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03. 12
가끔 아마추어 복싱 경기장에서 2012년 런던올림픽 라이트급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현 서울시청 한순철 코치와 마주칠 때면 그를 발탁·지도했던 현 속초복싱연맹 진장수(1965년생 속초) 부회장이 생각난다.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으로 시계바늘을 돌려보자. 그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89년 11월 필자가 사범으로 근무하던 영등포 88체육관에 그가 입관하면서 시작되었다.
지도자 생활하면서 그 당시가 가장 힘든 때로 기억된다. 그 해 3월에 창단된 용산공고 복싱부를 맡아 새벽 5시면 체육관 숙소에서 용산공고에 출근했다. 한강 둔치에서 당시 고교 1년생 최요삼을 비롯 10여명의 선수들을 새벽 운동을 시킨 후 운동이 끝나면 체육관에 복귀, 2시부터는 1990년 1월 20일 챔피언 가나의 나나 코나두와 WBC 슈퍼 플라이급 세계타이틀이 잡혀있는 문성길의 돌주먹을 백골이 진토 되도록 미트를 잡으며 트레이닝에 매진할 때였다. 문성길의 훈련을 마치면 6교시 수업을 마치고 용산공고 학생들이 체육관에 4시에 도착한다. 그러면 그들과 함께 또다시 2시간의 훈련을 마치고 나면 체육관 뒤편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500원짜리 우동에 출출한 배를 채웠다. 이후 밤 11시가 넘도록 일반관원을 지도하면 하루일과가 끝이나는 일상이 반복되었던 지난날이었다. 후유증으로 어깨엔 통증을 달고 살지만 지난날을 후회하지 않는다. 물고기를 잡으려 하는 자가 옷에 물 묻는걸 두려워 할 순 없지 않은가.
▲ 2010 런던올림픽 복싱 은메달리스트 한순철과 그의 스승 진장수 관장 / 조영섭 관장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저녁 한끼를 해결하려고 포장마차에 앉아있었는데 “사범님, 그렇게 땀흘시고 무슨 우동입니까?”라고 말하며 누군가 내손을 잡았다. 며칠 전 입관한 진장수였다. 그는 나를 인근 경원극장 근처에 있는 통닭집으로 안내했다. 당시 허기를 채우면서 통닭을 뜯던 감미로운 추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진장수는 아마추어에서 19전14승5패8KO를 기록한 후 프로에 입문하기 위해 영등포 88체육관에 등록한 챔피언의 야망을 가진 노망주(늙은 유망주)였다. 크라우칭 스타일에 양 훅이 주특기였는데 상당한 파워를 지닌 하드펀처였다.
당시 1990년 신인왕전에 대비해 임성태, 조영환 등과 함께 훈련하던 어느 날 그는 고향 속초로 떠났다. 고향인 강원 속초의 동호전문대 학생과에서 연락이와서 챔피언의 꿈을 접고 떠났던 것이다. 그는 1993년도에 속초에 바닷가 소년들에게 복싱을 통해 꿈을 심어줄 수 있는 복싱 체육관을 최초로 설립했다. 설악산의 높은 정기와 동해의 푸르름을 간직한 인구 8만의 아름다운 항구도시 속초시에 새로운 명물이 탄생한 것이다. 그가 개관식을 할 때 필자는 복싱 링을 축하의 선물로 전달했다. 홍천, 춘천, 원주, 동해, 강릉에 비해 후발주자로 뒤늦게 출발했지만 그는 복싱에 애착을 갖고 성실히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아마복싱의 미래를 설계하는 복싱의 요람으로 구축했다.
1994년 전국선수권대회에서 김미성과 정석재가 동메달을 획득하며 전국무대에 첫선을 보인 후 1995년도엔 후에 국가대표로 성장한 플라이급의 정철희(서울시청)와 후에 프로복싱 2002년 MBC 전국신인왕전 페더급 우승자 여기혁, 김영준 등이 트로이카를 형성하면서 각종 전국대회에서 금·은·동을 싹쓸이, 바닷가 촌놈들의 광란의 질주가 시작됐다. 이후 꾸준히 선수양성을 해오던 중 2006년엔 전국 우승권대회에서 이민수와 이상훈이, 소년체전에선 송명근과 이재호가, 세계 유소년대회 선발전에선 김광철이 각각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우수선수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진장수는 칭찬이라는 비타민과 격려 배려, 용서, 사랑을 혼합해 온화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선수들을 지도해 결실을 맺었다.
