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알고 지내는 스님이 어머니 기일이라고 하셨다.
스님의 나이가 70이라 형제들이 모이기도 어렵지만 형제들간의 사이도 안좋아 아무도 안올거라 했다.
그래도 장남인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고
그렇다고 과일이나 떡을 사서 제사상을 차리기도 뭐해서 차라리 그 돈을 부처님 전에 올려달라고 하셨다.
스님은 깊은 산골에서 병약한 몸으로 태어났다.
5살부터 아버지가 만들어 준 조그만 지게를지고
아버지따라 나무를 하고 약초를 배웠다.
아버지는 산골에서 산삼이나 약초를 캐고 산밑 마을일 날품팔이를 하며 생계를 꾸렸지만 아래로 줄줄이 태어나는 동생들까지 먹고 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어린 스님은 초등학교에 도시락도 싸가지 못했다.
쌀도 없어 감자를 싸가는게 창피해 굶고 말았다.
결국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어린나이에 출가했다.
산너머 절에 들어가 나무를 하며 힘든 행자의 삶을 살아야 했다.
나무하고 장작을패니 돈을 주었고 그 돈은 집에 보냈다.
그렇게 평생을 남의 절 부전살이 하며 번 돈을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드렸던 것이다.
나는 스님께 어머님의 삶과 가족사를 듣고나서
어머님의 사진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젊을때, 돌아가시기 3년 전, 3개월 전의 사진을 보았다.
그리고 돌아가신 나이와 이름을 말씀하고 가셨다.
법당에 앉아 촛불과 향을 피우고
어머니 영가를 떠올리며 일치를 시도했다.
하지만 8년이란 시간이 흘러서인지 잘 되지 않았다.
그때 스님과 갔던 시골집이 떠올랐다.
어머니 돌아가신 빈집에 20년 된 소금이 독에 있다며 가져오자기에 얼마전 갔다 왔었던 것이다.
폐허나 다름없는 집에서 가져온 하얀 소금..
나는 혹시 어머니가 거기에 계시지는 않을까해서
집과 함께 어머님의 모습을 가슴에 담았다.
그랬더니 가슴이 심하게 흔들렸다.
어머니가 거기 계셨던 것이다.
"저는 아드님이신 스님과 가깝게 지내는 명상스님이라고 합니다. 오늘이 기일이라 부탁을 받고 어머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러니 어려워 마세요."
어머니는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셨다기에 물었다.
"아니, 왜 여기에 계십니까?"
어머님의 대답은 간단했다.
"여기가 내집이니까요."
어머님은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모르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우선 내 에너지를 펼쳐 어머니를 감쌌다.
그리고 고요한 마음으로 일치를 이루었다.
한참을 그 상태로 있으니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세상에! 이렇게 편한 맘은 처음이네요. 너무 좋아요."
"예, 그 마음을 계속 간직하세요. 그리고 여기와 계세요.
아들 스님도 내일 오실겁니다."
아들얘기가 나오자 보고싶어 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스님은 이제 술도 끊으셨어요."
스님은 평생을 술과 함께 전국을 방랑하며 살았다.
그런 스님이 술을 입에도 안댄지 8개월 째였다.
이 말을 들은 어머니는
"허허.. 놀랠 노자네요."
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눈치였다.
"내일 스님이 오시면 확인해보시고 오늘은 법당에서 편히 계세요."
다음날 아침,
나는 다시 어머님과 일치를 이루고 에너지를 생성해 영혼의 양식을 삼는 방법을 일러드렸다.
조금 지나니 확실히 기운이 안정된게 느껴졌다.
"이제 고단했던 삶의 기억들 모두 내려 놓으시고 다음생에는 하고싶은 것 맘껏 하며 사세요."
나의 말에 살아 온 기억들이 떠올랐는지
"아이고, 세상살이 별 미련도 없어요. 지금처럼 이렇게 편안하게 있는게 좋지 먹고 살려고 발버둥치고 싶지 않네요." 하며 말을 이어갔다.
"아들이 어렸을때는 잘 먹지를 못하고 하도 약골이라 강하게 키운다고 매정하게 대했는데 제가 나이먹고 보니 잘못했더라구요. 그렇게 해야 세상에 나가 잘 살 줄로만 알았습니다.
한군데 자리잡고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살기를 바랬는데 매일 술에 취해 방황하며 떠도는게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랑을 주지 못하고 가르치지 못한 후회로 어머니는 자책을 하고 있었다. 지긋지긋했던 가난이 되살아나고 갑자기 서러움이 복받쳐 눈물을 왈칵 쏟았다.
나는 순간 어머니의 감정과 일치되면서 생의 기억들을 느낄수 있었다.
나약한 여인의 몸으로 지독한 가난의 고통과 차가운 사람들의 시선을 오로지 자존심 하나로 버텨야 했던 모진 세월을..
가혹한 운명이었다.
마음이 진정되자 나에게 말했다.
"근데 스님, 제가 무슨 복이 있길래 스님이 도와주시나요? 저는 복받을만한 일을 한게 없는데요."
"왜 없어요. 자식이 둘이나 스님이 되었잖아요. 부처님께 자식을 둘이나 받쳤는데 그보다 더 큰 공덕이 뭐가 있겠어요. 그리고 원래 스님이 되실 분들은 평탄치 않은 환경에서 태어납니다. 스님들의 운명이 그런거지 어머님은 잘못이 없어요."
내 말과 함께 어머니는 전혀 다른 존재로 변해갔다.
가난에 찌든 여인이 아닌 당당한 생명으로.
그 모습이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그래, 우리는 본래 아름다운 생명이다. 생사윤회를 반복하며 과보따라 고통을 받지만 그것은 생명의 참모습이 아니다.'
육신을 벗은 어머니는
사진속의 병든 여인도
더이상 누구의 무엇도 아닌
하나의 온전한 생명이 되어있었다.
지금까지 천도하며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기쁨이 내 가슴에 일었다.
스스로의 변화된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는 감사함에 어찌할 줄 몰라했다.
"어머니는 저한테 소금도 주셨고 이런 기쁨도 주셨으니 신세갚으려 하지 마세요. 그리고 아들 스님께 하고싶은 말이 있으시면 전해드리겠습니다."
아침에 오신 스님과 차를 마시며 어머님의 얘기를 했다.
그리고 전해드린 한마디는
'고맙다'였다.
천도를 하다보면 그 분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 삶속에서 내가 겪어보지 못한 수많은 것들을 배운다.
너무나 가치있는 일이다.
계룡산 약선사에서 명상스님
010 - 3658 - 9517
* 가족이 꿈에 자주 나타나거나 사고로 돌아가신 분이 있어 천도가 필요한 분들은 연락주세요.
준비할거는 생전의 사진 몇장과 차 한잔 올리면 됩니다.
천도비용은 알아서 불전에 올리세요.