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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청부(請負)를 받겠소 -1
하오경, 백리웅은 청색 유삼을 걸친 채 다루로 갔다.
선향지는 백리웅을 위해 길쌈을 하는 중이고, 세 명의 노복은 그
늘 밑에 모여 장기를 두느라 백리웅이 밖으로 나가는 것도 알지
못했다.
<문인다루(文人茶樓)>
백리웅은 그 삼 층에 올라갔다.
삼 층은 오전경 상인들에 의해 하루 종일 임대되어 있는데, 임대한
상인은 바로 혈살수 중의 하나였다.
백리웅은 그들의 벗 행세를 하고 다루 삼 층으로 올라갔다.
구천살수대(九天煞手隊)의 우두머리는 상인 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백리웅이 들어서자, 즉시 백리웅의 손을 보았다.
묵지환(墨指環). 그들은 백리웅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묵지환을
보고서야 절을 했다.
입을 벌려 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살수가 되는 첫째 조
건은 입이 무거워야 한다는 것이다. 필요 없는 말은 할 필요가 없
다.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는 것. 그것은 간혹 도끼가 된다. 말을 다스
리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언제고 그 말의 도끼에 찍혀 제 명(命)을
단축하게 되는 것이다.
다향(茶香)이 그득했다. 백리웅은 차맛을 음미하며 가끔 고개를
끄덕거렸다.
모든 대화는 전음입밀(傳音入密)의 수법에 의해 이루어졌다.
"만병보(萬兵堡)라!"
백리웅은 혈천대장의 말을 듣고 눈빛을 차갑게 했다.
"신비전을 단숨에 부술 수 있는 길은 그 방법뿐입니다. 뇌화굉천
단(雷火宏天彈)을 취하는 것입니다!"
혈천대장은 과거 지옥마도에 모였던 일천 명의 악인 중 백리웅 다
음으로 자질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백리웅이 없었다면 바로 그가
대살수 지위에 올랐을 것이다.
그는 과거 녹림대도(綠林大盜)로서 강호 정세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신투술(神偸術)을 믿고,
황궁을 털려다가 어전위사(御前衛士)에게 잡혀 무공을 폐쇄당했었
다. 그는 사형수가 되어 차꼬를 찬 채 죽을 날만 기다리며 살아야
했다. 그러던 중 백리웅 손에 죽은 십대총관 중 하나가 옥을 부수
고 그를 구했던 것이다.
백리웅은 혈천대장이 하는 말을 들으며 가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소면혈장인(笑面血匠人) 환교(幻巧)라는 자의 심중을 정확
히 알아보도록 하게."
"예."
"가 보게들!"
백리웅은 말한 다음 의자에서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을까? 백리웅은 상담을 마치고 나서는
사람 행세를 하고 다루를 나섰다.
밖은 이미 밤이었다. 백리웅은 느릿느릿 걸어갔다. 여름도 이제
다 지나간 듯 밤공기는 꽤나 쌀쌀했다.
백리웅은 청운장 쪽으로 쉬지 않고 걸어갔다. 청운장이 자신의 거
처라는 생각은 없었다. 다만 달리 갈 곳이 없기에 청운장을 향해
발길을 재촉하는 것이었다.
그는 부지런히 걷다가 청운장의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았다. 문
사이, 선향지가 서서 백리웅이 걸어오는 것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
다. 사슴처럼 목이 긴 여인, 그녀는 백리웅을 보자, 얼른 고개를
떨구었다.
"언…언제 나가셨는지요? 신첩은… 자수 놓느라 여념이 없어 상공
이 출타하시는 것도 몰랐습니다!"
"내게 신경쓸 것 없소!"
"어…어찌 신경을 쓰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십시요,
정말 야속하옵니다!"
선향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백리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여인, 그녀는 강호인이 아니다. 그녀는 강호의 살벌함을 모른다.
그녀가 바라고 있는 것이라곤 웃는 얼굴로 백리웅의 품에 안기는
것 하나뿐이었다.