▲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경기를 치르는 한순철(왼쪽) / 조영섭 관장
그의 26년 지도자 생활 중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슈퍼스타 한순철(1984년 속초)의 발굴이다. 1997년 속초 설악중 유호영 교사의 인솔아래 진장수 관장이 운영하는 속초체육관에 당시 중학교 1학년 13세 미소년이 입관했다. 이 소년이 훗날 2012년 런던 올림픽 라이트급 은메달 리스트 한순철이다. 왜소한 체구에 가난한 어부의 아들이었던 그는 선천적으로 순발력과 반사신경이 뛰어났다. 첫눈에 명품임을 감지한 진장수는 이런 그를 고려청자 제작하듯이 지극정성으로 심혈을 기울여 빚어냈고, 한순철은 화려한 광채를 품어내며 장족의 발전을 거듭했다. 급기야 1999년 중 3때 소년체전 핀급에서 테크닉의 진수를 보여주며 금메달을 획득, 슈퍼 루키로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속초고 2학년 때인 2001년 전국체전 은메달에 이어 2002년 전국체전 플라이급에서 값진 금메달을 걷어올리며 2003년 서울시청에 입단했다. 서울시청에 입단한 후 2006년 제15회 카타르 도하 아시안 게임 은메달을 시작으로 2008년 베이징올림픽·2010년 제16회 광저우아시안게임 동메달,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은메달, 2014년 제17회 인천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며 피날레를 장식했는데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 5회 출전한 기록은 한국아마복싱 역사상 그 어느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전무후무한 대기록이다.
▲ 박정필 서울시청 감독, 이경연 챔프, 한순철 코치(왼쪽부터) / 조영섭 관장
한번 반짝일 수는 있지만 오래동안 빛나기는 힘들다. 열광하는 삶보다 한결같은 삶이 아름답듯이 한순철의 복싱은 그래서 더욱 돋보인다. 여담인데 한순철이 2012년 런던올림픽에 출전할 때 필자는 감이 무척 좋았다. 왜냐면 한국이 첫 올림픽에 참가한 대회가 1948년 런던올림픽 대회였고 한수안 선생이 플라이급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는데 64년 만에 또다시 런던에서 올림픽 경기가 펼쳐진 것이다. 게다가 한수안 선생과 한순철은 같은 청주 한씨 복서라는 공통점이 있어 막연히 느낌이 좋았다. 그렇기에 필자는 세계랭킹 1위 신종훈보다 세계랭킹 19위인 한순철에게 메달에 대한 기대를 크게 걸었다. 결국 한순철은 런던올림픽에서 결승까지 무난하게 올라갔고 우크라이나의 로마첸코에 패했지만 값진 은메달을 획득했다. 그리고 곧바로 자신을 길러준 은사인 진장수 관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오늘의 은메달은 스승님 덕분에 획득한 눈물의 결실”이라고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진장수 관장은 이런 제자 한순철에 대해 훌륭한 복서 이전에 앞서 올바른 품성을 지닌 예의바른 복서라 칭송했다. 사업으로도 입지를 구축해 속초중심가에 3층 건물을 보유하면서 성공한 사업가로도 변신한 진장수 관장은 말은 부드럽게 행동은 단호하게 하는 전형적인 외유내강의 복싱인이다. 2012년도 용인대 졸업에 이어 제자 한순철이 졸업한 용인대 교육대학원까지 졸업한 만학도다. 현재 속초체육관 관장과 연맹부회장을 겸직하면서 사업가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에게 제2의 한순철 탄생을 기대해 본다.
조명섭 / 문성길복싱클럽 관장·서울시복싱협회 부회장
아시아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