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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2016 임란기 문경현감 오류
국학 추천 0 조회 38 24.10.14 16:29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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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4.10.21 23:12

    첫댓글 2016 임란기 문경현감의 오류

    아래 기록은 임진란정신문화선양회의 알림마당 / 공지사항 / 2016년 문경지역 임진란사 연구 학술대회 성료라는 기사의 일부이다.

    제4주제로 임란기 문경 지방관의 전쟁 대응을 이선희 중앙대학교 역사학과 초빙교수가 발표했다.

    문경이 전란사 연구에서 중요한 이유는 지리적 위치 외에도 문경현감에 대한 당시 실록기사에서 찾아진다. 당시 문경현감은 신길원(申吉元)이었다. 1592년(선조 25) 4월 13일 부산포에 도착하여 동래성을 함락한 후 북상하던 일본군 제1군이 4월 26일에 문경을 침입하자 이들과 전투 중 신길원은 전사하였다.

    1592년부터 1599년까지 문경현감을 지낸 인물은 『문경현지』에 따르면 이희급(李希伋) 최기준(崔琦準)·한종립(韓宗立)·김윤명 (金允明)·구계(具棨) 등 5명이다. 전란이 발발하였을 때는 신길원이 문경현감을 맡고 있었다. 신길원은 1592년 4월 26일에 문경에 침입한 일본군과의 싸움에서 전사하였다. 신길원이 전사한 후 변혼이 문경현감에 임명된 것은 1592년 9월이었다. 변혼이 문경현감에 임명된 과정은 전란시 수령의 임명절차를 보여주는 단서를 제공한다.

    이선희 중앙대학교 역사학과 초빙교수

  • 24.10.21 23:31

    전란기 동안 수령을 임명하는 기준은 지역별 사례별 차이를 감안해야 하겠지만 경상우도의 경우 도내에 현재 있는 사람 가운데 직임을 감당할 만한 사람이었다. 초유사를 거쳐 경상우도 관찰사직을 수행하던 김성일은 이와 같은 두 가지 기준으로 공석인 수령 자리에 새로운 도내 인물을 신속하게 차임하였다. 이후 김성일은 장계를 올려 이들 임명 내용을 알렸고 이후 왕의 정식 승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임명 절차는 변혼의 임명과정에서 그대로 적용 되었다.

    전란기 문경현감에 임명된 인물 중 주목되는 특징은 변혼과 최기준 및 홍함을 볼 때 도내 현재 거주하면서 의병활동 등 군공이 있는 자가 일차적인 대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한편 이희급의 예에서처럼 도내에 거주하면서 이전에 수령을 역임했던 인물 역시 주된 대상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문경현감은 문경 내에서는 문경전투와 양산사전투를 치렀다. 1592년 4월 문경전투에서는 당시 문경현감이 전사하기도 하였다. 양산사전투는 일본군이 넘어오지 못하게 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후 1593년에 있었던 함창 당교전투는 문경 내에서 있었던 전투는 아니지만 당교가 문경과 인접한 곳에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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