"피곤하오. 말을 건네지 마시오!"
백리웅은 선향지를 가볍게 제치고 안으로 들어섰다.
세 걸음 갔을 때, 격한 울음소리가 등 뒤에서 났다.
"흑!"
선향지는 대문 닫는 것도 모르고 울음보를 터뜨리는 것이었다.
'바보 같은 여인. 흘릴 눈물이 남아 있다니…….'
백리웅은 비웃으며 서재 쪽으로 갔다.
이틀 후, 백리웅은 삼경에 한 사람의 방문을 받았다.
일백팔 혈살수 중 경신술(輕身術)이 가장 빠른 비천대(飛天隊)의
우두머리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백리웅을 찾아온 것이었다.
백리웅은 그를 지하 석실로 안내했다. 비천대장은 이틀 사이, 천
오백 리를 왕복했는데도 그리 지친 기색이 아니었다.
일백팔 혈살수들은 각기 한 가지씩의 재간을 지니고 있었다. 영주
는 혈살수들이 여러 가지 절기를 익히도록 하지 않았다.
- 기재(奇才)라면 만능(萬能)일 것이나, 범재(凡才)라면 일능(一
能)으로 족해야 한다!
영주는 혈살수들에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매우 특이한 절기들을
하나씩 전수했다.
비천대장은 여러 가지 절기 중 신법 한 가지만 전수받았는데, 그
의 신법은 축지신행술(縮地神行術)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엎드려 말했다.
"만병지존(萬兵至尊)이 죽고 나서 만병보의 대통(代統)은 적자(適
子)인 무쌍신병객(無雙神兵客) 환비(幻飛)에게 전해졌습니다!"
"……."
"하나, 연병술(鍊兵術), 화기술(火器術)에 있어 더욱 뛰어난 사람
은 그가 아닌 그의 의붓동생 소면혈장인(笑面血匠人) 환교(幻巧)
입니다!"
"흠, 분명 갈등이 있겠군?"
"예."
"자세히 말하라!"
"무쌍신병객은 현재 창궁혈의맹의 호법 중 하나입니다. 창궁혈의
맹은 정도(正道)를 표방하나 창궁혈의맹에 속한 각 파는 암중에
사익(私益)을 취해 온갖 악행을 다 저지르고 있습니다!"
"……."
"환비라는 자는 화기를 이용해 만병보의 숙적인 천해채(天海砦)를
치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천해채?"
"정사(正邪) 중간의 작은 방파입니다. 환비는 현재 그곳의 여채주
를 사모하고 있다고 합니다!"
"흠!"
"하나, 천해채주에게는 연인이 하나 있습니다. 그녀가 이 년 전,
아주 우연히 알게 된 어느 미남자라고 합니다!"
"……."
"재미있는 것은 그가 바로 만병보주의 의붓동생, 소면혈장인 환교
라는 것입니다."
"훗훗, 점입가경(漸入佳景)이로군!"
"예."
"……."
"환비는 최근 들어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지극히 노해
환교를 죽이려 하는 중입니다!"
"환교는 어디에 있는가?"
"그는 숨었습니다."
"……."
"그는 천해채주에게 자신을 구해달라는 연락을 취하려고 합니다
만, 근처가 만병보의 고수들에 의해 포위되어 있어 연락이 될 수
없는 상태입니다!"
"훗훗, 잘 됐군. 급한 상태에 있는 사람이면… 훗훗, 제 피를 팔
라 해도 팔 수밖에 없겠지!"
백리웅의 눈으로 한 줄기 기광(奇光)이 떠올랐다. 그것은 한 번
불타올라 모든 것을 태워 버린다는 혜성의 빛이었다.
아아, 대살수! 그는 과연 강호에 어떠한 혈파(血波)를 던지려 하
는 것인가!
갈석산중(葛石山中)이다. 새벽과 함께 갈석산의 누런 봉우리들이
웅장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갈석산은 선인(仙人)들이 머물러 살았다는 전설이 있는 산이었다.
