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우주,무한한 시간 속에서 당신과 같은 시간,같은 행성위에 살아가는것을 기뻐하며"
-칼 세이건-
오래전 일이다 그때 왜 그 목간통을 가게 됐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살던 동네도 아니고 평일이었으며 그것도 낮 시간에 말이다
KGB(코리안골든방우) 근무를 마치고 잠시 백수의 호사를 누리던 시절이었지 싶다 동래지하철역이 들어서기전, 그 삐알에 자취하던 시골출신 친구가 한명 있기는 했었다 어쨌건 그근처 목간통서 그녀석을 만났다
의례 그렇듯 탈의실서 발가벗고 저울위에 올라 근대질하고 방금산 파랑색 때수건, 앙증스런 일회용 비누,
미니 비닐팩에든 샴푸 등등을 챙기고 욕실에 들어섰는데 무척이나 썰렁했다 아마도 목욕시즌이 아니였나보다
영감님 한분이(지금내또래쯤)커다란 욕탕에 홀로 몸을 담그고 계셨는데 한쪽 벽면으로 앉아쓰라 늘어선 샤워기들중 중간쯤에 젊은녀석(그당시 내또래쯤으로 보이는)하나가 쬐맨한 깔개 의자에 앉아 사타구니쪽을 집중적으로 문지르고 있는 모양인데 궁댕이가 너무커서 의자를 다 덮고도 남아서 궁댕이 살이 욕실바닥에 닿을 지경이었다 그뿐이랴 등짝은 또 넓디 넓어서 백두장사급 등드리다 고릴라로 치자면 실버백 등짝이라 할만했다
그뿐이랴 깎아지른 머리 모양이 사각모양으로 각이 딱 딱 진 깍뚜기 모양이라...
이크~! 조신하게 굴어야겠다 싶었다
냉탕 들어가 첨벙거리는 경거망동은 삼가해야할 일이겠고 온탕 입수 조차도 물소리 안나게 조심조심 해야겠다 싶었고 두개가 겹쳐진 물바가지 빼내면서도 소음이 나지않도록 무진 애를 썼다 녀석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하기위함 이었다
그러고는 녀석과 가장 멀리 떨어진 외진 구석에 자리잡고 앉아 복숭뼈 때 배끼고 있는데 뒤통수에 서늘한 느낌이 있어 뒤돌아보니 녀석이 나를향해 성큼 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실버백 등짝에 깍뚜기 머리를한 짐승이 쌍방울을 덜렁거리며...
짧은순간 이었지만 많은 생각이 스쳤다
저 짐승은 왜 나를향해 오는걸까
날 패러? 왜? 내가 뭘 잘못했나?
녀석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하기위해 그만큼 조신하게 굴었는데?
어째야하나 한번쯤 째려봐줘야 하나? 아님 발가벗은 이상태에서 에라 모르겠다면서 토껴야하나? 하지만 아무짓도 못하고 앉아 있었다
잔대가리 지수가 꽤 높았던 나로서도 어찌할수가 없었던 위기의 순간이었다
멍~해 앉아있는 내앞에 우뚝 서서는 노랑색 때수건을 내 코앞에 내민다 우찌? 등밀어 달라고? 그럼 안패나? 무서워 하면서도 나는 빵끗 웃으며 때수건을 건내받았다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그러는 중에 녀석의 한마디는 내 귀를 의심케 한다
"아저씨 우리 등밀어주기 해요"
얼라리? 온갖 추측을 해가며 공포로 얼어붙었던 나의 정신세계는 또다른 혼란을 겪기 시작한다
녀석은 외모에 걸맞지않은, 지극히도 모범적인 범생어를 구사 했던 것이다 이어지는 녀석의 범생어는 나를 경악케 한다
"나는 때가 없기 때문에 한번만 밀면 되고요 아저씨는 때가 많아서 두번 밀어야 돼요"
또박 또박,빠르거나 느리지 않게,경인지방에서 쓰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표준 모국어를 천진난만 하고 귀엽게 구사하려 애쓰고 있는것이다
