서 서쪽에 있는 진천읍 문봉리 태령산 쪽으로 가다 보면 김유신길이 나타난다. 보탑사(寶塔寺) 쪽으로 약 2km를 더 가면 ‘진천 김유신 탄생지와 태실’이라는 입간판이 사적지를 상징하는 고동색 바탕에 흰색 고딕 글씨체로 탄생지 입구에 높이 서 있다. 삼국 통일의 주역이 탄생한 곳으로는 주변 정비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탄생지에는 집 한 채만 우두커니 서 있고, 사적지 안내판과 ‘흥무대왕 김유신 유허비’만 우뚝하다.
흥무대왕의 아버지는 신라 김서현 장군으로 현재 진천군인 만노군의 태수(太守), 합천인 대량주의 도독(都督), 양산인 삽량주의 총관(摠管)을 거쳐 대장군에 이르렀다. 도독이나 총관은 신라 각 주(州)의 으뜸 벼슬이다. 신라의 관등으로는 최고 관등인 각간(角干)에 올랐다.
김서현 장군은 서라벌에서 생활했다. 『삼국사기』 「김유신 상」 편에 보면, 김서현은 길에서 갈문왕 입종의 아들인 숙흘종의 딸, 만명(萬明)을 보자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혈통을 중요시하는 신라 왕실의 숙흘종은 자기 딸과 김서현의 혼인을 반대했다. 김서현은 진골의 신분이기는 해도 가야계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김서현은 신라 변방인 만노군의 태수로 가게 됐다. 이때 만명은 김서현과 함께 만노군으로 떠나려 하자, 숙흘종은 만명이 김서현과 정을 통한 것을 알고 별채에 가두고 사람을 시켜 지키게 했다.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자 숙흘종의 딸이 있는 별채의 문에 벼락이 떨어져 구멍이 뚫렸다. 지키는 사람들은 깜짝 놀라 흩어졌다. 만명으로 봐서는 기회였다. 만명은 그 구멍으로 황급히 빠져나가 김서현을 따라 만노군으로 갔다. 두 사람은 용감했다. 운명이 아니었든가 싶다.
만노군에서 김서현 태수는 서기 595년 이전 어느 경진(庚辰)일 밤에 하늘에는 오색이 찬란하고 영롱한 구름 속에서 화성(火星)인 형혹성과 토성(土星)인 진성의 두 별이 자신에게로 내려왔다. 황홀했다. 깨어보니 꿈이었다. 무속 신앙에서는 화성이 나타나면 전쟁이 일어나고, 화성이 없어지면 군사가 흩어진다는 믿음이 있다. 토성이 있는 곳에는 나라가 길하고, 있지 않을 때 있거나 이미 갔다가 다시 돌아오면 나라는 땅을 얻게 된다는 믿음도 있다.
만명부인은 만노군으로 온 후 고을 백성들에게 모범을 보이려고 길쌈을 배워 자정까지 일했다. 졸음이 와도 참고 길쌈하는 소리는 관아에서 그칠 줄을 몰랐다. 어느 신축(辛丑)일 밤 길쌈을 하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별안간 남천성과 북두칠성이 합쳐지더니 오색이 영롱한 빛이 베틀로 뻗쳤다. 그러자 금빛 갑옷을 입은 동자가 구름을 타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동자를 안고 기뻐하다가 잠에서 깼다. 이튿날 김서현 태수에게 조용히 지난 밤 꿈 이야기를 했다. 김서현은 빙그레 웃으며 큰 인물을 낳을 징조라면서 기뻐했다. 그 후 만명부인의 몸에는 태기가 있었다. 1년이 지나도 산고가 없더니 그럭저럭 20개월 만에 집안에 상서로운 기운이 나타나고 향기가 진동하더니 산고의 기미가 일어나 몇 시간 후 옥동자를 낳았다. 이때가 서기 595년이고 단기로는 2928년이다.
흥무대왕은 김서현 태수가 집무를 보던 곳에서 태어났는데, 그곳에 큰 담을 쳤다 하여 ‘담안밭’이라 불렀다. 주위에는 식수로 사용한 우물터인 연보정(蓮寶井)이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다. 탄생지는 뒤편이 태령산이고 앞은 연곡저수지에서 나오는 물이 성암천을 만들어 배산임수(背山臨水)가 되어 아름다운 곳이다.
사람은 보통 임신 기간이 10개월인데 20개월이라니 이해가 되지 않아 『삼국사기』와 『동국여지승람』 을 봐도 20개월이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그 당시는 개월 수 계산 방법이 오늘날과는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물의 임신 기간은 큰 동물이 작은 동물에 비해 임신 기간이 길다. 동물 중 임신 기간이 제일 긴 코끼리는 20개월이고, 제일 짧은 토끼는 30일이다. 토끼는 임신 중에도 임신이 일어난다니 새끼의 출산 방법은 다양하다. 동물의 경우 임신 기간이 길어지는 경우는 수정란의 착상 지연으로 길어질 수도 있다니 만명부인의 출산도 착상 지연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김서현 태수가 아들의 이름을 지을 때 부인에게 말했다. 경진일 밤에 길몽을 생각해서 지으면 좋겠지만, 예기(禮記)에 일(日)과 월(月)의 이름을 따서 짓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경(庚)자와 유(庾)자는 서로 모양이 비슷하고, 진(辰)자와 신(信)자는 서로 발음이 가까우며, 더구나 옛날의 현인(賢人)으로 유신(庾信)이라는 사람이 있었으니, 유신이라 이름하도록 하자고 했다. 옛날 현인 유신(서기 512~585년)은 중국 남조의 양나라와 북주(北周)에서 벼슬한 문인으로 화려하고 정밀한 문장으로 이름을 날려 그의 문체는 서유체(徐庾體)라고 일컬어졌다. 현인 유신은 양나라에서는 무강현후(武康縣侯)에 봉해졌고, 북주에서는 대장군 다음 위치인 표기장군으로 삼았다.
흥무대왕은 어릴 때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고 산다라(山多羅)라고 불렀다. 산다라는 신라의 사투리로 ‘굳세다’라는 뜻이다. 흥무대왕은 탄생할 때 등에 북두칠성의 무늬가 있었다고 『삼국유사』는 전하고 있다. 조선 시대 한명회도 등과 배에, 안중근도 배와 가슴에 북두칠성 모양의 반점이 있어 북두칠성의 정기를 받아 탄생했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북두칠성은 뭔가 비범한 인물을 상징하는 별들로 생각했다. 일연 스님도 흥무대왕은 북두칠성의 정기를 받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우리나라는 북두칠성을 칠성신(七星神)이 밝은 표정을 짓는 일곱 신령으로 부처의 모습을 한 것으로 본다. 중국 점성술에서는 북두칠성을 '인간의 죽음을 결정하는 별'로 보았다. 국가마다 북두칠성에 관한 생각이 다르다.
큰 인물에 대한 탄생 설화는 연기설(緣起說)로 꾸며지는 경우가 있다. 흥무대왕은 탄생할 때 큰 인물이 될 징조가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꿈 속에서 우주의 정기를 받고 옥동자로 태어 나서 큰 인물이 되었다. 김유신길에 서기(瑞氣)가 뻗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