갈석산에는 동부(洞府)가 수없이 많다. 과거 방사(方士)나 도인
(道人)들은 신선이 되는 약을 굽기 위해 동굴로 찾아가 평생을 보
냈다.
영생불사(永生不死)한다는 것. 그것은 만인의 소원일 것이다. 하
나, 생명이 붙어 있기에 치욕을 당하는 사람도 허다하다.
갈석산의 황운봉(黃雲峰) 정상 바로 아래.
"크으으, 다 틀렸다!"
새벽 안개보다 유심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어두침침한 굴 속. 며칠 전부터 화살 맞은 곰마냥 피투성이가 된
채, 누워 신음하고 있는 홍의인 하나가 있었다. 나이는 스물다섯
정도. 왠지 모르게 귀티가 흐르는 청년인데, 눈에서는 한광(寒光)
이 쉬지 않고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나의 잘못이라면… 나의 어머니가 정실(正室)이 아니고 첩이라는
것뿐인데… 크으, 살아 이런 치욕을 겪어야 하다니!"
그는 죽어가고 있었다.
소면혈장인(笑面血匠人) 환교(幻巧).
그는 천하에서 손재주가 가장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를 두고 묘수
공공(妙手空空)이라고 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는 천하에서 철(鐵)
을 물처럼 사용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즉, 그는 쇠를 자기 마음
대로 주무를 줄 아는 사람인 것이다.
그는 삼대(三代) 만병지존(萬兵至尊)의 서자(庶子)였다.
그는 가끔 피를 줄줄 토해냈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얼굴을 한 번 보았으면 소원이 없겠다."
그는 여인 하나를 그리워했다.
소홍미(蘇紅美).
그녀는 이 년 전 그에게 찾아온 꽃 한 송이였다.
처음에는 서로의 신분을 몰랐었다. 둘은 이름은 숨긴 채 사랑을
나눴다. 그러다가 서로 원수지간임을 알게 되었다.
아아, 사랑이라고 불리는 것이 저주스러울 뿐 달리 무엇을 탓하겠
는가? 그러나 숙원은 사랑보다 강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영원히 사랑하는 사이로 남자고 언약하고 간간이 만나
밀회를 즐겼었다. 한데 그 일로 인해 살신지화가 초래된 것이다.
환교를 낳은 여인은 환비의 손에 능지처참되고 환비의 수하들이
환교마저 죽이려 들었다.
환교, 그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갈석산 중턱, 청영 하나가 바람처럼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는 벌써 운해(雲海)보다 높은 곳에 이르러 있었다.
가끔 구름바다를 내려다보며 감탄사 한 번쯤은 내뱉을 수 있을 텐
데, 그는 무정히도 산상(山上)으로만 치달려 올라갔다.
산 높은 곳은 단풍에 불타고 있었다. 산 위는 산 아래보다 춥다.
단풍은 산하보다 산상(山上)이 한 달이나 빠르다. 불 붙은 듯 타
오르고 있는 나무들, 핏빛보다도 진한 손바닥들이 바람에 흔들렸
다.
쏴아아, 꽤나 강한 선풍(旋風)이 곡내(谷內)에서 일어나고 있었
다.
슷…, 푸른 옷을 걸친 사람은 나는 듯 달리다가 사람들에게 저지
당했다.
"서시오!"
"이곳은 만병보가 금지(禁地)로 정했소!"
다섯 명의 무사가 찰나지간에 전방(前方)을 차단했다.
만병보는 천하 십파(十派) 중에서도 다섯째 안에 드는 대파이다.
게다가 그들의 힘은 인원수 이상으로 강했다.
- 누가 만병보에 죄를 짓겠는가? 만병보의 암기(暗器), 화기(火
氣)에 당하느니 차라리 지옥문 안으로 들어가겠다!
강호계에는 그러한 말이 떠돌고 있었다.