순간 나는, 덩치만 산만한 어린애가 아닐까 싶어 녀석의 사타구니를 재차 확인 했지만 그렇지도 않다
녀석의 사타구니는 시커멓다
하면...녀석은 영혼이 지나치게 맑디 맑아서 나이에 걸맞은 잡다한 생각들을 담아내지 못하고, 그렇기에 험한 세상 때묻은 생각들은 엄마 아빠가 대신 해주는갑다 싶었다
어쨋건 그러고마 했고 나는 녀석의 넓은 등짝을 씻어줬다 두번,
맨등짝 빡빡 밀고 비누칠 해서 사각사각 밀고 물온도 맞추어 뽀드득 뽀드득 행궈주고는 가냘픈 내등짝 맏겼다 녀석은 가냘픈 내등짝 밀면서 무척이나 행복해하는 눈치였고 나는 인내 했다
사람의 신체란게 사람마다,부위별로 느끼는 감각이 다른법이라 녀석의 손이 느끼는 온도와 나의 등짝이느끼는 온도는 많이 다를진데 그딴걸 알턱이 없는 이 맑은 영혼은 뜨거운물 끼얹어가며 내게 고통을 준다
이제 다 됐지 싶어 등짝빼고 돌아 앉으려는데 녀석은 그러는게 아니라며 우긴다 내가 두번 밀었으니 자기는 네번 밀어야 한다는거다 의외로 녀석은 2 의 배수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틀린 산수가 아니니 반박도 못하고 나는 또다시 인내했다
인고의 시간은 지나고 녀석은 깎듯이 인사하고 찬물에 행구고는 탈의실로 나갔다
안죽고 살아난 나는 온탕 냉탕을 오가며 자유를 만끽했다
한참이나 그러고는 탕밖을 나가보니 아직도 녀석은 꾸물거리며 탈의실에 머물고 있었다 아마도 녀석은 나와 목동(목욕갈때 같이가는 친구)
이 되고 싶었던가보다 배울점이 많은 친구였지만 난 그럴수 없었다
녀석의 맑디맑은 영혼을 오염시키고 싶지 않았던것이 이유에 포함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나의 단점이 걸려서이다 사람마다 장점이 있고 단점도 있기 마련인데 나는 유독 단점이 많은 인간이고 그 단점 중에는눈높이 대화를 할줄 모른다는점이 두드러진다 녀석과 친구 하기에는 너무 치명적인 단점 아니겠는가 해서 녀석과의 목동친구는 불가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모른척 하며 눈길을 애써 피하며 양말을 신고있는데 녀석이
"안녕히 계세요" 하며 돌아서는데
녀석의 바지가 살찐 똥꼬에 물려있었다 그게 내가본 녀석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래 녀석아 대화 즐거웠다
등밀이 놀이는 끔찍 했지만...
녀석이 집에들면 다정하고 자상하신 엄마가 맛있는 간식 만들어 주시고 쓰다듬어 주시겠지
행복한녀석...
녀석과의 인연이 별거 아니라구?
글쎄... 생각하기 나름이다
우주의 기원이 137억20년이라 하기도 하고(20년전에 137억년이라들었으므로)
170 억년 이라고도 하고 200억년 이라고도 하는데 글쎄...그 속사정을 내어찌 제대로 알겠냐마는 암튼 어마어마하게 오래됐다는 정도로 알고있으면 될일이겠고 우리 은하에 생성하는 항성이 수척억개이며 이러한 은하가 또 수천억개에 이른다하니 그 크기를 가늠하지못한다
이 거대한 시공간에서 같은 시간대에 같은 행성에서 공기를 나누어 마시며 살아간다는 자체가 확률적으로 기적의 인연 인것일진데 하물며 서로 발가벗고 앉아 맨살등까지 서로 밀어줬으니 그 인연의 깊이야 말로 다 하겠는가
산길을 가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옛말이 그냥 나온말이 아니고 과학적 이론을 기반으로 한 철학적 고찰인것이다
따라서 온라인에서 정을 주고받는우리 또한 범상치 않은 깊은 인연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