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낳으려 당신 고향으로 가던 카필라 국의 마야 왕비는
가는 길에서 산후 진통이 시작하니 가던 길을 멈추고 룸비니 동산에서 아기 왕자를 낳았으니 그날이 음력으로 4월 초파일이다.
아기 왕자가 세상에 태어나니 동남서북 사방에 있던 하늘 신들이 날아와 아기탄생을 찬탄하며
"온 세상에 당신보다 더 훌륭한 이는 없습니다.
아기님은 어른이 되면 모든 세상 사람들을 고통과 괴로움에서 구해줄 최고의 성인이 될 것입니다."
하며 경배를 올리고 돌아갔는데,
후세에 사람들은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동남서북 각각 일곱 걸음을 걸은 후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가 모두 고통이니 내가 그들을 행복하게 하리라!"라 외쳤다고.
누구 말이 맞을까.. 우리는 말하고픈대로 말하길 좋아하고, 듣고픈대로 듣고 그가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무엇이 사실인지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더 좋아 보이나 보다.
그때 부처님이 되실 아이가 태어났음을 본 아시타 예언자는
자신은 이미 늙어 이 아기가 부처님이 되어 세상에 출현할 때 자신은 세상에 없음을 알고 애석한 마음으로 아기님을 찾아와 경배를 올리니, 아기 아버지인 숫도다나 왕은 그에 물었다
"이 아기가 어른이 되면 무엇이 되겠소?" 부처님이 되실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시타였지만
"이 왕자님은 자라서 전륜성왕이 되실 겁니다" 하고 대답을 했다.
당시는 여러 부족 국가로 나뉘어 있던 나라가 전쟁을 하여 강력한 왕권 국가로 거듭나고 있던 어지러웠던 시대였는데,
카필라국이 전륜성왕을 맞이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들은 숫도다나 왕은 얼마나 기뻤을까.
그는 아기 이름을 고타마로 짓고 행여 마구니에 잡힐까 애지중지 아기를 돌보았다.
그런데 아기 엄마인 마야 왕비는 아기를 낳은 후 칠일 만에 세상을 떠나니 아기는 이모 손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지만
아기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커져만 갔다.
어릴 적부터 무엇 하나 그냥 지나치지 않고 면밀히 관찰하던 왕자는 열 살 지음 봄 농경제에 참석하였는데,
농부가 쟁기로 땅을 뒤집어 놓으면 지렁이가 하늘을 보며 꿈틀거리는 데 그것을 본 작은 새가 날아와 물고 날아간다.
그뿐아니라 더 큰 새는 작은 새를 다시 잡아채가지 않는가.
그 모습을 본 왕자는 약육강식의 비통한 세계가 너무 가슴이 아파 농경제를 빠져나와 무우수 나무 밑에 앉아 명상에 잠기었다.
"세상은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곳인가.. 강자와 약자가 함께 사는 세상은 어찌 저리 고통스러운까?
저 고통을 멈추게 할 수는 없는 걸까?"
열 살이었던 고타마는 자신을 잊고 골똘히 생각을 했지만 답을 찾지 못한 채 깊은 명상에 머물렀다.
이제 해가 중천에 올라 모든 것을 태우려는 듯 이글거리는데..
명상에 잠긴 아이는 그것도 모른 채 그대로 앉아 있다.
그러자 무우수 나무 그림자는 해를 따라 움직여 고타마가 앉아 있는 곳을 햇빛으로 부터 가리니,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던 왕자를 그늘 속에 있도록 해주었는데..
어린 왕자는 그것도 모른채 그저 깊은 명상에 마물러 있었다.
어른이 된 고타마 왕자는 자기가 겪는 고통을 치료하고자
왕이 되는 자리를 버리고 몰래 성을 빠져나가 몸과 마음을 닦는 수행자가 되었다.