만병보의 고수들, 그들은 자칭 만병검수(萬兵劍手)라고 칭하고 있
었다. 그 수는 도합 일천오백인데, 그 중 반이 지금 갈석산중에
와 골짜기란 골짜기는 모두 이 잡듯이 뒤지고 있었다.
불쑥 나타난 청의인, 그는 꽤나 오만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나이
는 스물 정도인데, 얼핏 보면 병약해 보이는 문사 타입의 사내였
다. 몸을 반으로 가른 듯한 검은 허리띠가 묵채(墨彩)를 뿌리는
것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돌아가시오!"
만병검수 하나가 삿대질을 해대며 사납게 말했다.
"훗훗, 나로 말하면 천하제일색(天下第一索)이란 사람이오. 사대
(四代) 만병지존(萬兵至尊)께서 사람을 찾느라 땀을 흘리신다기에
… 훗훗, 은자나 몇 푼 벌어 볼까 해서 온 것이오."
여유 있는 목소리. 거기에는 감정이라는 것이 담겨 있지 않았다.
천하제일색(天下第一索)!
대체 왜 그런 이름으로 자신을 칭하고 있단 말인가?
천하제일색은 가슴을 툭, 치며 말했다.
"나는 실종된 사람을 찾는 데는 고금에서 제일 가는 재간을 갖고
있소!"
"실종된 사람을 찾는 재간이 좋다고?"
다섯 고수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천하제일색은 그들의 마음 속 허(虛)를 노리기라도 하는 듯 더욱
자신 있게 말했다.
"대가만 적당하다면 누구라도 찾아 줄 것이오. 훗훗, 만병보에서
실종한 사람 하나를 찾느라 만병보에서 이백여 리 떨어진 이곳에
대거 왔음을 알고 온 사람이외다!"
천하제일색, 그의 눈빛은 천하에 단 하나뿐인 신비안이었다. 아무
리 들여다보아도 그 깊이를 알 수 없다.
그 눈, 그것은 바로 백리웅의 눈이었다.
"따라오시오!"
다섯 고수는 전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백리웅을 포위한 채 산
중으로 들어갔다.
차 한 잔이 식을 시간이 지났을까? 백리웅은 산중에는 어울리지
않는 호화로운 천막 앞으로 안내되었다.
근처에는 암기 주머니를 허리에 차고, 궁(弓)을 든 고수들이 수없
이 모여 있었다.
'환교를 찾느라 혈안이 되었구나.'
백리웅은 비웃음을 억지로 참았다. 그는 천막 앞에서 일각 정도
기다려야 했다.
"안으로 들랍시는 만병지존(萬兵至尊)의 명이오!"
한순간 백리웅을 천막 앞으로 안내했던 사람 중 하나가 천막 밖으
로 나와 말했다.
"고맙소!"
백리웅은 팔자 걸음으로 걸어들어갔다. 넓고 화려한 천막 안에는
태사의(太獅倚)가 하나 앉아 있었다. 그 위에는 서른 정도 되어
보이는 금포장한(金袍長漢) 하나가 있었다.
그는 지금 손이 나긋나긋한 미인의 안마를 받는 중이었다.
태사의의 오른쪽과 왼쪽에는 무부(武夫)들이 열다섯씩 도열해 있
었다.
'위세가 천자(天子) 같군.'
백리웅은 금포장한을 바라보았다. 금포장한은 그를 보고 있었다.
"흠, 천하제일색(天下第一索)이라고?"
금포장한이 느릿느릿 말했다. 순간 백리웅은 피가 거꾸로 치미는
것을 느꼈다.
'그놈이다!'
백리웅은 살기가 일어남을 억지로 참아야 했다.
앞에 있는 자, 그는 백리웅이 마부였을 때, 창궁오열사(蒼穹五烈
士) 중 하나로 나타나 백리웅을 잡아 문초했던 자였다.
백리웅은 기억력이 남달리 탁월한 젊은이였다. 그는 한 번 본 얼
굴, 한 번 들은 목소리는 절대 잊지 않았다.
'틀림없다. 그놈이다.'
