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대-1 지휘자 - 박시춘 (朴是春 1913~1996-경남 밀양) 기타, 작곡가, 지휘자
[음악경력]
오케레코드사 전속 작곡가 (1936)
럭키레코드사 설립 (1948)
대한 레코드작가협회 초대회장(1958),
한국연예협회 초대 이사장(1961 이후 4대~7대)
한국예총 부회장(1965)
예술윤리위원회 부회장(1966)
[수상]
문화공보부장관 공로상 (1967)
대한민국 문화훈장 보관장(1982 -대중가요 작곡가로서 처음 수상)
대한민국 연예대상
[작품]
애수의 소야곡, 꼬집힌 풋사랑, 울며 헤진 부산항, 서귀포 칠십리, 이별의 부산정거장, 청춘고백, 신라의 달밤, 비 나리는 고모령, 고
향만리, 굳세어라 금순아, 전우야 잘 자라. 전선야곡, 고향초, 삼다도 소식, 아메리카 차이나타운, 돌지 않는 풍차, 일자상서 외 다수
[스토리]
일본 유학시절 중학생 때 순회공연단을 따라다니면서 악기들의 연주방법을 익혔다. 특히 기타를 치는 솜씨가 뛰어났고 한때는 공연
단에서 영사기 돌리는 일을 하기도 했다. 1938년 가수 남인수가 부른 〈애수의 소야곡〉이 히트하여 명성을 얻기 시작했으며, 일제 말
과 1950년대 초반에는 악극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KBS가 발족된 1948년부터 KBS전속경음악단의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가요와 영화음악 등 창작활동에 심혈을 기울이기도 했다.
1958년에는 영화음악에서 한 걸음 나아가 직접 오향영화사를 설립해 영화제작도 했으며 육체의 길, 가는 봄 오는 봄, 딸 칠형제 등
과 같은 히트작을 내기도 했다. 당대의 작곡가 중 가장 많은 히트곡을 낸 작곡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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