그는 먼저 당시 최고 명상가로 소문난 알라라 칼리마 마스터를 찾아가 마음을 닦는 명상법을 배워 이내 최고 명상 마스터 반열에 오른 만큼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잠시,
명상에 있을 때 고통은 눈 녹은듯 사라졌지만 명상에 깨어나면 괴로움은 다시 생기니..
명상 수행만으로는 부족함을 느껴 다른 수행을 찾아 길을 떠난다.
하여 그는 마음 닦는 수행만이 아닌 몸을 괴롭히며 닦는 고행자가 되었는데
그것도 얼마 걸리지 않아 최고의 고행 수행자 마스터가 되니
그 소문을 들은 자들이 찾아와 경배를 올리며 도움을 청하는 자리에 이르렀지만,
수행자 고타마 스스로 세운 서원인 "일체 고통을 멸하리라" 인 목표에 완전히 이루지 못해..
모든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보고 고행을 멈출 수 없었다.
그런 동안에도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 어느새 6년이 흘렀다.
무엇을 깨쳐야 일체 슬픔과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까?.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는 누구인가..
하여 '나'라고 여기는 몸과 느낌과 생각과 의지를 깊히 관찰하니..
지금까지 몸과 마음의 주인으로 존재하는 줄 알았던 '나'는 실은 없음을 이치적으로 깨달았다.
내가 없다면.. 일체 고통과 슬픔이 어디에 머물고 있는 것인가..
그 '나'를 해결하고자 이제까지 열반에 이르려 함께 고행을 하던 다섯 사문과 헤어진 고타마 수행자는
오로지 붙잡고 있던 고행 수행을 미련없이 버리고
이 몸과 마음의 주인인 척 머물고 있는 '나'를 이젯껏 닦은 수행력을 한껏 발휘하여
완전히 태워버리니,
브라만과 하나가 될 것으로 믿고 있던 나, 거듭 거듭 윤회하는 자인 나, 죄를 짓고 괴로움을 받는 나, 죽으면 영생한다고 믿고 있던 나는 그 어디에도 없음을 깨치니..
오호라..
무아를 깨친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신 것이다.
오오 성스러움이여, 거룩하여라! 우리 세상에 부처님이 탄생하셨네!
마음을 닦는 명상 수행을 하고, 몸과 마음 닦는 6년간 목숨을 건 고행 끝에
고타마 수행자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으로 탄생한 곳은 보리수가 있는 부다가야였다.
이제 부처님인 석가는 스스로 세상 모든 슬픔과 고통을 멸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모두의 괴로움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을 45년 동안 세상에 전하시니
그의 제자들은 부처님이 탄생한 사월 초파일이 되면 세상을 향해 부처님 가르침인 '나를 바르게 보라'는 슬로건으로 불을 밝히는데,
여전히 세상은 게슴츠레 자기 탐욕과 이익만의 눈을 뜨고 있을 뿐이다.
세상의 현인들은 부다가야에서 부처님 되심을 두번 째 탄생이라 하며 부모로 부터 받은 나와는 다른 나가 있다는 자각의 탄생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그런데 부처님 스스로는 인간은 부모에게서 태어나는 첫 번째 나는 물론 두 번째 탄생할 수 있는 그런 나는 실로 없다고 강조하신다.
오히려 첫 번째 이든 두 번째 이든 그런 나가 나가 아님을 깨칠 때 온갖 괴로움과 슬픔을 멸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
부처님이 열반하신 지 2567년이 되는 올 2023년에는 과연 몇이 '나 없음'을 깨치고 일체 괴로움에서 벗어날까?.
나 있음에서 나 없음이란 나 있는 세상에서 나 없는 세상으로 넘어가는 게 아니다.
내가 있다는 여기에 그대로 있는채 그냥 벗어나는 것이 나 없음이다.
룸비니는 룸비니가 아니고, 부다가야는 부다가야가 아니다.
그것은 실체가 없으니 그저 이름이 룸비니요, 부다가야일 뿐이다.
나무 석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