백리웅은 손끝이 떨리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그의 입술이 벌어지
며 조금은 간사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만병지존이십니까?"
"훗훗, 그렇다네!"
고개를 끄덕이는 자가 바로 환비(幻飛)였다. 그는 전에 비할 수
없이 위세 당당했다.
수년 사이, 변황의 세력은 약화되었고, 반대로 창궁혈의맹은 비밀
의 막 뒤에서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며 힘으로 무림을 장악했
다. 변황은 창궁혈의맹을 꺼려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상태였
다.
만병지존 환비! 그는 음탕하고 패도적인 자로, 자신의 길에 방해
가 되는 사람이면 어느 누구라도 가리지 않고 죽이는 자였다. 더
욱이 그는 창궁혈의맹의 문상인 무림문창성(武林文昌星)의 총애를
받고 있어 그 위세가 날로 더해가는 중이었다.
그는 어깨를 슬쩍 흔들었다. 그 순간, 사르륵… 사륵…, 이제껏
그의 어깨를 주무르던 여인이 치맛자락을 살짝 쳐들고 천막 뒤쪽
으로 빠져 나갔다.
환비는 백리웅을 오만히 내려다보며 물었다.
"듣자니 본좌가 만병보의 반역자 하나를 찾아 갈석산에 왔다는 것
을 안다고 하던데?"
"예."
"흠, 세인들이 만병보 이야기를 너무 쉽게 하는 모양이군. 훗훗."
환비는 비웃듯 웃다가 팔짱을 꼈다. 땅그랑, 땅그랑, 그의 소매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보옥패(寶玉牌)가 서로 부딪쳐 영롱한 소리를
자아냈다.
"천하제일색! 훗훗, 정말 사람을 잘 찾는가?"
"물론입니다."
"훗훗, 대가(代價)는 뭘 바라지?"
"찾는 사람의 가치에 따라 그 대가도 달라집니다!"
"흠, 대가야 얼마든지 줄 수 있지. 깊이 숨어 버린 그놈을 찾아
주기만 한다면……!"
환비는 말꼬리를 늘였다. 잠시 후, 그는 아주 차게 말을 이었다.
"하나, 못 찾을 경우 네 놈의 목을 내 놓아야 한다!"
"훗훗, 이미 각오했소이다!"
"대단한 자로군."
"자신이 있는 사람이지요."
"흠, 그럼 어서 찾아보게!"
"방수(幇手) 하나가 있어야 합니다. 그를 이곳으로 불러도 될는지
요?"
"마음대로 해 보게."
"알겠소이다."
백리웅은 오른손을 들었다. 그는 식지(食指)와 중지(中指)를 펴서
입 안에 댔다.
순간 삿! 삿! 삿! 환비 근처에 있는 자들이 일제히 검자루에 손을
댔다. 여차하면 검을 뽑아 백리웅을 벨 기세였다.
"삐이이-익-!"
한데 백리웅은 손가락을 이용해 긴 휘파람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
가?
새 소리를 닮은 휘파람 소리. 그 소리는 아주 멀리까지 퍼져 나갔
다. 그 소리가 채 여운을 맺기도 전, 천막 안으로 불쑥 떨어져 내
리는 흑건(黑巾)의 고수 하나가 있었다.
"어르신네, 속하를 부르셨습니까?"
그는 대뜸 백리웅을 보고 오체투지(五體投地)했다.
"저…저런 신법을 가진 사람이 있다니?"
"천하제일색, 이자는 보통 인물이 아니다."
순간 만병보 사람은 모두 혀를 내둘렀다. 병약해 보이는 천하제일
색에게 경신술이 신의 경지에 달한 부하가 있을 줄이야!
절하는 자는 마천대장(魔天隊長)이었다. 그가 갖고 있는 재간은 추종술(追踪術)이었다. 그것은 꽤나 섬세한 작업이다. 족인(足印)을 살펴야 하고, 초엽(草葉)이 훼손된 것을 살펴야 한다. 또한 간간이 인분(人糞)이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 쫓는 사람이 어느 날 어느 쪽으로 갔는지를 알아내기도 한다.
추종은 쉽게 할 수 없는 것이다. 한데 마천대장은 지금 아주 자신있게 말하고 있었다.
"제 후각을 이용한다면, 어느 누구든 찾을 수 있습니다."
후각이라니? 그것은 밑도 끝도 없는 거짓말일 뿐이었다.
"찾을 자가 쓰던 물건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저의 후각은 사냥개의 후각보다 백 배 더한 것입니다!"
마천대장은 당당히 말했다. 환비는 호기심을 느끼며 부하 하나에
게 눈짓을 했다.
잠시 후, 쫓기는 몸이 된 환교가 쓰던 장검(長劍) 하나가 마천대
장에게 전해졌다. 마천대장은 그것에 코를 대고 한참을 킁킁거렸
다.
그 사이, 그는 입술을 아주 가늘게 달싹거려 백리웅에게 전음을
보냈다.
"환교는 이미 찾았습니다. 그는 황운봉(黃雲峯) 위에 있습니다,
대살수!"
"수고했네!"
백리웅은 입술도 달싹이지 않았다. 그는 혜광심어공(慧光心語功)
으로 의사를 상대의 뇌리에 심어 버리는 재간을 이미 터득한 후였
다.
얼마 후, 마천대장은 장검을 들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만병지존과 그의 수하들은 즉시 그 뒤를 쫓기 시작했다.
스슷- 슷-, 한 떼의 무사가 일진선풍(一陣旋風)처럼 산 위로 날
나올랐다.
휘휙! 마천대장은 천리비행공(千里飛行空)이라는 영주의 비전절기
로 한 번에 사십 장씩을 갔다.
"지…지독히 빠른데?"
만병보 고수들은 하나씩 뒤처지기 시작했다. 만병지존 환비만이
쉽게 마천대장을 따랐다. 이십 장 뒤, 백리웅이 만병보의 장로 이
상 가는 고수 열다섯과 함께 환비의 뒤를 따랐다.
오십 리쯤 갔을 때, 환비와 마천대방의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되었
다.
백리웅은 장로들과 달리는 속도를 같이 하고 있었다.
'열다섯. 훗훗…….'
백리웅은 갑자기 신형을 뽑아 올렸다. 펑, 그는 탄지지간에 십 장
날아 십오 장로를 뒤로 떨궜다가는 급격히 몸의 방향을 틀었다.
쉬이이-잉, 그가 장로들 쪽으로 되돌아가자 만병장로들은 질겁을
하며 옆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무슨 짓이오?"
신륜구주비(神輪九州飛). 십오 장로는 흩어지며 하나의 진식을 이
루려 했다.
"훗훗, 너무 늦었다!"
백리웅은 진세가 다 시전되기 이전, 진의 우두머리 되는 자의 머
리 위에 이르러 혈흔마검(血痕魔劍)을 뽑고 있었다. 스르르르…릉
…, 차가운 울음 소리가 나더니 파팟! 막 기(旗)를 꺼내 진세를
지휘하려던 자의 허리가 반으로 갈라졌다.
"케에에-엑-!"
피보라가 지면을 적실 때였다.
"전광인(電光印)!"
위이이-잉! 위이이-잉!
혈파(血波)가 사위를 휘감으며, 섬뜩한 소리와 함께 도처에서 피
보라가 일었다.
"크아아-악!"
"저…저주스러운 놈!"
만병장로들은 단 일 초도 받지 못하고 모두 시체가 되었다. 검에
닿은 부위는 불에 데인 듯 검게 타 있었다. 전광인검결(電光印劍
訣)을 쓰면 자연히 전광진기(電光眞氣)가 일어나 돌을 태우는 것
이다. 그러니 사람 살이 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환비를 찾아가자."
백리웅은 운룡대구식(雲龍大九式) 중 용행구천(龍行九天)으로 몸
의 방향을 틀며 날아올랐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